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해법은 무엇인가?
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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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해리뷰를 쓰기 전, 『녹색의학 이야기』 끄트머리 글 세 개에서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이야기를 이미 했다. 주로 인용된 본문도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거의 마지막 부분인 <선물 속에서 일하기> 후반이다. 녹색의학 이야기 68, 69, 70은 녹색의학의 경제학 버전 또는『신성한 경제학의 시대』의 의학 버전일 것이다. 그 글을 차례로 옮겨온다. 이번 글은 『녹색의학 이야기』69. 녹색의학은 사랑의학이다(2018. 6. 5.) 전문이다.


찰스 아이젠스타인 이야기를 다시 한다.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이 것이다.


사랑은 익명으로 할 수 없다.”(446쪽)


이 말은 내 폐부 깊숙한 곳을 뒤흔든다. 그 동안, 차마 가 닿을 수 없었던 진실이다. 60년 남짓한 생애 기조가 익명성이었기 때문이다. 내 익명의 삶은 시원적 방치에서 시작되어 사회적 강권을 거쳐 마침내 자발적 중독으로까지 나아갔다.


있으나 불리지 않는 이름으로 살아온 시간의 누적은 나를 익명성 밑바닥에 납작하니 개켜 넣었다. 부피를 상실한 내 이름은 어디에 있어도 잘 드러나지 않았다. 무엇을 해도 내 이름은 거의 질문되지 않았다. 스스로 이름을 크게 외칠 때는 듣는 이가 없었다. 많은 사람 속에서는 이름 부를 목소리가 사라졌다. 익명성은 커다란 흐름이 되었다. 흐름에 맡기면 언제나 익명이 보장되는 가장자리로 나아갔다. 어쩌다 중심으로 흘러들면 익명은 돌연 요구가 된다. 그 요구에 속절없어진 나는 이름을 가리고 선사膳賜에 배어든다. 선사에 배어든 나는 무색투명해진다. 무색투명한 자가 건넨 선물이 연대의 고리가 될 리 없다. 연대 바깥에 선 자는 공동체 일원이 아니다. 나는 초월자연하는 국외자였다. 거대신의 헛된 그림자를 여전히 밟고 있었다. 나는 오만을 흉내 냈다. 나는 알아차리지 못한 채 인색에 빠져 있었다. 인색은 자기 착취다. 자기 착취는 이내 그 경계를 넘어간다. 경계 너머 남에게도 내게도 이름 자체가 선물이며 사랑이라는 진실을 느지막이 깨닫는다. 그렇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름을 건다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은 2018년 1월 5일에 쓴<익명의 시대를 건너다>를 조금 고쳐 가져왔음.)


작고 적은 존재의 이름을 묻지 않는 것도, 이름을 짐짓 가린 채 초월자적으로 시혜하는 것도 모두 백색문명의 분리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폐해며 허상이다. 나는 피해자임과 동시에 부역자였다. 이제 여기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내 작은 이름을 당당히 넉넉히 걸고 분리의 벽을 넘어가는 것이다. 선물로서 이름膳名을 번져가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 사랑이 백색문명을 치유한다. 백색문명을 치유하는 것이 녹색의학이다. 녹색의학은 사랑의학이다. 사랑의학은 이 시대 천명天命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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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해법은 무엇인가?
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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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해리뷰를 쓰기 전, 『녹색의학 이야기』 끄트머리 글 세 개에서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이야기를 이미 했다. 주로 인용된 본문도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거의 마지막 부분인 <선물 속에서 일하기> 후반이다. 녹색의학 이야기 68, 69, 70은 녹색의학의 경제학 버전 또는『신성한 경제학의 시대』의 의학 버전일 것이다. 그 글을 차례로 옮겨온다. 이번 글은 『녹색의학 이야기』68. 녹색의학, 신성한 경제‘의’학의 시대를 열다(2017.12.1.) 전문이다.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라는 책에서 통합사상가 찰스 아이젠스타인은 역이자 화폐, 경제적 지대의 제거·공유자원 고갈에 대한 배상, 사회·환경 비용의 내부화, 경제·통화의 지역화, 사회배당금, 경제 역성장, 선물문화와 P2P 경제를 골간으로 하는 신성한 경제가 분리문명, 그러니까 백색문명을 극복하고 재통합 세계를 여는 중요한 요소라 주장한다. 얼핏 들으면 허황한 낙관론 같지만 매우 근원적인 문명비판이면서도 당장 개인적 실천까지 가능한 톡톡한 담론이다.


저자의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 나는 의학 이야기를 좀 더 해보려 한다. 이미 <녹색의학의 경제적 기치>에서 개론 수준의 이야기는 했다. 분리 이데올로기에 충실하게 분리의학은 몸의 병과 마음의 병, 병과 병 있는 사람, 병 있는 사람과 치료자를 포함한 병 없는 사람, 병 있는 사람과 사회정치, 병과 자연, 병 있는 사람과 자연을 철저히 갈라놓았다. 진단 기준과 치료(?) 약물의 보편성을 통해 병 있는 사람의 고유함과 관계적 존재성을 제거했다. 이렇게 병과 병 있는 사람을 클론으로 찍어낸 다음, 값을 매김으로써 불멸의 화폐가 다스리는 영원한 수탈제국에 의료 봉토를 헌정했다.


찰스 아이젠스타인이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의 내용 전반을 관류하며 이야기하는 것이 선물 개념이다. 선물 경제 복원 문제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제21장 「선물 속에서 일하기」가운데 <신성한 직업>이라는 부분이 나온다.


선물 모델은 무형의 가치를 전달하려는 직업에 특히 자연스럽게 적용된다. 음악인, 화가, 성판매자(매춘부로 번역된 것을 인용자가 바꿈), 치유자, 카운슬러, 교사. 이 모두가 값을 매김으로써 가치 저하된 선물을 제공하는 일들이다. 우리가 제공하는 것이 신성하다면, 그것을 명예롭게 제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선물로 주는 것뿐이다. 아무리 높은 가격도 무한한 것의 신성함을 반영할 수는 없다. 내가 구체적인 강연료를 요구한다면, 내 선물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셈이다. 만약 당신이 위의 직업들 중 하나에 종사한다면 선물 모델을 한 번 실험해보아도 좋다.”(445쪽)


한의사지만 하고 있는 일의 내용으로 따지면 나는 치유자, 카운슬러, 교사다. 나아가 인터뷰의 전설 오리아나 팔라치가 한 ‘인터뷰는 사랑 이야기다. 섹스다. 너를 홀딱 벗기고 나를 홀랑 들이붓는 싸움이다.’라는 말에 인터뷰 대신 숙의치유를 집어넣어 바꾸고, 숙의 또한 예술인 측면을 감안하면, 나는 위 모든 직업에 해당한다. 나는 그 동안 숙의치유에서 선물 모델을 꾸준히 실험해왔다. 물론 성공한 경우보다 실패한 경우가 더 많았다고, 여태까지는(!), 생각하고 있다. 실패(했다고 생각)한 결과는 “값을 매김으로써 가치 저하된 선물을 제공하는” 관습으로 정착되었다.


10년 이전이나 지금이나 한의사가 숙의로 마음병을 치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숙의 1회에 90-120분, 심지어는 식사까지 해가며 5-6시간 넘게 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 이른바 ‘상담료’ 문제가 초기부터 지금까지 가장 큰 고민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 있다. 지난주에도 상담료에 부담을 느낀 어떤 사람이 예약을 취소했다. 좀 더 세밀하게 선물 모델을 연구해서 다시 시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아무 준비 없이 무조건 선물로 제시했다. 그러니까 숙의를 진행하고 나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만큼 사례하고 가도록 했다. 그냥 가는 사람, 5천원 내는 사람은 그렇다 치고 ‘그까짓 대화하고 나서 무슨 돈이냐?’며 도리어 화를 내는 사람까지 있었다. 감사를 느끼며 성의껏 내는 경우도 대개 5만원을 넘지 않았다. 아무래도 무모했다.


그 다음부터는 설명을 붙였다. 상담치료의 본질과 가치, 상담치료의 일반적인 풍경, 역술인의 예, 의료인 아닌 상담사의 예, 정신과 양의사의 예, 외국의 예, 상담 시간의 비교 들을 간략하게 했다. 공감하고 수긍하면서 내고 가는 돈은 대략 5-10만 원 선이었다. 희귀한 예외가 없지는 않았다. 30만 원 선뜻 낸 사람이 더러 있었다. 심지어 100만 원을 내며 ‘이런 상담은 처음 받아본다.’ 한 경우도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이 상담해보지도 않고 먼저 값을 물어보는데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전화로 예약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상담치료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지 못한 채, 많은 사람들이 비용 문제 때문에 포기했다. 반대로 돈깨나 있는 강남 사람들 가운데는 한 번에 몇 백만 원 씩 카드로 긁고 가는 패키지 상품을 원했다. 그 상황을 타개하려고 홈페이지에 상담료 문제로 공개 글을 써 올리기까지 했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적절한 금액을 원칙으로 분명히 제시하고 경제적인 상황을 포함한 조정 요건을 설명해주는 정도로 타협을 보았다. 지금도 이 문제는 표류 중이다.


찰스 아이젠스타인도 현실의 고충을 잘 알고 있다.


남들도 다 같이 실천한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는 한 스스로를 보호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타당한 생각이며 합리적으로 반박할 수도 없다. 다만·······당신의 마음이 이성 너머 무언가에 이끌리는 것을 알아차리기만 바랄 뿐이다. 이성, 현실성, 안전함의 추구가 이끄는 대로 살아온 지금의 결과를 보라. 이제는 다른 무언가에 귀 기울일 때인지도 모른다.”(401-402쪽)


고백건대 선물 모델 실패 의식에는 저평가된 내 선물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과 더불어 기천 만 원대에 이르는 치료비를 받지 못한 기억이 작용하고 있다. 기존의 분리 모델에서 자유롭지 않은 자아가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서성거리는 거다. 문제는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나는 내 선물을 눈물의 포옹으로, 자신의 삶을 전복함으로 받아준 사람들에 새삼 정색하고 감사한다. 나는 내가 받은 고귀한 선물을 감동과 함께 기억한다. 무엇보다 내가 참으로 막다른 길로 몰렸다는 섬뜩한 느낌에 시달릴 때, 기적으로 찾아온 선물469 앞에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선다. 이성 너머로 나를 이끄는, 그 다른 무언가에 귀 기울인다. 신성한 경제‘의’학의 시대를 열어가는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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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답은 뒤늦게 돌아오기에, 선물 기반의 삶을 시작하면 한동안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선물의 삶을 향한 한 걸음 한 걸음은 두렵지만, 과감하게 나아가지 않으면 아무런 보답도 기대할 수 없다.(438쪽)


인간이 자아의 경계 안팎을 분리한 이후, 특별히 폭발적으로 증폭된 정신 병리적 상황을 간결히 정리한다.


[통합 정서의 붕괴와 거기에 반응한 격정emotionalism] 존재 상호간 연속성이 깨어지면서 생긴 공포·불안과 그것을 병적으로 방어하려고 작동하는 과잉정서, 예컨대 우울증 같은 현상을 말한다. 공포·불안과 우울증은 근원적으로 신뢰를 갉아먹는다.


[직관지의 상실과 그것을 대체할 추론지의 극단적 추구] 연속된 존재의 직관적 통합지능이 사라지고 분석·실험을 통해 추론적 지식에 천착하는 현상을 말한다. 분석지식이 쌓일수록 무지는 깊어진다. 무지는 공포·불안을 부추긴다. 공포·불안은 신뢰를 갉아먹는다.


[고립적 생존 욕구와 거기에 부응한 무제한의 소유의지] 존재 상호간 단절로 말미암아 생존은 부단한 대결로 고착되고 배타적 비축이 삶의 목표로 되게 하는 현상을 말한다. 제약 없는 대결과 비축의지는 공포·불안을 영속화한다. 공포·불안은 신뢰를 갉아먹는다.


종자신뢰를 잃으면 자기 삶을 더 큰 삶에 내맡기고 기다릴 수 없다. 더 큰 삶에 내맡기고 기다리지 못하는 삶은 하수, 곧 상거래의 삶이다. 고수, 곧 선물거래자가 되려면 종자신뢰를 복원해야 한다. 종자신뢰를 복원하려면 공포·불안을 없애야 한다. 공포·불안을 없애려면 수행해야 한다. 수행 가운데 가장 수승한 수행은 공포·불안을 그대로 품어 안은 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딱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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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접근해보자. 내가 한동안 이 문제와 씨름하다 깨달은 바가 있다. 내가 한 일의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행위는 잘못이라고 느끼지만, 내가 한 일에 감사하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받는 행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낀다는 사실이다.(435쪽)


‘선물의 삶’에 너무 집착하거나 도덕적 기준으로 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삶의 목적은 ‘선(한 사람)이 되는be good’ 것이 아니라 ‘선(한 상황)을 실감하는feel good’ 것이다. 두툼한 봉투를 받아들고 기뻐하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지 마라. 본디 인간은 큰 선물을 받으면 기뻐하기 마련이다. 인색하고 억울해하고 욕심 부리는 자신의 모습도 그냥 받아들여라. 선물의 삶으로 되돌아가려면, 그 동안 떠나온 만큼 먼 길을 가야 한다.(437쪽)


제법 나이 들어 만나서 함께 늙어가는 벗 몇은 나를 보고 청초함이 배어나오는 사람이라 말한다. 오랜 제자들 몇은 나를 보고 크레디트카드와 어울리지 않을 분이라 말한다. 주위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공통된 태도는 돈 관련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다. 돈이 아주 많으리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 이상으로 돈 때문에 고생리라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근거가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주위사람들의 이런 태도는 어떤 계기에 아주 난처한 방식으로 나타나 내게 인지된다. 가령 내가 상담치유 하는 사람임을 안 상태에서 몇, 몇 십 시간 상담을 했음에도 상응하는 답례를 해야 한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다. 내 상담을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귀한 것’이라 여긴 평가가 왜 돈으로나마 정중히 사례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아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런 내 무지는 대응에도 무지할 수밖에 없게 한다. 답례를 대놓고 요구하기도 뭣하고 마냥 이런 상태로 방치하기도 뭣하다. 현행 화폐시스템에 깊이 연루된 나는 특히 선물을 제대로 받는 데 능숙하지 못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상담에 답례를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 또한 선물을 제대로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이어서 둘 사이 일이 이렇게 되었다.


이자를 전제한 화폐로 사고파는 일의 폐단을 혐오·폐기하는 것으로는 화폐시스템을 극복할 수 없다. 감사는 마음으로 주고받으면 되지, 내 존재 자체가 답례지, 하는 순간 순진함의 순교자가 되고 만다. 선물의 물질적 본질을 돈으로 옹골차게 실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돈을 넘어선 가치를 실감할 수 있다. 돈을 멀리하는 일과 영성에 이르는 일은 의외로 무관하다. 많은 종교와 영성가가 자기기만으로 주저앉는 자리가 여기다.


세포 하나하나 실감함으로 선물을 받아라. 그리하면 손끝마다 돈을 실감하면서 극진히 사례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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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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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훌륭한 선물을 베풀고도 아무런 감사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면 이는 선물의 대상을 잘못 골랐다는 증거다. 선물의 정신은 필요에 화답하기 때문이다. 감사를 이끌어내는 것은 선물의 목적이 아니라, 선물이 제대로 이루어져 필요를 충족시켰다는 증거다. 진정으로 베푸는 사람은 아무 보답도 심지어 감사의 마음조차 바라지 않는다는 일부 영적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435쪽)


선물은 주고받는 사람의 인격과 분리되지 않는다. 인격적 상호작용의 물질적 본질을 담보함으로써 물질적 근거에서 비롯하는 공동체를 창조한다. 공동체 창조로 번져가는 무한한 새로움이 선물의 신성성을 더욱 농밀하게 한다. 농밀한 신성성의 극한은 비-물질성의 출구임과 동시에 다시 존재의 물질성을 구현하는 입구가 된다.


선물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어긋나지 않고 서로 “화답”함으로써 “충족”되려면 옹골찬 선의와 극진한 물질의 통합은 필수다. 현행 화폐시스템에서는 부자도 빈자도 선물 주고받는 데 서투르다. 부자는 선물 주는 데 서투르다. 빈자 선물 받는 데 서투르다. 진정한 부를 더불어 향수하기 위한 인류 최후·최고의 공부를 시작할 때다.


선물 주는 사람은 받는 사람의 필요를 정확히 헤아려 충족시키는 깍듯한 친절을 갖추어야 한다. 선물 받는 사람은 주는 사람의 향 맑은 연대를 귀하게 여겨 고마움의 물질적 본질을 결곡하게 드러내 답례해야 한다. 그리함으로써 일궈내는 공동체는 거룩함과 질탕함의 황홀한 공존·융합을 즐길 수 있다. 그래, 오달지게 주고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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