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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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이름만으로도 우리를 육중하고 날카롭게 찔러오는 무엇이 있습니다. 결코 은유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눈앞에서 누구는 가라앉았고, 누구는 구조되었습니다.

 

게르만민족주의 기치 아래 나치정권이 유대인을 포함한 소수자를 대량 학살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모일숭미 기치 아래 매판정권이 단원고 아이들을 학살한 세월호의 역사적 맥락은 다르지만 정치적 본질은 다르지 않습니다. 수백만과 수백의 차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생명의 관점에서 보아야 하므로 무한대와 만분의 일 무한대의 차이가 없는 수학적 진실을 원용해야 합니다. 오히려 자국 정권이 자국 국민을 살해한 것이므로 그런 의미에서는 죄질이 더 무겁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여기 우리는 슬픔을 넘고 분노를 지나 냉철함으로 세월호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프리모 레비가 있으면 다시없는 행운이겠지만 프리모 레비 존재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니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 대신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곡진히 읽어 그의 이해 지평으로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가면서 우리 진실의 결을 더듬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부록으로 붙여진 프리모 레비와 <라 스탐파> 지의 인터뷰(조르조 칼카뇨 정리)와 작품 해설(서경식 씀)부터 읽어 나아가겠습니다. 작품에 대하여 프리모 레비가 직접 들려주는 말과 누구보다 프리모 레비 이해에 탁월한 서경식의 안내를 통해 좀 더 핍진한 독서로 다다가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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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

 

  김행숙

 

  악몽이란 생생한 법입니다

  몇몇 악몽들이 암시했고 별빛이 비추고 있었습니다

  저녁노을의 빛과 새벽노을의 빛 사이에 별이 못처럼 꽝꽝 박히고 새파란 초승달이 돋아나 가장 어려운 각도로 서 있습니다

  휘청하는 순간처럼 달빛이 검은 천막을 찢고 있었습니다

  별이 못이라면 길이를 잴 수 없이 긴 못, 누구의 가슴에도 깊이를 알 수 없이 깊은 못입니다

  오늘 밤하늘은 밤바다처럼 빛을 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같습니다

  꿈이 아니라면 이제부터 진짜 악몽이라는 듯이 동쪽에서 번지는 새벽노을이 얼룩을 일그러뜨리며 뒤척입니다, 어디에 닿아도

  빛을 비추며 아이를 찾아야 했습니다

  서로서로 빛을 비추며 죽은 아이를 찾아야 했습니다

  어디서 날이 밝아온다고 아무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             *             *

 

  김행숙을 읽기에 

  제 서정은 여전히 통속합니다

  이 통속함이 끌어안는 여기 아이, 그러니까

  죽은 아이

  아무래도 제게는 은유가 아닙니다

  참으로 죽은 아이입니다

  이백쉰 개의 이름을 지닌

 

  이백쉰 개의 이름은

  이백쉰 날

  엄마 마음 속에 살다가

  진실, 꼭 하나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이백쉰 달

  이백쉰 해...

  길이길이

  살아갈 것입니다

  살아가게 해야 할 것입니다

 

 

* <빛>은 「에코의 초상」(2014, 문지)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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뚫리지 않는 벽만큼 단단한, 뚫으리라는 희망. 그 희망을 저버리는 것이 퇴폐다.

(이성복의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우리가 단단한 벽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뚫으리라는 희망 또한 그 만큼 단단한 게 확실한가요.

 

혹시 지금 우리 퇴폐 일로를 치닫고 있지는 않습니까.

 

막연한 공포 탓이면, 공포가 걷히기를 바라지 맙시다.

공포를 안은 채 한 발 나아가면 고요가 들이닥칩니다.

 

알량한 탐욕 탓이면, 탐욕이 걷히기를 바라지 맙시다.

탐욕을 안은 채 한 발 나아가면 공존이 들이닥칩니다.

 

한심한 무지 탓이면, 무지가 걷히기를 바라지 맙시다.

무지를 안은 채 한 발 나아가면 진실이 들이닥칩니다.

 

벽을 단단하게 한 공포 탐욕 무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희망도 단단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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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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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이런 책이 나와야 하는 현실이 슬프다. 이런 책을 내준 「문학동네」가 고맙다. 고마워서 낙망하는 심정의 실재를 해량할 테니 이에 관해 길게 주절대지 않겠다.

 

1. 이 책의 이름이 「눈먼 자들의 국가」인 게 다행이다. 불행이다.

 

2. 「문학동네」특집도 어깨를 추어올리고 얼굴을 묻어가며 읽었고 「눈먼 자들의 국가」에 실린 다른 글들도 안경을 벗고 마른 침을 삼켜가며 읽었다. 읽어 나아가면서 어깨는 내려왔고 얼굴은 들어 올려졌다. 안경은 다시 눈앞에 자리 잡았고 침은 더 이상 마르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읽는다. 또 다시 읽는다. 지금도 읽기를 반복하면서 이 글을 더듬더듬 쓴다. 왜 이러나. 여러 번 읽는다고 해서 그 곡절이 명료하게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일부 작은 내용을 빼고는 모든 글들이 한 방향을 향해 있다는 사실이다. 그 방향은 이미 기울어진 길을 따라 “안 돼! 안 돼!” 하면서 미끄러져 내려갈 수밖에 없는 바로 그런 방향이다. 그러니까 여기 정치의 이름으로 자행된 제노사이드 앞에서 묘비명 이야기를 최선 다해 하자, 뭐 그런 느낌이 든다는 말이다.

 

3. 물론 「문학동네」가 합의한 사회정치적 견해가 느슨하게나마 있을 것이다. 거기에 터하여 원고 청탁을 했을 테다. 물론 「문학동네」동네 인사들이 저마다 지닌 상처의 상황이 있을 것이다. 거기에 터하여 원고 청탁을 받아들였을 테다. 모든 정황을 감안하고서도 의아해마지 않는 것은 왜 열두 편의 글들이 일제히 어떤 지점에서 멈추어 서느냐, 하는 점이다. 정치집단의 공식 입장도 아니고, 제도언론의 보도·논평도 아니건만, 날카롭든 날렵하든 엄중하든 둔중하든 진실의 불투명성 속으로 단도직입하는 섬뜩한 미학적 윤리적 기미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두어 사람의 글, 두어 부분에서 톡 쏘는 맛을 낼 뿐. 심지어 어떤 글들은 마지막에 너무나 당연한 몇 마디 하기 위해 장황한 서구 레퍼런스를 방패막이 삼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글들은 동어반복으로 일관한다. ‘공공公共의 상상력’이 이렇게까지 결딴난 사회인가. 참담하다.

 

4. 처음에는 열두 편의 글 하나하나 정성스레 덧손질 해 볼 요량이었다. 그만둔다. 무명의 변방 의자醫者로서 두어 마디만 말하려 한다.

 

열두 편의 글을 관류하는 개념 둘은 무능과 부재다. 이는 사고가 사건으로 전화되었다는 대전제 아래 형성된 개념이다. 만일 처음부터 사건이었다면 무능은 전능이며, 부재는 편재다. ‘공공公共의 상상력’은 이 쟁점을 유언비어로 유기해서는 안 된다.

 

사적 소회는 치지도외하고라도 공적 분석을 가한 사람들에게서조차 역사의 문제를 곡진·결곡하게 거론한 경우가 거의 없다. 공시적synchronic 프레임만큼, 아니 보다 더, 잔혹하며 집요한 악의 에너지는 통시적diachronic 내러티브에서 나온다.

 

0. 우리는 모두 명확하고도 모호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그 모순된 공포가 어디서 왔는지 묻지 않고 어떻게 극복할지 묻는 질문은 대체 무슨 질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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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서요, 차마

못하겠어요

 

겨우

이건가요

<눈먼 자들의 국가>

 

어른

그것도,

깨어 있는

어른들이

 

할 수 있는

말이

 

꼴랑, 이 정도란 말인가요,

그게 당신들의 시이며 소설이며 평론이며,  

그리고 인문학이고 사회학이었나요

 

유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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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7 23: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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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8 10: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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