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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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나눈 형제자매들조차, 어떻게 해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느껴지지만, 그 마음조차도 싫었어요. 죽었다 깨어나도 똑같은 일 겪지 않고는 이해할 수가 없어, 제가 먼저 선을 그어버리죠. 유가족들은 달라요. 무슨 말을 해도 무슨 짓을 해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게 되고 크게 마음 상해본 적 없고, 내가 아팠던 거 똑같이 겪은 사람들이니까 다 이해할 수 있고. 정말 많은 가족이 생겼죠. 진짜 가족처럼, 혈연처럼 느껴져요.(199~200쪽-김웅기 엄마 윤옥희)


혈연은 출생을 매개로 맺어진 인연이다. 416의 통痛연은 사망을 매개로 맺어진 인연이다. 생명 통째로 살해당한 아이들이 정신생명 중추를 살해당한 유가족의 아픔을 서로 이어주어서 빚어진 것이다. 이 통연을 “진짜·······혈연처럼” 느낌으로써 416가족은 묘절한 영성의 경계로 들어간다.


영성의 경계는 죽음이라는 방식으로 엄존하는 실재에 귀 기울이는 소통장이다. “들리지만 알 수 없는” 그러므로 “알 수 있지만 들리지 않는” 소리를 따라 무한히 번져가는 네트워킹이다. 표면이 이면과 맞물린다. 의식이 무의식을 풀어낸다. 산 자가 죽은 자에 배어든다. 신비에 노닐기 때문에 황홀에 취하지 않는 비상한 일상 누리다.


비상한 일상 누리, 이제 여기서 우리사회는 질기고 끈적끈적한 매판독재분단의 허물을 벗어던져야 한다. 416영성은 지극한 정치성이다. 지극한 정치성으로만이 지극한 인간성에 도달한다. 지극한 인간성으로만이 지극한 진리에 가 닿는다.


지극한 진리는 가장 작은 자가 행복할 때 모두가 행복한 세상 그 자체다. 416아이들이 가장 작은 자이기에 살해된 세상을 바로 그 가장 작은 아이들이 뒤집은 기적으로 영원히 기억된다면 오늘 맺어진 ‘진짜 혈연’은 참으로 복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이 복된 인연은 그러나 고단한 천명을 봉행해야 한다. 416진실의 인양. 아이들을 살해한 매판독재분단 패거리가 그 진실을 심연 밑바닥에 둔 채 여전히 “살아 있는 권력”으로 군림하는 현실을 무너뜨려야 한다. 100명 넘는 국‘개’의원을 거느린 자유당, 무소불위 ‘사시오패스’ 검찰, 가짜뉴스 왕국인 ‘기레기’ 언론이 합세해 일으킨 내란, 그리고 저들의 프레임에 맞장구치고 있는 ‘입’진보 지식분자들의 곡학아세와 싸워 이기고 이겨내야 한다.


이기고 이겨내는 것은 죽은 자가 들어 올린 존재 헌장이다. 보이지 않으므로 완전해진 실재가 선언한 아우라다. 산 자는 깃들어 참여할 뿐 영광을 취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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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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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월호참사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그냥 하고 있을 뿐이에요. 저희들은 시민들을 붙들기 위한 전략이 전혀 없어요. 일부러 붙잡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일을 하는 게 그분들을 붙잡는 방법이 아닌가 싶어요.(198쪽-수진 아빠 김종기)


내게 우울증 상담치료 받은 뒤 사제지간으로 인연을 달리 이어가고 있는 사십대 중반 여성이 인사차 왔다. 하필 서초동이 집이라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그리로 흘렀다. "지난 토요일 저녁 놀라지 않았니?" 그는 다소 장난기 섞인 말투로 물었다. "선생님, 문빠세요?" 나는 몇 단계의 문답을 생략할 요량으로 단도직입의 대답을 했다. "그거 단순한 문빠 집회 아니야. 문빠 너머 큰 범주의 시민들이 매판독재분단패거리가 도발한 거대 전선을 감지하고 달려간 거지. 실제 현장에 와 보지도 않은 결벽 지식인들이 갖은 수사학으로 비아냥거리지만 그날의 시민들은 다양한 결과 겹을 지닌 주-객체의 네트워크였어." 나는 그가 가끔 고개를 갸웃거리며 던지는 질문을 추임새 삼아 내친 김에 이야기를 이어갔다.


"실제로 내 경우, 정치적 지향은 그 누구보다 래디컬하다. 하지만 그 지향은 실천과 맞물릴 때만 살아 있는 것이 된다. 실천은 현실 속에서 이루어진다. 현실은 실제 전선이 형성되는 시공에서 내가 참여할 때 구체화된다. 구체적 참여는 내 삶의 물적 조건을 뛰어넘지 못한다. 나는 내 물적 조건을 껴안고 가능한 한에서만 전선에 설 수 있다. 전선에 선 경험에서 비로소 내 언어는 시작된다. 이 언어가 내 정체다. 정체와 절연된 언어는 흉기다. 흉기 언어를 휘두르는 자 누군가. 예컨대 쌍차 해고노동자들이 줄줄이 죽어나가고 사생결단 투쟁할 때,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으면서 이제 와서 문재인이 노동자에게 무관심한 위선자라고 욕하는 저 지식인들 아닌가. 강정마을에 사실상 미군기지가 들어설 때는 멀뚱거렸으면서 이제 와 문재인을 숭미주의자라고 몰아치는 지식인들 아닌가. 자신의 실천과 유리되어 있기 때문에 가차없이 바른 소리를 해대는 결벽 지식인들은 필연적으로 근본주의 함정에 빠진다. 자신과 같은 주파수를 공유하는 자들과 게토를 이루어 중독 상태로 미끄러진다.


근본주의의 치명적 해악은 원리와 윤리를 혼동하는 것이다. 윤리는 수리다. 수리를 소거한 원리에 터해 자신과 타인을 규정할 때 "정의로운 위선"에 빠진다. 정의로운 위선은 수리인 윤리 세계의 다양한 수 층위와 복잡한 연산 간 차이를 인정할 수 없다. 진리값 1이 아니면 상대하지 않는다. 예외는 오직 자신뿐이다.


고백하거니와 나 또한 그 늪에서 오랫동안 허우적거렸다. 느지막이 치유자의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픈, 특히 마음 아픈 사람들이 지닌 저마다 다른 결과 겹의 애환에 가 닿을 때, 어찌 섬세하게 달리 만져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치유자의 눈에 "그놈이 그놈"인 경우란 없다. 그놈과 그놈에게 똑같은 문제가 일어나도 달리 접근한다. 그놈과 그놈 사이에 일이 일어날 때, 그놈들끼리 싸움이라고 내동댕이치지 않는다.


치유자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 필수불가결한 통찰ㆍ실천 지평이 하나 더 있다. 치유는 다만 국소적 치병에서 끝나지 않고 병인의 심신, 나아가 삶 자체를 변화시킨다. 그러려면 병인의 고통이 일어나는 큰 맥락을 살펴야 한다. 병인을 둘러싼 삶의 조건 전체에 주의해야 전선이 형성되는 진경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서구의학은 코웃음 칠 테지만 한의학도로서 나는 이 길을 천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서초동을 향해 가는 내 마음은 쌍차 대한문 분향소나 강정마을로 가던 그때와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서초동을 대할 때 세월호 아빠 김종기와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가 취할 수 있는 다른 태도를 모두 존중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없었으며, 어디로도 가지 않은 채 정의로운 스탠스만 취하고 글이나 써대는 지식분자에게 오냐오냐할 생각은 없다."


그가 이말을 어떻게 듣고 얼마나 받아들일지 나는 모른다. 나는 그를 "붙잡기 위한 전략"을 구사하지 않았다. 딸아이 때문에 총총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이번 토요일 저녁 함성 소리 들릴 때 제 선생을 떠올리기는 할까 싶어 그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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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5 22: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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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6 12: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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