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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평점 :
자그레브 중심부에서 네오고딕 양식 첨탑으로 하늘을 찌르고 있는 성슈테판대사원.
이 사원도 유고 출신 가톨릭교 수녀인 마더 데레사의 내방을 기념해, 주로 거지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무료 급식소를 두고 있다.
1991년 세르비아 측과 전쟁 상태로 들어가기 전에는 하루에 두세 명이 올까 말까 했는데, 지금은 급식 인원인 80명을 넘는 굶주린 사람들이 찾아온다.
·······나는 주린 배를 안고 불안한 발걸음으로 언덕을 오르는 남자들 틈에서 급식소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고 겨우 5분 만에 사람들로 꽉 찼다. 문이 닫혔다.·······
어딘가에서 수프 냄새가 난다 했는데, 수녀가 “여러분, 이걸 들어야 식사할 수 있습니다.” 하고 운을 떼더니 성서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식사가 보류되었다. 누군가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 다음에는 기립해서 찬송가를 부른다. 숟가락을 꽉 쥔 남자들이 노래를 부른다. 악에 받친 듯 숟가락을 휘두르면서 노래하는 남자도 있다.
아니, 입만 뻥긋거리는 사람이 많다. 다리를 떠는 사람도 있다. 오로지 의식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훌륭한 자선이지만 좀 잔혹하다. 바로 음식을 나눠주면 안 될까?·······
찬송가가 끝났다.
아아, 그 뒤에 이어지는 남자들의 식욕은 대단했다.
다양한 민족의 피를 받은 각양각색의 얼굴들이 똑같이 맹렬하게 달라붙었다.·······
정직하구나. 왠지 성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도 빵이 왔다. 받을 수가 없었다.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의 손이 창밖에서 뻗쳐왔기 때문이다.(154-156쪽)
대학원에서 신학 공부를 함께하며 친하게 지냈던 목회자가 찾아왔다. 외과수술 후유증으로 극심한 두통, 구토, 현훈(어지러움)이 있는데 서양의학으로 해결이 안 된다고 호소했다. 수술 이후 회복 과정에서 보여주는 몸의 자연 치유, 자율신경 증상, 피부 신경 지배, 정보로서 의학 이야기를 소상히 해주었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왜 양의사는 해주지 않느냐며 분개했다. 이야기 나누고 간단한 침 치료를 했다. 마침 점심시간이 되어 그를 동네 백반 집으로 안내했다. 그는 언제 아팠느냐는 듯 즐겁게 식사를 했다.
밥집에서 대화하는 중에 내가 숙의로 마음치료를 한다 했더니 그는 적잖이 놀랐다. 돌아가면서 그는 내가 쓴 책을 모두 다 구입했다. 사나흘 뒤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새 책을 전부 읽었다면서 매우 감명 깊었다고 했다. 기독교 신학에 갇혀 있다가 모처럼 마음이 활짝 열렸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긴 시간 동안 이런저런 질문을 통해 내 논리와 사상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감사를 표하더니 향후 자신의 목회와 접점이 많을 것 같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했다. 통화를 끝낸 뒤 내 생각은 좀 미묘해졌다.
60대 중반의 목회자가 지녀온 오랜 보수 신학에 단박으로 금을 내어버린 것, 무엇보다 붓다와 원효에 마음을 열게 한 일은 ‘사건’이다. 그러나 그의 마무리는 여운을 남긴다. 붓다도, 원효도, 비대칭의 대칭도, 내 숙의치유도 그의 사유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기독교 선교의 방편으로 바뀌는 것이 아닐까. 굶주린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면서도 성서를 듣게 하고 찬송가를 부르게 하는 것이 기독교의 선교주의 세계관이니 말이다. 기독교의 어떤 “훌륭한 자선”도 “잔혹”함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말이다.
붓다든 원효든 비대칭의 대칭이든 내 숙의치유든 기독교의 잔혹함을 완화하는 부드럽고 열린 힘으로 작용할 수만 있다면 마다할 것은 없다. 기독교의 일극집중구조에 금을 내는데 자체 내의 신학이 무력하다면 이런 외부사유의 도움을 받는 일이 무에 나쁘랴. 기독교 도그마 체제를 완파하는 일이 누구에게나 즉각 일어나지는 않는다. 나는 흔쾌히 그를 존중하기로 한다. 밥집에서 식사 기도를 그가 내게 의뢰했을 때 나는 정중하되 단호하게 거절했고, 그런 나를 그가 담담히 수용하여 홀로 묵도했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