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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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을 먹은 이 할머니가 인사하면서 참 아름다운 일본어로 말했다.

“정말 잘 먹었습니다.”

전에 김 할머니와 먹었을 때에도 똑같은 인사를 받았다. 일본인은 이미 잊어버린 식후 인사를 할머니들은 언제 어디서 익혔을까?

나는 깨달았다.

김 할머니도, 이 할머니도 맛의 기억을 담은 개인사를 오랫동안 천천히 이야기하면 할수록 날카로운 눈매가 부드러워졌다.(337쪽)


아끼는 후배 하나가 암 투병을 하고 있다. 발견에서부터 1차 항암까지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항암 받고 죽다 살아나자 이건 아니지 싶어 내게 연락을 해온 것이다. 나는 간략히 암의 본질과 서구의학의 범죄적 오류를 일러주었다. 무엇보다 암은 마음의 병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자신과의 화해, 결별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통전치유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식욕부진을 호소하기에 억지로 먹으려 애쓰지 말고 자연스러운 단식을 하도록 권했다. 가벼운 단식이 식욕을 불러오면 영양·치료 이런 요소를 고려해 이른바 ‘좋다’는 음식을 먹지 말고 우선 먹고 싶은 음식부터 시작하라 했다. 특히 이야기가 들어 있는 소울 푸드를 찾아 먹으며 자신과 대화하라고 했다. 그는 어머니의 기억이 담긴 떡국부터 먹겠다며 감격해했다.


먹는 것은 몸이 닿는 것이다. 몸이 닿아 일으키는 감각은 모습과 냄새와 맛과 소리의 소통으로 전방위화 된다. 이 소통은 생사의 마주 가장자리를 끊임없이 두드리며 떨고 흔든다. 소미한 에피소드들을 그 파장 따라 “오랫동안 천천히 이야기하면 할수록 날카로운 눈매가 부드러워”진다. 지옥의 물 한 모금에도 아름다운 감사가 솟아나온다. “정말 잘 먹었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모습과 냄새를 기억하지 못한다. 오직 기억나는 것은 어머니가 통무김치 씹을 때 나던 오도독 소리다. 어머니를 떠올리면 모든 기억이 빛바래 애증 한 줌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오도독 소리 하나가 탱탱한 그리움을 불러온다. 상처 없는 밥상이 상처 없는 태곳적 모자의 몸 닿음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부드러운 눈매 하고 비로소 불러본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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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가 정신장애에 더 많이 걸린다는 통계와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유한 계층 사람들 가운데 정신장애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는 통계는 공존합니다. 당연히 각기 다른 이유와 똑 같은 근거도 공존합니다. 먹고살기 힘들어 정신이 피폐해지는 증상과 가진 게 너무 많아 영혼이 파리해지는 증상은 물질에 휘말린 것이라는 하나의 본질을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흔히 이렇게들 말합니다. 먹고살기 바쁜데 우울증 걸릴 새가 어디 있어? 뭐가 부족해서 우울증이냐? 다시없는 개소리입니다.


그는 유서 깊은 부자 동네 고급 아파트에 삽니다. 장래가 촉망되는 법조인입니다. 단정하고 준수한 외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니 뭐가 부족해서 우울증일까요? 툭 치면 바로 울음을 터뜨릴 듯 위태로운 표정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는 자신이 누리는 부가 자신에게, 자신의 삶에 무엇인지 생각해본 일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있었고 늘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기에 마치 자신의 몸처럼 자각 없이 부려왔습니다. 무심코 그것이 자신의 인격과 정신의 불가결한 일부라고 여겨왔습니다.


어느 날 그는 단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던 그 낙원 밖으로 나갈 일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지방으로 발령이 난 것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본가로 오기는 하지만, 낯선 지방도시 외곽에서 장기간 홀로 불편한 자취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이 갑작스런 분리(!)는 정신적으로 그에게 날카로운 금을 내어버렸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의 파고가 높아졌습니다. 불안이 덮치면 자신의 존재가 한없이 작게 느껴졌습니다. 삶의 의미도 재미도 사라져갔습니다. 쓸쓸함과 외로움이 짙게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가족은 전혀 이해하지 못 했습니다. 예의 그 전형적인 ‘뭣이 부족해서’ 식 반응을 보였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태가 악화되자 어머니는 ‘대한민국 최고 병원’으로 그를 데려갔습니다. 정신과전문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몇 가지 물어보더니 약을 처방해주고 2주일 뒤에 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릴없이 돌아서 나왔습니다. 약을 쓰레기통에 버린 뒤 수소문 끝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매우 초조해했습니다. 하루 빨리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도 없었습니다. 가족력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 특별한 요법을 쓸 수도 없기 때문에 저는 그에게 이치를 설명하고 차분한 상담이 정도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이 터널을 잘 통과하면 전혀 새로운 삶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현백해두었습니다.


그는 세 번째 상담시간에 오지 않았습니다.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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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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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가을, 이용수 할머니는 군복 차림의 남자에게 끌려가는 바람에 대구를 떠나게 되었다. 경주, 평양, 다렌으로 가서 상하이로 가는 배를 탔다. 일본 장병 여러 명과 한반도 각지에서 끌려온 소녀들이 타고 있었다.

어느 군인이, 노래를 부르면 먹을 것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대구의 야학에서 일본인 선생에게서 배운 야스쿠니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잘 불러서 두 번이나 물렀다. ‘단팥소가 든 떡’을 두 개 받았다.·······

하나를 다른 소녀들과 나눠 먹고, 하나는 남겨두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금지되어 있던 한국말을 무심코 해버렸다. 그것 때문에 화가 난 군인이 입에서 덕을 뱉으라고 명령했고, 떡을 뱉자 군화로 짓밟아버렸다.

그 뒤 이 할머니는 뱃멀미를 했다. 화장실로 가서 토하고 있는 사이, 군인이 덮쳐서 할머니를 범하고 말았다. 다른 소녀들도 배에서 차례로 당했다고 한다.

·······일이 벌어지는 사이사이에 안도 (또는 희미한 기쁨), 그리고 그와 반대로 터무니없는 비참이 있다. 이상한 음식의 베풂과 범죄가 같은 배 안에서 같은 조직을 통해 벌어졌다. 그래서 소녀들의 마음은 바닥에 짓이겨진 떡처럼 갈기갈기 찢어져버렸다. 떡은 반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짓이겨져 있다.(334-335쪽)


사는 게 모두 먹자고 벌이는 거래임에 틀림없지만 하필 굶주린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밥을 조건으로 내걸어 흥정을 붙이는 것만큼 잔인한 처사는 없다. 어린 시절의 내 ‘팥쥐 엄마’는 나를 집에 남겨두고 아버지와 외출을 하곤 했다. 대부분 영화 관람 후 외식하는 일정이었다. 그 몇 시간 동안 나는 ‘집 보라’는 명령을 충실히 수행해야만 했다. 어느 날 나는 수행의 끄트머리에서 그만 살짝 이탈하고 말았다. 동네 아이들과 어울렸다가 황급히 집으로 돌아오니 팥쥐 엄마가 이미 귀가해 있었다. 내게 내려진 벌은 저녁밥 굶기였다. 다행히 고모 댁 가셨던 할머니께서 돌아오시는 바람에 묻어 숨죽이며 한 끼를 때우기는 했다. 부엌에 선 채 찬밥을 우겨넣던 그 밤의 풍경이 마치 어제 일처럼 선연히 떠오른다.


정답고 안정된 밥상은 내게 포원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건성건성 차려 허겁지겁 먹는 밥상을 극도로 못 견뎌 한다. 어쩌다 출근 시간에 쫓긴 아내가 반찬 하나 달랑 놓고 서서 밥 먹는 것을 보면 ‘서서 먹는다고 빨리 먹어지는 거 아니야’ 하고 의자를 내밀어주지만 내심은 이미 격정 상태에 도달해 있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푸드 코트도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아무리 고급이라도 뷔페조차 탐탁히 여기지 않는다. 항차 그 소녀들이야 말해 무엇 할까.


소녀들의 마음은 바닥에 짓이겨진 떡처럼 갈기갈기 찢어져버렸다. 떡은 반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짓이겨져 있다.


여전히 짓이겨진 채, 갈기갈기 찢어진 채, 오늘도 이용수 할머니는 길 위에 서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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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부부가 함께 찾아왔습니다. 한쪽 배우자(이하 ㄱ)는 상대방(이하 ㄴ)이 외도했다고 주장하고 ㄴ은 그 배우자한테 편집장애가 있어서 그렇게 생각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경우 ㄱ에게 질병 진단을 내리면 그것은 곧 ㄴ이 결백하다는 선언으로 효과를 냅니다. 동시에 편집장애에 걸린 ㄱ은 일종의 인격적 결함을 지닌 사람으로 내몰립니다.


의학적 차원의 장애를 윤리적 차원의 결함과 일치시키는 것은 명백한 잘못임에도 사회 통념의 위력 때문에 아무런 여과 없이 그런 범주일탈이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 ㄱ쪽에서는 병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ㄴ쪽에서는 (외도가 사실일 경우 더욱 강력하게) 병이라고 긍정하게 됩니다.


ㄴ이 외도하지 않은 게 확실하고 ㄱ이 편집장애 환자인 게 확실할 경우, 문제가 간단해 보여도 해결은 만만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병 문제를 윤리 문제로 비틀어버려서 ㄱ이 치료를 거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 가장 난처한 사람은 바로 의사입니다. 적어도 ㄱ쪽에서 보면 의사가 ㄴ과 한 패이기 때문입니다.


화쟁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편으로는 정신적 장애를 윤리적 관점에서 보지 않도록 ㄴ을 깨우칩니다. ‘장애는 결함이 아니라 결핍이다, 결함은 교정의 대상이지만 결핍은 사랑의 대상이다, 곡진한 사랑으로 그 결핍을 치유하라, 그리고 필수불가결한 한 가지. 외도 안 한 걸 강조하지 말고 신뢰 못 준 걸 미안해하라.’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적 장애에 대한 왜곡된 시선의 피해자로서 스스로 소외시키려는 ㄱ을 다독여 치유에 임하도록 합니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자꾸 그런 생각 속으로 빠져드는 것은 스스로 아프게 하는 길이므로 여기서 멈추라, 뇌 안의 특정 신경전달물질 부족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하므로 담담히 치료를 받으라.’


‘무엇보다 자신이 신뢰감에 상처를 입어 이리 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일이 중요하다, 어디쯤에서 어떻게 입은 상처인지 더듬어 거기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는 어린 영혼을 안아 일으켜야 한다, 그리고 필수불가결한 한 가지. 외도했느냐 여부에 매달리지 말고 신뢰하느냐 스스로 물으라.’


처음에는 두 사람 다 수긍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ㄱ은 상담을 거부했습니다. 한약도 거부했습니다. ㄴ은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며 상담 때마다 와서 자신에게 문제가 없다는 사실만을 되풀이해서 강조했습니다. 의사가 마법사일 리 없음에도 무슨 수를 내주지 않는다고 화를 냈습니다. 자연스럽게(!) 길은 끊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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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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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랑군(양곤)에 다다랐다.

그곳 외곽의 붉은 땅에 단층 임시 건물이 있었다. ‘랑군 군인 위안소’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복도 양쪽으로 열 개씩 전부 스무 개의 방이 있고, 그녀는 ‘3호실’로 들어가 ‘미쓰코’로 불렸다.

쇼와 천황의 ‘수족 같은 신하들’이 바지춤을 내리고 줄을 섰다. 미쓰코는 하루에 20~30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그 세계에는 ‘끼니와 끼니 사이’라는 것이 있었다.

아침 8시에 식사를 마치면 일반 병사들이, 오후에 점심을 먹고 나면 하사관들이, 저녁 식사를 끝내면 장교들이 찾아왔다. 병참부 군인들이 가져오는 퍼석퍼석한 밥과 된장국, 단무지를 미쓰코 같은 여자들이 허겁지겁 먹고 나면 끝도 없이 그것이 시작되었다.

아니, 저녁식사가 끝나면 또 다른 일을 해야 했다.

“사용한 주머니(콘돔)를 장교가 오기 전에 씻어야 해.”

김 할머니는 양손의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고무 집는 동작을 해보였다.

“강가에서 씻었어. 모두 웅크리고 앉아서. 괴로웠지, 한심했어, 그게 가장.”

냉면이 고무줄처럼 딱딱해서 목구멍을 막았다.(330쪽)


‘끼니와 끼니 사이’라는 표현은 절묘하다. 진리에 비추어 말한다면 인간의 삶은 끼니와 끼니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에피소드다. 이는 잠과 잠사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이는 성교와 성교 사이라 해도 만찬가지다. 그런데, 여기 성교와 성교 사이가 폭력으로 왜곡되면서 끼니와 끼니 사이가 왜곡되는 반-진리의 세계가 참혹하게 펼쳐진다. 윤간과 윤간 사이에 끼니가 존재함에도 윤간 체제는 그것을 끼니와 끼니 사이라 이름 한다. 반-진리를 진리로 포장한 협잡이다.


협잡의 한복판에서 끼니와 끼니 사이 지옥을 견뎌야 하는 성노예 여성을 생각함으로 다시 영혼을 가다듬어보자. 지옥과 지옥 사이에서 먹는 “퍼석퍼석한 밥과 된장국, 단무지”는 대관절 그에게 무엇인가? 모진 목숨 이어가게 하는 최소한의 ‘영양 물질’인가? 거꾸로, 자동차로 치면 휘발유에 지나지 않는 그것을 먹고라도 이어가야 하는 목숨이란 무엇인가?


원해서 사는 것도 아니고 거절해서 죽는 것도 아닌 이 도저한 수동성의 확장에 몸서리칠 일 하나가 기어코 더 남아 있다.


괴로웠지, 한심했어, 그게 가장.


윤간에 쓰인 콘돔을 “웅크리고 앉아서” 씻는 일은 “허겁지겁” 끼니를 때우는 일과 기이한 일치를 이룬다. 비참함의 정점을 찍는 일이 하필 콘돔 씻기였다. 씻어서 뭔가를 떨쳐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끝없이 밀려오는 지옥을 맞이하는(!) 것이니 그 얼마나 아뜩한 절망이었으랴. 가장자리에서 보는邊見(헨미) 평범한 사람庸(요)조차 “냉면이 고무줄처럼 딱딱해서 목구멍을 막았다.”고 했으니 오죽했으랴.


유·소년기 내 아버지는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반드시 때려서 해결했다. 느닷없이 맞는 것은 그래도 견딜만했다. 가장 살 떨리는 것은 따로 있었다. 때린다고 미리 경고한 다음 매를 준비한 상태에서 아버지가 기다릴 때였다. 문제는 대부분 그 시간에 밥을 먹는다는 것이었다. ‘팥쥐 엄마’는 밥을 주면서 늘 그 특유의 냉담한 어조로 ‘밥 먹고 나면 종아리 걷고 아버지 방으로 가’라고 고지해주었다. 어린 나로서는 차마 묘사할 수 없었지만 그야말로 밥알이 돌처럼 “딱딱해서 목구멍을 막았다”고 할 상황이 아니었을까.


밥 먹는 시간은 제의의 시간이자 축제의 시간이다. 설움을 서로 엮는 시간이자 행복을 서로 나누는 시간이다. 그 밖의 것을 들이는 일은 삼가야 한다. 오늘 우리 끼니는 어떤가. 이전 끼니와 사이 벌어졌던 일로 말미암아 회한에 젖고, 다음 끼니와 사이 벌어질 일 때문에 불안해하는 것으로 채워지는가. 그래서 많이 불편한가. 그러면 ‘미쓰코’의 끼니를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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