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식물은 위대한 화학자 - 잃어버린 식물의 언어 속에 숨어 있는 생태적 의미
스티븐 해로드 뷔흐너 지음, 박윤정 옮김 / 양문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연구자들은 지난 80년간 박테리아 내성이 강화된 것은 항생제의 생산, 사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항생제의 상업적인 도입 이전에 연구했던 박테리아 중에서 지금과 같은 내성동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하나도 없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항생제는 생물학적으로 화학적 자극 신호에 토대를 둔 박테리아 페로몬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박테리아를 자신에게로 끌어당긴다. 항생제와 맞닥뜨리는 순간, 박테리아의 학습 속도는 몇 배로 증가한다.
일단 항생제에 저항하는 방식을 개발하고 나면, 박테리아는 체계적으로 매우 빠르게 이를 다른 박테리아에게 전달한다. 항생제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다른 수많은 박테리아들과 상호작용하는 것이다.......박테리아는 일반적인 진화이론에서 예상한 것처럼 정보의 출처를 놓고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정보의 공유에 무차별적으로 협조한다.......이는 자연이 서로 적대적이지 않으며, 우리가 추측했던 것보다 훨씬 더 협력적이고 상호의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의 한 부분을 이룬다.(168~171쪽, 논리적 연결을 위해 본문 순서를 인용자가 조정함.)
세계보건기구는 2017년 대장균, 폐렴구균, 임균, 황색포도상구균을 위시한 12종의 슈퍼버그를 지정했다. 슈퍼버그 때문에 매해 70만 명이 사망하며, 2050년이면 1천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 예측했다. 미국질병통제센터는 2019년 매해 280만 명이 항생제저항 감염을 겪으며, 3초당 1명이 사망한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공포는 이에 비하면 호들갑에 가깝다.
이른바 다중약물내성multi-drug resistant, MDR을 지니고 있어 다양한 종류와 강도의 항생제와 맞닥뜨려도 생존하는 박테리아를 슈퍼버그라고 한다. 슈퍼버그가 탄생하는 동력은 크게 두 가지다. 박테리아의 삶은 인간보다 50만 배 빠르게 진행되고 진화된다. 그 자체 진화의 과정이 항생제 대응책 획득 과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박테리아 네트워킹의 군집지성이 창발을 일으킨다. 슈퍼버그는 적어도 그 능력에 관한 한 식물의 생명체계에 도달했다.
인간은 슈퍼버그 치료제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러면 문제가 해결될까? 과학의 힘을 근거로 낙관하는 사람들은 둘 다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첫 번째 질문에는 대답할 능력이 없다. 현장에서 노력하는 전문가가 아니다. 두 번째 질문은 다르다.
현대 서구의학이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는 한, 슈퍼버그 치료제란 결국 울트라슈퍼 항생제일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아이가 울자 뺨을 때려서 일단 그치게 했는데, 잠시 뒤 더 크게 울어버리니까 몽둥이로 후려치는 해결법과 같다. 물론 겁에 질린 아이가 더 이상 울지 않는다면 확실하다. 이것을 해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일 처음부터 폭력을 쓰지 않았다면 몽둥이가 필요 없었을 확률이 높다. 우는 원인을 자상하게 살펴서 평화적 방법으로 울음을 그치게 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그냥 울게 놔두거나, 심지어 더 크게 울도록 받아주었다면 상황은 전혀 다른 쪽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현대 서구의학은 우는 아이를 때려서 울음을 강제로 멈추게 하는 폭력적 어른의 행위와 같은 것으로서, 이를 일러 이종의학이라 한다. 이종의학은 의학을 전쟁으로 인식한다. 전쟁은 군대가 무기를 동원해 적을 죽이는 행위다. 박테리아는 적이고 이종의사는 군인이고 화학합성약물은 무기다. 이 무기 중 생태계에 가장 끔찍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항생제다.
항생제가 애당초 문제의 본질이다. 의학을 전쟁으로 여기는 인식론적 전제가 문제인데 더 강력한 무기를 개발해 내성 생긴 박테리아 잡는 것으로 해결하려 드는 것은 본말의 전도다. 지금 당장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려는 노력을 멈추라는 말이 아니다.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는 방식으로 근원적 해결에 갈음하려는 아둔함, 그 아뜩한 한계를 지적하는 말이다. 패러다임 대전환의 카이로스가 박두했다. 마침 코로나19가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지 않았나. 이참에 홀라당 뒤집는 거다. 뒤집으면 “자연이 서로 적대적이지 않으며, 우리가 추측했던 것보다 훨씬 더 협력적이고 상호의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얻을 수 있다. 근원적 해결의 종자돈이다. 우리가 때려잡으려 혈안이 되어 있는 박테리아가 준 고맙고 아름다운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