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토닌 농도가 떨어지면 여성은 의기소침해지고 근심, 걱정에 잠기며 안으로 숨는데, 남성은 술을 마시고 공격적인 행동을 한다. 따라서 부부가 둘 다 우울증을 앓아도 부인과 남편의 증세는 현저히 다르다. 남편의 경우 음주량이 증가하고, 평소와 달리 성질이 급해지며 난폭해질 수 있다. 한편 부인은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거나 사람이 많은 백화점 같은 곳에서 공황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33쪽)


본인도 주위 사람도, 심지어 의사도 “성질이 급해지며 난폭해”지는 남성, “사람이 많은 백화점 같은 곳에서 공황 발작을 일으”키는 여성을 보고 같은 병이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전자는 혹시 간헐폭발장애(속칭 분노조절장애), 후자는 말 그대로 공황장애의 가능성을 생각하기 쉽다. 여성과 남성이 세로토닌 부족으로 드러내는 증상이 이토록 판이하다는 사실도 놀랍거니와 두 가지 모두 우울증의 증상이라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조금 더 생각한다. 공격성이나 난폭함과 공황 발작은 전혀 다른 증상인가? 사실 이 두 증상의 뿌리는 같다. 공포가 바로 그 뿌리다. 공포의 전방위, 전천후 확산이 불안이고 고강도 불안이 공황이다. 난폭한 행동이나 공격은 공포의 방어기제다. “겁먹은 개가 크게 짖는다.” 전자는 즉자적 반응이고 후자는 대자적 반응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삶의 조건에 연속적 태도를 취하는 여성과 불연속적 태도를 취하는 남성의 차이와 맞물린다.


이런 통찰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공포 반응을 우울증으로 파악하는 이치는 무엇인가? 미국정신의학회가 우울증을 기분장애로 보는 견해를 버렸다고 하지만, 우울증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기분상태를 가리키고 있다. 우울증은 자신의 가치를 불신·폄훼하는, 마침내 존재 자체를 거부·부정하는 복합적인 정신·신체상태다. 나는 이를 자기부정증후군이라 부른다. 자기부정증후군의 날개 아래 공포·불안이 깃드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백색의학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통해 진실의 전체상을 포착하는 데 실패한다. 백색의학은 진실의 전체상에 비대칭의 대칭이 존재한다는 것을 여성과 남성의 차이로써 포착하는 데 실패한다. 백색의학은 달리 해야 할 치료, 같이 해야 할 치료를 혼동한다. 녹색의학은 이쪽에서 저쪽 진실을, 저쪽에서 이쪽 진실을, 함께 알아차린다. 녹색의학은 양극을 가로지르며 휘돌아 회통한다. 녹색의학은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조롱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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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4 00: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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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볼 때 여성과 남성의 뇌는 작지만 본질적인 차이를 지닌다. 예를 들어 남성은 우울증을 예방하는 호르몬 세로토닌을 여성에 비해 52%나 많이 생산한다.·······그런데 사회적 성공·······은 뇌의 세로토닌 농도를 증가시킨다. 사회적 성공이 실제로 뇌의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2배나 높은 이유는 어쩌면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경우에 따라서 의사는 우울증 약을 처방하는 대신 삶의 문제에 대하여 상담을 권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32쪽)


백색의학은 마음을 뇌라 한다. 틀렸다. 뇌는 마음이지만 그 역은 아니다. 아마도 가장 진실에 육박하는 표현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마음은 몸 전체가 삶의 내외 조건과 일으키는 상호작용의 파동적 측면이다. 뇌는 몸 전체와 삶의 내외조건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경계들의 관제탑이다.”


사회적 변화가 뇌에 영향을 미치는 사실을 알고도 마음을 뇌라 하는 것은 비과학 이전에 참으로 어이없는 사태다. 더군다나, 여기서는 언급되지 않은 사실이지만, 뇌에 있는 2% 미만의 세로토닌만 우울증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다. 세로토닌의 98% 이상은 장에 있다. 마음이 뇌라면 마음이 장이라는 주장은 적어도 세로토닌에 관한 한 49배 이상 타당하다. 마음은 뇌가 아니다. 여기서 이 문제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 뇌 내 세로토닌 생산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52% 우세하다는 사실이 큰 맥락에서 이해된다. 본디 뇌가 그렇게 생겨먹었다고 말하는 것 역시 백색의학 어법이기 때문이다.


녹색의학은 우울증과 마주할 때, 삶 전체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진단하고 치료한다. 증상 확인하면 곧 바로 프로작(선택적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 던져주는 짓을 하지 않는다. 삶의 이야기, 그 역사를 경청하고 인생행로를 바꾸는 일에 조력하기도 한다. 녹색의학은, 그러므로 인문의학이다. 여성이 남성과 다름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차별은 묵인하는 사회와 싸우는 일에 함께하기도 한다. 녹색의학은, 그러므로 사회의학이다. 인문의학이며 사회의학인 녹색의학은, 그러므로 숙의 의학이다. 숙의의학에 인간의 미래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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