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나무 덤불이 소담한 꽃잔치를 벌이고 있다. 줄기 골속이 국수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그 꽃말이 '모정'이라는 사실과 연결해 보면 멀건 국수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우던 가난한 시절의 엄마 이미지를 품은 듯도 하다. 5mm 이하의 앙증맞은 꽃이 향기로 벌나비를 불러들이는 밀원식물이다. 환경오염 지표식물이기도 하다. 무심코 지나치기 십상이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참으로 아름답다. 세상 이치도 똑 이와 같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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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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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선생님이 부정적인 감정들을 외면하지 말고 뚫어지게 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때는 선생님이 말씀을 너무 쉽게 하시는 것 같아 좀 화가 났었어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겠다고 애쓰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내려고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데, 그 현실을 어떻게 마주하라는 거지? 그 감정들을 어떻게 바라보라는 거지?’

  그걸 마주했다가는 무너질 것 같았어요.·······


참사 나고 2년 정도는 너무 힘들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의사 선생님 말씀을 이해하겠더라고요. 두려운 현실을 마주할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느끼게 됐어요.(38~39쪽-성호 누나 박보나)


두려움은 인간이 드러내는 병리적 감정의 범주증상이다. 이 증상은 분리에서 기원한다. 분리의 장벽을 깨뜨려 신성한 재통합을 이루기 위한 첫 망치질은 두려움 마주하기다. 마주하면 두려움의 실재the Real를 알 수 있다.


성호 누나 박보나에게, 마주하면 자신이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이란 무엇인가? 성호의 상실인가? 성호를 상실하게 한 사건인가? 사건에 휘말리면서 겪은 참혹한 경험과 기억, 그리고 감정들인가? 그럼에도 살아지고 또 살아내야 하는 모진 생인가? 사건을 일으키고 속이고 조작하고 능멸하면서 킬킬대는 불의한 권력집단, 비정한 사회인가? 불의한 권력집단, 비정한 사회 앞에서 또렷이 의식되는 천명인가?


필경 이 모두일 것이다. 이 모두를 하나의 거대한 실체로 느꼈을 것이다. 그 거대한 실체가 외부에서 자신을 향해 덮쳐온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얼굴을 돌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외면하지 않고 뚫어지게 보려면 그 거대한 실체가 거짓이라는 사실을 간파해야 한다. 거짓 실체를 간파하려면 낱낱이 결결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낱낱이 결결이 들여다보려면 그것을 방해하는 통속한 해석·평가를 중지해야 한다. 통속한 해석·평가를 중지하려면 스스로 물어야 한다. 물음은 ‘과연 그런가?’ 하는 반성에서 시작해 ‘대체 무엇인가?’ 하는 정체 추궁으로 가야 한다. 정체를 들키면 악마는 사라진다.


악마가 사라지면 진실이 하나둘 불을 밝힌다. 성호가 없는 세상에서 박보나는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삶이 어떻게 향기로운지, 그 향기가 어떻게 사위로 번지는지, 번지고 번져서 세상에 어떻게 성호가 부활하는지 환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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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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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밖에 나갔을 때는 유모차에 앉아 있는 아기조차도 밉더라고요.·······세상 사람들이 다 가해자 같았어요. 모든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하고 나의 슬픔을 즐기는 것 같고.......

  아니, 사실은 부러웠어요. 옆집에서 나는 라면 냄새도 부러웠어요.·······


  그 감정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꽉 닫혔던 마음이 조금씩 열리더라고요.·······

  지금 내 마음에는 세상이 있는 그대로 보여요. 슬픈 일이 눈에 보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행복해 하는 게 좋아 보이기도 하고요.(36쪽-김호연 엄마 유희순)


놀랍다. 슬픔을 관통함으로써 진리에 이르는 깨달음의 과정을 표현하는 말들이 평범한 가운데 참으로 정확하고 섬세하다. 엄밀한 과학이며 수승한 미학이다. 깊은 치유는 결곡하고 아름답다.


유모차에 앉아 있는 아기조차도” 미운 심사, 그 분노는 얼마나 강고한 것이랴. “옆집에서 나는 라면 냄새도” 부러운 심사, 그 비탄은 얼마나 견결한 것이랴. 그 누가 변화를 꿈꿀 수 있으랴.


변화를 가져다준 “시간”은 슬픔을 관통하며 걸어온 김호연 엄마 유희순의 동선이 창조한 상호작용 과정 자체다. 이 상호작용은 소식이 되고 에너지가 되어 그 “꽉 닫혔던 마음”을 열어갔다.


마음을 열면 “세상이 있는 그대로 보여”지는 진실의 전체성에 터할 수 있다. 전체 진실에 터하면 “슬픈 일이 눈에 보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행복해 하는 게 좋아 보이기도 하고”, 그렇다.


그런 것이 진리다. 행복뿐인 세상에 진리 없듯 슬픔뿐인 세상에도 진리 없다. 행복은 행복으로서 슬픔은 슬픔으로서 각각 우리 생을 구성한다. 행복은 슬픔 덕분이고 슬픔은 행복 덕분이다.


김호연 엄마 유희순이 빚은 진리다. 416공동체 엄마 유희순이 빚은 진리는 권력이 강탈한 행복, 권력이 강요한 슬픔을 직면한다. 되찾고 되돌리는 네트워킹운동을 창조한다. 놀랍고도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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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한테서 손편지와 카네이션 센티드 카드를 받았다. 편지를 읽으면서 아비로서 미안한 마음을 어찌 전할까 생각했다. 내년 어린이날, 상처받았을 '어린' 딸에게 주는 손편지를 써야겠다고 스스로와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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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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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에 겨울옷을 다 버렸어요. 겨울까지 살아 있을 것 같지 않았어요. 그런데 또 살게 되더라고요. 그냥저냥 지내다가도 갑자기 세영이가 예쁜 짓 하던 게 떠오르면 하··· 미쳐버려요. (울음을 삼키며) 뭐 하러 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이제는 사는 게 의미가 없죠.(35쪽-세영 아빠 한재창)


회사도 그만두었다. 교회도 나가지 않는다. 대인관계도 다 내동댕이쳤다. 이윽고 사는 의미마저 느끼지 못한다. 마침내 세영 아빠 한재창은 모든 것을 잃었다. 아니, 빼앗겼다. 빼앗긴 것 가운데 맨 마지막, 사는 의미를 구성한 존재는 다름 아닌 딸 세영이었다. 세영이를 빼앗김으로써 한재창은 모든 것을 빼앗겼다. 아니, 찬찬히 죽임 당했다. 죽음 한가운데서 한재창은 오늘 어버이날을 맞는다. 카네이션 가슴에 달아줄 세영이를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못한다. 죽임 당하는 세영이를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아비의 처절히 부서진 마음조차 돌아보지 못한다. 못내 미안할 따름이다. 이렇게 아비는 어버이날 또 한 번 죽임 당한다. 더 이상 이렇게 죽음으로 오늘이 오면 안 된다. 진실이 밝혀지고 범죄자가 심판되면 내년 어버이날 한재창은 조금이나마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으려나. 부디·······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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