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하다는 것은 죽어 있다는 것이다

소미하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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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일우 기회가 생겨서 라스베이거스에 닷새 동안 머무르다 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랜드캐니언이 있어 거기도 하루 일정으로 다녀왔다. 주마간산에 지나지 않은, 차라리 관광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지 싶은 여행이었다. 구태여 이야기꺼리로 삼으려는 까닭은 라스베이거스와 그랜드캐니언, 그 사이에서 내가 겪은 경계경험 때문이다.



라스베이거스는 주지하다시피 미국 소비자본주의의 총아다. 한해에 7000만 명의 여행객이 다녀간다고 하니 그야말로 대박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어디에나 자리 잡고 있는 도박장은 전혀 놀라운 풍경이 아니다. 라스베이거스 스트립 핵심부에 30여개나 포진하고 있는 객실 3천 개 이상의 호텔과 각종 명품 매장은 이 작은(!) 도시 거리에 사람의 물결이 넘쳐나게 하는 요인이다. 시 인구가 고작 170만 정도인데 밤이 되면, 1000만 넘는 서울의 강남이나 명동 거리 이상으로 붐빈다. 여행객 때문임은 물론이다. 이들이 여기서 무엇을 할는지는 그리 궁금하지 않다. 내가 이 향락의 메카에서 정색하고 한 일은 딱 두 가지다.


일부러 틈을 내어 나는 매일 걸었다. 사뭇 다른 맥락이지만 리베카 솔닛(『걷기의 인문학』마지막 여정)을 떠올리며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을 따라 대륙의 땅을 밟고 다녔다. 아내가 조금 놀라서 따라 조금 놀랐거니와 나는 거기 머무르는 동안 매일 10km 이상을 걸었다.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은 어찌 보면 나 같은 보행자를 소외시키는 거리다. 자동차 통행을 원활하게 하고 호텔·명품매장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려 주요 네거리 모퉁이마다 건널목 대신 대형 건물과 연결된 육교를 설치해 놓았다. 쇼핑이나 도박 투어가 아닌 한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계단을 오르내리고 우회해야 하니 말이다. 처음에는 나도 살짝 짜증이 났다. 나 같은 보행자가 극소수일 거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면서 이 또한 라스베이거스 본질에 현실적으로 부합하는 설계임을 이내 수긍할 수 있었다.


광활한 네바다 사막 위에 우뚝 우뚝 세워진 화려한 초대형 호텔 건물 사이로 아스팔트가 흘러가면서 사람과 돈을 빨아들이고 욕망의 배설물을 토해낸다. 나는 변방의 나그네로 무심히 그 풍경 속을 가로질러 간다. 각양각색의 사람이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지나쳐간다. 4월 초인데도 사막의 태양은 뜨겁다. 온 몸이 붉게 그을린 백인 소녀가 맥주를 들이키며 휘적휘적 걸어간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동양풍 승려 차림의 중년 사내가 뭔가 적힌 종이쪽지를 나눠준다. 동남아 계통 여인들이 특유의 높은 톤으로 지절대며 깔깔대며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대며 지나간다. 자그만 체구의 흑인이 커다란 아이스박스에 생수병을 재워놓고 “원 달러! 원 달러!” 주문처럼 외치며 행인의 시선을 간절히 탐색한다. 형언하기 어려운 냄새를 끌어안은 홈리스 노인이 꽁초 담배를 깊게 빨고 있다. 같은 시각 고급 호텔 스위트룸에, 카지노에, 컨벤션홀에, 세포라 매장에, 고든 램지의 헬스 키친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이와는 또 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을 것이다.


온몸이 땀에 젖을 때까지 걷다가 숙소로 돌아온다. 숙소는 왼쪽으로 네바다 사막의 아스라한 지평선이 건너다보이고 오른쪽으로 트럼프 호텔을 위시하여 미라주, 윈, 베네시안 호텔이 시야를 채우는 호텔 26층에 있다. 이 호텔은 특이하게도 베란다가 없고 현관 반대 벽면 거의 전체가 통유리 두 장으로 된 대형 창이다. 거기 정좌하고 앉으면 실로 기막힌 조망 위치가 확보된다. 구태여 무엇을 깨달으려 하지 않는다. 습관적으로 마음 중심을 향하는 상념만 슬며시 흐트러뜨린다. 순식간에 선의 세계로 들어가 하염없어진다. 걷기도 걷기지만, 걷기를 갈무리하는 이 창가의 기억을 오래토록 잊지 못할 것이다.



라스베이거스의 호텔 창가에 정좌하고 앉는 마음은 문명의 가장자리로 나아가는 마음이다. 문명의 가장자리로 나아가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향한 곳은 그랜드캐니언이었다. 까닭은 알 수 없으되 만리장성은 그다지 보고 싶지 않지만 마추픽추는 보고 싶은 것과 비슷하게 히말라야는 그다지 보고 싶지 않지만 그랜드캐니언은 꼭 보고 싶었다. 현실적 한계 때문에 경비행기와 헬리콥터를 타고 몇 시간가량 둘러보는 것과 뷰포인트 한 군데 들리는 것에서 그치는 일정이었지만 자연의 경이로 말미암아 침묵하기에는 충분한 경험이었다. 네바다 사막과는 또 다른 광활함에 휩싸인 콜로라도 고원, 그것을 아득히 침식해 들어간 천태만상의 협곡은 깊은 한숨만을 이따금씩 허락할 따름이었다. 저 깊은 계곡까지 내려가 콜로라도 강에서 바라본다면 과연 어떤 마음이 들까, 잠시 상상했지만 부질없다 싶어 그냥 지금 내 자리로 쏟아져 들어오는 느낌에 다시 주의를 돌렸다. 언제 다시 올 줄 모르는 그 시간 속에서도 혼곤히 잠에 젖어드는 사람들이 얼핏 눈에 들어왔다. 진실 하나가 섬광처럼 지나간다.


돌아와 창가에 정좌하고 앉는다. 저 압도적인 자연은 내게 무엇인가. 대자연 앞에서 티끌 같은 존재 운운하는 이야기가 유구한 전언인 것이 사실이다. 오늘의 삶을 도도하게 살아내야 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그럼에도 물색없는 진리에 지나지 않는다. 장엄한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을 살아가는 숭고야말로 인간다운 길이라 하는 이야기 또한 유구한 전언이다. 이 순간 눈앞에서 죽어가는 새끼를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어미에게 그것은 그럼에도 한가로운 교설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의 깜냥에서 출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사람의 깜냥은 소소하다. 소소한 데 소소하게 배는 삶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이치를 깨칠 수 있다면 그랜드캐니언은 다시없는 도량임에 틀림없다.



라스베이거스도 그랜드캐니언도 내 삶의 터전일 수 없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고든 램지에서 삼시세끼 먹으며 얼마를 살 수 있겠나. 콜로라도 강 푸른 물가에서 다홍색 협곡을 바라보며 얼마를 살 수 있겠나. 화려한 삶을 꿈꾸는가. 큰 부를 꿈꾸는가. 높은 명예를 꿈꾸는가. 신령한 경지를 꿈꾸는가. 심오한 깨달음을 꿈꾸는가. 황홀한 법열을 꿈꾸는가. 그것들은 죄다 찰나적 섬광에 지나지 않는다. 진여의 삶은 잔잔한 빛으로 발맘발맘 걸어가는 것이다. 화려한 호텔 스위트룸이 아니라 소박한 아파트 전셋집이 지상의 거처다. 천길 협곡 아래 흐르는 에메랄드빛 강이 아니라 동네 뒷산 작은 계곡에 흐르는 개울이 지상의 위로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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落花藝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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落花一葉一片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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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하루를 열어온 삶이 벌써 4년입니다. 진실의 전모는 여전히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가족은 여전히 깊은 고통 한가운데 신음하고 있습니다. 범죄자들은 여전히 희희낙락 살면서 종북타령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한, 대한민국은 그 어떤 빛의 성취에 아랑곳없이 어둠의 공동체일 따름입니다. 진실 규명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참여해야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아닐까요. 트위터에 올라온 예은 아빠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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