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볼 수 없을 듯합니다. 그는 순도 99.99%의 우울장애 전형이었습니다. 모든 우선순위가 타인에게 있었습니다. 모든 중심이 타인에게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맨 뒤에서 주춤주춤 따라 걸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변두리에서 자신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그는 상담 내내 미안하다는 말을 무수히 반복했습니다. 어째서 미안하냐고 물으니 그가 서슴없이 대답했습니다.


“못나서요.”


그는 자신이 못나서 부모에게도 형제자매에게도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얼마나 절절했던지, 처음에 가슴이 먹먹하다가 나중에는 부아가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부아를 삭이면서 저 또한 절절한 심정으로, 뭐가 어떻게 못났는지 물었습니다. 그가 웅숭깊게 대답했습니다.


“태어난 것 자체가요.”


그의 팔목, 아니 팔에는 무려 20개에 가까운 칼자국이 있었습니다. 미안해서, 못나서, 그는 긋고 또 그었습니다. 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이나 유령인 채 잘난 사람들 언저리를 떠돌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돈이 있을 리 없습니다. 치료 받는 것도 미안하고, 돈이 없는 것도 미안하고, 그냥 와서 치료 받으라고 간곡히 권하는 제게도 미안해서, 결국 그는 두 번 다시 오지 못했습니다.


오래 전 딱 한 번 마주한 얼굴인데 잊히지 않습니다. 그가 아직도 건강을 되찾지 못 하고 아프디아프게 살고 있다면 여기에 제 책임도 없지 않다는 죄책감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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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를 끝내고 글을 쓰기 위해 한의원 철문을 닫고 막 돌아서는데 누군가 쿵쿵쿵 한의원 문을 두드렸습니다. 느낌이 예사롭지 않아 얼른 문을 열었습니다. 가슴 두근거림을 호소하며 두어 차례 침 맞았던 50대 초반 여인이 어둡고 다급한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안으로 맞아들인 뒤 침 치료를 위해 잠시 누워 기다리는 동안 고요히 그 옆에 앉았습니다. 무엇에 홀린 듯 여인이 입을 열었습니다.


“선생님, 저 말 좀 해도 되죠?”


문맥도 없이 대중도 없이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폭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들을수록 답답하고 대책 없는 사연들이 도무지 이로가 잡히지 않은 채 제각각 '미친년 널뛰듯' 펄떡거립니다. 어느 순간 여인은 꺽꺽 울음을 토해냅니다. 두 주먹을 불끈 쥡니다. 가슴을 두드리다 못해 쥐어뜯습니다. 사방팔방 팔을 휘두릅니다. 발버둥을 칩니다. 격심한 몸부림이 쓰디쓴 체취를 낭자하게 흩뿌립니다.


그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의 아픈 말을 들었습니다. 눈물을 보았습니다. 손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이 말을 하는 동안, 이 여인이 우는 동안, 저는 차마 그 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손을 잡으면 ‘그만 하라.’는 메시지가 될 수밖에 없는 지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못 박힌 듯 꼼짝 않고 그 광경에 주의·집중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는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저는 칼 날 위에 선 만신이었습니다.


드디어 긴 한숨과 함께 날뛰던 언어와 몸짓과 울음이 한 목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여인은 한참을 죽은 듯 숨소리조차 안 내고 있더니 나지막이 입을 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무어라 달리 할 말을 찾지 못 했습니다. 이해도 공감도 접근도 해결도 절연된 무력한 타인임이 분명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바로 이제-여기가 상담자의 시공입니다. 저는 여인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 말을 듣고 황감해 하는 여인의 젖은 영혼에 꽃 같은 한 마디를 놓아주었습니다.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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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지낸 지 참으로 오래된 사이인 초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였지만 정색하고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겠다며 찾아온 것은 실로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자주 가던 동네 밥집에 마주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그와 저는 묵직한가 하면 가볍기도 한 인생 이야기를 곡진하게 나누었습니다. 가장 행복한 술자리는 뒷부분 기억이 슬쩍 자리를 뜨는 것인데 딱 그렇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자리 뜬 기억 속에 더 많은 곡절이 들어 있을 수도 있겠으나 괘념치 않아도 될 듯합니다.


그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참으로 의외였고, 참으로 의미심장한 것이었습니다.


“6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내 인생에 종자種子신뢰를 가지게 되었네.”


의외였으나 저는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의 지난 60년 삶이 얼마나 신산했는지 짐작하기 때문입니다. 의미심장했으나 저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는 그 종자신뢰라는 말의 진실에 육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 종자신뢰라니.


“근원적이고 급진적인 내맡김이군. 진실의 문은 두 짝 문이라는 깨침에서 온 게야. 내가 늘 말했던 비대칭의 대칭에 자네가 먼저 통짜로 스며들었어.”


누군들 이름 없이 덧없이 살다 죽기를 바랄 것입니까. 각자 자기 자신의 스타로 떠서 한 생을 노닐다 가는데 기왕이면 ‘대박 나기’를 꿈꾸지 않는 이 그 누구겠습니까. 그의 청초한 입길에서 인욕忍辱, 아니 진욕進辱의 언어가 흘러나왔습니다.


“대박은 포르노지. 쪽박에서 딱 반걸음 떨어진 삶이 숭고하다 싶네만.”


그의 삶은 60년 동안 크게 6번 훼절되었습니다. 어머니 자궁에서 1번째 훼절되었습니다. 어머니가 그를 부정해 낙태를 시도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2번째 훼절되었습니다. 뱃속 아기를 죽이려다 실패한 어머니가 이번에는 젖을 내지 않았습니다. 10살에 3번째 훼절되었습니다. 모진 팥쥐 엄마와 맞닥뜨렸습니다. 24살에 4번째 훼절되었습니다. 법학도의 삶 줄을 스스로 끊었습니다. 38살에 5번째 훼절되었습니다. 신학도의 삶 줄을 스스로 끊었습니다. 52살에 6번째 훼절되었습니다. 공권력이 그의 의학도의 삶 줄을 끊어버렸습니다. 그는 지금 ‘파산’ 상태를 가까스로 수습하며 인생질병의 중환자로 발맘발맘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통의 한가운데서 마음병 앓는 사람들과 함께 서로의 삶을 숙의熟議하며 한 발 한 발 걸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의 이야기를 타고 흐르며, 묵묵한 경청이야말로 핍진한 숙의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어찌 보면 실패로 점철된 한 생을 살아가면서 결곡한 마음 챙김으로 증득한 종자신뢰에 무슨 입을 댄들 사족이 아니겠는가 싶으니 말입니다. 그와 저는 늦은 밤 밥집을 나서며 따스한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구름 위를 걷듯 사뿐사뿐, 술에 취한 듯 허정허정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저는 가만가만 그의 이름 석 자를 불러보았습니다.


“가~ㅇ·······”

“요~ㅇ·······”

“워~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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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4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15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15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 서재도 삶의 귀중한 일부다. 한 사람의 삶이 내러티브로 재구성되는 자리니 만큼 어쩌면 양극의 경계랄 수도 있는 시공이다. 제법 긴 공백이 이어지자 걱정해주시는 분까지 계실 정도이므로 각별한 애정을 기울일 만하다.


실은 5번째 책을 쓰고 있었다. 마음 아픈 많은 벗들과 나눈 상담 또는 숙담, 그리고 숙의의 고갱이를 정리한 것이 그 내용이다. 제1초고가 마무리되었다. 책 전체를 순서에 따라 공개하기보다 사례 가운데 공유했으면 하는 것들을 골라 서재 벗들과 미리 나누기로 한다. 



*

  

 수군대지

말고

숙의해요


0. 숙의에 이르는 먼 길

제1부. 수군대지 말고 숙의해요!

제2부. 여보세요! 여보세요! 맘이 아파요!

제3부. 똑똑똑! 맘 좀 열어주세요!

제4부. 네 설움 내 설움을 엮어나 보자!

00. 숙의로 찾는 새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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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주. 어제 그는 ‘박영주’를 떠나 우리가 살아가는 숨결로 돌아왔다. 내게 그의 애칭은 ‘대장’이었다. 그는 내가 가슴에 깊이 품은 애제자다. 내가 그를 아낀 것에 비하면 그에게 나는 그리 대단한 스승이 아니다. 그가 내게서 받은 어떤 가르침을 간직하고 살았는지, 그런 것이 있기는 한지, 알 수 없다. 부산에 강연 가서 만난 이후 30년 가까이 그가 나를 ‘선생님’이라 불러주어 스승으로 살았다. 감사할 따름이다.


그가 한 평생 대장으로 산 것은 확실하다. 나는 그의 그런 삶이 그를 소진시켰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그의 대장됨은 군림이 아니라 희생이었기에. 나는 그의 그런 삶 일부와 관련이 있다. 결혼 초 한창 고통당할 때, 나는 그가 청한 상담 선생 가운데 하나였다. 정직하게 말하면 나는 그 때 강력하게 이혼을 권했던 쪽이다. 그는 그러나 그 지옥 같은 결혼 생활을 헌신적으로 견뎌냈다. 임계점을 넘어섰다고 판단한 그가 뒤늦게 이혼을 결행했고, 얼마 뒤 그 후폭풍이랄 수 있는 충격적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 물론 그 뒤치다꺼리도 그가 다 했다. 이어 병마가 들이닥쳤다. 마침내 일은 여기까지 왔다. 나는 그의 병과 죽음이 이런 그의 삶과 단도직입의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판단에는 醫者의 지견이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그가 아프기 전, 그러니까 일생일대의 격전을 치르고 난 직후, 그를 보려고 나는 부산으로 내려갔다. 저녁 식사하고, 술 한 잔 하는 길지 않은 만남이 결국 마지막이 되었다. 그 때 나는 그에게 말했다. “영주야, 이제 더는 희생하지 마라.” 너무 때늦은 충고였다. 그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생각하든지간에 삼가 존중한다. 딸과 아들을 포함한 그의 가족들이, 벗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간에 삼가 존중한다. 다만 醫者인 스승임에도 그의 삶에 더 깊고 아름다운 치유로 참여하지 못한 큰 빚이 있어 부질없는 비손 하나를 헌정한다.


이제 내가 살아갈 때, 얘야

네가 더는 ‘대장’ 숨결 아니면 좋겠어


이제 한 남자사람 살아갈 때, 얘야

네가 더는 여자사람 숨결 아니면 좋겠어


이제 한 개신교인 살아갈 때, 얘야

네가 더는 ‘예수쟁이’ 숨결 아니면 좋겠어


이제 우리 살아갈 때, 얘야

네가 훨훨 자유 숨결이면 좋겠어





* 영주가 마지막으로 내게 준 편지. 소녀처럼 예쁘게 접었다. 언제나 그랬듯 올라갈 때 교통비 하라고 알뜰히 돈까지 넣었다. 노란 띠가 아름답고도 아프다. 나는 오늘 비로소 길게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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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5 0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5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