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둘레길은 북한산 구간(1~12)과 도봉산 구간(13~20)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가운데 북한산 구간 57.7km를 우이령길 걷기로써 마무리했다. 21길인 우이령길은 북한산 상장봉 능선과 도봉산 오봉 능선 사이 계곡을 따라 닦여진 고운 어름길이다. 아쉽게도 접근이 모두 금지되어 있으나 길만 걷기에는 아까운 주위 풍경이 가득하다.


주중에도 나는 매일 산에 오른다. 물론 산이라 해봐야 살피재 옆 200m가 채 되지 않는 능선이지만 출근길로는 제법 숨차게 걸어 마루를 넘는다. 35~40분 정도 걸려 3~3.5km를 걷는다. 일요일에 쉬기커녕 몇 배를 더 걷는 나를 보고 딸아이가 요즘 젊은이들 표현으로 미쳤다!”고 한다. 나는 알아듣거나 말거나 응수한다. “homo ambultus!”

 

치매를 걱정해 침을 맞는 팔십 줄 노인이 있다. 나는 그에게 스스로 할 수 있는 몇 가지 치매 예방법을 말한다. 그 중 하나가 걷기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강조한다. “걷기는 건강을 위한 운동이 아닙니다. 걸어야 사람입니다. 수단으로도 무심코도 안 됩니다.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면서 걸어야 사람입니다. 걷기와 사람은 동의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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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 집회의 수행성 이론을 위한 노트
주디스 버틀러 지음, 김응산 외 옮김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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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한 존재라는 말은 곧.......철저히 의존적이라는 말이다.(217) 취약성은 사전에 예측할 수도 예언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어떤 차원을 의미한다.......즉 완전히 알 수.......없는 세계에 열려 있는 개방성일지 모른다.(214~215) 상호의존성을 어떤 아름다운 공존 상태라고만 상정하기는 불가능하다.......죽을 위험도 포함된다.(218~219)

 

취약하므로 서로 의존하는가? 서로 의존하므로 취약한가? 둘을 인과관계로 파악하는 일은 정당한가? 취약하다는 표현에 혹시 문제가 있는가? 의존한다는 말에 깃든 어감이 질문을 불러일으키는가? 상식에 기대어 별 생각 없이 읽으면 취약과 상호의존은 당연히 이어진다. 그 매끈함이 장차 커다란 오해로 발전할 빌미가 될 듯해 되작인다.

 

취약하다는 말과 의존한다는 말은 본디 같은 결로 마주 놓을 수 없다. 취약과 강인은 정도 문제고 의존과 독존은 여부 문제다. 취약을 결여로 바꾸면 의존과 마주 놓을 수 있다. 결여된 존재는 반드시 서로 의존해야 한다. 이 의존은 주고받는 거래나 교환을 의미한다. 이 거래나 교환은 편의나 부 차원 아닌 생사를 가르는 치명적 차원이다.

 

존재론적 차원에서 결여와 의존은 같은 내용을 다르게 표현한 말이다. 카를로 로벨리의 공변양자장이든 리처드 파인만의 최종 세 문장이든 결여 존재의 상호의존 또는 상호의존의 결여 존재가 세계를 구성하고 구동한다. 전자는 양전하 결여 존재고, 광자는 음전하 결여 존재다. 이 둘은 존재 자체로 상호의존이 아니면 세계 존재가 아니다.

 

취약 아니다. 결여다.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존재는 결여 존재다. 결여는 일극一極이다. 일극으로는 살 수 없다. 모든 존재는 이 이치에 승복한다. 오직 인간만이 이치를 거역한다. 돈 일극 자본주의, 언론 일극 가짜 뉴스, 사법 일극 검·’, 신 일극 통속종교 집중구조를 발명해 거기 중독中毒되어 있다. 중독은 중독重毒이다. 남도 죽인다.

 

함께 죽음 길로 내달리면서 의존하지 않는다고 거들먹거린다. 모든 것을 사전에 예측할 수도 예언할 수도 통제할 수도있다고 큰소리친다. “완전히 알 수.......없는 세계란 없다고 으스댄다. 그 잘난 지식으로 아름다운 공존 상태를 만든다고 꼬드긴다. “죽을 위험없는 불로장생을 꿈꾸라고 속삭인다. 소리 소문 없이 그렇게 살해한다.

 

함께 살 길로 내달리려면 서로 의존하며 겸손해야 한다. 사전에 예측할 수도 예언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세계에 열려 있는 개방성 아래 온전히 몸을 뉘어야 한다. 완전히 알 수 없는 세계 속에 깃들어야 한다. 그 무지로 아름다운 공존 상태를 거부해야 한다. 죽을 위험을 감수하며 흔연히 살아가야 한다. 소리 소문 없이 그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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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직 우리가 행동하도록 감화될 때만 행동한다. 아울러 우리는 바깥에서, 다른 곳에서, 남의 삶에서 비롯하여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무언가, 곧 결국 우리를 행동하게 만드는 어떤 넘치는 감정을 야기하는 무언가에 감화된다.(151~152)


 

생명 네트워킹 창발emergence은 타자가 건넨 한 소식을 감각함으로써 움튼다. 감각은 언제나 생사 갈림길을 제시한다. 감응response하면 살고, 반응reaction하면 죽는다. 감응은 고립자아 경계를 지우면서 들어와 감수感受sensibility을 연다. 감성 또는 감수성이라 불리는 이 파동은 기존 주파수를 교란해 변화시킨다[“감화”]. 감화는 넘치는 감정으로 꽃핀다. 넘치는 감정은 행동으로 결실한다. 행동이 새로운 인간과 인생과 세계를 드러내준다.

 

감각부터 행동까지 과정을 초군초군 톺아본 까닭은 감각, 감응, 감수, 감화, 감정, 행동이 이루는 서로 다른 결을 각각 살펴 좀 더 세밀한 역동에 이르기 위해서다. 이런 실사구시 자세는 내가 마음치유 임상의이기 때문에 나왔다. 내게 절실하다면 환자에게도 절실하다. 환자에게 절실하다면 환자 그득 품은 이 공동체에게도 절실하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안다면 한결 정확하고 옹글게 접근할 수 있다. 결절점마다 고유한 이야기를 품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데 무엇보다 홀대당한 생명사건이 바로 감각이다. 자기 경계 최전선인 눈, , , , 살갗에서 포착하는 타자 느낌이 정확하고 옹글어야 생명 네트워킹에 제대로 참여할 수 있다. 감각이 결락, 왜곡, 위축, 증강되어 있다면 이후 모든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 그럼에도 문제 본인은 물론 의학마저도 감각이상을 다만 분과 기능 문제로 처리해왔다. 감각은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를 아울러 살피는 척후다. 감각인문사회학, 감각생태학이 필요하다.

 

감응은 자기 삶 기존 경계를 지우는 일대사건이다.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는 그 다음 문제다. 일단 새로이 펼쳐질 내 삶 문제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뭔가 구체적 관계 설정이 가능해진다. ‘, 그렇구나!’ 하고 직면하는 일이 필요하다. 부정하거나 회피하거나 무시하는 병적 반응은 새로운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선포다. 감응과 반응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문제 당사자가 스스로 속거나 영악하게 속이기 때문이다. 개인도 사회도 마찬가지다.


직면하면 문제 자체를 자기 삶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다. 받아들이는 일은 통째로 흔드는 일이다. 설혹 잘못이었다 하더라도 나름대로 질서와 평안이 존재했던 기존 삶에 무질서와 불안을 대놓고 들여놓는 사건이다. 무질서와 불안은 큰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꿰뚫고 지나갈 수 없으므로 감수는 대단히 위태로운 사건이다. 그 비용을 부담, 수용하겠다는 유연성은 실로 치명적인 관용이다. 치명적 관용은 급기야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다. 요동이 극에 달한다.

 

극에 달해야 감화가 일어난다. 감화는 뒤집음이다. 뒤집음은 새로운 주파수에 생명을 맡기는 일이다; 산이 물 되고 물이 산 되는 일이다. 감화는 돌이킴이다. 돌이킴은 새로운 생애로 지향하는 일이다; 억압에서 자유로, 차별에서 평등으로 가는 일이다. 감화는 엎드림이다. 뒤집고 돌이키는 새로운 프레임에 절대 귀의하는 일이다; 패배를 배워 승리를 얻는 일이다. 감화 순간이야말로 결정적 순간이다. 심장 깨뜨려 눈물 만드는 이 화학 없으면 만사휴의다.

 

감화 화학은 눈물 꽃을 합성해낸다. 그 눈물 꽃을 우리는 넘치는 감정으로 경험한다. 넘치는 감정은 변화 카이로스에서 만개한다. 만개한 감정은 행동으로 흘러넘친다. 행동은 만개한 감정의 아기임과 동시에 새로운 정서의 엄마다; 변화를 추동하는 깃발이자 변화를 축하하는 팡파르다. 어제 예기와 내일 기억을 가로질러 오늘을 실현하는 행동은 형상 입은 감정이다. 형상 입은 감정은 찰나마다 감화를 추체험한다. 추체험 무한 중첩이 생명 네트워킹이다.


 

감응과 감수 단계에서 몽긋댈 뿐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난치성 환자 한 분을 묵상하는 과정에서 이 글 기조는 여러 번 변경되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아 있지만 교착상태를 풀어갈 실마리를 얻었다. 결정적 순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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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 북한산둘레길 우이령 구간 들어가는 입구 길가에 희한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바투 붙어 선 전신주 때문에 일부러 본디 몸통을 베어버린 듯하다. 그 등걸에서 나온 가지들이 여러 개의 몸통으로 곧추 자라 오늘날 모습을 이루었지 싶다. 의연하다거나 처연하다는 느낌이 의인화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큰 하나가 비운 자리를 작은 여럿으로 대신한 이 풍경이 네트워크가 무엇인지 떠올리게 한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하다. 더군다나 인간이 가야 할 길을 자기 상처로 넌지시 보여주는 나무가 도리어 자랑스럽게 다가오니 내가 아무래도 의인화에 된통 빙의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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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27 0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은행나무의 생명력 대단하네요. 인간 너희가 뭐라해도 나의 생명은 꺼지지 않는다 뭐 이런 웅변같은 나무입니다.

bari_che 2022-01-27 12:28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나무에게 체념은 없지요. 몸통이 통째 잘려나갔음에도 중력을 뚫고 태양을 향해 직진하는 생명력이 옹글고 우렁차고 낭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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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란 내게서, 또는 네게서 나오지 않는다. 자유는 우리 사이 관계로써, 또는 우리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고 또 발생한다. 따라서 중요한 문제는 각 개인 안에 있는 존엄성을 찾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관계적이자 사회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일이다. 자기 행동이 평등에 의존하고, 아울러 평등원칙을 분명히 하는 그런 관계적 존재 말이다.......그 어떤 인간도 홀로 인간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타자와 함께 행동하고 평등 조건에서 행동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인간도 인간일 수 없다.(130)

 

음 하나는 음악이 아니다. 음이 적어도 하나는 더 있어야 음악이다. 그 더해진 음높이와 음색이 본디 음과 같다면 역시 음악이 아니다. 음높이, 음색 중 적어도 하나는 달라야 음악이다. 그 다름이 이를테면 허공이다. 그 허공이 이를테면 사이다. 음악은 한 음에서, 다른 한 음에서 나오지 않는다. 음악은 다른 음 사이 관계로써, 또는”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고 또 발생한다.음악과 자유는 같은 본성을 지닌다. 이 본성 이야기로 한 걸음 더 전진해보자.

 

는 본성상 무엇인가? ‘하나는 인간이 아니다. ‘가 적어도 하나는 더 있어야 인간이다. 그 더해진 의 위상과 특성이 같다면 역시 인간이 아니다. ‘의 위상과 특성 중 적어도 하나는 달라야 인간이다. 그 다름이 이를테면 허공이다. 그 허공이 이를테면 사이다. 인간은 에서, 다른 ’-그러니까 ’-에서 나오지 않는다. 인간은 다른 ’ “사이 관계로써, 또는”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고 또 발생한다.인간과 자유는 같은 본성을 지닌다.

 

인간은 자유다. 자유가 아니면 인간이 아니다. 양상은 다르고 본성이 같은 사이 사건이다. 사이 사건은 온 존재가 지닌 본성이다. 그 본성은 평등 조건의존한다. 평등 조건에 의존한 자유가 인간이다. 인간은 낭·풀에서, ·풀은 돌꽃에서, 돌꽃은 팡이에서, 팡이는 박테리아에서, 박테리아는 바이러스에서, 바이러스는 DNA리플리콘에서, DNA리플리콘은 물리학 너머 생명 창발에서 발원했다. 창발은 동사로 표현한 사이다. 사이가 우주 자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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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1-22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