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일이송(영화감독)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일론 머스크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모든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다'라고 말했고, 빌 게이츠는 '대부분의 일에 인간이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간단한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일자리와 소득이 없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가족을 부양하고, 의료 서비스를 받고, 집세를 낼 수 있을까요?"
며칠 전 버니 샌더스가 언론과 한 인터뷰 내용이다. 180만 명 이상이 공유하며 화제가 됐다. 버니 샌더스가 AI에 대한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높이기 시작한 건 11월 중순경. 이후 폭포수처럼 계속 비판의 말을 쏟아내는 중이다. 아니, 이 양반이 왜 AI에 대한 말이 없지 싶었는데 기다렸다는 듯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저는 규제 없는 인공지능 개발 및 배포 경쟁을 부추기는 데이터 센터 건설에 대한 일시 중단을 추진할 것입니다. 이러한 중단 조치는 민주주의가 기술적 발전을 따라잡을 기회를 제공하고, 또 기술 혜택이 상위 1%만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돌아가도록 보장하는 길입니다."
그동안 집요하게 과두제를 비판해 온 버니 샌더스가 AI의 기술적 성취를 독점하는 빅테크 자본을 겨냥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일 것이다. 문제는 이 노령의 정치인을 제외하고 미국에서도 여전히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을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의 목소리를 잠깐 들어보자.
"트럼프 당선 이후 마크 주커버그는 250억 달러, 제프 베조스는 360억 달러, 래리 엘리슨은 780억 달러, 일론 머스크는 1870억 달러 더 부유해졌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한편 미국인의 60%는 빠뜻하게 살아가고 있고, 식비와 주거비가 치솟고 있으며, 심지어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없애고 있습니다."
"향후 2년 안에 AI 데이터 센터는 전기 요금 폭등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약 4천억 킬로미터 이상을 자동차로 주행하는 것과 맞먹는 수준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지구에서 태양까지 1,600번 왕복하는 것과 같은 양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AI 데이터 센터 건설을 일시적으로 중단해야 합니다."
"인공지능이 좋은지 나쁜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인공지능을 통제하고 누가 그로부터 이득을 얻는가의 문제입니다."
"트럼프는 인공지능 규제를 완화하고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려 합니다.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는 소수의 재벌들을 더욱 부유하게 만드는 반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일자리와 소득을 잃게 할 것입니다. 인공지능은 우리 모두의 삶을 개선해야지, 소수의 억만장자들만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현재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이 인간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설계된 것인지, 아니면 민주주의와 사생활을 훼손하고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을 더욱 부유하고 강력하게 만들 것인지 여부입니다."
"거대 기술 기업의 과두 재벌들은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후보들을 낙선시키기 위해 수억 달러를 쏟아부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시민연합(Citizens United) 판결을 뒤집고 선거에 공적 자금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억만장자들이 선거를 매수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AI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창조적 일에 함께 참여하는 게 인간 본성이라는) 교황 레오의 말씀이 옳습니다. "인공지능 개발이 진정으로 공익에 기여하고, 소수의 부와 권력 축적에만 이용되지 않도록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기술의 혜택이 부유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돌아가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버니 샌더스의 말은 경청할 가치가 넘친다. 무작정 AI를 거부하는 게 아니다. 그 기술이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소수의 부자가 아니라 모두에게 이로운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며, 또 그러기 위해서 민주적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에서도 이런 비판적 성찰과 지성이 더 많아졌으면 싶다. 일자리 걱정을 한다는 노동조합이 성명서를 AI로 대리 작성하고, 환경을 걱정한다는 환경단체가 성명서를 AI로 작성하는 무비판적인 관성이 얼마나 문제적인지도 함께 살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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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백반집이 오늘 쉬는 탓으로 거리를 헤매며(!) 저녁 먹을 음식점을 찾는다. 큰길로 나와 전에 몇 번 갔던 생선 음식점이 기억나 들어간다. 혼자임을 확인하더니 오늘은 안 된다고 자른다. “전부 예약석입니다.” 나는 하릴없이 돌아선다. 다시 거리로 나오며 생각해 본다. 일인 테이블 모두가 예약돼 있다고? 뭔가 이상하다. 곡절 있거니 하지만 거절당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다.

 

한참 더 걸어 오리·닭 음식점 앞에 선다. 잠시 망설인다. 이 집도 여러 사람 함께 먹는 요리 중심이라 아까처럼 또 되돌아 나올 가능성을 예상해서다. 에이, 뭐 어때, 하고 들어간다. 대신 먼저 묻는다. “혼자 먹을 수 있습니까?” 나를 맞은 사람은 흔쾌히 그렇다고 대답한다. 다행이다. 삼계탕과 소주를 주문한다. 사부자기 외투를 벗어 옆에 놓는다. 소주부터 한 잔 따라 마신다.

 

오랜만에 먹어서기도 하려니와 삼계탕이 유난히 맛있는 며리가 기분 탓이기도 하다 여긴다. 다 먹고 마시고 나올 때까지 혼자 온 사람은 나뿐이다. 계산대 앞에 서자 주인장 여자 사람이 웃으면서 연삭삭하게 말한다. “들어오실 때 묻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비롯할까? 단지 영업 기술 문제로 치부하기엔 무언가 더 깊거나 너른 이해 방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가볍게 들어왔다가 가장 허망하게 나가는 직업으로 여겨지지만, 요식업은 결코 쉽게 생각해선 안 되는 직업이다. 아픈 사람 고치는 의료업보다 배고픈 사람 먹이는 요식업이 이치로 따지자면 훨씬 더 섬세한 판단과 성찰을 요구하는 직업이다. 음식 자체는 물론 그걸 먹으러 들어오는 사람을 허투루 여기는 짓은 생명 모독 행위다. 음식도 숭고하고 식사도 존엄하니 말이다.

 

집으로 향하며 나를 되돌아본다. 나는 어떤 의료인인가? 전부 예약석이라며 혼자 온 손님을 내보내는 집주인 같은가, 혼자 먹을 수 있는지 묻지 않아도 되는 집주인 같은가? 내 가난이 혹시 혼자 온 손님을 푸대접하는 집주인 같아서 빚어진 결과는 아닌가? 나 자신에게 부리는 이 냉갈령 탓에 술이 깨버리기 전, 얼른 씻고 잠자리에 든다. 푹 자고 일어나면 답이 머리맡에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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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집중 촛불이라 오후 3시부터 420분까지 집회하고 행진할 예정이라 한다. 한의원 접수 마감이 3시니까 아무래도 집회 참석은 어렵겠다. 행진이나 끝까지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서둘러 떠나 최단 경로를 거쳐서 가니 다행히 집회 마무리 부분이 진행되고 있다. 잠시 후 행진 선두가 출발하고 바로 뒤 대열에 합류한다. 서초대로를 따라 교대역 방향으로 천천히 나아간다.

 

내게 이 길은 익숙하다. 많은 촛불집회가 열린 곳이기도 하지만 20년 전 교대역 근처에 한의원 처음 열어서 숱하게 지나다닌 길이다. 아직도 한의원, 음식점서껀 기억에 남은 여러 점포 간판이 그대로 있음을 확인하며 씁쓸해한다. 이명박 정권 때 한의원 털리며 당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모질고 아픈 시간이었다. 여태 그 후유증에서 온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징하다.

 

돌이켜보면 슬기롭지도 거쿨지지도 못했던 나만 아니라 좌뜨고 우접은 숱한 사람들이 골수 부역 권력이 휘두른 칼에 쓰러졌다. 박정희와 그 졸개들은 그나마 정치범으로 묶어 감옥에 보냈지만, 이명박은 잡범으로 몰아 삶 터전을 뭉개버렸다. “영혼 자체가 악령화한 인간 사회에서 가장 비인간적인”(임헌영) 친일파 아이콘 그가 아직도 활보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참담 무비다.

 

한의원이 있던 건물 앞을 지나간다. 언제 또 이 서초대로 차선 걸어서 여길 지나랴 싶어 사진으로 남긴다. 폐부에서 찌르르 슬픔을 전해온다. 강남역 네거리를 왼쪽으로 돌아 강남대로 위에 선다. 이어 신논현역 방향으로 나아간다. 흥청거리는 이 부역 도심 번화가 한가운데를 자주민주주의 외치며 지나가자니 모순과 역설 감각이 뒤엉키다 휘황한 불빛 아래서 부서진다. 배고프다.

 

뭘 먹지, 마음 쓰다가 문득 몸이 여길 떠나라고 하는 말을 듣는다. 그렇구나! 내가 여길 먹으러 온 게 아니다. 아니. 여긴 당최 내가 뭐 먹을 곳이 아니다. 나는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간다. 몸도 마음도 열어놓을 수 있는 음식점을 기억해 내고 그리로 간다. 얼큰한 두부두루치기와 따끈한 굴국을 안주로 소주를 마신다. 최순실 25, 김명신 50, 합계 75번째 광장이 이렇게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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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메디닷컴에 백우진(『나는 달린다, 맨발로』저자) 님이 쓴 글을 그대로 올린다


걸음걸이는 사람마다 다르다. 한 사람의 보법은 그의 지문이나 홍채처럼 고유한 특징을 보인다. 보법을 다양하게 하는 여러 변수 중 하나만 꼽으면, 발을 디디는 각도가 있다. 그에 따라 팔자걸음과 안짱걸음, 두 발이 평행을 이루는 걸음이 구분된다. 팔자걸음과 안짱걸음도 사람마다 각도가 차이가 난다.
이에 착안해 사람의 걸음걸이로 그가 누구인지 인식하는 인공지능(AI)이 개발되기도 했다. 이런 인식은 AI가 아닌 일반인도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고 상당 시간 그의 보법을 유심히 관찰해 둔다면, 멀리서 걸음걸이만 보고도 그가 오는지 맞힐 수 있다.
만인만색인 보법이지만, 현대인이 공유하는 걸음걸이의 특성이 있다. 뒤꿈치부터 착지하는 것이다. 이 걸음걸이는 대다수에게 기본이 됐다. 정형외과 전문의조차 유튜브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걸으라고 조언할 정도다.
“발은 뒤꿈치부터 착지하고 발끝으로 지면을 차내는 것 같이 걷는다. 즉 발 뒤꿈치부터 착지→ 발바닥 전체를 지탱→ 발끝으로 차내는 것처럼 걷되 발바닥에 걸리는 힘의 중심을 이용해 나간다.”
뒤꿈치 착지는 자연스러운 걸음과 반대 방식이다. 인류는 수백만 년간 발 앞부분부터 디뎠다. 발 앞 착지를 연구할 필요는 없다. 지금 당장 사무실에서 신발이나 슬리퍼를 벗고 몇 발 떼어보라. “나는 맨발(실은 양말을 신은 상태)로도 뒤꿈치부터 닿는데?” 이렇게 답할 분은 아마 없으리라.
샌들과 모카신 같은 가죽신을 신고 걷고 뛴 이후 수십만 년 동안에도 걸음걸이는 맨발 보법과 다르지 않았다. 다리를 뻗어 발 앞부터 착지한 뒤 발을 굴러 앞으로 이동했다. 모카신은 가죽 한 장으로 갑피와 신창이 만들어져 뒤축이 없다.
발걸음을 뒤꿈치 착지로 왜곡한 요인은 신발 뒤축이다. 신발을 신은 다리를 앞으로 뻗으면 뒤축부터 땅에 닿기 쉽다. 발앞부터 착지하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뒤꿈치 착지가 습관이 된다. 그렇게 우리 대부분은 뒤꿈치 착지자가 됐고, 전문가들도 뒤꿈치 착지를 주장하고 있다.
이제 신발의 매트릭스에서 벗어나자. 적어도 가볍게 산책하거나 작심하고 운동할 때는 뒷굽이 낮거나 없는 신발을 택하자. 워킹화나 러닝화 중에서도 그런 종류가 있다. 이름하여 제로드롭(zero drop) 신발이다. 일반적으로 신발 뒷굽이 앞보다 두꺼워 차이가 있는데, 제로드롭 신발은 그 차이가 없다. 밑창이 얇고 제로드롭인 스니커즈도 괜찮다. 발레 토슈즈처럼 디자인된 플랫슈즈도 좋다. 필자가 추천하는 맨발 대용 신발은 밑창이 얇아 바닥의 굴곡을 느낄 수 있는 발가락신발이나 아쿠아수즈다.
‘많이 걸으면 그만이지, 걸음걸이까지 바꿀 필요가 있어?’ 이런 의문을 품은 분들이 계시리라. 발 앞 착지에는 자연스럽다는 점 외에 실질적인 이득이 있다. 제2의 심장인 종아리를 자극해 혈액순환이 뒤꿈치 착지보다 훨씬 좋아진다. 뒤꿈치부터 디디며 터벅터벅 걸으면 종아리 근육은 전혀 가동되지 않는다. 발 앞부터 착지하면 종아리 근육이 수축하면서 정맥을 압박하고, 이에 따라 종아리 속 혈액이 심장 쪽으로 쭉쭉 올라간다. (종아리 펌프를 강하게 박동하게 하는 운동을 강도 순으로 꼽으면 맨발 달리기와 줄넘기, 까치발 들기 등이 있는데, 이 글에서는 걷기에 집중하기로 한다.)
종아리는 제2의 심장이고, 이 펌프를 움직이는 레버가 발이다. 뒤꿈치가 아니라 발 앞으로 바닥을 디뎌야 이 레버를 통해 제2의 심장이 뛴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이 있다. 뒤축이 없더라도 신발 안에 ‘아치(발바닥활) 서포트’가 있다면 그런 신발은 산책하거나 운동할 때는 신지 말라는 것이다. 아치 서포트는 발이라는 레버를 붙잡아두고, 그렇게 되면 종아리 펌프가 덜 작동하기 때문이다. 아치 서포트란 우리 발의 아치(발바닥활)을 받쳐주는 구조를 가리킨다. 아치 서포트 깔창 상품도 다양하게 나와 있다.
제로드롭에 밑창이 얇은 신발을 신고 걸어보라. 걸음마 이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자연스럽고 제대로 된 걸음을 시작하게 된다. 게다가 종아리를 자극해 피돌기를 활발하게 하는 첫걸음을 떼게 된다. 요철이 있거나 올록볼록한 구간, 또는 보도블록을 벗어나 바닥이 고르지 않은 곳이 보인다면 일부러 그런 지면을 걸어보라. 발을 통한 종아리 자극이 무엇인지 근육으로 느낄 수 있다.
자연적인 신발을 신으면 걸음걸이가 달라진다. 자연주의 보법도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것이다. 다만, 누구나 공통적으로 발을 구르는 동작을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될 것이다. 그 구분 동작을 할 때면 이렇게 상상할 수도 있다. 내가 지구를 굴린다고. (골프를 하면서 뒤땅을 자주 친다는 신도의 말에 법정 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작은 공을 치랬더니, 큰 공을 쳤군요.”) 지구를 굴리면서 걷다 보면 자연스러울 뿐더러 당당하고 멋진 나만의 걸음걸이를 만들 수 있다. 그런 걸음걸이가 몸에 배면 뒷굽이 잇는 신발을 신고 다닐 때에도 신발의 왜곡으로 인한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다.
요즘 걷기는 일거양득 운동이다. 서울시와 민간 앱을 통해 하루 걸음 수에 따라 포인트를 챙길 수 있어서다. 이왕이면 같은 시간에 더 큰 운동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발 앞 착지를 취하자. 걷기라고 해서 다 같은 걷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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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버지라 부르는, 딸 아닌 딸 마흔일곱 살 여자 사람 하나 있다. 오늘은 광장으로 나가는 대신 그를 만나러 간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초겨울 냉기가 은근하고 얄밉게 파고든다. 보자마자 그는 추운데 옷이 그게 뭐야?” 한다. 본성대로다. 나는 나름대로 기상 정보 따라 알맞다고 여겼는데 제 눈엔 아닌 모양이다. “험험, 안 춥거든?” 해보지만 김 나는 국물이 눈앞에 아른거리니 그 잔소리가 옳거니 옳다.

 

미리 알아둔 음식점으로 들어가 만두전골을 주문한다. 차끈한 술 다습게 그득 부어 잔 부딪어 마시니 겨울비야 오든 말든 우린 봄날이다. 술잔 내려놓고 나는 바짝 다가가 ” ‘아이얼굴을 들여다본다. “심하게 휘지진 않았구나.” 안도하자 그가 경쾌하게 받는다. “누구 딸인데!” 오늘따라 그 말이 찌르르 심장을 파고든다. 이겨냈다는 말인지 견뎌냈다는 말인지 아리송하지만, 생각보단 걱정이 쉽게 내려져서 좋다.

 

그와 나를 이어준 끈이 격심 우울증이었기에 내게 그는 언제나 아픈 손가락이다. 가정생활 사회생활 다 각다분해 그 가슴엔 욕설이 따글따글하다. 나는 그가 쏟아내는 욕설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응원해 왔다. 아픈 사람 욕설은 비명이며 신음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에서 대놓고 역성들었더니 참 자랑스러운 딸 두셨습니다~”라며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었지만 구태여 욕설 의학을 설파하진 않았다.

 

사실 욕설만큼 단도직입 진솔하며 엄밀한 언어는 없다. 이 뱉어내는 욕설은 비루하고, 이 부르짖는 욕설은 존엄한 까닭이다. 특히 깊은 병을 앓는 사람이 피 토하듯 퍼 올리는 욕설은 목숨 냄새 낭자한 생화학이다. 비린내 물씬 풍기며 들이치는 욕설로 그가 자기 영성을 드러낼 때 나는 그에게서 신을 본다. 거친 외마디로 달려오는 그 지극한 부드러움에 나는 녹는다. 나는 참 자랑스러운 딸을 두었다. 고맙다.


 

집으로 돌아가다 겪은 일을 그가 페이스북에 올렸다. “내 인생 아버지 같은 분과 서울서 만나 오랜만에 회포 풀고 집에 가는데 지하철역 앞에 웬 할머니 한 분이 우산도 없이 걸어가시네. 이 시간에 어디 가시냐 했더니, 새벽인 줄 알고 주일 예배드리러 나왔는데 밤중이라며, 그냥 교회 가서 자려고 한다셔. 나도 교회 다녀봐서 알지만, 요즘 교회는 잃을 게 많아 절대 문 안 열어놓거든. 걸으며 얘기 듣다 보니 울 엄마랑 동년배시다. 교회까지 모시고 찾아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문이 잠겨있네. 겨우 당직 집사 찾아 들어가 자모실에서 주무시게 이부자리 깔아드리고, 잠드시는 것까지 본 뒤 돌아섰어. 막상 집에 오려니 택시는 안 잡히고, 춥고, 무턱대고 따라가느라 어딘지도 모르겠고, 간신히 집 앞에 와서 깬 술 채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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