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의학이 질병과 질병 앓는 사람을 화두 삼을 때, 그 선의 수행은 당연히 홀로 할 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둘 이상이 서로 주고받는 질문과 질문에서 답의 답을 구해간다. 질병을 앓는 사람은 질병과 말을 틈으로써 이 과정을 시작한다. 거기에 의자가 참여함으로써 삼자 서사가 형성된다. 백색의학이 백색의사의 홀로 선獨禪이므로 녹색의학은 질병과 환자, 그리고 의자의 서로 선共同禪이다.


질병이 서사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있다. 때려잡지만 않는다면 질병은 스스로 말을 한다. 그 말을 들을 귀 있는 환자가 먼저 듣는다. 환자 귀가 아직 열리지 않았다면 들을 귀 있는 의자가 먼저 듣는다. 둘 다 묻지 않는다면 질병은 침묵한다. 질병의 침묵을 딛고 행해지는 온갖 처치는 폭행이며 살해다.


환자가 서사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있다. 의자가 눈만 내리깔지 않는다면 환자는 스스로 말한다. 그 말을 들을 귀 있는 의자가 들으면 함께 질병에 귀 기울인다. 삼자가 주고받는 이야기는 벼락vajra이 되어 함께 깨칠 틈을 낸다.


백색의학이 홀로 선으로 사회를 의료화했으므로 녹색의학은 서로 선으로 의료를 사회화한다. 사회화된 의료는 스스로 특권의 거점을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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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제약회사 - 거대 제약회사들의 살인적인 조직범죄
피터 괴체 지음, 윤소하 옮김 / 공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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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제약회사』를 덮고 다홍색 표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윗부분은 희고 아랫부분은 파란 캡슐 화학합성물질이 가운데 오뚝하니 자리 잡고 있다. 새삼 섬뜩한 느낌이 든다. 나는 책을 집어 들고 일어나 환자 대기실로 간다. 환자들이 앉아 기다리며 TV를 시청하거나 신문·책을 읽곤 하는 탁자 위에 책을 놓는다. 환자들이 이 책을 반색하며 읽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가령 어느 신도가 자기 종교 고발 서적을 선뜻 집어 읽겠는가. 다만 환자들의 눈길이 머무는 곳에 이 책이 반드시 있어야 하겠기에 놓는 것뿐이다.


구입해 읽고 주해리뷰를 쓴 두 달 동안 이 책을 끼고 살았다. 표지만 봐도 기분이 싸해지는 책을 매일 아침 열어 다시 읽고 글을 쓰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도끼눈으로 살아온 한 세월도 무력감이 동반되면 졸지에 회한으로 남을 뿐이니 그에 잇닿은 남은 시간도 시난고난 앓다 는적는적 허물어지지 않을까 근심도 들었다. 남은 날은 알 수 없다. 그저 반걸음 앞을 보고 한 걸음 내디디며 갈 뿐이다. 내맡기는 삶에서라도 애씀은 피할 수 없다. 노닐면서도 싸워야 한다. ‘주먹 쥐고 일어서서.’


안다. 이 싸움이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라는 것. 상대는 가히 초월적 권위를 지닌 존재다. 조그마한 사람들이 느끼는 소름 돋는 공포는 이런 거다. 신뢰하는 양육자며 든든한 보호자인 아버지가 어느 날 밤 아이의 가방을 열어 일기장을 들여다본다. 그 모습을 목도한 고등학생 딸의 심정을 짐작해볼 수 있겠는가. 그 심정을 지닌 채, 싸울 수 있겠는가. 싸울 수 없다. 싸울 수 없어서 포기할 수 없다. 포기하면 끝이니까.


내 인생에서 내가 스스로 끝낼 때까지 끝날 일은 없다. 끝내 녹색의학·녹색의사를 깨우련다. 아니면 말고는 말이 아니다. 끝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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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하게 배는 마음, 그러니

몸, 그렇게

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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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람은 온통 아픈 생각뿐이기 십상이다. 통증이 심하면 더욱 그렇다. 병이 중할수록 더욱 그렇다. 아픈 생각에 빠져들고 만다. 병 생각에 빠져드는 것은 병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병의 악화에 에너지를 보탤까. 가볍게 답할 일 아니다. 반대의 경우를 살펴보자. 낫는 생각에 몰두하는 것은 어떤가. 병의 호전에 에너지를 보탤까. 가볍게 답할 일 아니다.


우리는 그 동안 이 문제에 가볍게, 그리고 쉽게 답하는 여러 이야기를 수 없이 들어왔다. 가장 유서 깊은 말은 일체유심소조一切唯心所造다. 출처가 어딘지 잘 모르지만 불가에는 이미 진리처럼 각인된 말이다.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모르지 않는다. 불가 수행의 범주를 넘어서는 순간부터 이 말은 개소리가 된다. 암에 걸리는 것도 마음 지음이고 암에서 놓여나는 것도 마음 지음이란 말은 얼마나 가볍고 쉬운 것인가. 그 다음 긍정주의. 모름지기 일체유심소조의 세속 판 현대 버전 쯤 되겠다. 여전히 어느 제국에서 왕 노릇하거니와 이 또한 개소리임이 분명하다.


이런 말도 들어왔다. 병은 그저 내게 있게 된 것이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해서 들어온 것이 아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한다고 나가는 것이 아니다. 병이 어떻게 들어왔든 의학적 치료로 낫게 하면 그만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결곡한 합리성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이 역시 개소리다.


이 개소리들의 촐싹거림은 질병 자체를 질병 앓는 사람에게서 떼어내어 사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질병은 사물이 아니다. 앓는 사람의 삶, 그 살아 움직이는 과정의 일부다. 사람에게서도 삶에게서도 분리할 수 없는 사건이며 대부분 물적 근거와 영역을 지닌 실재다. 그런 실재에 걸맞은 대우는 단연 화두 삼기다. 분명히 하자. 화두 들기가 아니다. 드는 것은 남성가부장 선객이 하는 짓이다. 우리는 화두를 선의 방편 사물로 들지 않는다. 화두를 인연으로 받아들인다. 화두와 전 인격으로 관계 맺는다. 삼아지는 화두에는 우리 인생 전체가 연루된다.


녹색의학은 질병을 화두 삼는다. 백색의학이 질병을 ‘처치’ 대상 사물로 폄훼한 역사를 통렬히 반성한다. 질병은 앓는 사람이 잘못 해서 들고 들어온 몹쓸 물건이 아님을 선언한다. 질병은 마음만 먹으면 후루룩 삼켜버릴 수 있는 라면 같은 것이 아님을 명토 박는다. 녹색의학은 질병과도 질병 앓는 사람과도 평등하게 상호소통하기 위해 작고 적게 배어드는 마음小少沁心이며 그 몸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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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제약회사 - 거대 제약회사들의 살인적인 조직범죄
피터 괴체 지음, 윤소하 옮김 / 공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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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건강 검진은 전체 사망률, 암 사망, 심혈관 사망 모두에 아무런 효과를 나타내지 않았다.·······정기 건강 검진은 질병 또는 위험 인자의 더 많은 진단을 이끌어내고, 이는 더 많은 약의 사용과 더 많은 유해반응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린 결론은 확고했다. 정기 건강 검진을 실시해서는 안 된다.(495쪽)



참으로 무섭고 참담하고 절망적인 증언들을 곰씹으며 마침내 책의 끄트머리에 이르렀다. 저자는 이제, 우리에게 마지막 절규 하나를 남긴다. 이는 가장 기만적이어서 가장 근본적인 조직범죄에 대한 고발이다.


정기 건강 검진은 건강 상태를 일정 기간마다 규칙적으로 점검하여 질병을 예방 또는 조기 발견·치료함으로써 국민이 좀 더 풍요롭게 오래토록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려는 국가 정책이다, 라고 우리 대부분은 믿어왔다. 적어도 국가는 우리를 그렇게 믿도록 해왔다. 저자는 이것이 껍데기라고 말한다. 알맹이는 그러면 무엇인가.


정기 건강 검진은 질병 또는 위험 인자의 더 많은 진단을 이끌어내고, 이는 더 많은 약의 사용과 더 많은 유해반응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니까 정기 건강 검진이란 “질병을 만들어 약을 파는” 국가 마케팅인 거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벌인 사악한 장사판이다. 검진을 미끼로 약을 팔아 돈을 챙기면서 국민을 노예화하고 서서히 ‘사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복마전이 바로 정기 건강 검진인 거다. 아, 이런!


국가가 알아서 이 장사판을 걷는 일은 없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실에 터하여 두려움을 떨쳐내고 정기 건강 검진을 거부해야 한다. 한 사람의 경험이 온 사람의 경험으로 확산되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이야기하고 글을 써야 한다. 연대의 서사narrative를 빚어야 한다. 살 길은 이뿐이다.


조그마한 사람들이 조금씩 나아가는 발걸음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개벽이 온다. 달리다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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