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의학은 근본적으로 백인·성인·남성의학이다. 맨 앞에 친절한 덧붙임을 하자면 179cm, 90kg이다. 이 기준을 원칙으로 하고 필요한 기계적 고려를 하는 정도가 유연성의 전부다.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차이도 고려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서구,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 기준으로 질병 여부가 결정되고 진단·치료 가이드가 제시될 뿐이다. 비서구 세계의 전통의학 인정 정도는 각 나라마다 다르지만 국민건강보건체계의 헤게모니가 서구(미국)식 백색의학 손에 있는 것은 대부분 비슷하다. 이런 일극집중구조 의료체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사회는 거의 없다. 예컨대 에단 와터스가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에서 “세계가 미쳐가는 방식을 균일화하고 있는” 미국의 정신의학 마케팅을 통렬하게 고발했지만, 변방 사람·사회들이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변화를 꾀한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이 적요 속에서 인간 하나하나의, 인종의, 어른과 아이의, 남성과 여성의 가름까지도 정중히 소상히 인지하는 의학을 틈낸다. 그 틈 의학을 우리는 녹색의학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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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뇌 쿠데타가 일으킨 거대종교, 거대이론, 거대국가, 거대문명 모두 제이의第二義적 삶으로 인간을 수탈한다; 근원에 닿지 못하고 타성에 얽매여 각성 없는 삶을 살도록 사람을 묶어둔다. 가령 호박을 먹는다 하자. 거대종교 신봉자들은 그 음식 주신 거대 신에게 감사기도 올린 다음, 호박을 한껏 소외시킨 상태에서, 저희들끼리 떠들며 먹는다. 호박 자체에 직접 가 닿지 못한다. 거대 신이라는 불가침 프레임 때문에 모든 것은 검열을 거친 뒤 탈-감수感受 상태로 전달된다. 이것이 바로 중독이다. 거대 패러다임은 질병이다. 사회적 지평으로 열리는 찰나 그대로 범죄다. 이 범죄에서 몸을 빼려면 거대 패러다임을 깨부숴야 한다. 거대 패러다임을 깨부수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간단한 이유는 거대 패러다임이 가짜기 때문이다. 가짜를 진짜처럼 속이는 힘은 언어에서 나온다. 언어를 관통해 그 너머로 가면 거대 패러다임은 붕괴된다. 거대 패러다임이 붕괴된 시공에 스며드는 것은 허무가 아니다. 무한이 스며든다. 무한은 소미심심이다. 소미심심은 언어가 가 닿지 못하는 참 신비를 열어준다. 그 신비에서 제일의적 삶이 복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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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腸은 제2피부이자 제2뇌로서 인간 생명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 중요성에 비해 우리가 장에 가지는 관심과 지식은 그야말로 보잘것없다. 장의 존재 자체와 기능은 그나마 그런대로 괜찮다 치지만 장신경은 상식 저 멀리 있다. 더군다나 장내에 거대한 미생물 생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거의 신비에 해당한다.


사실, 100조 개체의 미생물이 인간의 체내에 따로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경이로운 일이다. 인간은 이들을 직접 지휘할 수 없지만 이들은 인간에게 전천후의 영향을 직간접으로 행사한다는 사실과 맞닥뜨리면 경이로움은 경악의 수준에 도달한다. 경악할만한 이 생태계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장내세균이다.


장내세균은 유익균과 유해균이 비대칭의 대칭을 이루며 공존한다. 유해균은 없고 유익균만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둘의 비율이 17:3이면 황금비다. 이 균형의 파괴가 정신-신경-면역-내분비계 전 방위의 질병을 부른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불안·우울장애, 심지어 자폐스펙트럼 같은 정신질환까지 그 영향 아래 있다 한다.


장내세균총의 균형을 깨뜨리는 중요 원인은 단백질과 지방을 많이 함유한 음식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가장 좋지 않은 것은 백색의사가 처방약으로 주는 백색화학합성물질들이다. 이 물질들은 많은 경우 직접적으로 장내세균 활성을 저해한다. 그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장을 차게 해서 장내세균총의 균형 조건을 열악하게 만든다.


장내세균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려면 백색화학합성물질 중독에서 깨어나야 한다. 백색의학이란 종교에 머리 조아리는 광신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백색의사가 처방약으로 죽이는 사람 수가 갱단이 죽이는 사람 수보다 많다 한다. 좋은 책이 나왔다. 피터 괴체가 쓴 『위험한 제약회사』다. 부제가<거대 제약회사들의 살인적인 조직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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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면역 이야기에서 좌우 뇌를 언급했다. 큰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양자를 떠올리면 다소 뜬금없다고 느낄 수 있다. 녹색의학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아직 피부 문맥을 벗어나지 않았다. 오감 뒤에 바로 면역 이야기를 한 것은 면역이 본디 피부사건이기 때문이다. 순서로 따지면 면역 관련 피부질환, 장腸 이야기, 자기면역질환 심화론 등이 이어져야 하겠지만 일단 나온 김에 좌우 뇌 이야기를 잠시 하고 가련다. 하기야 대뇌가 후각세포에서 진화했으니 마냥 샛길은 아니지 싶다. 옳거니, 여기부터 짚으면서 이야기하면 되겠다.


후각이 다른 감각과 달리 직접 뇌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이미 했다.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 우뇌로 들어간다. 후각 소외·억압은 그러므로 우뇌 소외·억압과 같은 것이다. 좌뇌가 쿠데타를 일으켜 뇌 민주정치를 망가뜨린 사건이 바로 앞서 말한 스티브 테일러의 자아폭발이다. 본디 뇌는 좌우 비대칭의 대칭구조를 통해 온전히 균형 잡으며 생명 정치에 이바지해왔다. 자아폭발을 계기로 드러나기 시작했지만 이 대칭구조는 아직도 선명하게 지각되지 않고 있다. 좌뇌 기능 일극구조가 확고해질수록 우뇌 기능, 우뇌 기능 우위 인간은 소외·억압되었다. 좌뇌 독재는 6000년 동안 승승장구했다. 그간 두 차례에 걸쳐 극복운동이 일어났다. 칼 야스퍼스가 말한 제1, 제2 차축시대에 말이다. 유의미한 전승으로 남아 있지만 좌뇌 독재의 질주를 막지 못했다. 참 혁명이 우리 시대의 절대화두다. 좌뇌 독재의 폐해가 인류 존망이 문제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좌뇌 독재, 무엇이 문젠가? 음모론 같이 들리는 이야기로 풀어보자. 괴벨스의 440hz 음악을 앞에서 스치듯 언급했다. 무슨 말인가? 오늘날 우리가 듣고 있는 음악의 표준 주파수는 440hz다. 제3제국 제2인자 괴벨스가 주도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정확히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무심코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테니 추적해봄직하다.


440hz는 좌뇌만 자극하여 그 반응을 증폭시킨다고 한다. 432hz가 좌우 뇌를 고루 자극하여 균형을 유도하는 것과 대조된다. 좌뇌는 언어와 분석을 제어하는데, 부분적 사실에 집중하도록 이끈다. 집중은 고양高揚을 낳는다. 고양의 과도가 바로 조증mania이다. 세계전쟁과 유대인 제노사이드를 일으키면서 나치가 치밀하게 계산한 심리전술 가운데 하나가 바로 440hz를 통한 조증, 그러니까 광기(mania)였다고 해석하는 게 무리일까.


나는 이런 추적을 하면서 440hz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과 듣는 사람들이 드러내는 정서 상태를 유심히 관찰했다. 전문 연주자들의 과도한 표정과 몸짓이 연출이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청중의 열광적 반응도 마찬가지다. 황홀경으로 몰아가는 힘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이는 연주자의 해석과 기량, 청중의 이해와 공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나는 음악뿐만 아니라 무엇에든 그토록 열광해본 적이 없어서 신기해할 따름이었는데 비로소 수긍이 가기 시작했다.


내가 또 한 가지 주의를 기울인 일은 432hz 음악 듣기였다. 나 또한 긴 세월 동안 440hz 음악에 길들여졌기 때문에 처음 들었을 때 432hz 음악은 다양한 측면에서 불편함을 자아냈다. 무엇보다 답답하다는 느낌이 확 달려들었다. 음색과 음조의 갈래가 명징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심지어 베토벤을 듣다가 중간에 끈 적도 있다. 다시 정색하고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440hz가 음악 포르노라는 사실이었다. 다시 432hz로 돌아와 모차르트 심포니40을 들었다. 고요와 평안으로 배어들 수 있었다.


흔히 좌뇌는 긍정 판단을 우뇌는 부정 판단을 관장한다고 한다. 피상적이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좌뇌는 부분적 사실에 집중하기 때문에 긍정, 나아가 조증 상태를 유발하기 쉽고, 우뇌는 전체적 진실에 터하여 성찰하기 때문에 조증 상태를 제어한다고 해야 맞다. 전체적 맥락을 살피려면 반대 관점에 유의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하므로 부정적·비판적이라는 누명을 쓰는 것이다. 좌뇌적 성향은 형식논리, 우뇌적 성향은 화쟁논리에 터한다. 형식논리는 자아단일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타자를 정복하고, 화쟁논리는 자타일심의 자비를 가지고 공존을 꾀한다. 자아단일의 일극집중구조가 당연히 압도적으로 강한 물리력을 가진다. 좌뇌 문명이 역사를 지배한 까닭이 여기 있다. 그들이 지배한 인류가, 지구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린 소이가 여기 있다. 우뇌 혁명이 간절히 요청되는 상황이다.


우뇌는 좌뇌와 1:1의 대립항이 아니다. 이는 여성이 남성과 1:1의 대립항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이 점은 매우 강조되어야 할 진실이다. 서구적 사유로는 이 말을 알아듣기 힘들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좌우 뇌는 해부학적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는 한의학의 폐肺가 서구의학의 폐lung하고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이 점은 매우 강조되어야 할 진실이다. 서구적 사유로는 이 말을 알아듣기 힘들다. 이 공부에서부터 우리 시대는 녹색 뇌 혁명을 시작해야 한다. 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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