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난방인 사춘기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여리고 고운 마음씨, 그 마음씨를 똑 닮은 목소리를 지닌 교사 한 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온 마음과 몸을 금방 눈물에 데쳐낸 듯 짙푸른 슬픔의 향이 흠뻑 밴 모습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애착 형성이 남달랐던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 즈음해서 자신이 본디 슬픔에 취약한 사람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은 그에게 마치 생애 초기의 이별과 같은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많았습니다. 어머니는 그에게 아이가 없다는 사실을 매우 가슴 아파했으며,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내내 하셨습니다.


그랬습니다. 그에게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슬픔의 해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온갖 방법을 다 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책임한 의료인한테 입은 상처 또한 커서, 단순히 우울증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복잡한 병리 상태 속에 휘감겨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펼칠 수 있는 최대한의 생명감각으로 그의 아픈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며 빛이며 냄새에 가 닿도록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그 또한 곡진한 감각으로 자신의 서사를 가꾸어갔습니다. 첫날 숙의를 끝내고,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른 뒤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그 순간 누가 뒤에서 포근히 저를 감싸 안는 거예요. 하도 편해 놀라지도 않고 가만히 느껴보니 선생님이셨습니다.”


아, 숙의가 이런 풍경도 그려내는구나! 놀란 것은 오히려 저였습니다. 그 뒤 그와 저는 슬픔의 사람이 왜 다 퍼주며 사는지, 거절도 주장도 못 하는지, 슬픔을 펼쳐 드러내지 못 하는지·······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삶의 절반은 전투라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그는 조금씩 여태 살아온 그 맞은편 진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 그는 자신에게 아이가 없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차마 밝히지 못 했습니다. 일대 회심의 날이 왔습니다. 그는 드디어 가슴을 고이 열어 고백했습니다. 순간, 교실은 신비의 침묵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후, 제자들이 선생님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음은 물론입니다. 무엇보다, 상처 입은 한 아이가 다가와 엄마에게서 버려진 자신의 아픔을 고백하는 감응 사건이 터져 그를 감동시켰습니다. 아마 그 두 사람, 결코 잃을(!) 수 없는 인연으로 묶이지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와 제가 그렇게 가슴을 여는 일은 작은 시작일 뿐입니다. 열고 또 여는 일은 쭉 계속될 것입니다. 제가 죽고, 그가 죽고, 또·······죽어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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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까치 능선 호젓한 곳에 아리잠직한 지성소가 있다.

산객들이 오며가며 쌓은 것이다.
가운데 조그만 탑은 나홀로 매일 돌 한 개씩 올렸다.
남은 생애를 향한 소미심심의 신뢰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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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의학은 맘을 뇌라고 한다. 가소로운 무지요 가공할 범죄다. 뇌는 맘이지만 그 역은 아니다. 저들은 자신의 종자논리를 부수고도 그조차 자각하지 못한다. 그렇다 치자. 그럼, 몸은 무언가? 답이 궁하다.


녹색의학에 따르면 맘은 의당 피부다. 피부는 비대칭의 대칭 구조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사건이고, 마음은 그 가운데 파동 축 가까이에서 운동한다. 몸은 반대로 입자 축 가까이에서 운동한다. 100% 맘은 없다. 있다면 유령이다. 100% 몸은 없다. 있다면 시체다. 맘을 보면 몸이 보이고, 몸을 보면 맘이 보일 때, 비로소 전체 진실에 주의할 수 있다.


백색의학은 맘 병이라 판단하면 맘만 본다. 우울장애 환자에게는 아무 생각 없이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준다. 그 화학합성물질이 위장을 망가뜨린 뒤 소화제 준다. 몸을 진중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몸 병이라 판단하면 몸만 본다. 아토피 환자에게는 그저 스테로이드제를 준다. 맘 문제가 불거진 뒤 정신과 보낸다. 맘을 진중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정신과 전문의가 장내세균을 조절하는 날은 언제일까. 아토피 전문의가 우울장애를 숙의하는 날은 언제일까. 그 사이 아픈 이들은 스러져간다. 백색의학은 아무래도 녹색 몽둥이로 맞아야 정신이 들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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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란 없다. 문제부모가 있을 뿐이다.’ 진부해서 진득한 진실입니다. 이 진실의 전형인 그가 까만 얼굴에 새까만 눈동자로 저를 찾아온 것은 고작 10대 중반 때였습니다. 그는 역설 자체였습니다. 한편으로는 맹하게 풀린, 다른 한편으로는 총기가 번뜩이는 내면 풍경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발음도 분명치 않고 급한 어조로 툭툭 던지는 말의 형식과 깜냥대로 근거와 서사를 갖춘 말의 내용이 기이한 화쟁 미학을 조몰락거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그를 묘사한 부모의 말과 달랐습니다. '엄친아'에서 쓰레기로 떨어진 탕아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문답으로 확인한 바입니다.


“어머니가 늘 그러실 텐데. 언젠가 제자리로 올라올 거라고. 바닥 이전 네 자리는 어디니?”


“그런 바닥 같은 거 없는데요.”


그렇습니다. 바닥이 있다면 누구나 그 바닥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닥은 결코 어디서 떨어져 나뒹구는 천한 곳이 아닙니다. 올라갈 이유가 없습니다. 아이는 그 진실을 깨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와 함께 ‘바닥을 치는’ 선문답을 시작했습니다. 화두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전체적 관점을 지니기 위해 뒷문을 열어둔다.

(2) 경계 밖에서 나를 본다.

(3) 자기 자신의 연인으로 살아간다.

(4) 나는 매혹적인 사람인가?

(5) 나는 어떤 소향을 지닌 사람인가?

(6) 진실의 대칭성(1): 평범과 비범의 화쟁

(7) 진실의 대칭성(2): 삶의 두 동력-타인의 인정과 자기 신뢰

(8) 진실의 대칭성(3): 빛과 어둠-가지 않으면 오지 못 한다.

(9) 현실적 인생관: 반걸음 앞을 내다보고 한걸음씩 내디딘다.

(10) 현실적 자기성찰: 바로, 지금 여기서 나는 무엇인가?

(11) 현실적 생활 기조: 견디면서 준비하고 준비하면서 견딘다.


10대 중반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거르지 않고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는 난해하고 심지어 현학적이다 싶은 어휘와 문장을 나오는 대로 구사하면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못 알아듣는다는 느낌이 없어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올 것이 왔습니다. 드디어 어머니와 용서를 주고받으며 현실 생활로 복귀시키기 위해 피부에 와 닿는 화두를 꺼내들었습니다.


(12) 사람과 삶을 치유의 관점에서 보기(1): 어머니


바로 그 순간, 어머니는 아이 덜미를 낚아챘습니다. 어머니가 저와 그의 숙의를 더는 참지 못 한 것입니다. 어머니의 불운이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이는 머지않아 저를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아이는 3년 뒤 대학생이 되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나름 전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불안이 여전히 남아 있고, 예의 그 반골 ‘끼’가 다소 완화되긴 했지만, 대신 전술전략을 보유했습니다. ‘이렇게 다시 왔으니 앞으로도 계속 오겠다.’며 총총히 떠났습니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그를 위해 화두를 준비해 놓고 기다립니다.


“(13) 철학이 대체 나와 무슨 상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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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 화두를 더 나아가 참구한다. 2010.8.23 마이리뷰 디디에 앙지외의 <피부자아> 일부를 다시 읽는다.


“자아는 피부다.”


이 말을 역으로 하면 “피부는 자아다.”입니다. 사실 이 말만으로도 전복적입니다. 피부를 그런 맥락으로 읽어 본 예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지은이는 주어와 술어 위치를 바꿈으로써 더 한층 날카롭게 나아갑니다. 피부가 자아의 부분집합이 아니고, 자아가 피부의 부분집합인 상황을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이 명제로써 한 순간에 피부는 광대한 은유가 됩니다. 피부이자 피부를 넘어선, 현실과 상상을 가로지르는 절묘한 실재성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엄마와 아기가 살을 부비는 정밀하고 사소한 일상부터, 반-생태적 자본주의 문명의 제약 불가능한 경계 교란까지, 실로 엄청난 폭량의 은유가 피부라는 경계, 즉 가장자리에서 요동치는 사건입니다. 피부는 다만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며 역동적 사건 그 자체입니다. 지은이는 피부의 기능 여덟 가지를 말합니다. 지탱하기, 담아주기, 항상성, 의미, 교감, 개별화, 성욕화, 에너지화. 좀 더 엄밀히 말하면, 피부의 기능이라기보다 피부라는 사건의 다양한 발현 양식이라 해야 하겠지요.


피부 사건에 두 가지를 더해야 한다. 하나는 호흡. 폐라는 호흡기관이 있음에도 전체 호흡의 0.6%를 피부가 담당한다. 대수롭지 않는 게 아니다. 피부 자체의 생존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과도한 화장 등으로 호흡을 막는 것은 충분히 반생명적 행위다.


다른 하나는 정보 인식. 디디에 앙지외가 적시한 교감과 다른 차원에서 피부는 소미한 정보 인식 사건을 일으킨다. 이는 면역체계와 직결된다. 교감 사건과 상보를 이루면서 에너지화와 대칭되기도 한다.


전체 맥락에서 보면, 생명은 피부의 다양한 주름이다. 생명 사건은 피부 사건의 다양한 변주다. 피부를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감각, 의식, 자세를 혁명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피부는 개별 생명체로 일단 떼어서 생각하면 가장자리다. 다른 생명체와 상호작용하는 관계로 생각하면 중심이다. 단독으로는 살아갈 수 없으므로 결국 생명의 중심은 피부다. 중심인 피부는 깊다. 더 깊은 내면 따위는 없다.


피부를, 그러면 어떻게 대할까? 피부는 지극한 거룩함과 질탕한 즐거움이 비대칭의 대칭을 이루는 사건이며 실체다. 이 이율배반과 모호함을 흔쾌히 흠뻑 끌어안아야 한다. 정중하게 모시는 일과 까불대며 함께 노는 일에 동시 감각이 일어나야 한다. 바라보기, 닿기, 만지기, 쥐기, 쓰다듬기, 다독이기, 도닥이기, 문지르기, 비비기, 부비기, 닦기, 씻기, 두드리기, 때리기, 긁기, 간질이기, 누르기, 받치기(받들기), 주무르기, 잡기, 접기, 펴기, 핥기, 빨기, 깨물기, 벌리기, 끼워 넣기, 찌르기, 짜기, 째기, 조르기, 자르기, 데우기, 태우기, 식히기, 적시기, 말리기, 불기, 뿌리기, 바르기, 싸매기·······의 수많은 접촉이 수많은 생명 사건을 일으키므로 한꺼번에 주의하고 하나하나 집중해야 한다.


한의사인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침으로 피부를 찌르는 치료를 한다. 침 찌르기는 근본적으로 피부사건 일으키기다. 침이 찔러지는 경혈의 흐름인 경락은 피부를 따라 흐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경락이 혈관계·신경계·림프계들로 진화하기 이전 피부의 미분화 정보·에너지 전달 체계였다고 본다. 물론 경락 이전 단계에서 피부는 세포 하나하나마다 감각·기억·전달·치료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세포들 사이에 원시 네트워크도 있었다. 그 원시 네트워크가 나중에 경락을 거쳐 혈관계·신경계·림프계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고대 동아시아인들이 경락과 침을 발견한 것은 실로 위대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침은 동종의학과 이종의학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앞으로 좀 더 치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나는 다른 한의사와 달리, 침을 찌르기 전에 특별한 경우 말고는 반드시 침 찌를 곳에 가벼운 터치를 한다. 단순히 대기도 하고, 문지르기도 하고, 만지기도 하고, 누르기도 한다. 대부분은 가볍게 톡톡 두드린다. 가볍게 두드리는 것은 소미한 통증 유발 효과가 있다. 손가락을 모으고 머리를 세워 두드리면 생체 광자photon들이 다량 방출된다. 생체 광자는 정보를 전달을 통한 치료 능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동종의학이다.


동종의학은 소미심심 의학medicina tenuissima이다. 소미심심 의학은 피부에서 비롯하여 배어들고 배어난다. 피부에서 비롯하여 배어들고 배어남으로써 생명이 피부임을 증언하는 길이 녹색의학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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