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 7호선 도봉산행 열차는 강남구청역을 지나면서 텅텅 비기 시작한다. 나는 그때 두 번째 칸으로 이동해 앉곤 한다. 오늘은 왠지 다리를 잡고 놓지 않는 듯 가까이 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런가보다 하고 무심히 앉았다가 용마산역에서 역시 가까이 있는 출입문으로 통해 내렸다. 두세 발자국을 떼는데 바닥에 무언가 떨어져 있는 것에 눈길이 멎었다. 어린 참매미 한 마리였다. ‘대체 어떻게 여기가지 들어왔을까?’ 하는 의문도 잠시, 생사를 확인했다. 탈진해 보이긴 하지만 살아 있다. 나는 녀석을 살며시 잡아 올렸다. 가냘픈 울음소리를 계속 냈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힐끔거렸지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빠른 걸음으로 역을 빠져 나왔다. 마침 인근에 관목 덤불이 보였다. 작은 나무둥치에 붙여주었다. 그 작고 어린 생명이 보낸 극진한 전언을 들은 오늘 아침 내게는 또 하나의 장엄이 소미심심 스며들고 있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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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평범함에 깃든 참 행복을 말합니다. 이 말을 스스로에게 할 경우는 나름 비범함을 경험하고 나서일 것입니다. 비교적 쉽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습니다. 평범함 이하의 삶밖에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 말처럼 야속한 것도 없습니다. 제발 평범함만에라도 가서 닿을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다섯 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나 줄곧 주목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가족은 입버릇처럼 그에게 ‘고집 세고, 느리고, 답답하다’고 말했습니다. 영유아기 때는 분리불안이 극심했습니다. 방치되어 자라던 학령기 이전 때는 애정결핍 형 사고를 수시로 쳤습니다. 초등학교 이후는 늘 외톨이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목표도 계획도 없이 하루하루를 그저 견뎌낼 뿐이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적 스킬을 터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어떤 곳에서도 잘 적응하지 못 했습니다. 힘든 일은 무조건 피하려고만 했습니다. 나이가 차서(?) 중매로 결혼은 했는데 배우자도 인척도 아이들도 모두 힘들기만 한 존재였습니다. 특히 아이들 양육 문제는 무거운 죄책감을 안겨줄 뿐 도무지 어떤 방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라는 병이 아이들을 덮쳤습니다. 아이들 치료하려고 정신과 드나들다가 자신도 극심한 우울장애라는 사실에 놀라 약물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아무런 효과도 없이 ‘아니면 말고’ 식으로 약물만 바꾸어대는 나날이 흘러갔습니다. 가족도 배우자도 그의 우울장애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이러느니 죽는 게 낫다 싶은 충동이 왈칵 솟아오르자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그는 허겁지겁 꾸물꾸물 인터넷을 뒤져 제게 왔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살고 싶어도 살아갈 수가 없어요.”


평범함이 얼마나 아득히 먼 거리에 있는가, 그의 눈동자가 허공으로 흩어집니다. 그는 죽을(!) 힘을 다해 두 달 동안 저와 삶을 숙의했습니다. 살면서 무슨 일을 이렇게 꾸준히 열심 내어 해본 적이 없다면서 그는 스스로 기특해했습니다. 하지만 가족과 배우자가 그의 우울장애 치료에 돈 들이는 일을 더는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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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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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잿빛 하늘 아래 노부인 세 명이 몸을 떨고 있다.

서늘한 빛을 띤 흰색의 상복 같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다. 세 사람 모두 시퍼렇게 빛을 내는 자그마한 식칼을 감추고 있다.·······

그 칼끝을 자신 쪽으로 한 채 움켜쥐고 있다. 가슴을 향해 칼끝을 번쩍 추켜올리려던 찰나, 억센 형사들에게 세 사람은 맥없이 제압되고 말았다.·······1994년 1월 25일 오전 11시쯤이었을 것이다.·······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326쪽)


김복선(68), 이용수(66), 문옥주(70).자라난 환경·성격·생김새가 모두 제각각이지만, 세 사람을 연결하는 단 한 가지 공통점은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사실이다.(327쪽)


김 할머니와 나는 각각 비빔밥과 냉면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심식사를 하면서 주고받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당했을 때 1주일 동안 피가 흐르는 바람에 누워만 있었어. 아기가 생겼지.”

전라남도 강진군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1944년 9월 무렵,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던 해에 군복을 입은 일본인에게 끌려갔다.(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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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김복선 할머니의 명복을 빈다(2012년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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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를 하면서 주고받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이 문장에서 읽기가 중단되었다. 눈물이 쏟아져서 더는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려고 다시 이 문장에 눈길이 닿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글을 쓰는 도중에도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 오타가 거듭 난다.


그래. 옳다. 이 참담하고 육중한 이야기를 밥 먹으면서 주고받을 수는 없다.


글쓰기를 멈추고 망연히 앉았다가 돌이켜 생각해본다.


아니다. 옳지 않다. 이 이야기야말로 밥 먹으면서 주고받아야만 한다.


밥이 하느님 아니신가. 더욱 극진히 이야기를 주고받으려면 밥상에 앞서 주안상을 내면 될 일이다. 나는 실제로 마음 아픈 사람과 상담실 숙의가 끝나면 선주후면先酒後麵의 예를 지켜 밥상대화를 이어간다. 밥을 같이 먹는 것만으로도 신뢰·일치의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된다고 한다. 밥상공동체는 가히 진리에 값한다고 할 것이다.


자신이 생명 세상에 들어온 해에 죽음 세상으로 끌려 나간 소녀 이야기를 들으며 저자가 느꼈을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잠시 공감을 청해본다.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온다. 먹먹한 가슴에 눈물이 더해져 얼른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환자 대기실에 켜 놓은 대형 TV 화면에 질탕한 ‘먹방’이 흐른다. 쩡 소리를 내며 심사가 두 쪽으로 갈라진다. 바람 소리 내며 돌아와 분노를 장착한 슬픔으로 다시 글을 쓴다.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일당이 일본에 헌정한 12·28합의를 전면 재검토한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저자가 이 소식을 들었다면, 아마 김복선 할머니와 나눈 식사와 이야기를 떠올렸을 것이다. 나도 지금 이 순간 내 젖은 영혼으로 김복선 할머니와 헨미 요의 밥상공동체에 참여한다. 다시 한 번 김복선 할머니의 영혼에 큰절 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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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버스를 탔다. 내가 앉은 바로 앞에 60초반의 남성이 앉아 있다. 다음 정류장에서 그 맞은편에 20초반 여성이 앉았다. 어느 순간 내 눈길이 그 남성의 눈길에 가 닿았다. 그의 눈은 노골적인 음욕을 드러내며 그 여성의 다리를 핥고 있었다.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지만 자리가 불편해선지 여성은 뒷자리로 옮겨 앉았다. 남성은 얼굴을 돌려가면서까지 탐닉을 그치지 않았다. 이 관음 폭력을 막을 방법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여성에게 알려주는 것은 어찌 보면 모멸감을 안겨줄 수도 있으니 좋은 방법이 아닐 듯했다. 남성에게 충고하는 것도 잡아떼거나 도리어 적반하장으로 나오면 그만이니 역시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나는 가만히 일어서서 남성과 여성의 가운데 섰다. 남성의 눈길을 차단한 것이다. 처음에는 내리려나보다 하고 잠시 앞을 바라보던 남성, 내가 계속 서 있는 것을 보자 표정이 바뀌었다. 얼마 뒤 집 앞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췄다. 내리면서 나는 짐짓 남성을 바라보았다. 남성이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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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실상이 얼굴 표정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음의 실상이 얼굴 표정으로 감춰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릅니다. 상황마다 다릅니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뭐랄까 결곡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호소하는 증상으로 판단컨대 그의 결곡한 인상은 아무래도 마음의 실상을 은폐하기 위해 형성된 방어기전일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나이로 따지면 그는 확실히 중견 간부급 회사원입니다. 이를테면 산전수전 다 겪은 사회생활의 베테랑이랄 수도 있는 위치였습니다. 그의 문제는 단순하다 못해 사소하기까지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데서 뭔가 손으로 움직여 하는 간단한 동작을 못 하는 것이었습니다. 과도하게 손이 떨리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떨릴 때,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그가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당연히 억제하죠.”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억제하면 잘 되시던가요?”


그가 찰나적으로 화난 표정을 지었다 풀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습니다. 잘 됐으면 왜 여기 왔겠느냐는 뜻이니 말입니다. 저는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일부러 더 크게 떨면 잘 됩니다.”


이번에는 정말 화가 난 듯 했습니다. 그 손 떨림을 과잉 동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치료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는 받아들이지 못 하는 것입니다. 그는 매우 오랫동안 이름 석 자 대면 웬만한 사람 다 아는 유명한 정신과 의사한테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소용없었습니다. 제가 이치를 설명해주었습니다.


“원하는 정상 상태는 손동작을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유연하게 동작을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문제의 그 손 떨림이 두려움 때문에 억제되어 나타나는 경련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는 끝내 수긍이 가지 않는 표정을 지우지 못 했습니다. 저는 그의 생각을 돌이키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손 떨림 자체의 본질을 오해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인 오해가 있습니다. 떨면 안 된다는 전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타인의 시선이 집중될 때 떠는 게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왜 떨면 안 될까요?”


그가 더욱 이상하다는 듯 물었습니다.


“선생님도 떠십니까?”


제가 단호히 말했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는 실망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 했습니다.


“선생님은 떠시지 않아야 맞는 거 같은데요.”


홀로 있을 때 홀로 행하는 손동작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하는 것이면 이는 일종의 상호작용이다,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이상하다, 노련한 연극배우도 수백 번씩 오르는 무대지만 그때마다 떨린다, 떨린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덜 떨다가 이내 유연해지고 부정하면 더 떨다가 이내 경직된다, 다시 한 번 곡진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한약 한 제를 짓기로 하고 다음 상담 예약을 잡았습니다. 한약 조제도 상담도 더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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