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생각하기 - 나무처럼 자연의 질서 속에서 다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자크 타상 지음, 구영옥 옮김 / 더숲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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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어디에서나 나무는 여성으로 탈바꿈됐으며, 숲은 어머니로 인식되었다.(67)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일하시던 모습을 떠올리면 매우 의아하면서도 경탄스러운 장면 하나가 선명하게 남는다. 뒤죽박죽인 커다란 이불잇-강원도에서는 이불홑청이라 했음-을 다듬질하기 위해 다듬돌 크기에 맞게 개키는 일이 주기적으로 있었다. 내 생각에는 일어나서 전체 규격을 보고 위치를 옮겨가며 큰 단위부터 구획해 작은 단위를 순차로 접어 넣는 게 쉬울 것 같았다. 할머니의 방식은 달랐다. 할머니께서는 오도카니 앉은 상태에서 한 귀퉁이부터 초군초군 잡아당기면서 작은 단위의 정리를 계속하셨다. 내가 그렸던 큰 단위 정리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언제나 내 예상보다 일찍 아리잠직하게 개켜진 이불잇을 다듬돌 위에 착 하니 올려놓으셨다. 할머니의 표정은 시종여일하게 무표정에 가까운 고요를 유지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나는 할머니의 솔루션이 여성 솔루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 여기서 다시 보니, 여성 솔루션은 바로 나무 솔루션이다; 어머니 솔루션은 바로 숲 솔루션이다.

 

관지 변화에 즈음해 톺으니 정말 이상한 것이 있다. 여성주의자 대부분이 나무에 보이는 무관심은 이상하다. 여성채식주의자가 나무를 대하는 피상적 태도는 더욱 이상하다. 이들이 혹시 여성, 어머니 솔루션을 쓰지 않아서가 아닐까? 저들의 결곡한 언행이 마치 남성의 공격도피처럼 보였던 아픈 경험이 있어서 품는 의문이다. 10년 전인가, 여성주의자 한 사람이 여성주의 모임에서 내게 이런 공격도피를 혹독하게 한 적이 있었다. 다른 모든 구성원이 그의 공격도피가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고 발언의 철회와 사과를 권유하자 그는 발언은 철회하되 사과는 하지 않겠다고 명토 박았다. 나는 더 이상 그 모임에 참여할 수 없었다. 공격도피란 말은 공격이 솔루션이 아니라 실은 도피에 지나지 않는다는 진실을 드러내려고 내가 만들어낸 것이다. 솔루션은 여성의 것이며, 나무의 것이며, 숲의 것이다. 내가 남성으로서 함부로 입댈 일 아닌 줄 알지만 여성주의가 좀 더 곡진하게 나무와 숲을 직시했으면 한다. 왜냐면

 

  세상 어디에서나 나무는 여성으로 탈바꿈됐으며, 숲은 어머니로 인식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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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5-04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불 개는 방식은 두 번을 읽어도 잘 상상이 되지 않아서 여성 솔루션이라는 개념어랑 바로 연결이 안 되네요. 백문이 불여일견일텐데, 엄청 궁금해졌습니다^^귀퉁이부터 잡아당겨 접는다는 게 뭘까..

bari_che 2021-05-05 09:30   좋아요 0 | URL
^^저도 커서 재현해보려고 여러 번 시도했었는데 실패했습니다. 할머니 양팔은 완전히 일직선으로 벌려진 적 없이 무심히 끌어당기고 접는 작은 동작을 반복했습니다. 잠시 한눈팔다 보면 어느새 다 개켜져 있었지요.
 
나무처럼 생각하기 - 나무처럼 자연의 질서 속에서 다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자크 타상 지음, 구영옥 옮김 / 더숲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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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가 예민한 성향을 지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향적이지는 않다. 장기도 내면세계도 없는 나무는 철저히 외부를 향한다.

  나무를 정의하자면, '밖으로 드러나 많은 가지를 치고 곧게 서며, 땅과 하늘에서 자양분을 얻고 개체화된 동시에 결합된, 살아 있는 껍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껍질'이라는 말의 다의적 특성을 이용한 정의다. 껍질이라는 말은 표면은 극대화하고 부피는 극소화한, 기하학적 의미를 담는다.(58)

 

살아 있는 존재가 표면을 넓히는 것은 교류 가능성, 외부와의 공유영역, 예민한 부분을 확장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감도 향상시키는 것이다.(60)

 

나무는 자신에게 의지할 뿐만 아니라 세계에도 의지할 줄 안다. 반면 인간은 세계를 복종시키고 제 입맛에 맞추려 한다.......

  인간은 내면에 깊게 박힌, 거드름이 극대화되어 나타나는 자만심을 버려야 한다. 그러면 정신의 유연함과 세심한 주의력을 잇는'힘, 시간, 공간의 특수구조'.......를 발견하게 된다.......

  나무에게서 지혜를 찾아야 한다면,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세계와 영원히 합일하는 나무의 능력에서 우선 찾아보자.(62)

 

자크 타상의 나무는 껍질이다.”라는 말은 필연적으로 디디에 앙지외의 자아는 피부다.”라는 말과 포개진다. 나무도 인간도 우주 구조와 운동 원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면 결국 최소 범주 공변양자장도 표면이고, 최대 범주 우주 전체도 표면이라고 상상할 수밖에 없다. 삼라만상의 본령이 껍질이고 피부고 표면이다. 너무 작아 볼 수 없는 세계도 너무 커서 볼 수 없는 세계도 결국은 개체화된 동시에 결합된네트워킹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킹 바깥이 존재할 수 없듯 네트워킹 안쪽, 그러니까 내면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네트워킹의 중심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내면 운운하고 중심 운운하는 것은 죄다 망상이다. 망상은 없는데도 있다고 우기는 정신병이지만, 있도록 만들어서 바깥과 주변으로 여기는 존재를 복종시키고 수탈, 살해한다면 범죄다. 물론 현 상황에서는 양자 구분이 무의미하다. 정신병자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치료와 징벌이 결합된 처결은 필수다. 나무 앞에 무릎 꿇려 그 껍질 본질을 직면하고 그 껍질 삶, 교류 가능성, 외부와의 공유영역, 예민한 부분을 극대화하도록 엄명하는 것이다. “그러면 정신의 유연함과 세심한 주의력을 잇는 '힘, 시간, 공간의 특수구조'.......를 발견하게 된다.” “철저히 외부를 향하는 것이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감도 향상시키는 것임을 증명하게 된다. “세계와 영원히 합일하는 나무의 능력을 복원하게 된다. 다시 확인하거니와 인간에게는 내면이 없다. 다시 확인하거니와 인간은 중심이 아니다. 모두 평등하게 개체화된 동시에 결합된 네트워킹에 참여하는 껍질로 복귀하는 것만이 견성이며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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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을 지나다 길이 잠든 새를 보았다. 왜 이리 되었는지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근처 층층나무 아래 고이 묻었다. 성냥개비만한 비목을 곧게 세웠다. 일주일 뒤 다시 가보니 누가 감히 훼손하지 못했다. 이제야 미안한 마음 실어 고작 이름 하나 불러준다. 검은머리방울새.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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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타상 지음, 구영옥 옮김 / 더숲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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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분의 부족과 종의 풍요는 양립한다. 심지어 조화를 이루면서 말이다. 토양의 척박함은 식물 증식에 안정을 주고 구성원 각각이 조화롭게 공생하도록 한다.

  모든 식물생태계에서 식물의 공생뿐만 아니라 생태계 안정은 영양이 부족하거나 다양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는 결핍 상황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우리는 대부분 열대우림의 풍요가 비옥한 토양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토양은 넘치는 강우에 씻겨나간다. 땅속 비옥함이 재생되는 곳은 다름 아닌 나무다.(55~56)

 

귀 밝은 인간은 리베카 솔닛의 재난공동체를 이미 들어 알고 있다. 재난공동체의 원조는 나무다. 나무의 생명원리를 심신에 지니고 있던 인간이 부족결핍상황에서 영양 공급의 평등을 이루는 절제”(57)를 발휘하는 것이다. 코 밝은 인간은 이제 기후위기와 마주친 인류가 풍길 재난공동체의 향기를 미리 맡아 알고 있다. 그 향기는 피토케미컬이다. 피토케미컬은 휴먼케미컬로 하여금 대멸종을 막는 근원적radical이고 급진적radical인 길로 가도록 이끈다. 종말론적 민주주의, 그 네트워킹을 향한 길에 다른 선택과 우회의 여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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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생각하기 - 나무처럼 자연의 질서 속에서 다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자크 타상 지음, 구영옥 옮김 / 더숲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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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협상한 결과를 기억하는 나무는 바람의 방향을 따라 적절히 허리를 굽히며 성장한다.......새나 곤충의 예측 불가능하고 변화무쌍한 움직임과 함께하는 세심한 나무의 우정이 우리를 심오한 시간성으로 데려간다.(51, 53)


이 장면은 문득 로빈 월 키머러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시간을 마치 그저 하나의 사물인 것처럼, 마치 우리가 이해하는 것처럼 그냥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라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제각각 나름의 이야기를 가진 순간만 있을 뿐.”(향모를 땋으며439)

 

시간을 본성에 따라 인식하고 실재the Real로 경험하는 일은 대부분 통념에 차여 삶의 저편으로 나가떨어진다. 통념인 인간의 시간, 그런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호작용인 나무의 시간은 사건으로 창조된다. “바람과 협상한 결과를 기억하고 바람의 방향을 따라 적절히 허리를 굽히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가진 순간이 창조된 나무의 시간이다. “새나 곤충의 예측 불가능하고 변화무쌍한 움직임과 함께하는 세심한.......우정이 창조된 나무의 시간성이다.

 

인간의 시간은 얼마나 일방적이며 고립적이며 강박적이며 탐욕적인가. 저자는 점잖게 비판한다. “시간을 들여 있는 그대로 자라는 나무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열정이 이를 망친다.”(54) 망치는 열정이라니.

 

이 장면은 문득 한정망월閒情望月을 떠올리게 한다.


사진 @LaetitiaWilf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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