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명령 체계, 모든 지배의 기술은 피지배자를 예속시키기 위한 고유한 성물Devotionalie을 만들어낸다. 성물은 지배 관계의 물질화로서 지배 관계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한다. 성물은 곧 예속됨Devot을 의미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일종의 디지털 성물이다. 아니, 디지털 성물이 곧 스마트폰이다.(25쪽)


지난 토요일 지인과 식사하고 술 한 잔 하다가 음식점에 스마트폰을 두고 나왔습니다. 다음날 아침에야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오후에 다시 음식점을 찾았으나 휴무였습니다. 연락은 물론 송금과 같은 실생활의 상당 부분을 스마트폰에 의존하고 있었으므로 만 이틀 동안 이런저런 성가심이 톡톡 심사를 건드렸습니다.


성가심보다 더 날카롭게 느껴지는 것은 불안이었습니다. 느닷없는 분리 또는 불연속이 환기하는 예기豫期 불안 말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분명한 내용도 없고 어떤 지향도 없는 염려 또는 초조가 순간적으로 싸하게 속을 후비며 들어오고는 했습니다. 이는 아마도 중독에 육박하는 익숙함이 단절되면서 밀려드는 격정일 것입니다.


익숙함은 곧 “예속됨”입니다. 예속된다는 것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하고 행동하고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하고 행동하고 책임질 상황이 별안간 엄습해올 때, 그러니까 자유가 들이닥칠 때 전방위 불안에 휩싸이게 됩니다. 불안은 이렇게 안팎이 맞물리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존재입니다.


편리함에 녹아 자유를 체념하는 상황에서 불편함을 통해 자유 감각을 일깨우는 분리 또는 불연속, 이것이 바로 스마트폰 없는 이틀의 진실입니다. 따지고 보면 스마트폰 없는 이틀은 스마트폰 있는 날들에 비하면 작은 틈에 지나지 않지만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각성의 빛, 돌이킴의 빛 말입니다.


스마트폰을 찾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불안의 파랑 밑에 갈앉아 있던 알 수 없는 평온의 정체가 다름 아닌 소통 없음의 자유, 적요의 자유였다는 사실. 소통이 강제인 세상, 훤화喧譁가 예속인 세상에서 소통을 중단하고 적요의 시공으로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는 사실. 홀로 앉아 달곰쌉쌀한 술을 마셨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오늘날 디지털 심리정치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디지털 심리정치는 수동적 감시의 시대에서 능동적 조종의 단계로 전진하는 중이며, 이로써 우리를 더 깊은 자유의 위기 속으로 빠뜨린다. 빅데이터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동력학에 대한 포괄적인 지식을 획득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심리정치적 도구다. 이러한 지식은 지배를 위한 지식으로서, 이를 통해 개인의 심리 속에 파고들어 반성 이전의 층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가능해진다.

미래가 열려 있다는 것은 행동의 자유를 구성하는 본질적 요인이다. 그러나 빅데이터는 인간 행동에 대한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이로써 미래는 계산하고 조종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디지털 심리정치는 자유로운 결정의 부정성을 관계의 긍정성으로 탈바꿈시킨다. 인간 자체가 긍정화되어 양화하고 측정하고 조종할 수 있는 사물이 된다.·······빅데이터는 인간의 종언, 자유의지의 종언을 선포한다.(24-25쪽)


어린 아들은 늘 아버지가 무서웠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생각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지시와 질책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매년 봄 산에 올라가 싸리나무를 베어서 자신의 가슴둘레만큼 큰 맷단을 만들어 선반에 얹어두었습니다.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그 매들은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최초로 아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들의 대답을 듣고 아버지는 빙긋 웃었습니다. 아들은 최초로 아버지가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더 착한 아들이 되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그 날은 아버지가 잠든 아들의 일기장을 몰래 꺼내 읽기 시작한 날이었습니다. 아들은 머지않아 아버지의 진실을 알고 경악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알고도 분노할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전능全能한 아버지가 전지全知까지 갖추어 완벽한 초월적 권위를 획득하는 순간, 인간적·윤리적 판단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들은 한평생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짜 힐링 - 달콤하고 매혹적인 심리치료의 진실
폴 몰로니 지음, 윤영삼.김경미 옮김 / 나눔의집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0. 일관된 신랄함에 반하다


책의 원제는 『The Therapy Industry: The Irresistible Rise of Talking Cure, and Why It Doesn't Work』입니다. 그대로 번역하면 『치료 산업: 대화요법의 압도적 성장, 그리고 그 허사의 근거』입니다. 번역본 제목『가짜 힐링』은 도발적이고 대중적이긴 하지만 저자의 의중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매우 신랄한 책입니다. 오랜만에 보는 긴 호흡의 비판자가 일이관지一以貫之의 뚝심을 보여줍니다. 갈피마다 설렘이 있었고 결말에 대한 궁금함도 컸습니다. 마지막 장에서 드러나는 실체를 보며 과연 그렇다 했습니다. 다만 날 세움이 예리한 만큼 반대 쪽 아쉬움은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는 인간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이거나 시공의 차이 문제일 것입니다. 독자는 또 독자의 한계를 안고 자신의 시공에서 틈을 메워 나아가면 되겠지요.


심리 또는 정신 치료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뭐 이렇게까지 세세히 들여다봐야 하나 싶기도 하니 모두에게 정독을 권한다고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호흡 가다듬고 읽으면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사회문화, 정치경제의 주류 시스템 작동 기전과 그에 희생당하는 인간의 문제를 통찰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이 아니라면 당최 알 수 없었을 묻힌 진실의 자락들이 도처에 보석처럼 박혀 있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우리 현실을 감안하면 이 책이 일깨우는 문제의식은 매우 귀중한 것입니다.


1. 토건심리학civil engineering and construction psychology(CECP)과 토건정신의학civil engineering and construction medicine(CECM)의 따귀를 후려갈기다


토건심리학/토건정신의학이란 말은 심리학/정신의학과 심리치료/정신치료 이론은 물론이고 실제 임상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식에서 토건의 전형을 보여주는 영미 주류 심리치료/정신치료 집단의 행태를 고려하여 그들의 지적 도구를 표현하려고 제가 만든 용어입니다. 그들을 통렬히 비판한 저자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토건이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멀쩡한 땅과 강을 파 뒤집어 인공물을 만드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이명박의 4대강사업을 떠올리면 설명이 더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저자가 상담심리학자인 만큼 전체 타깃은 토건심리학을 향하고 있지만 이해를 위해 먼저 토건정신의학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저자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하수인으로서 정신장애 진단과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을 무기 삼아 토건 방식으로 정신장애 문제를 다루는 주류 정신의학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정신의학은 그 근간에서 과학적으로 (어쩌면 윤리적으로도) 이미 파산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모습의 정신의학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 사회적 권력의 끄나풀로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더라도-거대한 음모의 산물이다.”(90-91쪽)


DSM은 이론과 임상적인 연구의 산물이라기보다 제약회사 로비의 산물입니다. 편람의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늘어나는 병의 숫자는 신약 개발의 건수에 따른 발명품입니다. 이 약들은 현란한 마케팅을 통해 완벽한 치료제로 포장되지만 소비자들은 더 이상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국가가 정신장애 문제를 사회정치적 문제 아닌 의료문제로 환원하는 정책을 쓰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받아들일 뿐입니다. 이 와중에 정신장애 진단을 받아 복약하는 사람의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평행을 이루는 토건심리학에 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심리적으로 훨씬 심각하고 만성적인 문제를 겪는 사람들도 이제는 정신과 의사들의 별 도움 안 되는 약물처방보다는 사람과의 접촉과 대화를 선호한다. 더불어 성격을 완전히 개조하여 우리를 ‘초인적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선전하던 유명 제약회사들에 대한 환멸도 커졌다. 하지만 오늘날 수많은 대화치료법들 역시 기존의 정신과 의사들과 제약회사들이 보여주던 과도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어휘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치료법을 홍보하고 있다. 심리치료법들도 점점 정신장애를 단숨에 치료하는 만병통치약처럼 자신을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50쪽)


토건심리학 또한 토건정신의학과 마찬가지로 심리적 고통 문제를 사회정치적 문제 아닌 개인 치료문제로 환원하려 합니다. “의학과 대등한 위치에 설”(52쪽) 수 있기 위해 심리치료는 더욱 더 전문교육을 강화하고 권위를 확보하려 합니다. 저자는 이런 음모적 토건 행태의 따귀를 후려갈깁니다. 후련하게 말입니다.


2. 사회유물론 심리학social-materialist psychology: 사회정치의 산물인 고통을 개인 문제로 돌리는 주류 심리학은 허사다It Doesn't Work


저자는 경구 같은 이 말 한 마디로 자신의 문제의식을 집약합니다.


빈곤은 영혼을 잠식한다.”(184쪽)


빈곤에게 잠식당한 영혼을 본디 상태로 되돌리려면 영혼에 손을 대서는 안 되고 빈곤에 손을 대야 한다는 진실을 머금고 있는 말입니다. 빈곤은 놔두고 영혼만 붙들고 약을 먹이려는 토건도 심리요법을 들이미는 토건도 말짱 허사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허사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진실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착취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런 인용문으로 자신의 견해에 갈음합니다.


우리가 살펴본 어떤 곳에서도, 우리가 검토한 어떤 사회적 연구에서도, 인간이 받는 스트레스의 주요 원천에는 대개 어떤 형태로든 과도한 권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364쪽)


저자가 제시하는 믿을만한 대안은 사회유물론 심리학입니다. 최후로 이렇게 정리합니다.


개개인에게 정신적 고통을 초래하는 경로를 우리가 모두 반드시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트라우마를 유발할 정도의 학대와 핍박, 정신을 황폐화하는 노동, 비참한 빈곤, 실직으로 인한 권태, 특권층의 도덕적 설교와 같은 물질적인 요인들이 물질적인 몸에 작용한 결과 불안과 정신이상이 발생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불행에 관해 이야기하도록 사람들을 설득하기보다, 불행을 야기한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빈곤층과 소외당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부를 재분배하고, 이들의 미래를 위해 더 많은 조언을 하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면, 이런 질환을 모두 해결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훌륭한 출발점은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364쪽)


3. 사람의 마음은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변방에서 중첩적 고통을 받고 있는 우리에게 저자의 신랄한 어조는 후련함으로 넘어 어떤 예언으로 읽힙니다. 다만 이런 난제를 하나 남깁니다.


·······이 관점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그러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떠한 결론도 주장하지 않으며, 그런 주장을 할 수도 없다. 요컨대 채워야 할 세부적인 내용도 많고 면밀히 검토해야 할 내용도 많기 때문이다.”(361쪽)


불행을 야기한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커다란 일의 필요성을 말하는 자리에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지침까지 언급할 여유는 없습니다. 저자와 그 동료들의 노력도 사실 얼마 되지 않은 초보 단계입니다. 우리가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우리에게 당장 시급한 무엇을 제공해주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의 몫이 아님에도 우리는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불행을 야기한 세상을 바꾸지 못한 현재 상태에서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 250명을 바다에 빠뜨려 죽이고도 요지부동인 권력 앞에서도 그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한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이런 고뇌에 터하여 저자의 신랄함 그 반대편의 불가피한 무딤을 우리 스스로 신랄하게 파고들 필요가 있습니다.


주류 심리학이 전제하는 “사회적 배경과 타고난 배경과도 완전히 구별되는·······단일한 완전체”(134쪽)가 없다는 저자의 주장은 옳습니다. 서구 유대-기독교 사상의 유구한 오류를 정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힘주어 말하는 이 부분은 책의 전체 논지로 보아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존재의 기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다. 모든 일을 결정하고 모든 일을 관장하는 내면의 결정자, 즉 정신적인 특성이 농축된 덩어리 같은 것은 없다. 전통적인 관점의·······자아란 환상에 불과하다. 자아는 우리의 행위의 원천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 속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겨지는 일련의 이야기에 가깝다.”(118쪽)


이 주장이 좀 더 단호해진 경우는 아래와 같습니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가정하는 “내면의 힘”은 사실상 외적인 우위가 반영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360쪽)


결국은 이렇게 됩니다.


환경이 핵심이다.”(226쪽)


인간의 마음이란 외부 조건을 반영하는 에피소드 정도입니다. 이 책의 전체적 논지로 보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의도적 강조입니다. 서구 관념론의 폐해가 극심한 만큼 벌떡 일어나서 박수를 쳐도 좋은 장면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더 넘어가면 안 됩니다.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원론적 관념론의 극단이 답이 아니라고 해서 그 반대편 극단을 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외부조건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은 몸과 외부 조건의 상호작용인 사건입니다. 핵심인 환경의 일방적 변방이 아닙니다. 환경과 몸의 마주-가장자리에서 피는 변화의 꽃입니다. 외부와 절연된 단일 고립체는 아니지만 감각·기억·사유를 통해 일정 정도 지속성과 지향성을 유지하는 경계를 지닌 정보이며 에너지입니다. 부단히 변한다는 것과 없다는 것은 다릅니다. 마음이 내부에 도사린 무엇이 아니라는 것과 외부의 반영이라는 것은 다릅니다. 저자는 마음을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마음에 대한 무딤을 가장 정확히 드러내는 지점이 바로 플라시보 효과에 대한 진부한 관념입니다. 플라시보 효과야말로 마음이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인데 안타깝게도 저자는 여기를 드문드문 보고 지나가버렸습니다.


다른 하나는 저자가 감정의 문제를 돋을새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것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에서 보면 부차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부분에서도 당장의 현실적인 부분에서도 관건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심리적/정신적 장애는 감정 문제가 핵심입니다. 주류 심리학이 이성·의지 일변도의 기법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허사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저자는 간과하고 있습니다. 감정 에너지의 왜곡이 뇌에 각인시킨 병적 정보는 빈곤이나 불평등과 같은 사회정치적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저자 자신도 이성·의지 중심의 서구적 사유전통 안에 있기 때문에 이 문제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0. 감정연대로 정치적 치료를 실현하다


비대칭의 대칭구조로 된 세계 진실 속의 마음, 그 마음속의 감정이 지닌 진실에 무딜 수밖에 없는 저자의 한계는 오히려 우리에게 육중한 도움을 줍니다. 그 무딤이 없었다면 이 책은 덜 신랄했을 것이니 우리가 우리 현실 문제에 대한 통찰의 감각을 벼리는 데 임팩트도 덜했을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우리 현안 문제를 신랄하게 묻고 신랄하게 답하는 계기를 새삼 정색하고 마련해야 합니다. 영미의 사실상 신식민지인 우리나라도 저자가 비판한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정신의학, 심리학, 상담학 이론 실천 모두가 영미의 것을 흉내 내기에 급급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극단화하고 교조화합니다. 세계체제의 외곽에 처한 우리 현실에서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지배층의 매판적 정체성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어 민중의 일대 각성을 절실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사회 각 분야가 강박적으로 정치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정치권력이 사회 모든 영역을 사적 이익구조로 바꾸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세월호사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진실을 은폐하여 대다수 국민이 잘못 알고 있으나 이 사건은 분명히 정치권력의 핵심이 개입된 사건입니다. 여기서 생겨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정신적 상처는 의당 정치적으로 치료되어야 합니다. 정치적인 치료가 실현되려면 마음 아픈 사람들의 감정연대가 필수적입니다. 저자의 어법을 빌어 맺음말로 삼고자 합니다.


“함께 흘리는 눈물이 핵심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자유주의는 시민을 소비자로 만든다. 시민의 자유는 소비자의 수동성으로 대체된다. 오늘날 소비자가 된 유권자는 정치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없다.·······그는 궁시렁궁시렁 불평하면서 정치에 수동적으로 반응할 뿐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정치가에게 요구하는 투명성정치적 요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그것은 참여하는 시민의 요구가 아니라 수동적인 구경꾼의 요구다.·······구경꾼과 소비자 들이 거주하는 투명사회는 구경꾼 민주주의를 수립한다.(22-23쪽)


‘남의 집 불구경 않는 군자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 집만 아니면 불구경만한 구경꺼리가 없다는 사실을 잘 담았습니다. 구경꾼 심리의 정곡을 찌르고 있습니다. 본디 구경이란 그런 것입니다. 구경꾼에게는 구경 그 자체가 이득인데 부가적 이득이 있는 구경꺼리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굿입니다. 여기서 생긴 말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입니다. “구경꾼과 소비자 들이 거주하는 투명사회” 심리 풍경에 대한 이보다 더 절묘한 묘사는 다시없을 것입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긍정심리가 갑인 사회, 대한민국.


불이든 굿이든 구경꾼에게는 어차피 남 일이니 거기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없”고 다만 “궁시렁궁시렁 불평”하는 정도가 최대한의 부정성 표현입니다. 변화는 언감생심 엄두조차 못 낼 일입니다. 남 일이니 세월호에 300명 넘는 사람들이 죽어도 궁시렁궁시렁하다 맙니다. 남 일이니 메르스에 걸려 수십 명의 사람이 죽어도 궁시렁궁시렁하다 맙니다. 설혹 이런 일들이 누군가의 고의와 조작으로 일어났다 하더라도 그 누군가가 나와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니 궁시렁궁시렁하다 맙니다. 궁시렁궁시렁·······


그러다 느닷없이 또 다른 세월호사건이 나를 덮치면, 또 다른 메르스사태가 나를 덮치면, 어찌 할까요? 답은 딱 하나뿐입니다. 공포 속에 죽어가는 것. 아무리 이웃을 향해 소리쳐도 돌아오는 반응은 궁시렁궁시렁 뿐입니다. 아무리 ‘그 누군가’를 향해 고함쳐도 돌아오는 반응은 가만히 있으라 뿐입니다. 수동적 소비자 구경꾼은 이렇게 서로 고립되어 함께 죽어가는 모순에 처합니다. 떡이나 먹지 하다가 떡이나마 먹었으면 하다가 떡마저도 먹지 못 하고 맙니다. “구경꾼”의 종말입니다. “구경꾼 민주주의”의 종말입니다.


꽤 오래 전, 수많은 인연 가운데 제 속을 가장 깊이 들여다본 어떤 이한테서 ‘너는 네 자신의 삶에서조차 구경꾼 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과한 표현 같아 서운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동안 저는 30대 중반 무렵 벗 하나가 건넨 ‘청초하다’는 느낌이 저를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믿어왔으니 말입니다. 결곡하게 따지면 구경꾼이란 표현이 진실에 가깝지 싶습니다. 60년 동안 제가 제 삶과 세상에 궁시렁궁시렁하며 산 것 아닐까, 돌아봅니다. “참여”를 소환하겠습니다. 제 시민 민주주의의 출발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정말로 자유롭고자 하는 것일까? 우리는 자유롭지 않아도 되려고 신을 발명하지 않았던가? 신 앞에서 우리는 모두 빚을 진 존재다. 그런데 빚은 자유를 파괴한다.·······우리가 빚이 없다면, 즉 완전히 자유롭다면, 우리는 정말로 행동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행동하지 않아도 되려고, 즉 자유롭지 않아도 되려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영원히 채무자로 머무는 것인지도 모른다.·······자본은 우리를 다시 채무자로 만드는 새로운 신이 아닐까?(18-19쪽)


저는 생애 초기 10년 동안 아버지가 없는 상태에서 자랐습니다. 10대의 10년 동안 아버지와 함께 살다가 20대의 10년을 다시 헤어져 살았습니다. 30대 초반 아버지는 60이 안 된 나이에 세상과도 헤어졌습니다. 함께하지 않은 20년은 물론 함께한 10년 동안에도 아버지는 거의 아버지로서 살지 않았습니다. 그 무엇보다 제가 인생의 중대한 기로에 서서 결단하고 행동하고 책임지는 순간, 앞 옆 뒤 어디에도 서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제 나이 이제 60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결단하고 행동하고 책임지는 일에 대해 지녔던 10살 이전 어린아이의 두려움이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하찮은 일과 커다란 일 사이에 구분 없는 절대 두려움이 매 순간 들이닥치곤 합니다. 두려움 때문에 발끝이 타들어오는 듯했던 이 경험들이 삶의 기조로 자리 잡은 우울증의 발화점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하는 데에는 주체적으로 결단하는 자유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자유에는 당연히 얽매이지 않을 것, 목적을 이룰 가능성이 열려 있을 것, 이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바입니다. 매우 중대한 요소를 우리는 빠뜨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맡김입니다. 내맡김은 믿음을 전제합니다. 믿음은 주체, 그리고 주체와 관계 맺는 사람들의 상호작용으로서 신뢰입니다. 인간의 상호작용으로서 신뢰는 인간의 근본 환경을 형성합니다. 인간의 근본 환경의 핵심에 가족이 있습니다. 가족의 핵심에 부모가 있습니다. 부모 가운데 아버지는 아이의 자유에 내맡김의 힘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입니다. 내맡기지 못한 채 망설이고 미루는 두려움이 자유를 잠식합니다. 행동의 순간마다 아버지가 그리운 소이가 여기 있습니다.


인간 그 누가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결단과 행동과 책임의 전후 맥락에서 완벽한 자유를 구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한 현실과 가능했으면 싶은 이상의 경계에서 집적된 실용적인 지혜가 “신을 발명”하였습니다. 이 발명된 신은 두려움을 맡아주는 대리 부모 노릇을 합니다. 절대적 드넓음the Spaciousness으로 승격된 이 대리 부모에게 의지하는 모든 종교의 본질은 유아 행태입니다. 아이의 현실에서 어른의 이상으로 나아가는 숭고를 체념한 타협입니다. 아니 중독입니다. 인간에게 진정 필요한 깨달음은 “완전히 자유롭다면, 우리는 정말로 행동해야 한다.”가 아닙니다. “완전히 자유로우려면,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입니다. 자유로운 자가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하는 자가 자유로운 것입니다. 그립지만 저는 아버지를 찾지 않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