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9% 천치와 9.09% 천재를 0.01% 범재가 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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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당이 쓴 『농부와 산과의사』,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의 과학화』필독을 다시 한 번 권하면서 <녹색의학의 근원연대>에 조금 더 보탠다. (자세한 내용은 마이리뷰 2016년 9월 23일부터 11월 17일까지 내용에 들어 있다.)


한의사로서 예비부부, 또는 부부와 함께 임신 문제를 상담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의외로, 아니 예상대로 대부분 백색문명이 대중매체 등을 통해 던져주는 가짜 정보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 실제로는 물론 산부인과 양의가 내린 백색의학 진단에 따라 움직인다. 유산과 그 사후 처리 과정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백색의학이 지니는 한계에 봉착한 후에야 누군가의 권유에 의지해 한의원을 찾는다.


녹색의학에서 ‘냉증’은 매우 중대한 개념이다. 확실한 녹색진단과 녹색치료 방법이 있음은 물론이다. 백색의학은 이에 무지하므로 인정하지 못한다. 냉증이 난임과 유산의 원인인 경우가 많다. 녹색의학은 침, 쑥뜸, 본초(약용 식물의 뿌리, 줄기, 가지, 껍질, 잎, 열매, 그리고 전초全草) 배합 탕약 등으로 냉증을 치료한다. 백색의학이 냉증을 치료할 수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있다 한들 백색화학합성물질일 테니 그 자체가 또 하나의 문제다.


난임의 원인이 남성 쪽에 있을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자 개체수가 모자라거나, 활동력이 부족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녹색 방식이 존재한다. 여기까지 와서야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임신 문제가 의학 영역으로 넘어온 경우를 먼저 언급했지만, 사실 그보다 먼저 임신을 계획하고 구체적인 준비 과정을 거치는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대중매체나 책자에 실린 내용 가운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 백색문명의 논리를 전제한 것이어서 그렇다. 이런 오해와 무지가 임신·출산을 산업 의료에 예속시키는 빌미로 작동한다. 현재 상태로는 기대 난망이지만, 학교교육이나 사회교육을 통해 임신·출산은 질병이 아니므로 근원적으로, 기본적으로 병원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사실이 널리 공유되도록 해야 한다.


출산 문제는 위험 요인이 있으므로 무책임하게 말할 부분이 아님을 모르지 않는다. 응급상황이 터져 산업출산 시스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내 딸아이가 태어났기 때문에 나 자신부터 현실을 무시하고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현재의 산업출산은 산모에게도 아기에게도 재앙에 가깝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과도한 의료화를 혁파해서 의사 지휘 아닌 의사에게서 독립한 조산사 도움 중심의 자연출산을 복원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생을 농투성이 의자로 살면서 임신-출산-양육-교육-죽음-장례로 이어지는 삶의 과정에서 백색문명의 독을 빼고 ‘새로운’ 자연 상태를 창조하는 공동체 네트워킹에 매진할 계획이다. 인생 제2막을 열려는 마침 이 때, 고교 시절 프랑스어를 가르치셨던 은사께서 작지만 큰 땅을 내게 주셨다. 기적의 그 469제곱미터가 교두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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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의학의 큰 수레는 질병, 질병 앓는 사람, 질병을 치료하는 사람, 질병 앓는 사람을 돌보는 사람의 평등한 소통, 함께 깨달음에서 끝나지 않는다. 근원을 향해 나아간다. 녹색의학이 주의를 기울이는 근원적 지점은 바로 출산과 장례, 그리고 농업이다.


출산과 장례는 의료 영역이 아닌데 백색문명이 산업 의료에 복속시킴으로써 그 식민지가 되었다. 이를 본디 자리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녹색의학은 불가피하게 연루된다. 미셸 오당이 『농부와 산과의사』,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의 과학화』에서 상세히 말한 자연출산 문제는 매우 화급한 현안이다. 잘못된 출산은 비가역적 재앙을 초래한다. 이미 우리 아이들은 이 재앙에 처해진 상태에서 예측 불가능한 저주를 끌어안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백색문명에 중독된 대중의 둔감과 근시안 탓만은 아니다. 사회적 의제 설정을 주도하는 세력의 무관심, 아니 백안시가 더 큰 원인일 것이다.


장례 시스템도 심각하기는 매일반이다. 더군다나 이 문제는 아예 이슈조차 되지 못하는 사회분위기다. 장례 시스템을 넓은 의미에서 바라보고 공공의 측면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죽음 이후 처리 문제에서 지금처럼 의학·의료기관이 일방적으로 과도하게 개입하면 안 된다. 본인, 가족, 사회복지 관련인, (해당되는 경우) 종교인들이 숙의 당사자로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할 뿐만 아니라 무의미하기까지 한 연명 기술을 의학이라 기만하는 일을 무엇보다 먼저 막아야 한다. 우리의 경우, 식민지 유제인 허례허식이 과도한 비용을 일으키는 문제도 반드시 손봐야 한다. 인간의 죽음을 둘러싸고 빚어내는 인간의 사회 행위와 제도에 대해 녹색의학사상으로 본격적인 성찰을 시작해야 할 때다.


인간 생명과 먹을거리, 치료약(의 자원)으로써 불가분적 관련을 맺는 농업은 녹색 본질에서 녹색의학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현재 백색문명에 심각하게 침륜된 관행농법은 녹색 본질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녹색의학과 치유 관점을 공유할 수 있고, 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근원적인 지점은 사람 생명 앞에 선 의자와 땅·식물 생명 앞에 선 농자의 마음가짐이나 손길이 같다는 각성이다. 녹색의자도 녹색농자도 생명 상태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면 어떤 행위든 폭력이며 수탈이라고 여긴다. 연대는 여기부터다. 백색문명의 폭력과 수탈에 맞선 근원 연대의 샘 자리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분리와 이종의 관점에서 해결하려 거대문명을 일으킨 백색 인류의 길을 접을 때가 왔다. 백색 인류의 길은 눈부신 개명을 이루었으나, 그 개명이 결국 착취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의학·출산·장례·농업, 이들은 하나다醫産葬農是一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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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빨 기어 다니며 탈 없이 크던 아기가 어느 날 갑자기 열을 펄펄 끓이며 앓는다. 젊은 엄마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른다. 할머니가 웃으며 말해준다. “아유, 우리 강아지가 걸으려나보다!” 아기는 앓고 난 뒤 영락없이 걸음마를 시작한다. 온 가족이 함께 아기의 한 걸음 한 걸음에 환호하며 행복감에 싸인다.


아기의 열병과 걷기 사이에 어떤 의학적 인과가 존재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질병 자체를 환호의 대상으로 이해하는 일은 아무래도 이상하지만 질병을 삶의 큰 맥락에서 해석함으로써 지혜를 얻고 행복을 예감하는 일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질병을 두고 어떤 자세를 취하는가에 따라 인간은 사뭇 다른 결의 삶을 산다. 삶의 한가운데서 일어나는 모든 질병은 질병을 앓는 사람과 그를 치료하는 사람과 그를 돌보는 사람을 함께 깨달음으로 이끄는 큰 수레大乘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그 큰 수레를 보지 못한 채, 각기 괴로움과 시큰둥함과 마지못함으로 허정허정 걸어가는 것뿐이다.


바야흐로 한 생각 크게 돌이킬 때가 왔다. 질병 인식 패러다임 전체를 뒤집어엎어야 한다. 인류가 당면한 생명의 위기는 창궐하는 질병 때문이 아니라 백색의학의 잘못된 질병 인식, 거기 터하여 치료약이랍시고 뿌려대는 화학합성물질 때문이다. 이제 질병은 백색 독극물로 때려잡을 적이 아니다. 인류 구원의 서사narrative를 실을 큰 수레다. 이 큰 수레를 끌 주체는 백색 요법 포르노와 독극물을 거절한 질병인민이다. 만국의 질병인민이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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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선은 묵언-일극-개체-집중-중심시선으로는 할 수 없다. 서로 선은 대화-양극-전체-주의-비 중심시선으로만 할 수 있다. 다 말한다. 다 듣는다聞. 다 (냄새)맡는다聞.


최후의 답은 말이 아니다. 말 아닌 답에 이르려면 말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말은 비상하다.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비상한 말이 소통, 깨침, 치유, 그리고 마침내 장엄을 일으킨다. 장엄을 일으키는 비상한 말은 상스럽다. 상스러운 말 가운데 가장 수승한 것은 비명이며 욕설이며 신음이다. 그 다음이 시쳇말이다. 전문용어는 거개 상스럽지 못하니 비상하지 못하다.


서로 선의 대화는 전문용어로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백색의학은 영어(일부 라틴어), 한문 아니면 입도 벙긋 못한다. 녹색의학은 chill 아니고, 惡寒 아니고, 으슬으슬하다(오싹오싹하다)다. 한의학 진단을 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쓰는 말 가운데, ‘장마철 반지하방’이 있다. 생체진동수가 떨어져 대사 속도가 느려진 몸 상태를 가장 알기 쉽게 설명할 때 쓰는 비유다. 음陰 아니고, 냉한冷寒 아니고, 습濕 아니다. 심지어 차고 축축하다는 말보다도 오만 배 빨리 알아듣는다. 못 알아듣는 말로 떠는 위세나 독점하는 정볼랑은 쥐닭한테나 던져줄 일이다.


고백건대 나도 역시 한자 말, 뭐 어떨 땐 영어도 쓴다. 단, 알아듣게 풀고, 알아들을만할 때만 쓴다. 대부분의 용어는 환자들 스스로 쓰는 말을 그대로 받아서 쓴다. 환자가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을 때는 시쳇말, 일상어부터 대신 제시하면서 말문을 튼다. 아무튼 바꿀 수 있는 의학용어는 모조리 바꾸고, 바꾸기 어려운 것은 적절한 비유나 이미지를 동원해 소통을 도와야 한다.


말로 소통해서 서로 언어감각과 뉘앙스, 그 너머 언어-장場을 알아차리면 눈빛만 보고도 안다. 특히 숙의치유를 하다보면 놀라운 경험을 드물지 않게 한다. 의자와 환자 사이 구분이 무너지고 평등한 선문답 수준의 언어와 직관이 오간다. 서로 새로움을 생성해낸다. 환자가 의자를 넘어서는 순간도 허다하다. 서로 치유하고 서로 자라간다. 서로 깨달아가고 서로 깨쳐간다. 서로 돈오頓悟의 큰 기쁨에 이르고 서로 점오漸悟의 괴괴함을 지난다.


여기까지 가보지 않았으면 말을 마시라.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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