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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평점 :
원전에서 20km 거리 안에 있는 파리세프 마을.
출입 금지 구역이지만 고령자 80명 정도가 소개지에서 돌아왔다.·······(301쪽)
소개지로 옮긴 사람까지 합하면 사고 전에 2000명이던 마을 사람 가운데 100명 가까이 죽었다. 행정 당국에서는 이곳에서 살지 말라고 했지만, 가서 살 다른 곳도 없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것이다. 어떡하면 좋을까?
솔직히 말해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숲속의 버섯이든 뭐든 먹는 겁니까?” 하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걸걸한 목소리로 야유가 날아들었다.
“그것 말고 뭘 먹어야 한단 말이오? 그것 말고!”
따지고 나무란다고 해도 도리가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소개지는 어디나 물가가 높다. 젊은이에 비해 노인은 방사능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고 그들은 믿고 있다. 먹는 입 하나라도 덜려는 것이다. 그래서 출입금지구역으로 돌아온 노인도 많다.·······(302-303쪽)
·······노인들은·······먹고 그날그날 목숨을 이어간다.
체르노빌 숲의 침묵.·······
풍경이 말없이 드러내는 그 깊이가 내게는 보일 듯, 여전히 보이지 않는지도 모르겠다.(305쪽)
젊은 날 남편의 도움 없이 정보町步 단위의 농토와 산야 재산을 일으켰던 나의 할머니는 생의 마지막 무렵, 아들의 속절없는 가난에 묶여 인고의 삶을 이어가다 삭은 나무둥치처럼 스러지셨다. 어느 날 할머니가 수돗가에서 뭔가를 신근히 손질하고 계셨다. 가까이 가보니 곰팡이가 난 상한 음식이었다. 버려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시면서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먹어서 당장 죽지 않으면 버리는 법은 없다.”
이제 나는 얼추 그때 할머니 나이가 되었다. 그 동안 음식을 대해온 내 태도는 근본에서 할머니를 닮아 있다. 물론 할머니만큼 비장하지 못하다. 할머니의 비장한 자세는 단지 개인적 삶의 경험에서만 비롯한 것은 아니다. 구한말 태어나셨으니 이 땅을 차례로 휩쓴 망국, 식민지, 전쟁, 그리고 독재의 사회정치적 어두움이 그 삶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매판과 반민주, 그리고 분단을 통해 수탈체제를 일으키고 유지·강화해온 지배층에게 “버림받은” 민중이 그려내는 몸짓의 한 전형인 셈이다.
오늘 우리가 사는 곳은 얼마나 안전한가. 한반도는 원전밀집도 세계1위 지역이다. 밀양 송전탑, 성주 사드, 강정 기지, 미군부대, 삼성 반도체 공장·······. 우리가 먹는 음식은 얼마나 안전한가. 독극물에 해당하는 농약 범벅인 곡물과 채소가 범람한다. 후쿠오카 원전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한 일본 해산물,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는 중국 식자재, 유통기한 지난 음식물로 만들어낸 학교 급식, 정체불명의 주정 독과점 상태에서 대량생산하는 희석식 가짜 소주·······.
우리 대부분은 이 땅에 살면서 이 음식물을 먹는 외에 달리 “도리가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먹고 그날그날 목숨을 이어간다.” 체르노빌은 수만 리 밖에 있지 않다. 대한민국 지배층은 우크라이나 지배층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우리가 “풍경이 말없이 드러내는 그 깊이가 내게는 보일 듯, 여전히 보이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하고 말 수는 없다. 우리는 떠나면 그만인 객이 아니다. 우리는 파리세프 마을 노인의 야유를 들어야 한다.
“그것 말고 뭘 먹어야 한단 말이오? 그것 말고!”
우리는 저들의 절망적 야유에서 결곡한 질문을 길어 올려야 한다.
“그것 말고 뭘 먹을 수 있게 해야 할까? 그러면!”
우리에게는 아직 깨워야 할 새벽이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