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아래서는 사회 모든 분야가 산업이 된다. 의학이 예외일 리 없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죽음의 신은 목숨밖에 가져가지 않지만 의자는 돈까지 가져갔으니까. 산업의학은 평범한 사람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산업의학은 사회 전체를 의료화했으니까.


오늘 날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병원의 관리를 받는다. 산업출산은 기본이다. 이후 삶의 모든 과정에서 의료 시스템의 지휘감독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죽음과 그 의식까지 병원에서 치른다. 마치 인간의 생사 전체가 질병이기나 한 것처럼 온갖 것에 의료는 촉수를 뻗치고 돈을 빨아들인다. 생사를 볼모로 수탈하는 짓은 얼마나 반의학적인가. 산업의학은 돈에 미친 지배 권력과 엘리트 집단의 야비한 협잡 수단이다.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는 말은 구차하다. 이미 일극집중구조가 굳어진 마당에 ‘조선일보 문화면’ 같은 것이 있다 한들 무슨 정당성을 확보하겠나.


날로 비대해지는 암 병원을 볼라치면 바로 그 암 병원이 암 덩어리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죽여가면서 벌어들이는 돈으로 향락적 삶을 구가하는 자들에겐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일 테지만, 내게는 분노와 슬픔을 자아내는 어두운 동굴일 따름이다.


목하 암암리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는 국가 주도의 정신건강 사업도 마찬가지다. 토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서구, 특히 미국이 짜놓은 정신의학 체계는 그야말로 장사판이다. 돈이 되면 넣고 안 되면 빼는 식으로 진열한 병명만도 370개가 넘는다. 370여 개의 돈줄 던져놓고 마음 아픈 사람 낚아 올리는 블루오션에 자본이 문어발 뻗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의 몸도 맘도 백색의학의 돈벌이 수단이 된 오늘을 나 역시 살아야 한다. 불평등한 경제구조에 편승하고 다시 그 불평등을 촉진하는 백색의학의 거대한 힘 앞에서 변방의 ‘한’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인욕하고 진욕進辱하는 길에서 출발부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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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 찾아온 것은 자신의 심리적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은 청소년기 그의 기억 전반을 어둡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 선명한 얼룩은, 남편과 시부모에게 학대당하던 그의 어머니가 분노를 그에게 드러내면서 퍼부었던 욕설이었습니다. 이 상처는 그에게 변형된 방어기제로 발현되었습니다. 내부에서 날뛰는 폭력성을 밖으로 내보낼 때는 놀림·깔봄·비아냥거림으로 표현했습니다. 토론에서 이겨 상대방에게 모욕 주는 상상을 되풀이하면서 날카로운 논리적 문장 따위를 암기하곤 했습니다. 그럴수록 내면의 평화는 깨지고 사회생활은 뒤틀렸습니다. 몇 차례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치료 받아야겠다는 결론을 황급히 내렸을 때, 우연히 저를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숙의를 진행하는 동안, 필요한 요법으로 기억과 격정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아갔습니다. 그런 부분들이 정리되면서 이야기는 원 가족에서 점차 배우자로 넘어갔습니다. 그의 배우자가 그를 대하는 방식은 그가 드러내는 방어기제와 흡사했습니다. 목소리 등 사소한 인신의 문제를 빌미로 좀 더 야비하게 조롱하는 습관이 있지만 본질이 같아 보였습니다. 아마도 그에게 배우자의 그런 측면이 병적 끌림으로 작용하였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배우자는 출신지역이나 학력 따위 문제에서 드러나는 열등감을, 변형된 공격으로 위장해 사사건건 괴롭혔습니다. 저는 배우자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말했습니다.


“제가 드릴 말씀이 무엇인지 아마 짐작하실 것입니다. 다만, 일방적 이야기이므로 충분한 근거로 삼을 수 없습니다. 배우자에게 기회를 주시지요. 함께 오세요.”


다음 주, 부부가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에게 수 주 동안 들은 이야기를 백지로 돌리고 투명한 마음으로 배우자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30분 남짓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그가 말한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에너지 결을 배우자에게서 감지했습니다. 그것은 ‘옳지 않다.’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와 함께 두면 안 된다.’ 문제였습니다.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그의 배우자에게는 천적의 에너지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저녁식사를 제안했습니다. 식사 도중, 배우자의 직속상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사적인 일이라 하면서도 배우자는 저와 그를 남겨두고 서둘러 자리를 떴습니다. 저는 그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무슨 말씀 더 드려야 할까요?”


그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간호사가 얼굴을 들이밀면서 ‘예약 잡지 않은 분이 무조건 뵙겠다고 하시는데 어쩌죠?’ 합니다. 제가 직감으로 느끼며 ‘괜찮다’ 하자, 말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활짝 웃으며 들어섰습니다. 그의 손에는 커다란 꽃다발이 들려 있었습니다.


“법원에서 오는 길입니다. 감사드려요.”


그 뒤, 그는 자신의 어머니·친구·선배를 제게 소개해, 병과 삶의 문제를 숙의하도록 했습니다. 10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잊을 만하면 연락해옵니다. 밥도 먹고, 술도 한 잔 합니다. 물론 더 이상 이혼 이야기 따위를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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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의학의 정치적 기치 문제에서, 정치적 입장이나 방향 문제와 의학 내용 문제는 분리 불가능하다. 불의한 권력이 토건으로 병을 일으킬 때에는 의학 이론을 조작하기 마련이다. 진단과 치료에 동원되는 조건 구축 과정 또한 기획한다. 미국을 위시한 이른바 선진국은 이렇게 병과 진단 기술, 그리고 (약이라 주장하는) 화학합성물질 만들어 국제 사회에 유통시킨다. 각기 다른 여러 인종·성별·연령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폭력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의학 토건의 병자로 ‘징발되어’ 수탈당하고 있다. 백색의학은 학문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다. 이 악성 이데올로기의 쌍끌이기선저인망이 DSM 정신장애와 암이다. 나는 백색의학의 정치적 정신장애, 정치적 암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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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예약을 한 뒤, 다시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상담 가기 전에, 도움이 될 만한 자신의 이야기를 미리 적어 보내고 싶다는 취지를 전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문의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배우자는 그와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맥락을 고려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줄 몰랐습니다.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매사를 판단해 걸핏하면 사표 내고, 막말 하고, 이혼하자 달려들었습니다. 자기 신뢰가 부족해 사소한 데서 자존심을 내걸곤 했습니다. 매사 부정적이어서 불평불만을 일삼았습니다. 자주 격분에 빠져들어 조절 불가능한 상태로 날뛰었습니다. 급기야 만취된 어느 날, 귀신과 대화한다며 기괴한 광경을 연출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인내를 가지고 여러 차례 진지한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부부상담도 받았습니다. 정신과 치료도 받았습니다. 매번 나온 결론은 이혼이었습니다.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라고 해서 무슨 마법을 부리는 게 아니니, 뾰족 수가 있을 리 없습니다. 그를 공감·지지하는 정서를 바탕으로 해서, 다시 한 번 대화·협상의 기본 원리를 확인하고, 다른 데서는 쉽게 들어보지 못했을 법한 몇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리스 고전 수사법. 남녀 성차를 고려한 대화법. 전체 맥락을 잡고 제압하는 대화법. 최후 발언과 문맥 차단을 통한 대화 정리법. 정신장애 요소를 지닌 성인에게 하는 아동 상대 대화법.


무엇보다 제가 그에게 재삼 강조했던 것은 맨 마지막 대화법입니다. 모든 정신장애에는 발달장애가 기본으로 깔려 있다는 정신의학적 전제에 입각한 것으로서 한 가지 원칙, 세 가지 규칙만 지키면 됩니다. 한 가지 원칙: 함께 내린 결론은 반드시 관철한다. 3가지 규칙: 2인칭 어법, 금지 어법, 두괄식 어법을 금한다. 그리고 팁: 관계에 기대게 하지 않는다. 팁의 팁: 호칭은 관계 호칭 아닌 고유명을 쓴다.


배운 대로 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법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진심으로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선생님이 함께 해주신 덕분에 드디어 갈라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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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함을 말할 때, 우리가 대부분 연상하는 의미는 비상함입니다. 의자醫者인 제 연상은 다릅니다. 비범하다는 말을 들으면, 어딘가 비정상이겠구나, 그러니까 아프겠구나, 생각합니다. 비대칭의 대칭이 역동적 평형을 이루는 생명 현상을 염두에 두고 판단하면, 비범하다는 것은 어딘가 치우쳤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치우침이 곧 병입니다. 이런 이치를 이해할 수 없는 서양의학은 많은 경우, 병의 본령을 간파하지 못합니다.


거의 10년 다 돼가는 기억 하나가 문득 떠오릅니다. 어떤 작가와 우울장애 때문에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 상태에 대하여 누구보다 예민한 느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울장애라는 병명만을 말하고 약 처방을 해줄 뿐, 어떤 양의사도 그가 지닌 우울장애의 기작과 특성을 명확히 이야기해주지 않았습니다. 그의 남다른 감수성은 이 점을 용납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리저리 길을 찾다가, 웬 변방 한의사가 우울증 상담 치료한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는 작가답게 실팍한 묘사들을 통해 살아온 이야기와 마음의 풍경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최근 삶은 신산했습니다. 잘못된 결혼과 경제적 파탄에 이은 이혼까지 지옥 같은 여정이었습니다. 제2의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홀로 싸운 나날들도 혹독하였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일에서 거둔 성공은 또 다른 질곡을 몰고 왔습니다. 핍박과 송사에 휘말리면서, 그의 내면은 급격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뜨르르한 대형병원 정신과에서 상담(?)하고 약을 먹었습니다. 이렇다 할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 시간 남짓 그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이야기를 일단 매듭지으며, 그는 맑은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눈에 대고 딱 한 마디 했습니다.


“평범함의 부재!”


제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중심시각을 확 풀어버렸습니다. 극히 기민하게 내면으로 잠겨들었습니다. 다음 순간 그는 손뼉을 딱! 하고 쳤습니다.


“정확하시네요!”


그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삶, 그의 사유, 그의 글, 모두가 그에게서 사라진 평범함을 그리워한다,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왜 양의사들이 그 동안 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는지 의아해했습니다. 사실,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입니다. 서양의학에는 이런 어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의학 너머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평범하지 못하다는 것은 평범하지 않다, 그러니까 비범하다는 것과 다릅니다. 평범하지 못하다는 것은, 평범함에 간직된 건강의 진실을 전제하고 거기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평범함에 간직된 건강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양극단의 기계적 교차가 아닌, 다양한 스펙트럼의 역동적 중도中道가 끊임없이 흐르는 상태입니다. 중도의 역동성은 화쟁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화쟁은 곡진한 소통 없으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곡진한 소통은 평등을 전제합니다. 평등은 평범함에 터합니다. 평범함은 죽어도 지켜야 하는 무엇, 죽어도 버려야 하는 무엇을 지니지 않기에 언제나 변화를 받아 안는 삶의 기조입니다. 언제나 변화를 받아 안는 삶의 기조는 다름 아닌 무상無常의 진실에 대한 깨달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무상의 세계에서 평범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그 진실을 깨닫는 것이 관건입니다. 어쩌면 바로 이 깨달음만이 유일한 비범함일지 모릅니다.


그가 그런 삶을 얼마나 어떻게 구현해갈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그를 신뢰할 따름입니다. 그는 그만큼 영특한 사람이니 말입니다. 하여, 그는 자주 제 기억을 일깨웁니다. 지금 그가 어찌 사는지, 안다고 해서 궁금증이 가실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이름 석 자, 인터넷 검색만 하면 근황이 쫙 뜨겠지만, 삼가는 것이, 그와 제가 지켜야 할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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