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복직이 합의된 후 김득중 지부장이 축하 인사를 받고 있다.
생때같은 목숨 서른을 잃고서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119명이 드디어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한 사람이 복직될 때까지,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자행한 폭력과 협잡을 단죄할 때까지 끝난 일이 아니지만 일단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축하할 만하다.

* 2014년 대한문 분향소 옆 길바닥에서 노동자 한 분에게 시침하고 있다.
2011년 봄 제주 강정마을로 날아가 투쟁하던 주민과 활동가들에게 침 치료를 하고 돌아온 직후, 정혜신 선생이 쌍차 해고노동자와 가족을 위해 평택시청 공간 하나 얻어 집단으로 심리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했다. 트위터 쪽지로 정혜신 선생에게 연락했더니 침 챙겨들고 일단 내려와 보라는 답이 왔다. 그 날부터 심리치료 공간 아래 한 귀퉁이에 ‘자리 펴고’ 침 치료를 시작했다. 집단 심리치료에 적응이 어려웠거나 참여하지 않았던 몇 사람은 개인적으로 상담을 하기도 했다. 가족 운동회가 열리는 운동장 시설 한 귀퉁이에서, 대한문 분향소에 가서는 길바닥에서, 김진숙 지도위원 크레인을 향해 노동자들이 천리 행군할 때는 식사하거나 쉬는 자리에서, <와락>이 열렸을 때는 치과 치료 공간 한 귀퉁이에서 침 치료를 했다. 쌍차 노조 이창근 기획실장 부탁으로 수배 중이던 송경동 시인을 찾아가 침 치료를 하기도 했다. <와락>이 제법 안정을 찾아갈 무렵 문턱 없는 한의사회 후배에게 치료를 맡기고 이따금씩 가족들을 돌보는 정도로만 인연을 이어갔다. 시간이 흘러도 복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노동자들의 투쟁은 고공농성, 단식, 행진, 인도 원정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나는 그 과정에 서명, 행진 참여, 지지 방문, 한방차·한약 지원으로 함께했다. 대한문에 김주중 조합원의 분향소가 마련되면서는 다시 대한문이 순례지가 되었다. 당분간은 분향소가 유지되겠지만 살아생전에 대한문 분향소로 다시 향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빈다.

* <버스라 쓰고 부스라 읽는다> 방송하고 있다. 바로 앞 프로를 김선우 시인이 진행했다.
쌍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 옆에 멀찌막이 나지막이 머물렀던 7년의 세월 동안 나는 많이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하고 고마워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 옆을 지키던 수많은 사람들과 아름답게 만나 소중한 인연 되었다. 이창근 실장이 기획한 인터넷 방송 <버스라 쓰고 부스라 읽는다> 덕분에 만난 김선우 시인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생의 남은 날들 동안 이들 가운데 대개는 서로 아는 듯 모르는 듯 살아가겠지만,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김정우, 김득중, 김정욱, 이창근, 고동민, 복기성·······그리고 이자영, 권지영, 조은영, 이정아······그리고 주강이, 가온이·······그리고 평택시청과 <와락>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던 사람들, 대한문으로 밥 해다 날랐던 사람들·······

* <와락>에서 만났던 가족들. 이자영(이창근 실장 부인)씨와 주강이 모습이 보인다.
이제 기억은 기억대로, 그리움은 그리움대로,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둔다. 앞으로 그들이 의로운 만큼 행복하고, 행복한 만큼 의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소식을 들으며 나도 행복하고 의로워지리라 믿는다. 삼가 한 시대를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