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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기원전 4000년경부터 인류 역사에는 고통과 혼돈이라는 새로운 정신이 들어선다.·······이 시점부터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인간이 존재하기 시작하며, 세계와 다른 사람들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설정하는 것 같다.·······
·······항시적 전쟁·대규모 사회적 억압·남성 지배 같은 사회적 폭력이 고질화되었다.·······이러한 변화는 근본적으로 환경에서 비롯한 것 같다.·······건조화-또는 아주 말라버리는 사태-가 진행되어 제임스 드메오가 “사하라시아”(북아프리카에서 중국에 이르는 거대한 건조지대-인용자 붙임)라고 부르는 지역에 영향을 끼쳤다.·······
사하라시아가 말라버리면서 나타난 가장 주목할 만한 결과는·······주민들이 그곳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새로운 고향을 찾아야만 했다는 것이다. 사하라시아 사람들이·······이주한 증거는 중동, 아시아, 그리고 동유럽 전 지역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주 자체가 아니라, 이주가 진행된 방식과·······이주민들의 행동과 그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이다.(70-73쪽)
세기에 세기를 이어가며 폭력과 억압과 고통이 지속되었다. 우리는 역사가 앞으로 나아가며 점진적인 개선과 발전이 진행된다고 평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인류 역사의 주요한 사건은 조화에서 혼란으로, 평화에서 전쟁으로, 생에 대한 긍정에서 우울함으로, 온전한 정신 상태에서 광기로 극적 전환하는, 갑작스럽고 대규모적인 퇴행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94-95쪽)
정신병으로서 악은 역사의 산물이고, 그 역사가 사하라시아 건조화에서 시작되었다면 오늘의 우리는 이런 질문을 직시할 수밖에 없다.
“지구 전체의 온난화에서 시작될 역사의 산물은 무엇일까?”
이미 지구 전체를 석권한 ‘인도유럽인과 셈족’의 후예가 악의 결정판을 생산해낼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 대파국의 위기 앞에서 우리가 빚을 수 있는 희망의 거점을 모색해야 한다.
스티브 테일러는 타락 이후 6000년 동안 2번 타락 극복운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1차는 BC 800년경부터, 2차는 AD 18C부터다. 1차 운동으로는 극복이 온전히 안 되어 다시 한 번 운동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스티브 테일러가 2차 운동 특유의 방식은 강조하지만 특유의 계기를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일단 이렇게 밋밋하게 말하거니와 나는 2차 운동에 특유한 계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2차 운동의 특유한 계기는 바로 인도유럽인의 2차 이주다. 이른바 신대륙의 발견으로 본격 시동이 걸린 제국주의가 1차 이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와 속도, 그리고 파괴력으로 지구 전체를 점령해버렸다. 저들의 근대 과학과 자본은 살육과 수탈의 도구인 동시에 글로벌한 각성과 소통의 매개였다. 이 덕에 타락과 극복운동의 진행이 밀접하며 서로 엉켜 있다. 극복운동의 동시적·지구적 연대가 가능해졌다. 가히 제국주의의 역설이라 할 만하다. 2차 운동의 고유한 방식은 2차 운동의 고유한 계기에 터한 것이다. 이 계기를 나는 2차 타락이라 이름 한다.
2차 운동 가운데 정치적 각성은 결정적이다. 미국 독립과 프랑스혁명을 표지 삼는 민주주의는 물론 사회주의 사상까지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이로쿼이 연맹에서 발원했다는 사실은 2차 운동의 고유한 방식이 무엇인지 헤아리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다. 바로 이 부분을 놓쳤기 때문에 스티브 테일러의 분석과 전망이 인문학의 범위에 머무르는 것이다. 2차 운동에는 사회과학적 통찰이 필수다. 나는 리베카 솔닛이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말하는 재난공동체 또는 재난유토피아 개념에 유의한다. 그리고 이 필터를 통해 찰스 아이젠스타인의 경제학을 되읽는다.
2차 운동의 화룡점정은 생태학적 통찰이다. 1차 타락은 자연재난에서 비롯하여 악의 문명을 구축했다. 2차 타락은 거꾸로 악의 문명에서 비롯하여 자연재난-온난화로 상징되는 전 지구적 “기후변화”-을 불러왔다. 기후변화는 인류를 종말론적 상황으로 몰아붙인다. 2차 운동은 단순히 방식만이 아니라 차원이 달라야 한다. 발상의 근본이 전복되어야 한다. 더 이상 타락 기회는 없으니까 말이다. 이 생태학적 각성의 근간을 이루는 개념이 150인 공동체의 무한 네트워킹이다.
인류는 또 다시, 그리고 마지막 선택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