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은 나에게

큰봄까치꽃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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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소소 나날의 기적에 고마워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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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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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대한 믿음은 타락 고유의 특성이다.”(281쪽)


오늘날 지구상에 만연해 있는 인도유럽인·셈족의 신 개념은 타락한 인류가 만들어낸 허구임이 명백하다. 팽창된 자아의 투영이자 파열된 자아의 벌충이다. 전자는 일극집중의 매끈함을 안겨주고 후자는 고립감에서 벗어나게 한다. 둘 다 궁극의 해결책이 아님은 물론이다.


무신론이 답인가? 그럴 리가. 자아 거점을 지우고 전체성에 배어드는 재-주술화가 진정한 신(의 길)이다. 여기서 무진한 비대칭의 대칭이 되살아나고 함께-있음의 향연이 무궁하게 되풀이된다. 신은 무한 개체의 무한 네트워킹이다.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넘어가자.


“일신교도 자아의식 심화에 따른 결과·······다.”(291쪽)


그렇다. 거대유일신은 자아 팽창이 만들어낸 최후의 가짜 신이다. 다른 모든 신을 우상이라 몰아붙이고 혼자 남은 우상이다. 야훼도 알라도 덩치 큰 우상을 면치 못한다. 선불교의 화두 들기도 우상숭배고, 화두 가지고 놀다 견성했다며 까불대는 중 나부랭이도 우상이다.


신이 하나라면 꼭 한 경우에서만 그렇다. 무한한 다른 신들과 네트워킹 하는 신들 가운데 하나. 이 신은 홀로 우주를 창조하지도 않았고, 전지전능하지도 않으며, 심판하려고 종말을 벼르지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고립감에 빠진 인간에게 보살핌의 사탕을 물리지 않는다.


“신이 항상 임재하며 보살핀다는 믿음은 아기에게 잠정적 관심대상transitional objects이 필요한 것처럼 타락한 인간의 고립감에 대한 하나의 방어기제·······다.”(293쪽)


타락한 인간의 타락한 신 개념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 바로 “항상 임재하며 보살핀다는” 것이다. 남성 가부장적 신에다 모성을 짜깁기해 넣고, 아기 상태로 돌봄 받다가 천국 가겠다는 어이없는 탐욕이라니. 쩌는 유치함을 엄숙미로 가리고 진짜 자알 놀고들 계시니, 어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자신이 아이인 줄 모르고 어른 행세를 하는 아이, 그리고 자신에게 남아 있는 아이를 알아차리고 겸허하게 키워가는 어른. 그만 자라도 되는 완성된 어른은 없다. 참 신은 다른 모든 존재와 함께-있음으로써 자라가는 부단한 도정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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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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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과 함께 어른의 아이에 대한 태도와 처우가 급변했다.·······아이를 때리는 행위가 무엇보다도 사하라시아 어른의 특징적 현상으로 보인다.·······아이에 대한 신체적 학대는 규율을 가르치는 하나의 필수적인 방법으로 간주되었으며, 그래야 아이는 타고난 “사악하고” 이기적인 본성을 통제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272쪽)


타락하지 않은 문화의 아이는 타락한 문화의 아이와 정신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타락하지 않은 문화에서는 부모가 실제로 자녀를 통제하고 훈육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사실이지 싶다. 왜냐하면 타락한 문화의 아이보다 날 때부터 덜 제멋대로기 때문이다.(275쪽)


“흔히 아이를 천사라 한다. 그럴 수가. 다들 아이를 순수하다 한다. 그럴 리가. 아이가 풍기는 cute effect에 사로잡혀 어른이 지어낸 물색없는 말이다. cute effect는 어른에게까지 연장된다. 유형연장neoteny 뚜렷한 유명 인사를 둘러싸는 팬덤이 그 전형적인 예다.


타락 DNA가 아이 때 잠복하다가 어른 되면 갑자기 발현하는 것이 아닌 한, 아이 또한 타락한 정신의 지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정보와 에너지, 그리고 구조가 아직 덜 갖추어졌을 뿐이다. 이 상태를 학대의 기회로 삼은 타락한 어른이 나쁘다 해도 진실은 변함이 없다.


그 진실에 터하여 정보와 에너지, 그리고 구조가 아직 덜 갖추어진 아이를 사랑과 지혜로 양육하면 타락 초월의 길이 열린다. 누가 그 길을 여는가? 역사를 통해 들어온 악의 진실과 유전을 통해 빚어진 아이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감응하는 변방 사람이다.”


타락, 즉 자아폭발과 유전의 사실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 이야기는 그야말로 황당한 ‘찌라시’다. 그 경우, 장구한 세월 동안 자행되어온 아동학대의 본질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아이는 순수 천사고 이에 대한 어른의 근원적 열등감이 아동학대를 낳았다, 정도다.


그런가? 그렇다 치자. 그러면 아이가 자라서 어른 되는 법인데, 어른은 어쩌다 순수 천사를 잃고 열등감에 휘말리게 되었는가? 사춘기든, la Critique든, 화쟁이든, 사자 시기든 인간이 성장 또는 각성하는 과정의 불가피 또는 불가결한 국면에서 드러난 증상이다. 그런가?


어떤 설명구조에 마음이 쏠리는가는 취향 문제다. 그럴 루가. 결국은 같은 이야긴 것을. 그러면 딱 하나의 내러티브가 남는다. 순수고 타락이고 나발이고 다 부질없다. 인간, 본디 그렇고 그렇다,다. 있는 그대로 여기서 그럭저럭 최선의 길을 모색하는 거다. 나쁘지 않다.


왜 나쁘지 않은가? 인간, 본디 그렇고 그렇다는 말은 얼핏 들으면 시니컬하지만, 단연 아니다. 빛과 어둠이 비대칭의 대칭으로 모순적 일치를 이루고 있는 것이 인간의 진면목이라는 담담한 고백이기 때문이다. 어디 인간뿐이랴. 세계 전체의 진실이고 진리 아닌가. 그러니


홀연 돌아온다. 비대칭의 대칭은 불변하는 실체의 공시 구조가 아니다. 역동하는 통시 맥락을 따라 끊임없이 자발적으로 부서져 마주 가장자리를 새로이 연다. 아이의 맥락에서 빛과 어둠은 어떤 대칭을 이룰까? 어머니 품에 가까운 만큼 빛의 영향력은 절대적일 것이다.


빛의 영향력이 절대적일 때 그 빛을 거두어들이면 상황이 비가역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실제로 만3세에서 0세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학대는 치유 불가능한 깊은 정신병의 요인으로 작동한다. 아동학대는 어른이 저지르는 가장 근원적인 악이며 범죄다. ‘미 투’ 운동이 아이에게서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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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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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대한 근본적 적대감이 존재하는데 이는 타락 문화의 한 축이다. 이 시각은 악마가 남성을 잘못된 길로 빠뜨리려고 보낸 존재기 때문에 여성을 순수하지 못하며 선천적으로 죄지은 피조물이라고 본다.·······

  가부장제의 이러한 측면은 자아폭발이 만들어낸 육체 분리 인식과 연관된다.·······육체 안에 살면서도 육체를 자아보다 저열한 것으로 본다. 본능과 관능적 욕망을 동물적 본성의 한 부분으로 보며, 그 결과, 천하고 사악하다고 간주한다. 여성이 육체와 “더 가깝고”, 여성 육체의 생물학적 활동 과정이 더 확연하기 때문에, 육체에 대한 이런 태도는 여성에게로 확대된다. 남성은 자신을 정신의 “순수”에, 여성을 육체의 “부패”에 각각 연관 짓는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우위를 점하는 성적 능력도 하나의 요인이 된다. 남성은 섹스가 죄악이며, 성적 욕망은 천하다고 여기므로, 이런 욕망을 만들어내는 여성에게 적대감을 느낀다. 게다가 여성의 성적 능력은 남성의 자제 욕구에 모욕을 안겨준다. 그것은 남성이 여성과 자신의 육체에 대해 그토록 갈망하는 완전한 지배를 성취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남성은 여성에게 전신과 얼굴을 가리고, 노예처럼 살도록 강요하지만 여성이라면 누구든 언제든 남성 내면에 강력하고 통제 불가능한 성충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남성이 지난 6000년 동안 여성을 잔혹하게 대한 것은 부분적으로 이에 대한 보복의 측면을 지닌다.(260-262쪽)


자기 내부의 생각이나 감정을 받아들이기 싫어 타인에게 뒤집어씌움으로써 정당화하는 심리적 방어기제를 정신분석학에서는 투사라고 한다. 투사에서 누가 그 대상이냐 하는 문제는 대개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의식으로는 “쉽고 만만하게” 취급하지만 무의식에서는 결코 그럴 수 없는 존재에게 투사할 때 문제의 심각성이 가파르게 증가한다. 근원적 열등감과 결합한 투사는 더욱 단단하고 그악해지기 때문이다. 남성이 여성에게 죄악과 천한 육체성을 뒤집어씌운 것이 바로 그 전형적인 예다.


세상의 절반은 여성이고 나머지 절반은 남성이다. 그러나 남성 모두는 여성의 몸에서 태어난다. 근원적 차원에서 남성은 여성과 동등한 대립항일 수 없다. 자아폭발 이전 인류는 이 진실의 땅에 온전히 뿌리내리고 있었으므로 가부장제는 당최 성립 불가였다. 자아폭발 이후 남성은 여성에 대한 근원적 열등감과 의존 의식을 날카롭게 감지하면서 내면의 불화를 겪는다. 거대하고도 깨알 같은 부정적 투사로써 가부장제를 구축해 살해와 수탈을 자행한다. 중세 유럽 교회가 거룩한 신의 이름으로 즐긴 마녀사냥만 잔혹한 것 아니다. 21세기 대한민국 판사집단이 신성한 법의 이름으로 즐기는 강간 후원놀이는 더 교묘하게 잔혹하다.


귀기 풍기는 잔혹 앞에서 이런 추론이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남성의 근원적 열등감은 여성을 넘어 모성을 향하고 있다. 태고의 안식처로 귀환하고픈 충동의 실현 불가능성이 강간을 부추긴다. 강간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무저갱이 살해 충동을 게워낸다. 어머니를 죽이고야 엔트로피 법열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모성살해의 엔트로피 법열은 결국 그 제국을 완성할까? 세계 구조의 중심을 보면 백발백중 그렇다. 세계 구조의 변방을 보면 다른 꿈이 가능하다. 경계사건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예측 불가의 변화가 갈마들리라. 변방 사람들이 오래 꾸어온 꿈이 영근 뒤 마침내 달빛 아래 신화로 남을 즈음 엔트로피는 공화국으로 세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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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십대 초반 제자들과 술잔 기울이다 왔다. 저들이 대학생이었을 때 만났으니 삼십 년을 넘겼다. 이제는 흰 머리카락 마주보며 소소한 얘기들을 주고받는다. 의미 재미 넘어선 화제를 가로질러 생의 어떤 내밀한 향이 흘러간다. 농활 가서 비누 나눠 쓰던, 가투하다 끌려가던, 인사동 카페에서 맑스 읽던 얘기를 다시 꺼낼 때도 훌쩍 지나고 보니 그저 허허하하한다. 좀 더 자주 보자 다짐하지만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다. 다짐의 틈새로 시간이 스며들면서 저들 또한 내 뒤를 따라 그리 늙어가리라. 평소보다 훨씬 많이 마셨음에도 '은화처럼 맑은' 정신이 잠 맞아들일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아, 일요일.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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