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 나이듦에 관한 일곱 가지 프리즘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정하린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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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소식을 하나 드리자면, 고통은 죽음 아닌 생명을 가져다주는 무언가로도 변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고통 받아온 사람들·······은 서서히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아갑니다. 그런 상실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것 때문에 더 성숙하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 타인의 슬픔과 기쁨에 더 마음을 쓸 수 있는 역량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마음이 부서진 사람들입니다. 한데 그들의 마음은 부서져 조각난 것이 아니라, 부서져 열린 것입니다.(77쪽)


몸과 마음을 모두 치료하는, “희귀해서는 안 되는데 희귀한” 임상의라 나는 고통 문제에 남다른 감지와 공현 능력을 지녀야 한다. 올바른 인식과 해석, 그리고 치료 능력도 갖추어야 함은 물론이다. 내 삶의 조건과 인연에 맞는 정도까지는 도달해 있다고 믿는다. 최근 들어 홀연히 찾아온, 모르긴 해도 마지막 단계라 여겨지는, 문제의식이 바로 고통, 정확히는 痛(이하 아픔이라 한다.)의 존재론이다.


스스로 보편의학이라 자부하지만 제국의학일 뿐인 주류 서구의학은 아픔을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고 본다. 부가된 나쁜 무엇으로 여겨 제거 대상으로 삼는다. 무통문명의 총아인 진통의학의 결론이다. 나는 아픔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인 한 아프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아프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당연히 아픔은 제거 대상이 아니다. 당연히 아픔을 제거하는 의학 또한 의학이 아니다.


아픔은 무상無常의 진리가 생물학적 인간 생명을 흐를 때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영원불변하지도 완벽하지도 않은 생명은 간단없이 변화한다. 변화의 중요한 한 양태가 질병과 치료다. 병이 들어왔을 때, 그 사실과 스스로의 대응을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게 하는 과정에서 생명이 발하는 신호가 바로 아픔이다. 신호는 문제의 현실과 당위를 모두 담고 있는 정보로서 생명의 본질적 요소다.


아픔은 무아無我의 진리가 사회학적 인간 생명에 펼쳐질 때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고립된 자기완결체가 아닌 생명은 간단없는 상호작용이다. 상호작용의 중요한 한 양태가 상실과 애도다. 상실했을 때, 그 사실과 스스로의 대응을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게 하는 과정에서 생명이 발하는 신호가 바로 아픔이다. 신호는 문제의 현실과 당위를 모두 담고 있는 정보로서 생명의 본질적 요소다.


아픔으로 인간 생명은 치료와 애도를 요체로 지니게 된다. 아픔으로 인간 생명은 “부서져 열린” 존재가 된다. 아픔은 마음에 가장 가까운 몸 느낌이자, 몸에 가장 가까운 마음 작용이다. 아픔은 파동 생명과 입자 생명의 마주 가장자리에서 격동하는 경계 생명이다. 불편하기 때문에 필수불가결한 빈소嚬笑 생명이다. 이 빈소 생명이 비대칭의 대칭, 저 세계 진실을 가능하게 하는 불멸의 존재다.


나는 가히 아픔의 사람이다. 마취 없이 신체의 일부를 절단하는 수술을 겪었다. 입김만 닿아도 아픈 대상포진을 겪었다. 일 년 동안 스무 가지가량의 아픔이 갈마드는 frozen shoulder를 겪었다. 생애 초기에 생으로 엄마를 잃었다. 삶의 기조로 자리 잡은 견고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법적·경제적·직업적 인간으로 살해에 준하는 일을 당했다. 이런 경험들은 나를 한동안 오연한 ‘아라한’으로 살게 만들었다. 후유증이 있다. 결정적 순간 남의 아픔 앞에서 싸늘해질 때, 즉각 돌이키라고 아픔의 존재론이 찾아온 듯하다. 넙죽 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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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있는 원대한 일을 찾으세요. 사랑, 평화, 그리고 정의를 확산시키는 일 같은 것 말입니다.·······

  고결한 가치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기에 존경받는 인물을 생각해보세요.·······영웅들은 불가능한 일들을 떠맡았고,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그 일에 계속 매달렸습니다. 효율성을 뛰어넘는 기준에 맞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 기준의 이름은 ‘충실함’입니다.(75쪽)


‘충실함’이라고 번역한 것은 faithfulness다. 이 번역을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문맥을 고려하면 뭔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faith란 단순한 믿음·신뢰가 아니라, 신/하늘의 길을 따라 살아가는 자세를 함축한다. “가치 있는 원대한”, “사랑, 평화, 그리고 정의를 확산시키는”, “고결한 가치에 헌신하는”이라고 표현한 파커 J. 파머의 뜻을 살려 번역하자면 ‘숭고함’ 정도가 더 어울려 보인다. 숭고하다는 것은 장엄한 대상을 우러르며 그 속성을 본받아 따르고자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숭고함에 효율과 성과가 왜 없으랴만 효율과 성과로써 숭고함을 말하면 안 된다. 본디 숭고함은 “불가능한 일들을 떠맡”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그 일에 계속 매달”리는 그 자체가 숭고함이기 때문이다. 숭고함은 인간에게 깃든 지극한 소소함과 지극한 다대함을 일깨워가는 과정이자 그 과정에서 들려오는 노래다. 이 노래를 숭고미라 한다.


숭고미는 인간을 제외한 모든 존재에게 자연Sein으로 갖추어져 있다. 인간만은 당위Sollen로 갖추어 나아가야 한다. 분리 역사가 낳은 과잉 사회화 때문이다. 사회악으로 발현되는 공포(불안)와 탐욕, 그리고 어리석음이 숭고함의 감각을 부숴버렸다. 숭고함을 되찾으려면 숭고함을 문제 삼아야 한다. 문제 삼으려면 현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현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치우침이 드러난다. 치우침을 드러내면 비대칭의 대칭인 진실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진실 전체가 다름 아닌 장엄이다. 장엄을 목도하고서도 숭고함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더는 인간이 아니다.


더는 인간이 아닌 자들의 과두체제가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트럼프, 푸틴, 시진핑, 아베 따위의 야차들이 인류 전체를 음모와 수탈의 무저갱으로 끌고 내려가는 중이다. 변방과 아亞중심 사이를 요동하는 대한민국 상황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촛불정부라고 하지만 매판의 철벽을 뚫기에 턱없이 부족한 힘 때문에 협공 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숭고함은 물색없는 순수거나 자기 파괴적 희생이기 십상이다. 어찌할까.


길은 하나다. 숭고함으로 나아가는 적고 작은 사람들이 나지막이 합창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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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안에 있는 생경한 모든 것을 반갑게 맞아들이면서, 바깥세계에 있는 생경한 이들도 모두 똑같이 맞아들이세요.(74쪽)


불령선인不逞鮮人이란 말이 있다. 오늘의 우리에겐 “생경한” 어휘다. 일제가 노예처럼 굴지 않는 조선 사람을 이리 불렀다.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인이란 뜻이다. 항일투쟁을 했던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식민치하의 모든 조선 사람이 잠재적 불령선인이었다. 난민難民이었다.


국권 상실기가 끝나고도 난민 상태는 계속된다. 미군정을 거쳐 친일파가 다시 국가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명목만 빼놓고 대한민국은 시종일관 친일파의 손아귀에 있는 신식민지이므로 대한민국 국민은 여전히 난민이다. 난민이 난민을 난민亂民으로 몰아 학대하는 국가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대부분 자각하지 못하니 난감할 따름이다.


<시사인>583호에 걸출한 항일투사 차리석 선생의 아들 차영조 이야기가 실렸다. 신식민지 치하에서 매판 권력의 눈길을 피해 성을 신 씨로 바꾸고 살아왔다 한다. 참으로 참담한 자발적 ‘창씨개명’이 아닐 수 없다. 매판 권력에 붙은 소수가 있지만 많은 항일투사의 후손이 사실상 차영조처럼 살았고, 살고 있고, 살 것이다. 일제와 그 부역집단이 이 땅에 뿌린 죄상의 낭자함은 미상불 천년을 넘어서도 치워지지 않으리라. 어찌할까.



난민으로서 자신의 내부를 정직하게 정색하고 들여다보아야 한다. 제주도에 온 예멘 난민과 세월호 가족, 아니 ‘개돼지’ 취급 받는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의 본질은 같다. 언제까지 불령선인인 자신을 “생경한” 눈길로 볼 텐가. 언제까지 “바깥세계에 있는 생경한 이들”을 자신과 다르다고 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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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제에 봉착했을 때 무모해지라·······모르는 것을 향해 곧장 나아가세요. 그리고 실패하고 또 실패하는 일의·······위험을 무릅쓰세요.(72쪽)


사십 년 동안 나는 가르치기와 글쓰기를 하며 살아왔다. 한의사의 삶 또한 이 기조를 떠나지 않았으니 아마도 천명인가 한다. 말이든 글이든 스스로에게 책임을 느끼며 다가서는 한 계획·준비는 불가피하다. 듣고 읽는 이에게 지켜야 할 예의이기도 하다.


삼십대 중반부터 새로이 쓰기 시작한 계획·준비 방법은 큰 얼개만 짠 뒤 발효를 기다리며 뒹굴뒹굴한 다음 일사천리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오십대 이후부터는 즉흥성을 토대로 말하고 써 나아가면서 틀을 지었다 헐었다 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자기신뢰다. 사전의 계획·준비는 완벽을 기한다는 명목 아래 예측 가능성 속에 자신을 가둠으로써 끊임없이 자기를 불신하게 만든다. 자기를 신뢰해야 예측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창발력을 드러낼 수 있다. 창발 없는 가르치기와 글쓰기는 죄다.


다른 하나는 실패에 대한 관용이다. 이는 듣고 읽는 이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겠다는 배짱이 아니다. 실패의 가능성에 마음을 연다는 것은 완벽의 환상을 버린다는 것이다. 완벽의 환상이 사라진 자기용서의 시공에서 실패가 성찰과 성장을 이끈다.


무모”하다는 것은 이리저리 재지 않는다는 뜻이다. “마음의 문제에 봉착했을 때” 이리저리 재는 것은 문제를 일으킨 기존의 지식을 그러모아 문제의 몸집을 불릴 뿐이다. 문제가 심각할수록 뚫고나갈 몸은 날렵해야 한다. 날렵해지려면 기존 지식을 무모하게 버려야 한다.


버리고 “모르는 것을 향해 곧장 나아가”야 한다. 파커 J. 파머는 곧장 나아간다는 것을 walk straight로 표현했다. straight는 여기서 방향이라기보다 “즉각”이라는 시간적 명민함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날렵해도 뭉그적거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무모하게 모르는 것을 향해 곧장 나아가므로 실패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난다. 무모하게 모르는 것을 향해 곧장 나아가므로 언제 어디서든 일어나는 실패이므로 그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 가능하다. 이리저리 앞뒤 재고 나아감에도 실패한다면 그걸 무슨 수로 무릅쓰나.


무릅씀은 축복이다. 축복은 깨달음이다. 깨달음은 승승장구하는 자의 안와전두엽에서 일어나지 않는 사건이다. 안와전두엽 망가진 갑들이 벌이고 있는 삽질을 보라. 삽질하는 갑들은 개인 집합이 아니다. 지배집단 카르텔이다. 무모한 실패자들이 패야 무너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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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아는 남자들 가운데, 인생에서 중요한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할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목적 하나에 사로잡힌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일과 관련된 역할이 줄어들거나 사라지면 정체성을 (그리고 때로는 진실성도) 잃어버리는 남자를 너무 많이 봤거든요.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요. 남자들이 자기를 지나치게 대단하게 생각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가 아닌, 자신이 누군가에 터한 자아감을 계발하는 데 필요한 내면 작업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이 생애의 좌표를 잃어버리는 것은 자만심보다는 내적 공허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어떤 남자들은 엉뚱한 데서 사랑을 찾습니다. 착취적인 섹스나 약물 남용도 있지만, 더 자주 나타나는 것은 권력과 부와 명성에 대한 탐욕이죠.


  내가 아는 남자들 사이에 만연한 가장 일반적인 정신적 질환은 자기 삶에서 다른 모든 것이 사라지는 에고 팽창이 아니라, 이른바 ‘멜랑콜리’입니다. 그 병세가 너무 깊어지면 자아감을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경험상 말씀드립니다.(67-68쪽)


파커 J. 파머는 여기서 에고 팽창과 ‘멜랑콜리’를 대척점에 놓는다. 전자는 자기중심적인 목적 하나에 사로잡힌 사람이며, 자만심에 찬 사람이다. 후자는 일과 관련된 역할이 줄어들거나 사라지면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내적 공허에 빠진 사람이다. 이 단호하고 단순한 대비는 어떤 혼효를 전제한다.


사람은 두 가지 선택기준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네 가지 삶을 살아간다. 두 가지 선택기준이란 우선순위와 중심(목적)이다. ①나를 우선순위에 두고 남을 중심에 두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다. ②우선순위에도 중심에도 내가 있는 사람이 세상을 망치는 극소수 범죄자다. 물론 이 범죄자 대부분은 지배층이다. ③나를 우선순위에 두지는 않으면서 중심에는 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세상을 망치는 일에 마름 노릇해 떨어지는 떡고물로 살아간다. 이들이 바로 자기애 경향에 중독된 대부분의 남성(, 그 남성을 내재화한 여성)이다. ④우선순위에도 중심에도 나를 두지 못하는 사람이 우울장애로 침륜된다.


파커 J. 파머는 ②③유형을 구분하지 않았다. 결정적 차이는 우선순위가 내게 있느냐다. 우선순위가 내게 없는 ③유형 사람만이 정체성이나 생의 좌표를 잃으므로 본문에서 대척점에 놓인 두 사람은 ③④유형이다. ③④유형의 사람에게는 같은 점과 다른 점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③④유형 모두 우선순위에 나를 놓지 않는다. 내적 공허는 양자 모두에게 있다. 대처 방식에서 차이가 난다. ③유형은 내 중심을 가짜로써 채우려 하고 ④유형은 내 중심을 진짜비우려 한다. 현대사회는 ③유형을 자기계발로 부추겨 가짜 성공으로 착취하고 ④유형을 우울장애로 묶어 약으로 착취한다. 파커 J. 파머의 혼효는 바로 이점을 소홀히 하게 만든다.


의학자 또는 의사가 아닌 파커 J. 파머의 이야기를 보완하기 위해 논의를 세밀하게 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병들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죽어나가는 ③유형 사람 대부분을 놓치고 만다. 물론 이 논의는 이치를 말한 것뿐이다. 현실에서 우울장애로 묶이지 않는데도 내적 공허로 자아감이 병든 사람에게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는 구체적으로 더 연구해야 한다. 이 문제는 개인적 과제가 아니다. 사회적 어젠다다.


사회적 어젠다일 수밖에 없는 것은 파커 J. 파머가 여기서 말하는 사람이 “남자”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래서 더욱 논의를 세밀하게 한 것이다. 이론상 우울장애에 걸릴 확률은 ‘여자’가 “남자”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이 이론에는 위에서 내가 말한 ③유형에 대한 고려가 누락되어 있다. 내분비 상태를 포함해 더 근본적으로는 우울장애 정의 자체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현실적으로 볼 때, 자기애 경향의 왜곡된 본질을 밝히면 우울장애 경계가 더 유연해질 수 있다. 치료 방식도 마찬가지리라. 이 지점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더 많은 남자가 모여앉아 자신의 좌절, 두려움, 희망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한다면 변화할 수 있”(68쪽)기 때문이다. 여기가 바로 가장자리다. 이 가장자리에서 “남자”와 ‘여자’가 아닌 인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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