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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위대한 질문 - 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위대한 질문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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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가는 “신이 원하는 것은 선이다.”라고 말한다.·······선이란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느끼기에 좋은 것이다. 그 기준이 절대적으로 상대방에게 있다는 뜻이다.

신은 가장 매력적인 향기를 내뿜을 수 있는 세 가지 비밀을 알려주었다. “정의를 실천하며, 인애를 간구하며, 겸손히 너의 신과 함께 생활하는 것” 바로 이 세 가지가 선이라고 성서는 말한다.(305쪽)

  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삶이 선이다. 그 선은 우리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관심과 역지사지하려는 마음가짐,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들의 희로애락을 자기 자신의 일로 온전히 느끼고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312쪽)



갈수록 말하기, 글쓰기가 어려워집니다. 당연한 상식 같은 이야기를 애써 강조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기도 하거니와 그 상식조차 무시하고 제 곳간만 채우는 지배층의 행태에 넌덜머리가 난 탓도 있습니다. 말글살이가 구체적인 삶의 조건 속에서 영위되는 것인 만큼 오늘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기란 스스로 말문 닫고 글 손 묶을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언어도단 그 자체입니다.


작금의 상황은 민주정치, 특히 간접민주정치라는 표현 자체가 과두정치, 특히 금융과두정치를 은폐하기 위한 계략의 소산이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국민이 주권자라는 말이 요즘처럼 조롱당했던 적이 또 있었을까요. 소설가 이문열, 이 물건이 촛불시위를 북한의 집단체조에 비유했다고 합니다. 2008년 촛불도 ‘포퓰리즘의 승리’라고 비아냥거렸던 그인지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그 물건 눈에 국민은 개·돼지일 뿐입니다. 정의와 인애, 그리고 겸손의 대상인 사회적 약자란 그 물건의 사전에는 있을 수 없는 개념입니다. 그 물건에게 선이란 오직 ‘반공’ 잡귀에 빙의된 매판과두의 영구집권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2, 제3의 이문열이 촛불시민을 조롱할 ‘소설’ 쓰기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참 ‘소설’ 같은 사회입니다.


미가의 신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정의는 수탈당하는 사회적 약자를 일으켜 세워주는 것임을. 인애는 어미가 자식 위해 희생하듯 사회적 약자를 사랑하는 것임을. 겸손은 사회적 약자의 눈으로 세상을 읽고 살아가는 것임을. 그러나 지금 이 땅은 미가의 신을 사칭한 최태민의 신이 포효하고 있습니다. 최태민의 신은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고 때리고 가두고 죽임으로써 제의에 갈음하고 있습니다. 최태민의 신은 과두정치의 음산한 배후입니다.


최태민의 신에게는 촛불 공포가 있다고 전해집니다. 300만 개의 촛불이면 그 신을 지옥 무저갱에 넣어 영원히 봉인할 수 있다고 전해집니다. 정의와 인애, 그리고 겸손이라는 선으로 무장하고 내일 우리 자신이 300만 개의 촛불로 불탑니다. 그 불빛 사이로 섬세한 침묵의 소리가 지나갑니다. 미가의 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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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위대한 질문 - 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위대한 질문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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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의 영적인 눈과 정신적인 눈으로 보는 것에 의해 정의된다. 신은 아모스에게 “네가 무엇을 보느냐?”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아모스가 자신의 두 눈으로 보는 대상에 관한 것이 아니라 아모스의 궁극적인 관심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며, 삶의 다양한 관심사 중 무엇을 가장 우선순위에 둘까? 아모스의 눈은 다른 사람들의 눈과는 달랐다. 그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취약점을 감지하고 가슴 아파하는 전형적인 ‘호모 심파티쿠스’였다.·······

  아모스의 영적인 눈은·······‘형평’의 눈을 통해 이스라엘 공동체의 법률과 관습을 본다. 아모스는 사회적 약자를 보려는 시선을 ‘영적인 시선’이라 불렀다.

  정의란 무엇인가?·······아모스는 사회적 약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정의라고 말한다.(294-295쪽)


실로 점입가경漸入佳境입니다. 이제는 대놓고 팔뚝질입니다. 국민대통합위원회라는 해괴한 조직의 수괴에 최성규라는 물건을 임명했다니 말입니다. 최성규는 과거 5·16쿠데타 옹호 발언, 노무현 ‘북 대변인’ 발언을 했던 물건입니다. 심지어 세월호사건을 두고도 막말을 했던 물건입니다. 이 물건이 개신교 목사랍니다. 인천순복음교회 당회장이랍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전 회장이랍니다. 이 물건은 결코 개신교의 소수 일부가 아닙니다, 다수 전부의 대표입니다. 박근혜는 일부러 이 물건을 임명한 것입니다. 기존의 노선에서 단 한 발짝도 물러서거나 이탈하지 않았음을 만천하에 선포한 것입니다.


‘목사’일진대 최성규는 구약성서 <아모스서>를 여러 번 설교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고도 그런 행태를 보였다면 처음부터 결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취약점을 감지하고 가슴 아파하는 전형적인 ‘호모 심파티쿠스’”이긴 글러먹은 물건이었습니다. 다른 직업도 아니고 인간 구원을 목표 삼은 성직의 안목에 어찌 사회적 약자를 보려는 “영적인 시선”이 없을 수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나라를 구현하겠다는 ‘주의 종’에게 어찌 세상을 보는 “사회적 약자의 눈”이 없을 수 있는 것입니까? 영성 없는 가짜 목사가 분명합니다. 결국 가짜가 가짜를 발탁하여 가짜 국민통합 놀이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언자 아모스가 본 이스라엘의 정치경제학적 풍경은 지금 대한민국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했습니다. 1% 불의한 지배집단이 99%를 수탈함으로써 공동체 붕괴가 진행되는 중이었습니다. 멸망할 운명에 처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또한 지금 이대로라면 외침 없이도 멸망할 것입니다. 실질적으로는 이미 망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물건이 저토록 참람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뻔뻔하게 버티는 나라가 멀쩡한 나라일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이라는 물건이 사이비 목사에게 사로잡혀 패악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른바 정통기독교 목사가 그 마름질하려 엎어지는 나라가 멀쩡한 나라일 수는 없습니다.


여당 대표라는 물건이 이 판국에도 “인민재판으로 대통령 끌어내리려는 배후세력이 누구냐?”고 핏대를 세웠습니다. 200만 시민의 함성이 인민재판으로 보인다면 이정현 이 물건이야말로 ‘종북’입니다. ‘종북’ 입에 오르내리는 배후세력이라면 민주세력 밖에 더 있겠습니까. 제가 판 함정에 스스로 빠진 꼴이 참 가소롭습니다. 이 물건의 눈에는 매판괴뢰국의 주군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민주공화국 주권자는 한낱 눈 밖입니다. 이 떨거지 모두를 이참에 모두 응징해야 합니다. 국민 모두가 트인 영성 내부에서 들려오는 준엄한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명쾌한 답 하나 보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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