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 달 가듯 흐르는 걷기에 각별한 돋을새김 하나를 한다. 미토콘드리아를 위한 헌정으로서 걷기다. 운동과 선동禪動의 일여一如니 수승하다.


미토콘드리아는 우리 몸 세포보다 훨씬 더 많은 수로 세포 안에 존재하는 세포소기관이다. 세포 내 발전소라 보면 된다. 미토콘드리아는 인간으로 보면 외부 생명체다. 공생하는 것이다. 인간의 몸 자체가 이미 화쟁을 거쳐 무애공존을 이룬 우주 이치의 체현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인간 생명 유지에 결정적 기여를 한다. 미토콘드리아 활성이 떨어지면 치명적인 질병에 걸릴 수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암, 치매, 뇌졸중을 포함한 130가지 질병과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미토콘드리아 활성을 높이려면 그 개체수를 증가시켜주어야 한다.


미토콘드리아 개체수를 증가시키려면 적색근육을 자극해야 한다. 특히 미토콘드리아가 많이 들어 있는 등과 허벅지 근육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평소에 등을 곧게 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걷기다. 허벅지 근육을 자극하려는 거다.


미토콘드리아에 바치는 걷기는 몇 가지 적정 요건이 있다. 무엇보다 배고픈 상태. 체온을 효율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다. 그 다음은 속도다. 30분 걸어 3km 답파할 정도면 좋다. 그 다음은 운동량이다. 일주일에 5일이 적당하다. 마지막으로는 역시 허리를 펴는 거다.


금상첨화가 되는 팁 두 가지. 복식호흡을 병행한다. 걷는다는 사실을 찰나마다 알아차린다. (허벅지와 등 근육에 주의를 기울여도 좋다. 뇌, 심장, 간을 묵상해도 좋다.)


사족: 내 미토콘드리아 걷기에는 의미 실재가 하나 더 붙는다.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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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속에서나

살 수 있는데, 문득

시간 앞에 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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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는 역동균형을 잡아야 하는, 잡아가는 전체 몸 사건이다. 골격과 그에 연결된 근육의 각기 필요한 동작이 상호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중력을 견디고 장력을 조절해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찰나마다 균형이 무너질 가능성을 지닌다. 균형을 잡으려면 상하, 좌우, 전후 전 방위의 유기적인 협동이 필요하다. 내부적으로도 신경-혈관-(근)막계의 정보 교환도 긴밀해야 한다. 그 정보에 따른 에너지 분배도 적확해야 한다.


제대로 걷지 않으면 몸에 이상이 생긴다. 몸에 이상이 생기면 걷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걷기는 생명을 제대로 지키기 위한 전제임과 동시에 생명이 흔들릴 때 바로잡는 치유다. 백색문명을 살아가는 현대인은 제대로 걷지 않기 때문에 생명의 제반 균형이 무너져 있다. 걸으면 균형이 복원된다. 걷기가 힘들 정도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전 단계를 거쳐야 함은 물론이다. 어찌 걸으면 제대로 걷는 것인가?


무엇보다 기본적이고 근원적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이 걷는다는 사실을 찰나마다 깨어서 알아차리는 일이다. 알아차리지 않으면 타성적으로 걷게 된다. 현대인 대부분은 타성적 걷기에 중독돼 있다. 이 중독은 걸어야 하는데 걷지 않아서 생긴 일종의 질병이다. 알아차리고 걸으면 자연스럽게 다음 결과가 나타난다. 잘 안 되면 정색하고 수행해야 한다.


타성보행보다 보폭이 적절하게 커진다. 발 사이가 적절하게 조절된다. (타성보행의 경우, 남성은 지나치게 넓고 여성은 지나치게 좁은 경향이 있다.) 발끝 각도가 조절된다. (타성보행의 경우, 남성은 지나치게 벌어지고 여성은 지나치게 오므려진 경향이 있다.) 팔을 크게 흔든다. 어깨도 유연하게 전후로 회전시킨다. 얼굴을 들고, 가슴을 펴고, 허리를 세운다. 시선은 정면 또는 살짝 위를 본다. 숨이 깊고 길어진다. 걸음마다 새로운 탄성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몸 외부구조는 말할 것도 없고 호흡, 순환, 면역, 내분비, 신경(좌·우뇌, 자율, 장), 원시정보 체계의 균형이 회복된다. 걷기 자체의 역동균형이 몸의 모든 결과 겹에 퍼져 전천후 역동균형 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게 우주운동의 체현이다. 인간중심으로 말하면 건강한 몸놀림이다. 건강한 몸놀림으로서 걷기는 우리 생명을 구름에 달 가듯 흐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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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관한 모든 것, 심지어

인간 자체까지 전환해야 하는 시대,

이런 이야기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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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제약회사 - 거대 제약회사들의 살인적인 조직범죄
피터 괴체 지음, 윤소하 옮김 / 공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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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시험은 의사들을 꾀어, 약효가 동일하거나 오히려 더 좋고 저렴한 기존 약 대신 값비싼 신약을 처방하게 만드는 데 이용된다. 그중 최악은 이미 기존 약으로 잘 치료되고 있는 환자들의 약을 바꾸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의사들은 약을 바꾸는 환자 수에 따라 돈을 받기 때문에 임상적 판단이 흐려진다.(295쪽)


2012년 《영국의학저널》에 실린 논문 한 편에,·······진실성이 의심스러운 일련의 ‘연구’에 거의 36만 명이나 되는 환자들을 모집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대부분의 연구가 중진국이나 저소득 국가들에서 실시됐다. 이 국가들의 환자는 더 비싼 (약)을 구매할 여유가 없는데도 말이다.·······의사들은 리베이트로 볼 수 있는 돈을 받았다. 가장 빈곤한 환자들이 비용 부담을 지는 동안 다른 모든 이들이 이득을 보았다. 이런 예를 두고, 제약회사와 의사간의 ‘윤리적 동반자 관계’라고 할 것인가? 지겨운 소리다.(297쪽)


‘아우 줄 것은 없어도 도둑 줄 것은 있다’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수탈당할 것은 있다는 말이다. 담뱃값 올려 빈곤층의 피땀 어린 돈을 세금이랍시고 13조씩이나 뜯어간 박근혜 짓을 보면 무슨 이야긴지 실감할 수 있다.


왜 가난한 사람의 것을 수탈할까? 많이 가진 부자 등을 치는 게 더 쉽지 않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그 부자가 결국은 수탈자 본인일 거 아닌가. 자신을 뜯어먹지는 못한다. 수탈자는 피 수탈자 가난뱅이들을 죽이고 나서도 뜯어먹는다. 거대병원 장례식장의 풍경이 전형적인 예다. 우리가 백색의료에 중독되어 당연하다 생각하지만, 삶의 전당이 왜 죽음의 전당을 차려 놓고 돈벌이에 이용하나? 하기야 백색의료의 전 방위적 정체성에 비추어보면 당연하다. 생명이 태어나기 전부터 수탈을 시작하니 말이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다만 불편할 뿐이다.’ 무슨 의도에서 꺼낸 말인 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백색의료 시대 한복판에서 이 말은 본디 의도대로 도로 주워 담을 수 없다. 가난은 불편을 넘어선다. 가난은 죄다. 가난 때문에 더 많이, 더 가혹하게 수탈당하는 삶을 어찌 죄라 하지 않을 수 있나.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다. 피 수탈자니 죄인이다. 나만 그런가. 내 가족도 그렇다. 내 가족만 그런가. 담배 피우며 13조 뜯긴 모든 가난뱅이가 다 죄인이다.


죄인들이여. 스스로에게 사죄하고 싶은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백색화학합성물질을 가만히 들여다보시라. 의사가 ‘미는’ 약인지 알아보시라. 확인하면 쓰레기통에 버리시라. 그 순간 죄에서 벗어난다. 죄에서 벗어나면 가난에서 놓여난다. 가난은 돈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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