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생각하기 - 나무처럼 자연의 질서 속에서 다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자크 타상 지음, 구영옥 옮김 / 더숲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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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는 인간 정신을 영적이고 내밀한 측면으로 안내하지만 이성 모델이기도 하다.......나무 형상은 특히 인간이 모든 혼란에서 논리적 구조를 도출하는 데 적합하다.


   .......나무는 논리적 진행에 형상을 부여한다.(138)

 

인간은 인간만이 감정·이성·의지로 이루어진 정신, 정신을 조절하는 혼, 혼 네트워킹인 영, 영 활동으로 일어나는 창발인 신을 지닌다고 굳게 믿지만, 이 모두 나무가 그려낸 풍경이다. 무엇보다 인간의 자랑인 이성이야말로 나무 풍경에서 빛나는 전경이다. 나무 형상이 인간 논리 구조와 진행에 모델로 작용한다. 부동의 진실임에도 수긍하고 내용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좀 더 되작여볼 필요가 있다.

 

나무 형상은 치밀한 나무 화쟁의 산물이다. 화쟁은 더도 덜도 없이 적확하게 문제를 파악하고 솔루션을 마련하는 과정으로서 날카로운 이성 아니면 실행이 불가능하다. 화쟁을 진행하는 동안 감정 부침, 의지 소장消長 같은 요동으로 나무이성이 균열하는 경우란 없다. 통전 이성이 화쟁으로 만들어내는 솔루션은 그러므로 실패커녕 실수도 없다. 나무 형상 놓고 뭐라 하는 인간 평가는 종편견일 따름이다.

 

옹골차게 정색하고 음미해보자. 이성이라는 인간 언어는 인간 정신 한 측면을 가리키는 은유다. ‘인간 은유를 나무가 적용하는 일이 가당한가?’를 묻는다면 이는 도착이다. 로빈 월 키머러의 어법으로 진실을 말한다. “나무 적응adaption에서 비롯한 은유를 인간이 적용adoption해 언어가 되었다.” 그러니 균열한 인간 이성을 온전함으로 복귀시키려 명상·참선 따위에 매달리지 말고 나무를 껴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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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물은 생명기조이자 나무가 일으키는 근본 행동이다. 모든 나무는 물길이다.(137)

 

길은 노정이라는 뜻도 담는다. 좀 더 핍진하게 어감을 살피면, 예컨대 , 지금 가는 길이야!”라고 할 때, 길은 길 따라 가는 행동이 진행되고 있음까지 담아낸다. 나무가 물길이라는 말도 단순히 나무가 물 흘러가는 통로라는 뜻을 넘어, 나무 형성이 물 흐름으로 진행되는 항상적 과정이라는 역동성까지 담아낸다.

 

인간이 쓰는 말 또한 물길이다. 인습에 사로잡히면 말은 흐르지 못해 썩어버린다. 말이 썩으면 그 말을 쓰는 인간도 썩는다. 최악으로 썩은 인간이 권력과 돈을 움켜쥔다. 그렇게 쌓은 권력과 돈은 다시 말 부패 토건을 일으킨다. 매판수구집단이 현대사를 관류하며 부패시킨 모국어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여전히 준동하는 저들 살아 있는 권력에게 우롱당해마지 않는 비정규직 선출권력 수장이 인생을 다시 산다면 나무를 전공하고 싶다했다. 내 귀에는 현실 인간 정치가 무엇인지 간파하게 하는 圖南意在北으로 들린다. 나무본성을 따라 정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비원처럼 들린다. 물길을 그리워하는 애가로 들린다.

 

애가로 따지자면 내가 쓰는 나무 글이야말로 죄다 애가다. 나무 슬픔, 그 빙산 일각조차 전하지 못하는 애가임에도 나는 극상 슬픔으로 한 단어 한 문장을 쓴다. 내 생전 어느 날, 로빈 월 키머러의 가슴으로 이끼 슬픔을 노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나 그저 쓴다. 글에 담긴 생각이 알량할지언정 물길을 끊지는 않으리라.

 

다시, “나무에게 물은 생명기조이자 나무가 일으키는 근본 행동이다. 모든 나무는 물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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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 파라Para주가 방목지를 만들기 위해 아마존 숲에서 선택한 면적 25%에 오늘날 이차림二次林이 생겼다. 이차림이 탄소를 흡수하는 비율은 원시림으로 불리던 예전 숲보다 20배 높다. 라틴아메리카 숲 45개를 대상으로 진행한 종합평가에 따르면 벌목된 후 숲이 본래 생물량 90%를 회복하는 데 65년이면 충분했다. 열대림에 대한 또 다른 메타분석에서는 이차림에 살고 있는 조류 수는 원시림에 비해 12% 정도 적을 뿐이었다. 가장 크게 위협받던 특정 조류 구성은 100년 만에 99%나 회복했다.

  .......

  인간이 나무에게 정착하고 번식하며 확산하는 능력을 넘겨주기만 하면 나무는 최악 조건에서도 적응한다. 그러나 인간이 공간을 통제하는 방식 때문에 나무는 이 세 가지 방식을 더 이상 안전하게 발휘할 수 없게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인간 미래는 불안하다.(128~129)

 

인간은 나무 금도襟度를 넘었다. 인간이기에 너무 금도禁盜를 어겼다. 나무에게서 정착하고 번식하며 확산하는 능력최악 조건에서도 적응못할 만큼 깡그리 훔친 결과, 마침내 제 목숨마저 훔칠 수밖에 없는 지경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하양 이데아 사양하고 미완성으로 영속하는 나무 공화국을 인간은 검정 이데아 거머쥐고 완성으로 파멸하는 제국 식민지로 만들었다. 바야흐로 식민에서 식목으로 참회해야 할 때다. 참회는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이다. 인간이 돌아갈 제자리는 바로 그 나무 깃이다.

 

이른 아침 지하철 안. 나보다 몇 살 더 먹어 보이는 늙은이 하나가 도끼눈을 하고 서 있다. 앞자리에 앉은 젊은이에게 자리를 내놓으라는 시위 시선이다. 젊은이는 단호한 눈길로 거절한다. 늙은이는 마치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잽싸게 비어 있는 노약자석에 가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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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닫힌 공간에서 배아가 성장하지 않는 식물, 특히 나무에게 형태 확장은 매우 자유롭다.......나무는 성장하는 동안, 스스로 그 과정을 조절한다. 가지가 나뉠(분기) 때 최대로 팽창하므로 매번 주변 분기 활동과 양립할 경우에만 성장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나무 조화는 늘리는 힘에서 나와 지속적인 자기조절을 통해 이루어지는 반면, 동물 조화는 억압적인 외력 논리에서 탄생한다.......나무가 만든 공존하는 자유로운 조화는 인간이 생각한 조화를 넘어선다.(117~118)

 

모 일간지에 동물보호단체가 제시한 종차별 언어 변경 주장이 실렸다. 무슨 의도인지 이해하지만, 가소로운 내용이 하 많아 실소를 금치 못했다. 예컨대, ‘팁을 팁으로, ‘웃기다를 웃기다로 바꾸자는 주장. 한심한 설명 수준도 수준이려니와, 식물을 함부로 대하는 저들이야말로 종차별주의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으니 적잖이 안타깝다.

 

배아 성장 메커니즘 차이가 천지를 가른다. 나무는 자유로운 자기조절이 본성이고, 인간 포함 동물은 억압적인 외부조절이 본성이다. 당연하게도 나무가 만든 공존하는 자유로운 조화는 인간이 생각한 조화를 넘어선다.(을 먹는 동물)과 개를 위한 저급한 word play에 귤과 깨를 부박하게 동원하는 인간 조화가 무슨 수로 귤과 깨 조화에 필적하겠나.

 

로빈 월 키머러 말마따나 인간은 겉만 훑어보면서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이끼와 함께23) 태어난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하며, 인간처럼 말하고 듣지 못하며, 저항 없이 죽어주니까 나무를 대놓고 하등생명체 취급한다. 참람하고 맹랑한 거들먹거림에 인간이 취해 있는 동안도 나무는 자기조절을 통해 세계 조화를 창조해간다. 나무妙法調和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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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정신은 유체보다는 형태 짓기 더 쉬운 고체에 익숙하다. 과학도 이 관지에서 발전해왔다. 16C 천문학이 미래 과학 방향을 결정한 이래, 역학은 강고한 과학 중심이다. 이 모두가 동물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적합할지 몰라도 식물, 특히 나무에게는 그렇지 못하다.(115)

 

실제로 나무는 성장하면서 유체역학과 공기역학에 적합한 형상을 갖추게 된다.......나무는 생생하고 유동적인 침투력이 세계에 유입된 결과다.(116)

 

일요일마다 광화문 교보에 간다. 습관적으로 가장 먼저 I 9 식물 코너 앞에 선다. 우연히 책 하나를 보았다. 분류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두 가지 이유에서 책을 집어 들었다. 하나는, 지은이 이름. 펠릭스 가타리. 다른 하나는 그 저자와 관련한 책 이름. 세 가지 생태학. 말인즉, 저 뜨르르한 펠릭스 가타리가 생태학 거론했다면 혹시 나무 이야기를 의미심장하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실낱같은 가능성을 부여잡았다는 뜻이다. 실낱은 이내 끊어졌다. 다만, 자연 생태학을 인간 주체성과 사회관계에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생태철학écosophie 구상은, 가타리 수준에서 의당 해야 하는 주장으로 흔쾌히 받아들였다.

 

정작 마음을 끄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페터 팔 펠바르트Peter Pal Pelbart가 쓴 <‘볼 수 없는 것의 생태학>이 실려 있는 [부록2]. 필자는 끝내 볼 수 없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말 돌림”(77~78)으로 일관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 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학자 생명이 거두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한껏 내재적으로도 초월적으로도 아니고, 또한 주체적이지도 아닌 볼 수 없는 것은 무언가 기묘한 형태를 지닌 새로운 체제로 들어서고 있지 않은가 합니다.”라고 말할 뿐이다. ‘볼 수 없는 것의 정체를 가장 기묘하지 않은 방증으로 감지할 수 있는 단서는, 브라질 원주민을 찍은 동영상이 죽은 사람 모습을 담고 있었다는 신문 보도를 인용함으로써 이야기를 전개했다는 사실에 있다.

 

단도직입으로 말한다. 볼 수 없는 것은 다름 아닌 이다. 영 만큼 관건적이고 결정적인 말이 없음에도 인간은 아주 오랫동안 허투루 대해왔다. 아니. 잘못, 심지어 거꾸로 대해왔다. 영은 죽은 사람, 영매, 신비주의, 인격신을 믿는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들에게서 발원지도 않았다. 영은 근원적으로 식물본성, 그러니까 나무본성이다. 나무본성이 스스로 생명을 영위하고, 타자와 그 생명을 공유하고, 세계와 관계 맺는 반야지혜가 영이다. module 존재 원리며, networking 발현 양태며, collective intelligence 눈부신 풍경이다. 페터 팔 펠바르트는 모든 것의 교차점”(71)에서 발현하는 거대한 틈”(84)이라고 묘사한다. 이 모자란 묘사를 채워주면 이렇다. 모든 module이 만나는 마주 가장자리를 흐르며 가득 채우는 유체이자 유체 너머, “공기이자 공기 너머다. 과학이자 과학 너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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