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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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예진이 업고 다닐 때부터 본 언니가 늘 예진 엄마라고 부르더니 참사 나고 얼마 안 돼서 “예진 엄마, 아니 아니” 하면서 둘째 아이 이름으로 부르는 거예요. 아휴, 없는 사람 취급하네. 하기야 저 사람들 입장에서는 없는 사람이지...(293쪽-정예진 엄마 박유신)


어디선가 듣고서 어디론가 옮겨 적었지 싶은데 기억이 분명치 않은 얘기 한 토막을 문득 떠올린다. 생후 1년이 채 안된 아기를 잃고 깊은 우울증에 빠진 엄마가 치료 받으러 여러 의사를 전전하고 다녔다. 별다른 효과가 없는 상태로 긴 시간이 흘러갔다. 어느 날 그다지 기대도 하지 않고 습관처럼 들른 어느 허름한 진료소에서 의사가 말했다. “아기 이름이 무엇입니까?”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질문이었다. 엄마는 온 영혼으로 온 육신으로 통곡했다. 우울증은 그날 이후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한 사람을 잊는 것은 그 이름을 잊는 것이다.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 이름을 지우는 것이다. 걸핏하면 딸을 “얘!”라 부르는 어머니, 툭하면 아들을 “야!”라 부르는 아버지는 그 한마디로 생때같은 제 새끼를 죽이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매판 지배층이 416아이들 250명을 그렇게 하지 않았던가. 소시민인 나는 2033번째 그 이름을 부름으로써 416아이들 250명을 오늘 여기 살려낸다.


고해인 김민지 김민희 김수경 김수진 김영경 김예은 김주아 김현정 문지성 박성빈 우소영 유미지 이수연 이연화 정가현 조은화 한고운 강수정 강우영 길채원 김민지 김소정 김수정 김주희 김지윤 남수빈 남지현 박정은 박주희 박혜선 송지나 양온유 오유정 윤민지 윤솔 이혜경 전하영 정지아 조서우 한세영 허다윤 허유림 김담비 김도언 김빛나라 김소연 김수경 김시연 김영은 김주은 김지인 박영란 박예슬 박지우 박지윤 박채연 백지숙 신승희 유예은 유혜원 이지민 장주이 전영수 정예진 최수희 최윤민 한은지 황지현 강승묵 강신욱 강혁 권오천 김건우 김대희 김동혁 김범수 김용진 김웅기 김윤수 김정현 김호연 박수현 박정훈 빈하용 슬라바 안준혁 안형준 임경빈 임요한 장진용 정차웅 정휘범 진우혁 최성호 한정우 홍순영 김건우 김건우 김도현 김민석 김민성 김성현 김완준 김인호 김진광 김한별 문중식 박성호 박준민 박진리 박홍래 서동진 오준영 이석준 이진환 이창현 이홍승 인태범 정이삭 조성원 천인호 최남혁 최민석 구태민 권순범 김동영 김동협 김민규 김승태 김승혁 김승환 남현철 박새도 박영인 서재능 선우진 신호성 이건계 이다운 이세현 이영만 이장환 이태민 전현탁 정원석 최덕하 홍종용 황민우 곽수인 국승현 김건호 김기수 김민수 김상호 김성빈 김수빈 김정민 나강민 박성복 박인배 박현섭 서현섭 성민재 손찬우 송강현 심장영 안중근 양철민 오영석 이강명 이근형 이민우 이수빈 이정인 이준우 이진형 전찬호 정동수 최현주 허재강 고우재 김대현 김동현 김선우 김영창 김재영 김제훈 김창헌 박선균 박수찬 박시찬 백승현 안주현 이승민 이승현 이재욱 이호진 임건우 임현진 장준형 전현우 제세호 조봉석 조찬민 지상준 최수빈 최정수 최진혁 홍승준 고하영 권민경 김민정 김아라 김초예 김해화 김혜선 박예지 배향매 오경미 이보미 이수진 이한솔 임세희 정다빈 정다혜 조은정 진윤희 최진아 편다인 강한솔 구보현 권지혜 김다영 김민정 김송희 김슬기 김유민 김주희 박정슬 이가영 이경민 이경주 이다혜 이단비 이소진 이은별 이해주 장수정 장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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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1년 동안은 집에 있으면 나가고 싶고 나가면 또 불안하고 그런 게 반복이었어요. 마음이 계속 불안해. 이 불안감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288쪽-남지현 엄마 전옥)


엄마가 아버지한테 매 맞는 것을 보면서 딸은 엄마와 똑같은 통증과 공포에 얼어붙는다. 엄마가 그런 삶을 왜 이어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절망과 불안에 사로잡힌다. 이것은 내재화된다. 결국 그 딸도 어머니와 같은 삶의 경사를 따라 미끄러진다.


남지현을 잃어버린 전옥의 저 불안도 본질상 이와 다르지 않다. 차디찬 바닷물 속에서 시시각각 죽어가는 딸의 모습을 지켜본 엄마는 언제 어디서나 그 차디찬 바닷물과 마주친다. 공포가 범람해 불안이 된다. 불안의 시간은 어제도 오늘이고 내일도 오늘이다. 불안의 공간은 집안도 바다고 집 밖도 바다다. 도망갈 짬도 없고 숨을 틈도 없다.


경험 이전의 존재론적 차원에서 보면 엄마와 딸은 연속성이 강한 생명 네트워크다. 급격한 분리는 겉잡을 수없는 불안을 몰고 온다. 딸과 분리되었을 때 느끼는 엄마의 불안은 딸 이외의 어떤 사람도 감지하지 못한다. 그 딸이 없다. 불안은 고립된다.


남지현 엄마 전옥은 고립에서 벗어났을까. 지금쯤이면 이미 불안의 검고 푸른 눈동자를 웅숭깊게 들여다보는 법을 넉넉히 터득했으리라. 저 416영성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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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겪고 우리는 가장 소중한 사람의 기준이 바뀌었어요. 내 곁에 없으면 안 될 사람이 누구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 거예요. 가족의 재탄생이에요.(282쪽-이지민 엄마 유점림)


스마트폰이 해킹당해 저장된 연락처 500여개가 날아 가버린 적이 있었다. 며칠 동안 나를 안타깝게 만들었던 것은 아끼는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내 안타까움은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거기에 따라 나는 표현을 바꾸었다. ‘주고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주지’ 못하는 것이다. 상대방은 내 연락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먼저 연락해오면 나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다시 저장해두었다. 칠팔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동안 아끼며 가까이 있다고 여겨왔던 제자·후배·벗 중 아직도 연락을 해오지 않는 경우가 여럿 있다.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애당초 그들은 나와 소통하지 않았을 사람이었다. ‘아끼며 가까이 있다’고 여긴 것은 내 일방적인 생각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를테면 익명적 존재였던 셈이다. 관계의 정리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부자연스러운 깨달음 하나가 아프게 일어났다. “그들이 내게서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에게서 떨어져 나온 것이다.”


가장 소중한 사람의 기준”은 무엇인가? “곁에 없으면 안 될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그 뒤 지난 날 ‘감히’ 할 수 없었던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연락하지 않아보는 것이다. 영업적 거래를 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이런 실험은 특히 자기부정증후군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에게 매우 요긴하다. 자기 자신이 익명화된 사실을 모른 채 일방적인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는 습성에 깊이 침륜될 때 이를 일러 우울증이라 하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우울증이란 자신의 진정성 때문에 타인에게 격리·수탈·살해당하면서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심신상태다. 이 병리에서 벗어나려고 오랜 습성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 스스로 균열을 내는 일은 쉽지 않다. 대부분 외부에서 가해지는 비상한 충격을 받고서야 화들짝 놀라 깨어난다. 개인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사회집단 또는 계층도 같은 곡절을 겪는다. 416이 그 전형이다. 416아이들, 그 가족, 애통을 함께하는 시민은 모두 사회적우울증 상태였다. “이 일을 겪고” 나서야 “재탄생”이 진행되고 있다.


재탄생은 뼈아픈 각성에서 시작된다. 뼈아픈 각성은 죽음과 그에 버금가는 상실 뒤에 찾아온다. 인간 영혼 또한 죽임당한 자의 목숨을 “먹고” 산다. 우리 삶의 요체가 제의인 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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