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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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여기로 말하지 않아도 돼." 그가 가슴을 토닥이며 말했다. "여기로 말하면 그들이 들을 거란다."(096)

 

관운장이 상처했으나 슬픈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벗 하나가 민망함을 표한다. 그는 벗을 데리고 뒷마당으로 간다. 엎드리더니 검붉은 피를 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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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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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라호마 시각으로 화요일과 목요일 1215분에는 포타와토미어 점심 언어교실에 참가한다. 부족 본부에서 인터넷으로 진행하는 강좌다. 미국 전역에서 열 명가량이 수업을 듣는다. 우리는 숫자를 세고, “소금 주세요,”라고 말하는 법을 배운다. 누군가 묻는다. “‘부디please 소금 좀 주십시오.’라고 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언어 부흥에 매진하는 젊은 선생님 저스틴 닐리는 고맙습니다.’를 뜻하는 단어는 여러 개가 있지만 부디라는 단어는 없다고 설명한다. 음식은 본디 나누는 것이므로 예의를 더 갖출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정중한 요청은 문화적으로 이미 전제돼 있다는 말이다. 선교사들은 부디라는 단어가 없는 사실을 상스러움의 또 다른 증거로 내세웠다.(085~086)

 

문득 소동파가 떠오른다. 당송팔대가 중 한 사람인 그는 시··화에 모두 능했다. 특히 그림은 기교를 전혀 쓰지 않기로 유명했다. 기교를 쓰지 않는 이유가 고향 아미峨眉산 뛰어난 절경 속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이라 여겨지고 있다. 인간 기교로는 자연 절경을 제대로 담을 수 없음을 아미산속 삶에서 깨달았고, 그 깨달음을 단도직입 실행에 옮겼다는 얘기리라.

 

음식은 본디 나누는 것이므로 예의를 더 갖출 필요가 없다는 말이 전해준 울림이다. 소동파가 기교를 쓰지 않는 연유와 포타와토미 부족이 부디란 말을 쓰지 않는 연유는 본질상 동일하다. 기교도 부디더 갖출필요가 없는 사족일 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비례非禮.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비례를 넘어 모독이다. 왜냐하면 본성을 어기기 때문이다. 기교는 아름다움에 대한 통합감각을 시각이 가로채게 한다. ‘부디는 음식이 된 생명, 특히 낭/풀에게 가야 할 감사를 인간이 가로채게 한다. 모독은 결국 범죄다.

 

범죄 언어인 부디를 쓰지 않는 포타와토미 사람들을 상스러움에 던져버린 기독교 선교사들은 적반하장 그 자체다. 상스러움으로 치면 기독교가 음식을 대하는 태도만한 것은 다시없다. 식사기도로써 자기 자신과 음식으로 희생한 생명 사이를 이간하니 말이다. 음식이 된 생명, 특히 낭/풀에게 가야 할 감사를 신이 가로채게 하니 말이다. 설혹 신이 주었다손 치더라도 낭/풀에게 정중히 예를 다하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에도 저들은 그리 한다. 저들이 구가하는 그 일극집중 언어·사유가 저들을 성스러움에서 상스러움으로 타락시켰다.

 

생명이든 음식이든 식사든 본디 모두 지극히 성스럽다. 이들을 도구화하고 향락화한 인간이 그 더러움과 어두움을 가리려 짐짓 정중 떨며 부디라는 말을 쓰면 쓸수록 상스러움은 쌍스러움으로 증강된다. 부디 부디를 인간에게나 신에게 쓰지 말고 음식에게, 특히 낭/풀 생명에게 쓰기를 간절하게 빈다. 부디 가지고는 정성이 부족한가. 그러면 이 말을 보탠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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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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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체언 중심 언어여서 주어에 집착하는 문화에 알맞다.......종종 체언에 성별을 부여하지만 포타와토미어는 세상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지 않는다. 체언과 용언 둘 다 유정과 무정으로 나뉜다.(087)

 

만물이 살아 있는 세계에서는 전부 용언이 될 수 있다. 언어는 물, 땅, 심지어 날에 이르기까지 유정 세계를 보는, 만물에서 맥박 치는 생명을 보는 거울이다.......

  이것은 유정 문법이다.......포타와토미어 개론에서는 바위가 유정이다. 산, 물, 불, 장소도 마찬가지다. 정령 깃든 물체, 성스러운 약, 노래, 북, 심지어 이야기도 유정이다. 무정 목록은 그보다 적은데, 대부분 인간이 만든 물건이다.(090~091)

 

영어는 유정을 존중할 수단이 많지 않다. 영어에서는 인간 아니면 사물이다.......어쩌면 문법은 상호관계를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유정 문법은 세상을 살아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인도할지도 모른다. 다른 종을 주권자로 대우하고 종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세상, 물과 늑대에게 도덕적 책무를 지는 세상, 다른 종 처지를 고려하는 법률체계를 가진 세상 말이다.(092~094)

 

이 장소에 토박이가 되려면, 이곳에서 우리와 이웃이 살아남으려면, 유정 문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만 이곳에서 진정으로 뿌리 내릴 수 있다.(095~096)


 

어린 시절 웃자란 감성으로 구성지게 부르곤 했던 트로트, 박재홍(1924~1988)<유정천리>(1959)가 문득 떠오른다. 동명 영화 주제가여서 가사에 그 줄거리가 담겨 있다. 2절 가사 마지막 부분이 유정천리 꽃이 피네. 무정천리 눈이 오네.”. 여기 유정 무정과 로빈 월 키머러의 유정 무정은 물론 다르다. 문맥을 일단 밀어두면 온전히 같은 뜻으로 새길 수 있다. 그렇다. 유정 천리엔 꽃이 피고, 무정 천리엔 눈이 온다. “다른 종을 주권자로 대우하고 종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세상, 물과 늑대에게 도덕적 책무를 지는 세상, 다른 종 처지를 고려하는 법률체계를 가진 세상엔 꽃이 피고, “인간 아니면 사물로 나뉘는 세상엔 눈이 온다.

 

인간 아니면 사물로 나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영어가 지구를 정복해가는 과정이다. 영국과 미국이 차례로 패권국가가 되면서 영어도 패권언어가 되었다. 언어패권이 정치패권보다 무섭다. 언어가 사유와 행위를 지배하는 힘은 외적 강제가 아니라 내적 원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영어를 말하는 순간부터 체언 편향으로 사유한다. 체언 편향으로 사유하는 순간부터 인간은 유정이고 나무는 무정이므로 대놓고 함부로 벤다. 나무 베듯 이룩한 과학혁명, 산업혁명, 가격혁명이 착취적 세계체계를 만들었다. 착취적 세계체계에서는 나무뿐 아니라 제3세계 인민, 유색인종, 여성, 아동, 성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도 무정 되고 만다.

 

영어가 만든 무정 중첩 세계체계는 인간을 영원한 떠돌이로 만든다. 토박이로 뿌리 내려 더불어 살려면 유정 문법을 배워야 한다. 유정 문법 언어는 중첩적 계층을 만들지 않는다. 누구든 직접 이 땅에 뿌리 내려 토박이가 되도록 한다. 토박이 언어는 그렇게 용언 지향 사유를 이끈다. 용언 지향 사유는 세계를 동사와 형용사로 풀어 놓는다. 형용사는 유정 문법 언어에서 동사에 가깝다. 한국어는 근본적으로 유정 문법 언어다. 유정 문법 언어인 한국어 오염은 무정 문법 언어인 영어 단어 무분별 유입 차원이 아니다; 형용사가 동사를 떠나 명사에 가 붙는 언어 매판 차원이다. 언어 매판은 비가역적이다. 꽃 피는 유정천리로 되돌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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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을 조합할 때 보색을 쓰면 각각의 색깔이 더 선명해지는데, 한 색을 살짝만 넣어도 다른 색이 두드러진다.......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는 색들은 눈 속에서 번갈아 가며 서로를 유도하는 색들이다.......보라색과 노란색은 이런 짝이다.

  .......노란색 덩어리를 오랫동안 쳐다본 뒤에 흰색 종이로 시선을 돌리면 잠깐 동안 종이가 보라색으로 보인다. 이런 '색 잔상'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보라색 색소와 노란색 색소 사이에 활기찬 상호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76)

 

보라색과 노란색의 짝.......지혜는 한 아름다움이 나머지 한 빛을 받아 더욱 빛난다는 것이다.......그 아름다움은 내게 호혜를 요구한다. 보색이 되라 한다. 자신이 베푼 아름다움의 답례로 나도 뭔가 아름다움을 유도하라 한다.(78)

 

아주 부주의한 사람이지만 않다면 색 잔상 현상을 경험한 기억이 있다. 아주 주의 깊은 사람이 아닌 한 왜 그런지 골똘히 생각한 기억은 없다. 고맙게도 놀랍게도 식물생태학자인 저자가 묻지도 않은 그 답을 준다. 보색 사이에 활기찬 상호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란다. 상호작용이란 무엇인가? 이 문제 또한 골똘히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고맙게도 놀랍게도 다시 답을 준다. “서로를 유도하는일이란다. 유도란 무엇인가? 사실 이 질문은 필요 없다. 답이 나와 있다. 다만 달리 표현된 두 답 사이를 이어주는 말이 없기에 일부러 질문한다.

 

각각의 색깔이 더 선명해지는현상, 그러니까 한 아름다움이 나머지 한 빛을 받아 더욱 빛난다는 것과 잔상 현상은 다른가, 같은가? 있을 때 더 선명해지는 현상과 없을 때 잠깐 동안 잔상이 나타는 현상은 본질에서 같고 양상에서 다르다. 없을 때 잔상이 나타나는 현상은 이치 측면을 드러내준다. “이게 상호유도다.” 있을 때 더 선명해지는 현상은 이치가 발현된 전경을 펼쳐 보인다. “상호유도하면 이렇다.” 이 같고도 다른 관계를 통해 보색 지혜가 인간에게 호혜를 요구한다. /풀 유도처럼 인간도 다른 존재 속 아름다움을 유도해야만 한다.

 

인간이 다른 종 생명과 함께 있으면 각각 아름다움이 동반상승해야 한다. 현실은 그 반대다. 인간을 이슥히 들여다보다가 허공으로 눈 돌리면 다른 종 생명이 잔상으로 나타나야 한다. 현실은 그 반대다. 함께로도 홀로로도 인간은 내남 아름다움 모두를 갉아먹는다.

 

나는 내 본성의 본원인 버드나무 순례를 계속하고 있다. 순례는 나를 이슥히 들여다보다가 허공으로 눈 돌리면 버드나무 잔상이 나타날 때까지다; 나와 버드나무가 함께 있으면 내 빛으로 버드나무가, 버드나무 빛으로 내가 더 아름다워질 때 까지다. 아브라카다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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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이 묻는 질문은 당신은 누군가요?”가 아니라, “이건 뭐지?”. 아무도 식물에게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나요?”라고 묻지 않았다. 주로 하는 질문은 이건 원리가 뭘까?”였다.(070)

 

돌고 돌아 내가 도착한 곳은 처음 출발한 곳, 아름다움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것은 과학이 묻지 않은 물음이었다.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앎의 방식으로서 과학은 너무 편협해 그런 물음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074~075)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을 찾는 것은 인간 존재의 한 측면이 아니라 존재 전체다.(078)

 

중국 하남 숲에 신령한 오동나무가 살았다. 신선이 그 본성 소리에 이끌려 숲으로 와 그 나무로 칠현금을 만들었다. 칠현금을 손에 넣은 황제가 당대 악공을 불러 연주케 했으나, 모두 소음만 울릴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나타난 악공은 연주하기 전에 칠현금을 어루만지며 귀엣말을 했다. 잠시 뒤 다시없는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황제가 무슨 얘기를 했느냐 물으니 악공이 대답했다. “스스로 지니고 있는 음으로 연주해주기를 부탁했습니다.”

 

중국 옛 설화다. 통속한 악공들에게 결여된 바는 바로 겸허였다. “이름은 배웠습니다만, 그들 노래는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072) 마찬가지다. 오늘날 통속한 과학자들은 오만한 어리석음으로 낭/풀을 사물로 환원하고, 사물이니 분석하면 안다고 환원하고, 분석만이 참 지식이라고 환원하는 삼중환원주의에 빠져 있다. 삼중환원 편협함은 아름다움에 대한 질문을 감당할 수 없다.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을 찾는 것은 예술뿐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다.

 

통속한 과학자와 통속한 과학을 신봉하는 일반인들이 꼭 똑 알아야 할 바,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과학적 법칙조차 수많은 인식 방법과 지식 체계가 참여해 재구성해온 결과라는 사실이다. 자신이 터한 과학도 인식 방법 중 하나일 뿐이라는 진실을 놓치면 오류에서 끝나지 않고 범죄가 될 수 있음을 명확히 깨달아야 한다. 이미 인류는 과학이란 미명으로 천인공노할 범죄를 수없이 저질러왔다. 그 때 과학과 지금 과학은 다른가? 만일 그렇다면 100년 뒤에도 똑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뒤에도 영원히. /풀이 가리키는 달만 휘영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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