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생각하기주해리뷰1. <강신제>에서 메타길 버드나무 이야기를 했다. 얼마 뒤 버드나무 두 그루가 더 내게 나타났다. 나는 이제 그 길을 버드나무 길이라 부른다. 지난 토요일 오후 그 버드나무 길을 따라 퇴근하다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다. 두 그루 가운데 조금 더 큰 갯버들의 우듬지를 포함한 상단부가 모조리 잘려나갔다. 그 갯버들의 위치는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길가가 아니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이따금씩 드나드는 이른바 개구멍옆이다. 개구멍 드나드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나무는 가차 없이 희생되었다. 나는 그 가운데 하나를 집으로 가져와 빈병에 꽂고 물을 주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과는 달리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치상 그럴 수밖에 없고 내가 몰랐을 따름이다. 나는 거듭된 낫 자국이 선명한 부분에서 그 낫 자국을 살리고 나머지를 다듬어 소박한 목걸이를 만들었다. 신영神珱-신물神物인 목걸이-인 셈이다. 나무사람 또는 사람나무로 어찌 살아야 할지를 찰나마다 감지하는 약속이자 빙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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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우 한 분이 선물하신 카네이션 일부가 어쩌다 떨어져 나왔다. 아까워서 공진단 케이스를 분 삼아 물 주고 세웠더니 앙증맞다. 간호사가 너무 예쁘다며 얼른 제 자리 앞에 가져다 놓는다. 선물이 아기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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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5-08 2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작은 공진단 케이스에 카네시션 한송이 너무 어울려요.

bari_che 2021-05-09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공진단보다 더 귀한 보약입니다~
 
나무처럼 생각하기 - 나무처럼 자연의 질서 속에서 다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자크 타상 지음, 구영옥 옮김 / 더숲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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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사회생활 모델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나무가 보여주는 대립 없는 공생, 즉 나무에게 매우 이로운 이 공생을 숙고해볼 필요는 있다. 나무가 발휘하는 이 협업 기능은 극에 달한 사회적 불평등과 과열 경쟁, 그리고 과대평가된 개인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영감을 줄 수 있으리라 본다.(71)

 

나무가 지닌 깊은 진실과 경이를 생생하게 전해주던 중에 한 말 치고는 아쉬운바 적지 않다. “나무가 사회생활 모델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도라는 말을 한 까닭이 뭘까? “세상에 헛된 주문을 걸어서는 안 된다”(101)고 한 말과 같은 맥락일까? 모델 대신 택한 숙고영감은 우리에게 어떤 실재로 다가올 수 있을까?

 

극에 달한 사회적 불평등과 과열 경쟁, 그리고 과대평가된 개인주의가 우리 시대정신이 된 까닭은 인간이 만든 정치제도 가운데 가장 우수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다. 근대 민주주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했다고 하는 헌법을 따르는 아메리카합중국이야말로 극에 달한 사회적 불평등과 과열 경쟁, 그리고 과대평가된 개인주의 끝판 왕이다. 아메리카합중국 헌법은 이로쿼이연방 정신을 벤치마킹했다. 물론 가장 본원적이고 핵심적인 정신은 뺀 채다. 그런 고의적 누락이 가져온 폐해는 광기에 해당하는 범죄였다. 그 가운데 가장 천인공노할 사항은 원주민에게 행해진 홀로코스트다. 유럽인이 처음 도착했을 당시 원주민 인구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략 2천만에서 1억까지 추정한다. 그 중간을 잡더라도 6천만이다. 6천만이 1920년에 이르면 22만이 된다. 이 학살은 나치가 유태인에게 저지른 범죄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자신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쳐준 스승을 살해로 보답한 정치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데 어떻게 극에 달한 사회적 불평등과 과열 경쟁, 그리고 과대평가된 개인주의가 판을 치지 않을 수 있겠나.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이로쿼이 정신 복원이다. 이로쿼이 정신은 나무에게서 왔으므로 당연히 나무 정신, 대립 없는 공생의 복원이다. 복원할 때, 숙고니 영감이니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단도직입으로 모델이라 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종적 차이는 무의미하다. 인간 몸 자체는 모듈이 아니지만 신자유주의 삶은 완전한, 아니 네트워킹도 군집지성도 일어나지 않을 만큼 극단적인 모듈이다. 인간에게서 모델을 찾으면 안 된다. 더군다나 지금 인간이 당면한 위기는 인간끼리만 주고받는 민주주의로는 감당할 수 없다. 종적 민주주의 실천이 화급한 과제다. 나무 협업이라는 모델이야말로 근원적radical이고 급진적radical인 모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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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생각하기 - 나무처럼 자연의 질서 속에서 다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자크 타상 지음, 구영옥 옮김 / 더숲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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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메타유기체다. 메타유기체로서 서로 연결된 미생물들은 구성 세포의 능력을 단연 능가한다. 나무가 함께 사는 기술과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한 협력 기술을 실천하는 것이다........

  뿌리에서 결합하는 콩과 식물과 질소고정박테리아의 관계는 이미 잘 알려져 있으나, 꽃과 박테리아의 관계는 그것보다 덜 알려져 있다.

.......

  때로 꽃의 가장 미묘한 오직 식물 미생물의 발산과 관련 있다. 딱총나무를 포함한 매우 다양한 식물 종의 경우에는 박테리아가 직접 발산하는 꽃향기가 특히 중요하다. 곤충과 인간은 꽃냄새를 맡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박테리아 향기를 흡입하는 것이다. 꽃과 박테리아의 결합은 진정한 융합에서 시작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제 딸기 향기가 딸기나무 박테리아와 관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박테리아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바뀌는 것이다.(67~69)


딱총나무꽃

 

장년 이전 시절에는 살아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 많다.”는 말이 썩 어울린다. 썩 그러니까. 노년이 되면 살아갈수록 모를 일이 많다.”는 말이 똑 어울린다. 똑 그러니까. 물론, 둘 다 스스로 깨달은 경우에 한한다. 대개 이런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채 인생이 끝난다. 깨달아 촘촘히 챙기면 무슨 일이 일어나나. 나무처럼, 아니 나무로서 살게 된다.

 

나무로서 사는 일은 나무의 지식과 분리되지 않는다. 인간처럼 실천과 이념이 분리되는 일은 없다. 이데아가 따로 있고, 그 아래 모사 현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무는.......메타유기체기 때문이다. 메타유기체는 모듈 간 네트워킹으로서 구성 세포의 능력을 단연 능가하는 창발, 그러니까 군집지성을 일으킨다. 군집지성은 수직의 질서를 가로지르는 수평의 무질서다. 무질서를 용납할 수 없는 과학의 기독교적 본질저 너머 약동하는 창발의 하느님나라다. 약동하는 창발의 하느님나라가 바로 메타유기체 나무다.

 

메타유기체 나무는 진정한 융합으로 발휘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한 협력 기술의 진경 앞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곤충과 인간은 꽃냄새를 맡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박테리아 향기를 흡입하는 것이다.박테리아 향기, 이는 한 평생 들어온 말 가운데 가장 경이로운 말이 아니냐. 살아갈수록 모를 일이 많다. 에나(진짜-진주 사투리).


딸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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