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제약회사 - 거대 제약회사들의 살인적인 조직범죄
피터 괴체 지음, 윤소하 옮김 / 공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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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을 중단하려고 하면 끔찍한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는데, 해당 질환의 증상과 유사한 것도 있고,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증상도 많이 있다. 가장 유감스러운 점은, 이것을 거의 모든 정신과 전문의가, 그리고 환자 자신도 약이 계속 필요하다는 징후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마약중독자가 헤로인이나 코카인에 의존하듯 그저 의존성이 생긴 것뿐이다. ADHD 약과 SSRI가 암페타민과 같은 효과를 내므로 이 약들은 의료용 마약으로 간주하고 가급적 적게 사용해야 한다.

  ·······대부분의 정신과 전문의들은 이렇게 하지 않고 평생 약을 복용하는 쪽을 택한다. 이는 여러 이유로 재앙이다. 환자를 환자 역할에 가두고, 약이 환자의 인격까지 변화시켜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도전에 대처하는 법을 익히지 못하게 만든다. 또 항정신병약뿐 아니라 모든 약이 영구적인 뇌 손상과 영구적인 인격 변화를 초래하여, 예를 들면 지연성 운동장애, 인지능력 감퇴, 정서적 둔감을 유발하는 것으로 보인다.(346쪽)


언젠가 어디선가 말했던 적이 있다. 양의사한테 치료 받다 잘 안되면 ‘아, 내 병이 깊구나!’ 하던 사람이 한의사한테 치료 받다 잘 안되면 ‘아, 의사 잘못 골랐구나!’ 한다고. 같은 맥락에서, 한약 먹다가 뭔가 불편한 일이 일어나면 대뜸 ‘약이 잘못됐다.’고 단정하던 사람이 양약 먹다 그만두려 할 때 이탈증상이 나타나면 “약이 계속 필요하다는 징후로 해석한다.


일부 개신교가 천주교더러 사탄의 도라 한다. 일부 조계종 중들이 달라이 라마더러 덜 깨친 자라 한다. 같은 맥락이다. 종교는 그럴 수 있다 치자. 의학은? 과학이라며? 아, 한의학은 과학이 아니니까 그런다? 서구정신의학은 철두철미 과학이라 이탈증상을 필요성으로 인식한다? 아무렴, 그렇지. 서구정신의학이 얼마나 대단한 과학인가 말이다. “영구적인 뇌 손상과 영구적인 인격 변화”를 일으키는 완벽함이라니.


생명에 비가역적 손상을 입히는 독극물을 약이라 이름 하는 과학이 정녕 과학이라면 나는 그 과학을 거절한다. 차라리 육감과 주먹구구에 의지해 한 걸음씩만 더듬더듬 걸어가며 살겠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서구정신의학은 신흥종교다. 그 사이비성을 다시 한 번 톺는다. 속고 말고를 각자 몫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정신의학자들은 정신분석을 과거지사로 돌리고 난 후로, 생물학적 정신의학을 적극 받아들였다. 그럼으로써 정신의학이 내과만큼이나 과학적인 것으로 보이게 됐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3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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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피의 두께는 여성과 남성이 동일하지만, 태아 때 표피의 발달은 남성이 여성에 비해 더디다. 에스트로겐이 표피 성숙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는 미숙아로 태어난 남자 아이가 여자 아이보다 더 약하고 생존하기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로 여겨진다.(274쪽)


미숙아로 태어나 생애 첫 2개월 동안 인큐베이터에서 양육된 여성 청년과 숙의치유를 진행하고 있다. 이 시기에 어머니와 주고받아야 할 접촉과 교감의 누락으로 말미암아 그의 심신 전체가 움푹한 상처를 입었다.


그는 좀처럼 이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무엇보다 상처가 구체적인 삶의 결함으로 나타나는 것을 못 견딘다.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근거 없는 높은 기준에 비추어 스스로를 학대한다.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여기는 사람 원망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한다. 주위 사람들한테 끊임없는 온정을 요구한다. 자신의 질병 상태를 통과하면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보다 끝없이 집착하는 유아적 태도에 얽매인 채다. 자신에게 있는 것은 팽개치고 없는 것을 향해 헛된 포옹을 계속한다. 그런 자신을 구질구질하다며 절규한다.


“진짜 구질구질한 사람은 이미 죽었다.”


내가 또박또박 그에게 해준 말이다. 그가 그렇게라도(?) 살아가는 것은 그만한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남자 아이로 태어났다면 하마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상처도 원망도 집착도 살아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어느 중처럼 덮어놓고 감사하라는 얘기 하려는 거 아니다. 어느 철학가처럼 아프게 야단치려는 거 아니다. 진실의 전경을 보게 하려는 거다. 생의 한 쪽 문이 닫혀 있으면 또 다른 한 쪽 문은 열려 있다. 닫힌 문만 붙잡고 한탄하는 치우침에서 부디 놓여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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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제약회사 - 거대 제약회사들의 살인적인 조직범죄
피터 괴체 지음, 윤소하 옮김 / 공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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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의학의 위기는 심각하다. 급성 질환이던 것을 만성으로 바꾸어 놓았을 뿐 아니라, 정상 상태를 치료대상으로 삼고 있다. 향정신성약물이 오만가지 질병에 쓰이고 있다.(343쪽)

  향정신성약물은 화학적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일으킨다. 그래서 약을 중단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몇 주 이상 복용하면, 이런 약은 그것이 치료해야 할 질병을 오히려 유발한다. 과거에는 많은 경우, ‘자가 회복 질환’이었던 조현병, ADHD, 우울증이 우리가 먹는 약으로 인해 만성적인 장애가 됐다.(345쪽)


갈수록 글쓰기가 힘들다. 분노가 이성을 마구 헝클어 놓는다. 어두운 전망이 의지를 여지없이 꺾어버린다.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는 예감을 안은 채 누군들 감연히 전선에 서랴. 많은 가까운 이들이 백색정신의학의 제물로 스러져가는데 나는 속수무책이다. 내 절규는, 알고도 속절없이 끌려들어가는 가엾은 이들의 터럭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발끝을 태우고 들어오는 통렬함에 온 영혼을 흔들어도 이적은 찾아오지 않는다. 어찌 할까. 어찌 살까. 어찌 될까.


정상 상태인 사람을 정신장애로 몰아 백색화학합성물질을 먹이면 화학적 불균형 상태를 일으켜 치료 대상인 그 질병을 유발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질병은 평생 백색화학합성물질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만성장애가 된다. 스스로 회복할 수 있었던 많은 질병도 백색화학합성물질을 먹고 나서는 그 물질에 의존하는 만성장애가 된다. 총 쏴서 부상 입혀 잡아온 포로나 다름없다. 아, 다른 점 있구나. 돈 낸다는 점. 그것도 자발적으로. 감사하며. 망할.


사람의 생명을 놓고 토건 벌이는 살해자본주의가 가장 총애하는 화수분을 들라면 아마도 정신질환과 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암도 암이지만 정신질환은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으로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청년들과 아이들이 지금과 같은 추세로 백색정신의학의 토건에 포획된다면 인류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런 분야에서 특히 미국 식민지나 다름없는 우리나라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청년과 아이들을 우울증애, ADHD 따위로 몰아 편하게 관리하려는 정신의학, 교육, 관료집단의 카르텔을 깨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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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복 사용 긴장성 손상RSI은 힘줄, 관절, 근육을 긴장시키는 특정 동작을 계속 되풀이하는 경우에 일어난다.·······

  여성은 반복 사용 긴장성 손상에 더욱 취약하다. 대부분의 사무기기가 남성을 대상으로 설계된 것을 부분적 이유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은 ‘자판을 두드리는 일’에 남성보다 많이 종사한다.(264쪽)


여성이 남성과 다르다 하면 으레 떠올리는 통속한 이미지만으로도 백색문명은 충분히 통속하다. 통속한 눈에는 “대부분의 사무기기가 남성을 대상으로 설계된 것”이란 사실이 들어오지 않는다. 통속한 눈에는 “여성은 ‘자판을 두드리는 일’에 남성보다 많이 종사한다.”는 사실이 들어오지 않는다. 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이 사실에서 비롯한 RSI를 백색문명이 주목할 리 없다. 주목했다면 사무기기 시장 풍경이 달라졌으리라. 주목했다면 직업의 남녀불평등구조가 달라졌으리라. 이 부질없는 이야기를 부질없이 하는 까닭은 뭔가.


이치를 따지자면 우리 이야기는 순서가 거꾸로 되었다. 백색문명이 자기보전의 근간으로 먼저 남녀불평등구조를 만들었고 그 구조의 유구함이 저 도저한 통속함으로 쌓인 것이니 말이다. 통속함에서 놓여나려면 본진으로 단도직입해야 한다. 백색의사가 그 눈으로 RSI에 주목한대봐야 오십 보 백 보다. 자신이 빠져 있는 문명의 함정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인문의 눈을 떠야 한다. 의사이기 전에 인간인 근원 조건으로 진입해 사유하고 성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한 발을 앞으로 들어 넘어질 위기 속에 투신부터 해야 한다.


그 다음, 허공에 띄운 발을 더 앞으로 내밀고 몸 전체의 무게 중심을 이동시켜 위기를 증폭시킨다. 마지막으로, 안정을 무너뜨리기 위해 다른 발로 힘차게 기존의 땅을 뒤로 밀어 위기를 극대화한다. 그러면 먼저 나간 발이 새로운 땅에 닿으며 새로운 안정을 준비한다. 새로운 안정은 찰나적이다. 바로 다음 순간 다른 무너짐이 시작되니 말이다. 그렇다. 근원에 이르려는 자는 끊임없이 걸어 나아가야 한다. 백색문명은 정지, 그러니까 제자리에서 같은 동작을 영원히 반복하려는 탐욕에 사로잡혀 있다. 백색문명은 RSI 그 자체다.


백색문명이 RSI를 확대재생산하면서 생긴 이익은 0.1%가 가져가고 손실은 99.9%가 짊어진다. 99.9%는 아래로 갈수록 여성이 많아진다. 그 여성은 다시 겹겹의 RSI를 뒤집어쓴 채 살아간다. 녹색문명은 백색문명의 등을 떠민다. 한 발을 앞으로 들어라 촉구한다. 무게 중심을 앞으로 기울여라 독려한다. 다른 한 발을 뒤로 힘껏 밀어라 손뼉 친다. 그리고 구호를 외친다. 근원을 향하라. 인간을 향하라. 평등을 향하라. 자유를 향하라. 평화를 향하라. 사랑을 향하라. La marche est spiritualité, elle nous connecte à l’uni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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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는 우주 진리를 몸 사건으로 일으킨다. 두 발은 비대칭의 대칭을 이루며 움직인다.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미는 동작을 교차 반복한다. 찰나적으로 땅에서 연속되고 나머지 모든 시간 동안은 땅에서 단절된다. 연속될 때는 단정하게, 단절될 때는 기우뚱하게 균형을 이룬다. 걷기는 정확하고 절묘하게 우주 운동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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