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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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제2차 물결은) 인간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제1차 물결처럼 의식 에너지 재분배를 통해 다가온 것이 아니다.·······

  ·······동시에 발전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의식 에너지 수준이 더 높아진 데 따른 결과로 보인다. 우리와 300년 전 우리 조상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는 우리가 그들보다 더 생기 있다alive는 점이다.·······에너지를 전용하지 않고도 새로운 공감정신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존경심을 발전시키고 있다.·······그것은 외부에서 우리 내부로 들어오는 것임에 틀림없다.(415-416쪽)


좀 더 멀리, 인간을 개인보다는 집단으로 보면, 이 의식의 강화가 새로운 복잡성과 양립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지난 250년 동안 인간은 상호연결도가 한층 높아졌다.·······세계 인구의 빠른 팽창·교통망의 발달로 상호작용이 증가하고, 발전하는 기술로 상호연결이 촉진되는 데 따른 것이다.·······이 진전된 복잡성은 이른바 정신권역(테야르 드샤르댕)의 형성을 초래함으로써 전 인류가 연합하여 단일한 상호사유 집단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했다.(418쪽)


제2차 물결의 결론 부분에 해당하는 이 문맥은 명료하게 이해하기 쉽지 않다. 앞부분에서는 더 생기 있다는 말의 의미,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온다는 말의 의미, 그리고 그 둘이 이어졌을 때의 의미가 그렇다. 뒷부분에서는 정신권역을 이룬 인류가 단일한 상호사유 집단이 된다는 말의 의미가 그렇다. 최종적으로 앞뒤 부분이 이어졌을 때의 의미는 더욱 그렇다.


생기 있다고 번역한 alive의 사전적인 뜻은 ~be very lively and enjoy everything이고, lively의 뜻은 ~behave in an enthusiastic and cheerful way다. 특히 lively mind를 지녔다는 것은 ~be intelligent and interested in a lot of different things라는 뜻이다. 현대인은 과연 300년 전 조상보다 생기 있는가? 적어도 스티브 테일러가 제시한 역사적 증거에 따르면 ‘그렇다’다.


그렇다는 증거는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왔다’다. 이 말의 의미가 규명되지 않으면 더 생기 있다는 말은 다만 헛된 레토릭에 지나지 않는다. (외부·내부 문제는 <32. 제1차 물결-자아인식의 초월(3) 명상> 부분에서 이미 말한 것을 여기 문맥에 맞추어 다시 언급한다.) 내부는 “나”라는 자아의식을 말한다. “내 몸”이라는 물질적 기원을 가진 것임은 물론이다. 나도 내 몸도 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물질과 미세생명의 네트워킹을 그리 “이름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름으로서 인간은 외부에서 오는 의식을 받아 각기 다른 고유성을 부여하는 수신기의 표식이다. 수신기 표식은 내부가 아니다. 외부 네트워킹의 특성일 뿐이다. 무한히 다른 특성을 창조하는 서로 다른 외부의 네트워킹, 그 네트워킹의 네트워킹이 인류며 자연이다.


자아폭발을 일으킨 인간이 참람하게도 담을 쌓아 “내부”라고 등기하고 소유권을 행사함으로써 사달이 나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들어오지 않으니 내부는 생기를 잃을 수밖에 없다. 분리하고 보면 외부도 생기 없는 사물일 뿐이다. 사이비 생기를 찾아 벌충하려고 착취가 시작되었다. 착취로는 일사 글렀다고 판단한 끝에 찾아낸 방법이 명상 따위였다. 명상으로 “되찾은” 생기가 자신의 내부에서 나왔다고 우기며 홀로 소유하는 한, 명상 역시 포르노에 지나지 않는다. 참된 명상이라면 담을 헐어 내부 “관념”을 없애고 외부 네트워킹인 진실을 복원한다. 물론 때는 이미 늦었다. 진실의 복원은 이제 명상 따위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50년 동안 인간은 상호연결도가 한층 높아졌다.·······세계 인구의 빠른 팽창·교통망의 발달로 상호작용이 증가하고, 발전하는 기술로 상호연결이 촉진되는 데 따른 것이다.·······이 진전된 복잡성은 이른바 정신권역(테야르 드샤르댕)의 형성을 초래”했다. 정신권역은 정신네트워킹, 그 네트워킹의 네트워킹이다. 특출한 개인의 명상에 의존하지 않아도 진리에 이른다. 아쉽게도 테야르 드샤르댕을 포함해 스티브 테일러 자신조차 이 진실에 조금 못 미친 듯하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거대 실체” 개념의 잔재가 남아 있다. 정신네트워킹은 “단일한 상호사유 집단”이 아니다.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허브가 아닌 허브를 통해 무한이 일으켜지는 상호사유의 파동인데 마치 단일집단처럼 보일 뿐이다.


단일집단 아닌 네트워킹(의 네트워킹)은 내부와 외부로 분리될 수 없다. 그 분리는 폭발한 자아가 쌓은 벽 때문에 생긴 현상이므로 그 벽을 폭발시켜 부수면 자연히 더 생기 있어진다. 벽이 없어져 외부에서 내부로 더 강한 생기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본디의 생기를 되찾는 네트워킹 상태로 된 것이다. 되찾은 생기는 스티브 테일러의 인식과 달리 의식의 에너지가 아니란 점도 분명히 해야 한다. 에너지는 힘이지만, 여기의 생기는 깨달음이다. 깨달음은 힘이 아니라 소식이다. 소식이기 때문에 동시적 네트워킹의 네트워킹이 가능하다.


바야흐로 그 소식이 오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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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영화 <생일>(4월 3일 개봉) 시사회에 다녀왔다. 세월호 유가족의 슬픔과 아픔, 갈등과 화해를 조심조심 그려냈다. 작은 시작이다. 진실을 규명하고, 사회정치적으로 치유하며, 나아가 준열한 역사의 전언으로 만드는 일을 촉발할 영화들이 계속 만들어지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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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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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정신은 재산을 가지면 스스로 완성되며, 중요하고 강력한 인물이 됨으로써 불만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2차 물결의 증거에 부와 지위를 획득하려는 노력이 많은 사람들한테 점점 덜 중요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추가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축소downsize” 또는 “하행downshift”을 선택한다.(412쪽)


찰스 아이젠스타인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의 주해리뷰42 <사회배당금①-여가의 역설> 일부를 가져온다.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는 2018년 대한민국 소비트렌드로 소확행小確幸, 가심비價心費, 워라밸WLBwork and life balance, 케렌시아Querencia(스페인어로 본디 투우장의 소가 투우사와 싸우다가 잠시 쉬는 피난처를 가리키는데, 지친 자를 위한 혼자만의 휴식공간이라는 의미로 쓴다.)를 선정했다. 이들을 관통하는 목소리는 ‘여가’다. “내일 올 거라는 천국을 거절한다. 오늘 지옥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겠다.”고 두런댄다. “이제 노예 시대는 끝났다.”고 웅성거린다. 비록 조직적이지는 않지만 이 여가의 목소리가 기존 화폐시스템의 균열을 유발하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를 읽어보면 마치 스티브 테일러의 『자아폭발』을 읽은 찰스 아이젠스타인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누락되었다고 판단하여 집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근원적 문제의식에서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찰스 아이젠스타인이 참고문헌으로 『자아폭발』을 제시하지 않았으므로 더는 거론할 수 없으나 스티브 테일러가 왜 경제, 그러니까 돈 문제를 간과했는지 궁금한 것과 더불어 양자의 관점 일치는 새삼 신기하다. 인용한 내 주해리뷰도 마지막 문장 “화폐시스템”을 “타락한 정신”으로만 바꾸면 그냥 『자아폭발』 이 부분에 대한 주해리뷰가 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이런 동시성 자체가 제2차 물결의 유력한 증거이기도 하니 신기한 느낌은 머지않아 자연스런 것으로 바뀌지 않을까.


“축소downsize” 또는 “하행downshift”은 큰돈과 높은 지위를 좇던 타락한 정신에 대한 “소확”한 전복이다. 삶의 질을 높이려면 작은 돈과 낮은 지위라도 감수한다는 차원은 확실한 전복이 아니다. 삶의 질을 높이려고 작은 돈과 낮은 지위를 선택한다는 차원이라야 확실한 전복이다. 돈이 커져도 영성이 작아지지 않고, 지위가 높아져도 신성이 낮아지지 않는 사람은 애당초 이 이야기의 당사자가 아니다. 돈으로는 결코 줄 수 없는 선물, 지위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선행을 향해 능동적·적극적으로 나아가는 정신-네트워킹이 사회성으로 충만해져야 한진 총수 일가나 자유당 국회의원 패거리 따위가 사라진다.


참으로 아름다운 삶은 어린 아기라도 건널 수 있는 작은 냇물과 같으며, 늙은 할머니라도 오를 수 있는 낮은 동산과 같은 것이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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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옹알거리며, 일제히 비린내를 풍기며

찔레 아기 순이 싱그럽게 돋아나고 있다.

신비가 어디 외딸고 높은 데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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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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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는 제2차 물결이 이룩한 진전의 온상이었다. 1960년대 후반의 히피 운동은 타락 초월 운동의 다른 측면, 즉 섹스와 육체에 대한 더욱 개방된 자세·희미해진 성 구분·(외양과 태도가) 점차 여성적으로 변한 남성·평등주의·비폭력·자연 합일·제1차 물결 때 발생한 동양 신비주의 철학에 대한 관심들을 모두 보여준다.·······히피 운동은 현대의 타락하지 않은 문화에 가까운 무언가를 창조하려 한 용감한 시도였으며, “엄격한” 사회와 충돌하는 풍경은 어떤 면에서 원주민과 타락한 제국주의 문화 간의 충돌을 떠올리게 한다.·······히피 운동은 그 자체의 이상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1970년대에 급속히 사라졌지만, 18세기부터 축적되어왔던 집단적 정신 변화의 강력한 표현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409-410쪽)


1975년에 대학에 입학한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학교에서 ‘두발단속’을 당해야 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두발단속의 주체가 ‘교련’이란 이름의 군사훈련을 시키는 현역 군인이라는 사실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어느 날 교련 시간에 출석 체크를 하면서 교관인 장교가 내 두발상태를 보더니 ‘짧게 자르고 오지 않으면 수업 받은 것으로 인정하지 않겠다.’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교실을 나왔다. 물론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당연히 학점은 나오지 않았고 나는 계절 학기를 통해 학점을 받는 것으로 대처했다. 그 이후로 군대에 있던 기간을 제외하고 나는 마흔 가까이까지 어깨에 닿는 장발을 유지했다.


당시 나는 내 행동이 그냥 내 개인적인 저항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선명하게 의식하지 못했을 뿐, 내 장발 정서는 이미 히피 조류에 닿아 있었던 듯하다. 군사정권이 기를 쓰며 막으려 했을 테지만 히피 스피릿에 국경이 가당키나 했겠나. 히피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겠으나 나 같은 주변인에게까지 물결쳤던 걸 보면 참으로 경이로운 사건이었음에 틀림없다. 히피가 급속히 사라진 것은 세상을 전복시킨 뒤 스스로 홀연히 사라진 로맨티스트 혁명가를 떠올리게 한다. 본질상 히피 혁명의 열매는 이렇게 맺어지고 나눠지는 게 맞다 싶은 중요한 사실 하나만 적시한다.


스튜어트 브랜드라는 사람이 대안잡지 <Whole Earth Catalog>를 발행하여 글로벌한 가치를 지닌 상품들을 소개하고 우주 합일 주제를 다룬 글을 게재하기 시작한 것은 히피 운동이 한창이던 1968년이었다. 이 잡지는 수평적·독립적·자발적 나눔의 삶을 지향한 히피 이상을 기술과 산업으로 구현한다는 취지를 담아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이 잡지에서 결정적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뿐 아니라 미국 IT 산업의 선구자들 중 상당수가 젊은 시절 히피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또 그것을 구가했다. 그들은 직간접적으로 히피가 지향한 개인주의·참여· 연대·공유 등의 가치를 산업에 적용했다. 인터넷, SNS의 원리와 성격에 히피 이상이 녹아 있다는 것은 이제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히피가 몰고 온 변화는 어떤 식으로든 제2차 물결의 본진을 향한다. 성패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다만 히피가 “그 자체의 이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살펴보는 일은 오늘 여기의 풍조에서 다음 한 걸음을 내다보는 데 매우 중요한 과제다. 내가 개인적으로 깊이 주의를 기울이는 부분은 근대 민주주의나 사회주의처럼 히피 또한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삶과 그 정신에 기댄 점이다. 각각 다른 관심에 따라 접근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관심의 근원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


히피가 도달하지 못한 근원은 원주민의 삶과 정신, 그리고 자연에 깃든 거룩함이다. 이유는 둘이다. 우선, 다양한 측면이 있지만 히피는 대체로 삶의 “축제” 쪽으로 기울어진 경향을 띤다. 이것은 질탕함으로 흐른다. 삶은 “경배”이기도 하다. 이것은 거룩함으로 흐른다. 삶의 실재는 질탕함과 거룩함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역동적 균형으로만 유장해진다. 이 균형이 깨진 곡절이 두 번째 이유에 해당한다. 히피는 원주민의 삶과 정서를 처음부터 능동적·적극적으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면서 운동을 펼친 것이 아니다.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한 방편으로, 이를테면 도구적으로 “채택”한 것이다. 수단을 거룩하게 여기는 정신이 인도유럽인에게 있을 리 없다. 히피가 원주민의 삶과 정신을 존재의 차원으로 밀어 올리지 못하고 에너지 차원에서 흘려보내다 소진해버리고 만 것은 필연이다.


히피의 아킬레스건에 손 댄 것은 다만 비판의 목적에서가 아니다. 우리가 히피의 “타락하지 않은 문화에 가까운 무언가를 창조하려 한 용감한 시도”를 계승해서 온전히 이루려면, 되 빠지지 말아야 할 어둠을 꿰뚫어보아야 하기에 그런 것이다. 히피 이후 인간은 자신에게서나 이웃에게서나 자연에게서나 더욱 거룩함의 감수성을 잃어가고 있기에 웅숭깊은 향도가 한층 절실하다. 거룩함을 가장한 엄숙떨기가 거대종교 판에서 시끄러이 광광대고 있는 이 때 참으로 거룩한 신의 소식을 전하는 소리 아닌 소리가 더없이 그립다, ㅅㅅㅅㅅ ㅅㅅㅅㅅ·······신성한 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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