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앞 분수광장에

노란 복수초

핀 꽃 보며

진 독재자를 지워버린다




광화문 세월호광장에

노란 리본

떨어진 눈물 보며

솟아오를 진실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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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암스트롱, 자비를 말하다 - TED상 수상자가 제안하는 더 나은 삶에 이르는 12단계
카렌 암스트롱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마치 내가 재판정에 선 것처럼 어제부터 속이 답답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소주 두 병을 마시고야 잠이 들었다. 새벽에 잠에서 깨니 머리는 말짱한데 또다시 속이 싸해지고 가슴이 벌렁거린다. 한의원에 나가서도 괜히 서성대다가 짐짓 무관심한 척 환자 대기실 TV를 외면하고 원장실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어느 순간, 웅얼거리듯 들리던 이정미 재판관의 말에서 접속사가 바뀌는 것이 크게 귀에 들리자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가슴이 사정없이 뛴다. 손바닥이 순식간에 땀으로 흥건해진다. 마침내 전원일치 인용이 선언된다. 나는 간호사가 깜짝 놀랄 정도로 크게 박수를 친다. 두 팔을 힘껏 올려 만세를 부른다. 돌아서는데 튀어나온 말,


“아, 첫 승이다!”


잠시 후, 미국에 사는 제자한테서 카톡이 날아들었다.


“선생님,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는데 진짜 왔네요. 사실 저 자신에 대해서 회의적이었잖아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겠어요.”


내가 답했다.


“이런 날이 그냥 온 게 아니다. 지난 4개월 동안 1500만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개인의 삶도 꼭 이와 같다.”


혁명은 기적이지만 기적으로 혁명이 오는 것은 아니다. 소소하고 미미한 저항이 모여 커다란 혁명의 물결을 이루는 동안 우리는 미처 그 흐름의 틈새를 메우며 번져가는 역설을 눈치 채지 못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사실. 그 깨달음이 살짝 뒤늦게 도달하면 그제야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내가 나만의 나라면 박근혜가 파면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랴. 그렇지 않으니 내 촛불 하나가 박근혜 파면을 이끈다. 박근혜 파면이 박근혜 파면만의 박근혜 파면이라면 내가 가슴 졸일 일이 무에 있으랴. 그렇지 않으니 박근혜 파면에 내가 환호한다.


이렇게 커다란 혁명사건 속에 서서 나는 작디작은 나의 혁명을 생생히 느낀다. 내게서 비롯하여 네게로 번져가는 탱탱한 자비의 흥겨운 콧노래 소리가 들린다. 이제 시작한다. 아까 내지른 말을 다시 가만히 새긴다.


“아, 첫 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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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암스트롱, 자비를 말하다 - TED상 수상자가 제안하는 더 나은 삶에 이르는 12단계
카렌 암스트롱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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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자비로운 인간이 되려는 시도는 평생에 걸친 프로젝트다.(238쪽)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안다. 책은 이렇게 끝나지만, 우리 과제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240쪽)


박근혜 탄핵심판 선고일이 내일로 박두했다. 탄핵정국을 지나오면서 나는 인간이란 과연 무엇일까 새삼 정색하고 생각했다. 박근혜 범죄 사건이 터져 나왔을 때 숨죽였던 박정희교 신봉자들이 지금은 나라 말아먹은 제 주군을 지키려고 온갖 협잡질을 서슴지 않는다. 저들의 난동 한가운데 김문수, 인명진, 서경석 따위 인물이 있다. 과거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경력으로 명망가가 된 뒤 다시 독재정권의 품으로 돌아간 자들이다. 김문수, 인명진, 서경석은 과연 어떤 본성을 지닌 인간일까?


단도직입으로 말하면 이 질문에는 답이 없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본성이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통속하게 접해온 성선설이니 성악설이니 하는 본성 논쟁은 진실에 닿지 못한 조야한 담론이다. 선악은 범주 이항이 아니다. 선은 실재하되 실체가 아니다. 악은 실재하되 실체가 아니다. 대립하고 공존하고 혼효된다. 순수 선은 관념일 뿐이다. 순수 악은 관념일 뿐이다. 무한히 다른 맥락에서 각기 다른 생명 감각으로 살아가는 동안 선의 인연지음과 악의 인연지음이 소장을 거듭하다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 잡는다. 경향은 바뀌기도 한다. 바뀌는 본성은 없다. 인간은, 인간이라서 본성을 지니지 않는다.


김문수, 인명진, 서경석은 어떤 계기에 왜 그렇게 경향이 바뀌었는지 나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저들이 자비의 반대 방향으로 인연을 짓는다는 사실이다. 공동체 전체를 사적 소유의 대상으로 삼은 매판독재분단세력의 개가 되어 짖고 날뛰니 말이다. 저들의 무자비한 삶은 치열한 프로젝트다. 함께 살자는 자비의 삶 또한 프로젝트다. 더 치열한 자비 프로젝트여야 무자비를 넘는다. 프로젝트인 삶은 본성에서 자연히 나오는 결과가 아니다. 프로젝트로 본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인간의 삶이다.


이제 내가 속한 공동체 대한민국은 기로에 섰다. 나 물론 그러하다. 그 누구도 이대로는 살 수 없다. 오늘밤도 내일 밤도 모레 밤도 나는 광장으로 나간다. 나의 개인 프로젝트를 공동체 전체의 프로젝트에서 분리해내지 못한다.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제2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커다란 내러티브 안에 나의 작은 제2기 프로젝트 에피소드가 시작된다. 60년에 걸쳐 진행된 나의 제1기 프로젝트 경향은 김문수, 인명진, 서경석과 정반대다. 갈수록 날카로워진다. 앞으로 펼칠 나의 제2기 프로젝트는 전체 자비 경향은 그대로되 나의 경험을 우선순위에 놓는 시대, 그러니까 우울의 피안을 여는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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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암스트롱, 자비를 말하다 - TED상 수상자가 제안하는 더 나은 삶에 이르는 12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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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자신의 마음을 세심하고도 충분히 깊게 살펴보려 애써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적의 슬픔을 헤아릴 줄 알게 된다.(232쪽)

공유하는 고통과 동정심은 각자의 증오를 초월하게 하며 적이 지니는 비밀스러운 신성을 보게 한다(236쪽)


원수, 그러니까 적의 슬픔을 헤아린다, 적이 지니는 비밀스러운 신성을 본다, 할 때 왜 적을 그렇게 사랑해야 하는가 묻기 전에 대체 적이 누군가부터 물어야 한다. 검토 없이 이미 상정된 관념상의 적은 사유를 왜곡한다. 나: 좋은 사람, 적: 나쁜 놈, 이렇게 규정하고 사유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인 내가 나쁜 놈인 적을 사랑하는 것이 지니는 도덕적 우월성을 깔고 하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다시없이 육중한 위선이다.


뒤적거려보자. 나쁜 놈인 내가 좋은 사람인 적을 사랑하는 경우라면 어떤가. 정녕 내가 나쁜 놈이라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허공에 대고 지르는 소리일 뿐이다. 둘 다 좋은 사람일 경우는 적대관계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테니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전혀 불필요한 말이다. 둘 다 나쁜 놈일 경우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이미 말이 아니다.


결국 남는 것은 좋다, 나쁘다가 섞인 불순물인 나와 너의 경우다. 마치 허무 개그처럼 들리는 이런 결과에 허무해할 일 없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선악을 가리는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진실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선악 이전, 나의 인식에 가로놓인 너에 대한 무지의 문제다. 더 근원으로 들어가, 나의 무지 너머 절대 신비인 너의 존재 문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통찰 기저에 닿는다. 인간이 인간에게 쓰는 가장 극한의 대척 언어와 사랑이라는 언어를 결합함으로써 사랑은 역설이 된다. 역설의 실천은 칼날 위에 서는 것보다 어렵다. 사랑은 만만하지 않다. 통속기독교가 사랑의 진실 앞에서 일패도지 한 까닭은 사랑을 전유했다는 부박한 자기기만 때문이다. 그 통속기독교의 실패가 지난 세월 대한민국 민주주의 실패를 견인했다. 3월 10일 11시 심판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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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암스트롱, 자비를 말하다 - TED상 수상자가 제안하는 더 나은 삶에 이르는 12단계
카렌 암스트롱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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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운 문제를 맞닥뜨릴 때 줄곧 “그렇다면,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항상 어떤 사건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정신을 더욱 확장해 스스로가 비슷한 조건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느낀다는 것을 상상하도록 한다. 그러한 과정에는·······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자각하며 이해 한계를 경험하는 일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다.(198쪽)


증오나 적대감에서 벗어나

무한한 호의가 무제한으로 온 세상에 번져가기를!

서든 걷든, 앉든 눕든,

우리가 깨어 있는 한,

마음속에서 이런 사랑을 길어 올려야 한다.

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삶의 방식이다(숫타니파타1.18).(202쪽)



고등학교 동창 하나가 찾아왔다. 구십 줄 노모와 육십 줄 아내의 건강 문제 때문이다. 이야기는 결국 소통이란 화두로 흘러간다. 어머니는 주로 근거 없는 불안에서 비롯한 불신을 이유로 아들과 소통이 잘 안 된다. 아내는 주로 서양 의학적 단편 지식에 터한 불신을 이유로 남편과 소통이 잘 안 된다. 어머니와 또 다른 그의 불안, 아내와 또 다른 그의 무지가 개재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맺힌 곳을 자분자분 풀어준다. 끝으로 대화 방식을 조언해준다.


친구의 격을 넘어선 감사 표시와 함께 그가 일어선다. 그의 눈시울에 깨달음의 붉은 빛이 은은히 서린다. “알면 받아들인다.”


안다와 모른다, 이 비대칭적 대칭은 범주 대립이 아니다. 스펙트럼이다. 100% 안다는 없다. 100% 모른다는 없다. 안다와 모른다가 뒤섞인 흐름이 있을 뿐이다. 어느 쪽으로 더 기울어진 상태인가, 정확히 알 수 없다. 좀 더 정확히, 그러니까 전체 진실에 터한 안다 쪽으로 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뿐이다.


어찌 하면 좀 더 정확히, 그러니까 전체 진실에 터한 안다 쪽으로 갈 수 있는가. 맥락을 살피는 일이다. 진부한가. 진부하다며 진실에서 멀어지는 것이 더 진부하다. 맥락은 개체가 전체의 바다로 나아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배다. 그 배를 저어가면 전체의 바다에 기어코 닿는다는 말이 아니다. 결코 닿지 못 할 전체를 끝없이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이다.


상상하는 나만이 참 나다. 참 나는 상상하는 너가 있어 참 나다. 상상으로 너를 알아간다. 알아감으로 받아들여간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안다, 받아들인다, 전에 몸에서 먼저 느낀다. 느낀다는 안다보다 몸에 가깝다. 몸에 가까워서 모른다에 가깝다. 모른다에 가까운 느낀다는 안다, 받아들인다, 과정이 진행되는 내내 고요히 흐른다. 마침내 모두 받아들였다는 오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살짝 덥석 잡아준다. 알면 받아들인다가 휴먼스케일 안에 살아 움직이려면 느낀다를 떠나서는 안 된다. 붓다의 회향,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차마 장엄을 선포하지 않고 왜 숭고에 머무르는지 잘 보여준다.


느낀다의 겸허가 배어든 상상으로 나가 너를 안다는 것은 지식 너머 지혜를 짓는다는 것이다. 지식 너머 지혜를 짓는다는 것은 지혜 너머 살아 움직이는 실재를 함께 나눈다는 것이다. 살아 움직이는 실재를 함께 나누는 것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비다.


친구가 문 앞에서 손을 내민다. “오늘 치료 고마웠네,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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