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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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레브 중심부에서 네오고딕 양식 첨탑으로 하늘을 찌르고 있는 성슈테판대사원.

이 사원도 유고 출신 가톨릭교 수녀인 마더 데레사의 내방을 기념해, 주로 거지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무료 급식소를 두고 있다.

1991년 세르비아 측과 전쟁 상태로 들어가기 전에는 하루에 두세 명이 올까 말까 했는데, 지금은 급식 인원인 80명을 넘는 굶주린 사람들이 찾아온다.

·······나는 주린 배를 안고 불안한 발걸음으로 언덕을 오르는 남자들 틈에서 급식소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고 겨우 5분 만에 사람들로 꽉 찼다. 문이 닫혔다.·······

어딘가에서 수프 냄새가 난다 했는데, 수녀가 “여러분, 이걸 들어야 식사할 수 있습니다.” 하고 운을 떼더니 성서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식사가 보류되었다. 누군가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 다음에는 기립해서 찬송가를 부른다. 숟가락을 꽉 쥔 남자들이 노래를 부른다. 악에 받친 듯 숟가락을 휘두르면서 노래하는 남자도 있다.

아니, 입만 뻥긋거리는 사람이 많다. 다리를 떠는 사람도 있다. 오로지 의식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훌륭한 자선이지만 좀 잔혹하다. 바로 음식을 나눠주면 안 될까?·······

찬송가가 끝났다.

아아, 그 뒤에 이어지는 남자들의 식욕은 대단했다.

다양한 민족의 피를 받은 각양각색의 얼굴들이 똑같이 맹렬하게 달라붙었다.·······

정직하구나. 왠지 성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도 빵이 왔다. 받을 수가 없었다.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의 손이 창밖에서 뻗쳐왔기 때문이다.(154-156쪽)


대학원에서 신학 공부를 함께하며 친하게 지냈던 목회자가 찾아왔다. 외과수술 후유증으로 극심한 두통, 구토, 현훈(어지러움)이 있는데 서양의학으로 해결이 안 된다고 호소했다. 수술 이후 회복 과정에서 보여주는 몸의 자연 치유, 자율신경 증상, 피부 신경 지배, 정보로서 의학 이야기를 소상히 해주었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왜 양의사는 해주지 않느냐며 분개했다. 이야기 나누고 간단한 침 치료를 했다. 마침 점심시간이 되어 그를 동네 백반 집으로 안내했다. 그는 언제 아팠느냐는 듯 즐겁게 식사를 했다.


밥집에서 대화하는 중에 내가 숙의로 마음치료를 한다 했더니 그는 적잖이 놀랐다. 돌아가면서 그는 내가 쓴 책을 모두 다 구입했다. 사나흘 뒤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새 책을 전부 읽었다면서 매우 감명 깊었다고 했다. 기독교 신학에 갇혀 있다가 모처럼 마음이 활짝 열렸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긴 시간 동안 이런저런 질문을 통해 내 논리와 사상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감사를 표하더니 향후 자신의 목회와 접점이 많을 것 같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했다. 통화를 끝낸 뒤 내 생각은 좀 미묘해졌다.


60대 중반의 목회자가 지녀온 오랜 보수 신학에 단박으로 금을 내어버린 것, 무엇보다 붓다와 원효에 마음을 열게 한 일은 ‘사건’이다. 그러나 그의 마무리는 여운을 남긴다. 붓다도, 원효도, 비대칭의 대칭도, 내 숙의치유도 그의 사유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기독교 선교의 방편으로 바뀌는 것이 아닐까. 굶주린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면서도 성서를 듣게 하고 찬송가를 부르게 하는 것이 기독교의 선교주의 세계관이니 말이다. 기독교의 어떤 “훌륭한 자선”도 “잔혹”함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말이다.


붓다든 원효든 비대칭의 대칭이든 내 숙의치유든 기독교의 잔혹함을 완화하는 부드럽고 열린 힘으로 작용할 수만 있다면 마다할 것은 없다. 기독교의 일극집중구조에 금을 내는데 자체 내의 신학이 무력하다면 이런 외부사유의 도움을 받는 일이 무에 나쁘랴. 기독교 도그마 체제를 완파하는 일이 누구에게나 즉각 일어나지는 않는다. 나는 흔쾌히 그를 존중하기로 한다. 밥집에서 식사 기도를 그가 내게 의뢰했을 때 나는 정중하되 단호하게 거절했고, 그런 나를 그가 담담히 수용하여 홀로 묵도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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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받던 학생 하나가 어느 날 밤늦게 전화를 해왔습니다. 저를 만나기 위해 이미 택시를 타고 한의원으로 출발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 심경으로 집에 있기가 힘들어 며칠만이라도 밖에서 지내고 싶다며 당장 오늘밤에 재워달라고 하소연했습니다. 가족 간에 상처를 주고받아 매우 심각한 정도의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저는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었습니다. 배고픈 내색을 하기에 근처 치킨가게에 들어가 따뜻한 닭튀김을 먹이면서 부드럽게 대화를 계속했습니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함께 택시를 타고 그의 집을 향했습니다. 현관 앞까지 데려다주고 제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두시를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문득,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질문이 솟아올랐습니다. 잠에서 억지로 깨어 졸린 눈을 비비며 아내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을 때, 얼른 대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우리사회에서 의자醫者가 일반적으로 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설혹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건 지나치다 싶은 생각, 누구라도 하겠지요. 애당초 그런 전화를 허용한 것부터 문제다, 전화를 받더라도 오라고 한 것이 문제다, 만나서 대화를 하더라도 데려다준 것이 문제다, 그렇게까지 하고나서 더럭 ‘이게 뭐지?’ 하는 게 진짜 문제다....... 어디까지가 의자의 행동반경인지, 어디부터는 넓은 오지랖 문제인지, 아니면 아예 자기 파괴적 희생에 지나지 않는지....... 판단하기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마음을 치료하는 일을 하겠다고 나선 의자인데 어찌 보면 다른 의자보다 이런 점에서 자상함과 대범함을 두루 갖추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 의료 현실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자체가 매우 관념적이고 순진한 증거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돈으로 연결되지 않는, 전략 부재의 부질없는 행위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직업이 소득의 많고 적음으로 평가되는 현실 안에서도 의업만큼은 상대적으로 휴머니즘이라는 윤리적 기반을 더욱 든든히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소신을 지니는 한 이런 요청을 일소에 부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끝내 이런 딜레마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것입니다. 성자 아닌 평범한 의자로서 지닐 수밖에 없는 숙명적 한계일 테지요.


“하필 내가 왜 이런 식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이 한 축을 이룹니다. 돈도 명예도 힘도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제 앞가림도 넉넉히 못하는 주제에 물색없는 짓을 하는 게 아니냐는 질타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런 질문이 다른 한 축에 있습니다.


“사실 나야말로 이런 식의 삶을 사는 게 제대로 된 길 아닌가?”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고친다는 깊은 이치로 따지면 이 질문은 구태여 답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매 순간 자기 아픔 때문에 자기 내면 가장 깊숙한 곳을 향한 질문이 솟아오를 때 귀 기울이는 한 마디가 있습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십자가 위에서 예수가 한 일곱 마디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독교인에게 이 말이 어떤 울림을 주는가와 무관하게 저는 제 방식대로 읽습니다. 누군가와 상담치유를 행할 때, 제 귀에는 아픈 사람의 저를 향한 절규가 그리 들립니다. 제가 하느님이냐고 물으십니까? 예, 저는 하느님이어야 합니다. 절규하는 이는 그럼 누구냐고 물으십니까? 절규하는 이도 하느님이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아픈 이의 하느님이고 아픈 이는 저의의 하느님입니다. 무릇 모든 인간에게 그렇습니다. 나는 누군가의 하느님이고 누군가는 나의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으로서 하느님을 극진히 모시는 곳이 하느님나라입니다. 하느님나라는 바로 지금 여기 있습니다. 의자로서 매순간 하느님나라를 실천하지 못했을 때,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날 밤 제가 그 학생에게 어찌 해야 하느님나라를 실천하는 것이었는지 지금도 분명히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참으로 모자람이 있지는 않았을까? 모자람과 맞닿은 헛된 넘침은 없었을까? 여보세요! 여보세요! 맘이 아파요! 소리가 계속 들리는 듯도 하니 혹 이게 직업병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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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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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색 길을 터벅터벅 걷는다.

그때 포도 덩굴 그림자 속에서 뭔가가 움직인 듯했다. 사람 그림자다. 깜짝 놀랐다. 사람 그림자도 무서워하며 모습을 감췄다.

병사는 아닌 것 같다. 내가 좇아갔다. 안나 스모야크라는 72살의 키 큰 할머니였다. 할머니보다 9살이 적은 남편 미리보이는 1991년 집 근처에 폭탄이 떨어졌을 때 충격을 받고 죽었다. 할머니는 그 일이 애통하고 애통해 지금도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죽고 싶다고 한다. 안나가 말한다.

맑게 갠 날 갓 짠 우유가 든 깡통을 양손에 들고 걷는데, 갑자기 전차가 나타나 펑펑 대포를 쏘아댔다. 안나는 기겁해서 우유가 든 깡통을 떨어뜨렸다.

남편은 가슴을 누르며 쓰러졌다. 양아들도 죽었다. 며칠 만에 안나의 머리카락은 백발로 변했다.

“그때부터 뭘 먹든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게 됐지.”

할머니는 글로브처럼 커다란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145-146쪽)


안나가 다시 묻는다.

“여보게, 내일 다시 와줄 거지?”

나는 포성에 등이 떠밀려 마을을 떠났다.

안나는 내일 눈물어린 수프를 어두운 부엌에서 혼자 먹겠구나.(149쪽)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다. 계층마다 식후에 묻는 말이 다르다고 한다. 빈곤층은 ‘배불리 먹었느냐?’ 한다. 중산층은 ‘맛있게 먹었느냐?’ 한다. 부유층은 ‘분위기가 멋있었느냐?’ 한다. 그러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눈물어린 수프를 어두운 부엌에서 혼자 ”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며 먹은 안나 할머니에게는 뭐라 물을 수 있을까? 저자가 한 말을 의문문으로 바꿔보겠다.


뭐든 좀 더 드시는 게 좋(147쪽)지 않을까요?”


배불리 먹으라는 말이 아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최소한의 영양 상태라도 유지하려면 그 정도로는 모자라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물론 그 말이 안나 할머니 귀에 쏙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지켜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참여가 여기까지다.


세월호 가족 몇이 어느 음식점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워낙 주위 사람들한테 시달리는 분들이라 조심스러워 나는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못한 채 조용히 밥을 먹었다. 그들은 반주도 한 잔씩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다 누군가 농담 건네면 웃기도 했다. 세월호 엄마가 밥 먹으면 ‘목구멍에 밥이 넘어가느냐?’며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지만 내게는 그렇게 식사하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거룩해 보였다. 할 수만 있었다면 소주라도 한 잔 권하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었다면 뭐든 좀 더 드시는 게 좋지 않겠느냐 묻고 싶었다. 결곡한 애도를 위해 그들은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백세 시대에 육십 막 넘긴 나이를 오래 살았다 하긴 멋쩍지만 요즘은 제법 긴 세월 살긴 했다는 생각이 든다. 제자, 후배들의 부음을 접할 때 특히 그렇다. 요 며칠 전에도 애제자 하나를 앞세웠다. 그의 빈소에 애써 들르지 않고 홀로 먹은 저녁밥은 모래와 방불했다. 홀로 마신 소주는 물과 흡사했다. 어제, 그를 기억하는 다른 제자와 오래토록 그를 이야기하며 밥 먹고 소주 마셨다. 밥은 분명히 쌀이었고, 소주는 분명히 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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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단어를 써야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도시로 와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시간을·······가슴팍이 결릴 때까지 웁니다. 십오 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면 어떨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내게 그런 용기와 남은 사람들 따위는 걱정하지 않을 뻔뻔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무서워집니다.


원하지 않는 결혼을 했습니다.·······누가 떠밀지도 않았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상황도 아닌 결혼이었습니다. 배우자가 누가 봐도 못된 인간이라거나, 그 가족이 미칠 듯 스트레스를 주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 사람과 저는 너무나 다릅니다. 사소한 취향부터 말버릇하나까지 제가 싫어하는 것들은 모두 모아놓은 사람인 것만 같습니다. 딱 하나 저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을 사람이라 믿었습니다. 그 믿음 하나로 연애 동안 불거지는 불안들을 모른 척 했습니다. 멈추려고만 했다면 언제든지 멈출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헤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저를 잡았고 저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찾아온 그 사람 손을 잡았습니다. 아무런 확신이 없는 중에도 결혼은 진행되어갔고, 주변사람들의 시선과 속상해 하시는 부모님 생각에 머뭇거리며 망설이다 결국 결혼식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힘이 듭니다. 선생님. 스스로 제 성격을 알기에 처음부터 단호하게 털어놓고 다짐받았던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는 걸 알았을 때, 어떤 날 일기엔 소름끼치도록 그가 혐오스럽다고 쓰여 있었습니다.·······어제는 결국 그 사람 입에서 자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면 헤어지자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 사람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면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그럼 그러 마, 하며 짐 쌀 줄 알았는데, 심장이 내려앉았습니다. 저는 또 헤어질 생각이 없었던 겁니다. 오히려, 그를 많이 의지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의지하고 있었던 제 자신이 당황스럽고 인정하기 싫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기 때문에 죽을 만큼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결국 저렇게 쉽게 헤어짐을 말할 거면 왜 그때 날 잡았나.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제게서 마음이 떠났음을 느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저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그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타인보다 낯설게 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손끝부터 하얗게 얼어붙는 것 같습니다. 슬픔도 아니고, 분노도 아닌 뭐라 표현할 길 없는 감정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자 라는 생각보다, 그런가, 헤어져야 하는가?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왜 결혼을 멈추지 않았을까? 두려움과 자책감에 잠도 오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로도 벼랑 끝에 서있다는 걸 알면서 헤어짐을 입에 담은 그가, 그리고·······구구절절 스스로를 변명했던 제가 용서되질 않습니다.


저 사람과 나 둘 다 서로를 놓아줘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듭니다.·······제 스스로가 너무나도 단호하게 이렇게 이어지는 상황들을 견딜 자신이 없다면, 더 늦기 전에 이혼하는 게 맞는지 판단하기 너무나 힘듭니다. 선생님, 어찌 해야 할까요?”


어느 날, 익명으로 제게 온 편지입니다. 5년이나 지난 기억이었지만 한눈에 그인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행복하다 느낀 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외도, 도박, 사채, 폭력에 절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모든 어려움에 쩔쩔매다가 집 나가겠다는 말을 수없이 되뇔 뿐 어떤 타개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맏이로서 부담감은 크게 느꼈지만 부합하는 이행이 따르지 못해 늘 자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연애도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다정다감하지 않은 터라 그 자신도 친밀감 부분에서 매우 서툴렀습니다.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될수록 상처만 커갈 따름이었습니다. 아침에 눈뜨면 불안이 파도처럼 밀어닥칩니다. 무력한 시간들로 하루가 채워지면 가슴은 텅텅 비어갔습니다. 그만 살자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솟아올랐습니다.


짧게나마 상담한 뒤 얼마 동안, 그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저와 맺은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홀연히 소식이 끊겼습니다. 저 편지 속의 힘든 연애와 결혼 생활이 원인이었습니다. 편지 후 연락을 취했지만 그를 실제로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천 리 밖 어느 도시에서 ‘가슴팍이 결릴 때까지’ 우는 그를 떠올리면 참으로 가슴팍이 결려오는 듯합니다.


지금 손에 바리공주의 생명수를 들고 있다 해도 제가 직접 우간다 어느 마을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는 소녀 하나를 살릴 수 없는 게 냉정한 현실입니다. 극진함도 능력도 구체적 인연으로 엮이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간절한 호소에 폐부를 찔려 온 영혼이 흔들려도 가 닿지 못할 때, 숙의의학 하는 자가 죄의식을 느끼는 것은 숙명 아닐까 합니다. 바로 이 순간에도 그의 얼굴이 선명히 떠오릅니다. 기억이 선명할수록 아리디아린 형벌감에 잠겨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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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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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비가 내리는 한낮이 지날 무렵, 잎이 무성한 큰 나무 밑에서 쌀국수를 후루룩거리며 먹는다.

뜨거운 김으로 뿌옇게 변한 거리를 바라보면서 사람 사는 세상의 변한 모습을 떠올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시간을 꽤나 들여 후루룩거리고 있다. 비가 국수 그릇으로 들어와도 그러든지 말든지 하늘의 물이라고 여기면 맛이 더 좋아진다. 이것이 베트남 하노이 사람들이 쌀국수를 먹는 법이다. 시정詩情이 흐른다.

한편 도쿄의 서서 먹는 우동가게에서 샐러리맨들이 우동을 먹는 평균시간은 2, 3분쯤이라던가? 운치가 없다.

하지만 이른 아침에 밥을 입속으로 밀어 넣듯 먹으면서 일본은 경제를 번영시켜왔다.

국수 한 그릇을 다 먹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의 길고 짧음. 이것이 의외로 그 나라의 경제 상황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노이 시민이 쌀국수를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은 3년 전에 비해 평균 2, 3분은 짧아진 듯하다.

나는 이것을 경제 활성화와 사회 변화의 징조로 본다.(81-82쪽)


한편 새로운 쌀국수가 나오기 시작했다. 닭고기에 소고기를 비롯해 여러 가지를 넣은 믹스 쌀국수, 고급화를 지향한다. 화학조미료도 이상할 정도로 많이 쓴다.(84쪽)


나는 밖으로 드러내놓고 페미니스트라 말하지는 않는다. 표방하는 일 자체가 그다지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공부를 따로 깊이 한 적도 없어 논리적인 사유로 정리되어 있지도 않다. 성차별 없애는 노력을 그냥 비-학습 실천으로 일상에서 꾸준히 할 따름이다. 그래야 이치에 맞는다는 것이 간단명료한 내 근거다. 대표적인 예가 가사노동의 자연스러운 분담이다. 밥하고 나물 무치고 국 끓이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에서 우리부부는 누가 뭘 해야 한다는 따위의 구분을 하지 않는다. 구태여 특이 사항을 꼽는다면 간단한 손빨래 아닌 세탁기 빨래는 내 전담이다. 빨래하는 일의 전반에 내가 훨씬 더 섬세하고 정밀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평화가 정착되는 과정이 마냥 매끈했던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먹는 일을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오랜 습성 때문에 나 스스로 발끈발끈하곤 했다. 어느 날 홀연히 먹는 일보다 더 긴급하고 근원적인 것이 없다는 깨달음으로 홀라당 뒤집어진 뒤에야 비로소 고요해졌다.


먹기 위해 산다고 까지 말하기는 뭣하지만 목숨 지닌 존재에게 먹는 일은 예사로운 일상 너머 대수로운 성사다. 신나는 놀이임과 동시에 거룩한 제의다. 그 놀이 시간을 단축하는 것, 그 제의 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모독이다. 모독은 의외로 쉽게 자행된다. 경제 번영이라는 번드르르한 이름의 돈이 만들어낸 세속화다. 허겁지겁 끼니 때우고 돈을 향해 달려간다. 허겁지겁 “시정” 흐르는 영상은 없다. 허겁지겁 “운치” 있는 풍경도 없다. 시정을 희생하고 운치를 제물 삼아 거머쥔 돈은 대체 무엇에 쓰려는 것일까? 더 비싼 차가 신나고 거룩하게 먹는 일보다 귀한가? 그럴 리가. 더 비싼 집이 신나고 거룩하게 먹는 일보다 귀한가? 그럴 리가. 뭐 그렇다고 떼돈 번 인간들이 세상 구제를 하는 것도 아니잖나. 오호라, 그럼 더 맛있는 것 먹기 위해 미친 듯 돈 버나보다. 먹는 일을 내팽개쳐서 획득하는 ‘더 잘’ 먹는 일이란 대체 무엇일까? 식사 포르노! 정답. 인류는 B급 향락을 위해, 정精한 식사를 내다버리는 정신 나간 짓을 하고 있다.


정精한 식사는 엄숙과 향락 그 사이 어딘가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다. 엄숙과 향락을 가로지르며 휘돌아가는 사건이다. 그것은 놀이도 놀이답게 살리고 제의도 제의답게 살린다. 둘은 상호보완해서 전체가 되는 부분이 아니다. 꼿꼿이 자신을 유지한 채 마주한다. 충분히 자신을 녹여 서로 배어들고 배어나온다. 자본은 이것을 쪼갬과 동시에 포갠다. 중량급 연예인이 나오는 포르노 ‘먹방’과 다이어트 강연이 동시에 흐른다. ‘셰프’가 영양학을 고리로 의사로 등극한다. 현란한 분열과 절묘한 혼효가 투명한 일치를 이루며 대중은 유아적 소비자로서 온갖 마케팅에 동원된다. 명백한 중독이다.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나서, 외마디 소리를 내질러야 산다. 할喝!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밥상 앞에 정좌한다. 시정이 흐르도록 먹는다. 운치 있게 마신다. 낭만주의가 아니다. 실재the Real을 향한 유장한 운동이다. 이 운동에는 “믹스 ”도 “고급화”도 “화학조미료”도 설 자리가 없다. 각기 모습대로, 각기 기품대로, 자연스러운 맛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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