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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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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기억하고 싶은 간절함에 아이의 체취가 남은 마지막 옷이라도 남겨두고 싶었지만 그게 안 되는 걸 보면서 엄마인 저도 어쩔 수 없는 자연의 힘이란 게 있구나... 지금 국민들이 잊지 않겠다, 행동하겠다, 함께해주시지만 그분들도 언젠가는... 영원한 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352쪽- 오준영 엄마 임영애)


시간이 흐른다고 말하는 것은 해가 뜬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만물이 변화하는 것이다. 그 변화 과정을 지각할 때 덜 정확한 도구를 쓰기 때문에 생기는 근사의식이 바로 시간이 흐른다는 개념이다. 시간의 흐름이 근사의식이라면 당연히 영원도 근사의식이다. 영원이 없다면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은 전혀 다른 의미를 구성한다. 덧없다거나 허무하다거나 하는 뜻이 아니라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은 그 한계 안에서 고유한 가치와 미학을 지닌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면 모든 것의 모든 다른 찰나가 숭고하며 장엄하다는 뜻에까지 도달한다. 근사의식에 따라 표현하면 시간이 흘러가면서 416도 아이들도 시나브로 잊힐 것이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진실규명을 위한 사회 행동도 잦아들 것이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함께하는 이들도 사라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도 된다. 그래야 한다. 핍진의식에 따라 표현할 때 그 모든 변화의 찰나마다 숭고와 장엄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숭고와 장엄에는 매달릴 과거도 없고 기대할 미래도 없다. 언제나 다른 빛이 돋는다. 오준영 엄마 임영애는 슬프고 아픈 경험을 통해 과학과 철학의 가르침 없이 이 웅숭깊은 진리의 한복판으로 들어선다. 그가 더 뭘 원할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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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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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이 아주 멀리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일을 겪으니까 멀지 않더라고요. 죽음과 삶이 늘 이 공간 안에 다 같이 현존한다는 생각이 들어요.(341쪽-유예은 엄마 박은희)


<24. 죽음은 소멸이 아니다>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죽은 사람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산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뿐이다.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한다. 그 보이지 않는 존재가 우리의 윤리를 구성하며 창조를 추동한다.”


생식기 차이 하나로 여성과 남성을 구분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생물학적 상태만으로 죽음과 삶을 구분해서는 안 된다. 죽음과 삶의 전체 상태를 놓고 보면 무수한 스펙트럼이 있지만 교집합은 늘 존재한다. 그 교집합이 죽음과 삶을 뫼비우스 띠처럼 서로 맞물리게 한다. 삶이 죽음을 품듯 죽음이 삶을 품는 한 죽은 자는 “멀리” 있지 않고 “이 공간 안에 다 같이 현존한다.” 416아이들은 아득한 하늘 어디에 있지 않다. 하늘이라면 엄마의 그리움, 벗의 기억이 참 하늘이다. 416아이들은 그렇게 산 자의 생각과 행위, 밝혀지는 진실, 새로워지는 법과 제도, 변화해가는 우리사회 속에 형형하게 존재한다.


정확히 말하면 416아이들이 산 자를 떠나지 않고 이제 여기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산 자가 끊임없이 416아이들에게 가 닿는 것이다. 416아이들에게 가 닿지 못하면 산 자는 살아갈 수 없다. 산 자에게 살아갈 의미와 동력을 준다는 면에서는 416아이들이 신이다. 신으로서 416아이들은 산 자로 하여금 신의 길을 걷도록 한다. 신의 길을 걷는 자도 그렇게 신이 된다. 신들의 시공에서 생사의 구분이 의미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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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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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전환이 됐죠. 그게 또 맞는 일 같고요. 거의 50년 동안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가족이 평안하고 잘되면 ‘다 괜찮구나.’ 생각하고 살았던 거죠. 참사 나고 ‘아, 내가 너무 잘못 살고 있었구나.’ 깨달았어요. 전에는 불쌍한 사람 보면 ‘불쌍해서 어떡해.’ ‘밥이라도 사 드세요.’ 밥값을 주는 정도로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분들이 왜 그렇게 불쌍하게 됐는지를 고민하게 돼요. 전에는 보여주기 식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했다면, 지금은 더 구체적으로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거죠.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 시선이 많이 바뀌었어요.(338~339쪽-시찬 아빠 박요섭)


구체적으로·······들여다보고” “왜 그렇게·······됐는지를 고민”하는 것에는 사전적 의미만으로 포착할 수 없는 맥락 함의가 존재한다. 여기서는 개인 너머 구조를 보는 사회학적 상상력과 경험 또는 지각이 가능한 물적 사유의 결합을 말하고 있다. 구도족속이나 책상물림이 가 닿을 수 없는 오도나 실천의 경지에 이른 완전 전환이다.


이 완전 전환은 결곡한 앎의 땅에서 곡진한 삶의 싹이 움튼다는 진리를 일깨운다. 아니다. 곡진한 삶의 눈물에서 결곡한 앎의 웃음이 피어난다는 진리를 일깨운다. 시찬 아빠 박요섭은 사유화된 국가가 시찬이를 살해한 현실 삶을 곡진히 꿰뚫어 앎의 결곡함으로 나아간 것이다. 다름 아닌 통오痛悟다. 통오는 공동체윤리를 구성한다.


공동체윤리는 타자의 고통에 참여하는 자발성을 축으로 삼는다. 타자의 삶에 참여하는 일은 겸허를 바탕으로 한다. 타자의 진실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모를 때 관념이나 추상이 유혹한다. 그 유혹의 덜미를 낚아채는 것이 경험 또는 지각이 가능한 물적 사유다. 물적 사유의 모태가 바로 아픔이며 슬픔이다. 신음이며 눈물이다. 절규다.


절규는 지극히 구체적이다. 구체적 절규 시찬이는 박요섭에게 구체적 천하무인天下無人의 깨침을 선물해주었다. 시찬이가 무수한 시찬이로 부활할 때, 타자가 타인이 아니게 될 때 진정한 공동체가 탄생한다. 진정한 공동체를 꿈꾸는 내게는 과연 무엇이 절규일까. 엄마다. 텅 빈 엄마가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가득 찰 때 나도 공동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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