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자의 길을 가다보면 순간순간 전능한 존재가 되는 망상에 잠깁니다. 고통 가운데 망가져가는 사람의 참담한 모습, 좀처럼 변하지 않는 상황을 보면서도 이렇다 할 수를 내지 못하고 뭔가 계속 말해야 할 때, ‘손을 얹은 즉 병이 나았더라.’는 신약성서 속의 예수가 되는 헛꿈을 꿀 수밖에 없습니다. 어제도 이제도 다음도 모두 사기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회의가 밀려들면 모든 생각이 확 뭉그러집니다.


20대 초반의 청년이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들어섰습니다. 복잡하고 거대한 강박증후군에 시달려 심신이 극도로 피폐해진 상태였습니다. 5가지 화학합성약물을 처방 받아 복용하고 있었습니다. 효과는 미미한데 부작용이 뚜렷하고 다양해 약을 먹는 것인지 독을 먹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나마 약이라도 먹는다는 심리적 위안 때문에 끊지도 못한 채, 부작용으로 100kg이 넘어버린 몸을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학령기 이전 시골마을에서 누군가 개를 잡아 내장 손질하는 광경을 우연히 목격하고 충격 받은 이래 결벽 경향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동네 노인에게 성추행을 당해 그 경향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급기야 중학생 시절에는 야동을 접하고 다양한 더러움(!)에 치를 떤 이후 완연히 병적 상태로 돌입했습니다. 몇 시간씩 쏜을 씻어댔습니다. 자위행위를 하고 나면 손과 성기가 더럽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하루 종일 씻고 확인하느라 다른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소변을 보고도 그랬습니다. 성폭행의 가해자와 피해자 의식이 번갈아 찾아들면서 성기를 확인하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태를 대처하는 데 미숙했던 부모는 강제로 그를 정신병원 또는 수용시설에 4차례나 가두었습니다. 심지어 개신교 기도원 같은 곳에 감금해 놓고 결벽을 도리어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학교는커녕 그 어떤 외부 활동도 불가능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게 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혼신의 힘을 다해 그와 상담했습니다. 그는 처음에 저의 치료 방식과 효과에 매우 놀라워했습니다. 강한 신뢰를 표시했습니다. 그 또한 혼신의 힘을 다해 상담에 임했습니다. 한두 달 만에 상황은 몰라보게 호전되었습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외부 생활을 조금씩 재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안정에 도달하자 더 이상은 진전이 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어느 하나가 좋아지면 다른 하나가 불쑥 나타나는 방식으로 헛돌면서 교착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저도 그도 서로 안타까워하며 힘을 내었으나 좀처럼 타개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시나브로 지쳐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달리 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참으로 간절한 마음이 되어 대상 없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기도가 끝나면 참담할 따름이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일심으로 수련하면 기적의 영성을 획득할 수 있으려나, 부질없는 상념이 무시로 스며들었습니다. 가난했던 그는 쌓여만 가는 치료비 때문에 미안했고, 저는 나아지지 않는 게 미안했습니다. 서로 격려하며 견뎌온 연대는 는적는적 끊어져갔습니다.


이 과정이 진행되던 바로 그 무렵 저는 개인적으로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아 삶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그에게로 뻗었던 손을 지탱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한의원을 닫았습니다.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었습니다. 여태까지 많은 실수와 실패가 있었습니다. 소년티 그대로 묻어 있는 그의 선한 눈매가 이따금씩 떠오르면 전능한 신이란 정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뜬금없이 들고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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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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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투보 산속에서 화전농을 짓고 있던 필리핀 원주민 아에타족의 장로 격인 마가아브 카바리크가 요즘 ‘네스카페’에 푹 빠져 팬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인스턴트커피 회사는 좋아할지 몰라도, 오해 여든 살이 되는 카바리크한테 직접 이야기를 들은 나는 충격을 받았다.

이것은 어쩌면 문화인류학적으로 커다란 사건이 아닐까?

1991년에 일어난 피나투보 화산 폭발로 산속 생활을 버리고 산 밑, 하계로 내려온 아에타족은 좀처럼 보기 힘든 야외 생활의 달인들이며 독자적인 시간 감각과 이야기, 그리고 풍부한 자연식 문화를 가진 마음 따뜻한 소수민족이다.

그런데 거의 2년 동안 이어진 산 밑 생활이 그들의 식문화에 분명히 혼란을 가져왔다. ‘하계의 맛’을 익히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멀리서 피나투보 산을 바라보며 그 속의 사라져가는 진짜 맛을 마음속으로 그리워하기도 했다.

애처로울 정도인 미각의 갈등이 있었다.(44-45쪽)


열 살 이전까지 나는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았다. 어머니와 이혼한 아버지가 나의 양육을 할머니께 맡기고 서울에서 다른 여성과 재혼해 따로 살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고향집에 내려와 잠시 머물다 가곤 했다. ‘서울 아버지’가 내게 주었던 선물 몇이 기억에 각인되어 있다. 하모니카와 만화책이 대표적인 것이다. 강원도 산골아이인 내게는 물론 마을 아이들에게도 대단한 “충격”이었다. 얼마 못 가서 그 둘 다 도둑맞아 사라지고 말았다.


정작 내게 더 큰 충격은 사탕. 그 맛은 과연 기적이었다. 처음 맛본 황홀경에 다급해진 나머지 나는 어금니로 와드득와드득 사탕을 깨뜨리기 시작했다, 마치 황금 알 낳는 거위 배를 가른 농부처럼. 살살 달래면서 녹여 먹어야 더 맛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사탕이 다 부서진 다음이었다. 반 백 년도 썩 지난 지금, 사실 나는 단맛에 전혀 관심이 없다. 다만, 가뭄에 콩 나듯 한 번씩 사탕을 와드득와드득 깨뜨려 먹는다.


문명의 힘으로 극단화시킨 맛, 특히 단맛은 인간의 원초 미각을 겨냥해 산업적으로 만들어내는 포르노다. 어떤 의미에서 단맛의 독재라고 해야 맞다. 설탕의 정치경제학을 생각하면 인류가 단맛에 취약해진 것은 세계자본의 전략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본질적으로 커피도 마찬가지다. 커피가 아에타족 장로를 사로잡은 사건은 다만 맛 문제만은 아니다. 인스턴트커피에 설탕이 첨가되면 설상가상이다. 선의로 포장된 자본의 악의에 찬 음모를 냉정하고 예리하게 발라내지 않으면 인류는 달곰쌉쌀한 포르노 커피 맛 등에 취해 멸망할 것이다.


미각은 삶과 일치하는 것일 때 건강하다. 아에타족이 겪는 “애처로울 정도인 미각의 갈등”은 자신의 본디 삶에서 급격하게 분리된 데다 아직 자신만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맞닥뜨린 비극적 어긋남이다. 우리사회에도 아에타족과 본질이 같은 분리와 어긋남이 있다. 채널만 돌리면 쏟아져 나오는 ‘먹방’ ‘쿡방’의 ‘셰프’와 연예인, 그리고 음식들은 명백히 그 방송을 보는 대중의 삶과 일치하지 않는다. 포르노를 생산하는 자본에 관음증 걸린 대중이 굴종하면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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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영혼이 깃들었을 법한 인상을 풍겨내는 중년 한 사람이 들어섰습니다. 손대지 않아 다소 중성적인 이미지가 나오지만 균형 잡힌 이목구비 선이 기본적으로 수려한 얼굴임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그의 입에서 우울증이라는 말이 흘러나오기까지 저는 그가 온 이유를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른바 가방끈이 길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본인의 능력 문제가 아니었음은 물론입니다. 배우자는 명문대학을 나왔습니다. 그들의 결합이 한참 기울어진 것이라고 대놓고 말하는 주위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으레 가방끈 길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 간주하곤 했습니다. 배우자 부모는 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기본 예의조차 서슴없이 뭉개는 게 다반사였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배우자였습니다. 배우자는 자신이 통 큰 희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명문대 출신이라는 자랑과 사뭇 어울리지 않는 쌍스러운 폭언을 퍼부을 때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배우자는 생업을 규모 있게 꾸리는 데 미숙했습니다. 두 사람의 충돌은 매우 잦았습니다. 물리적 폭력이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대화는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에게 마침내 우울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습니다.


가방끈 길이와 무관하게 그의 생각은 바르고 맑았습니다. 저는 배우자의 면면이 궁금했습니다. 세 사람이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거의 밤을 새워가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배우자는 소신이 뚜렷하며 진지한 사람이었습니다. 문제는 유연하지 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보수적인 주류 가치관이 자신의 배우자에게 가하는 차별을 별로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화 말미에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부부의 기품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어느 한쪽이 박탈감을 느끼지 않으면 그 부부는 기품 있는 부부입니다. 누구 말이 옳은가 따지는 싸움에서 결론이 나지 않으면 형평을 고려하는 선에서 마무리하십시오.”


그들의 현실 상황에서 형평을 맞추려면 배우자가 그에게 많은 배려와 양보를 해야 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스스로 평가해보았습니다. 두 가지 점에서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첫째, 형평이라는 원만한 결과보다 거래라는 치열한 과정을 좀 더 역동적으로 언급했어야 합니다. 그가 기울어진 시소 위에 앉아 있는 것은 사랑도 결혼생활도 거래라는 사실을 몸으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으니 말입니다. 바르고 맑은 생각이 거래에 많은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몰랐으므로 거래의 현실 감각, 전략·전술을 개요만이라도 제대로 전달했어야 일방적 편들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둘째, 거래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니까 시선을 부부 사이에 가두지 말아야 문제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었어야 합니다. 거래는 부모자식 간에도 남남 간에도, 그러니까 저와 그 사이에도 일어나는 것이니 말입니다. 삶의 전반에서 일어나는 거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므로 부부문제만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과도하게 집착합니다. 아이와 또 저와 거래하면서 어찌하는 것이 형평을 이루는 것인지 일러주었어야 그가 전체적 관점으로 문제를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 이런저런 사정으로 상담은 장기간 중단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의 배우자가 세상을 등졌다는 비보가 날아들었습니다. 후회와 자책으로 뒤척이는 나날이 흘러갔습니다. 이제라도, 남은 그하고라도 거래를 숙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배우자 없는 삶에서도 거래는 어김없이 계속되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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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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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훗날 부활할 수도 있지만, 지금 일본에서는 ‘음식의 한恨’ 같은 말이 이미 죽어버렸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다카에서 방글라데시 최남단에 떨어져 있는 로힝야족 난민 캠프에 가보고 그 한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

원조기관이 난민에게 식량을 배급했다. 그런데 그 양이 캠프 주변에 사는 주민들의 눈에 자신들이 가진 식량보다 훨씬 많아 보이자 그때까지 주민들이 난민에게 보이던 동정이 서서히 반발로 변해갔다.

음식의 양에서 드러나는 아주 미미한 차이. 거기에서 거품처럼 생기는 미묘한 감정의 무늬. 포식의 나라에서 자란 나의 혀와 위가 점점 잊어가는, 인간이 타고난 애처로운 맛의 상극이 이곳에 있었다.(36-37쪽)


예닐곱 살 무렵 사촌동생 남매가 우리 집에 잠시 얹혀 산 적이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 집은 아버지 아닌 할머니가 일으켜 세우신 터전이므로 큰아버지 자녀가 산다고 해서 얹혀 산다고는 할 수 없다. 어린 내 눈이 그리 오독했을 뿐이다. 그 오독은 할머니에게서 먼저 양육 받고 있던 알량한 기득권에서 나왔다.


사내아이가 식탐이 많았다. 이 또한 권력의 눈길이 빚어낸 오독일 가능성이 높다. 아이는 너무 굶주린 탓에 아귀아귀 먹었을 수도 있다. 일찍 객사한 큰아들, 허랑한 큰며느리 때문에 그 지경이 된 아이들을 애처롭게 여긴 할머니께서 조금 더 챙겨주셨을 수도 있다. 나는 아이가 두 눈 착 내리깔고 볼이 미어터져라 퍼먹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알 수 없이 치미는 부아를 견디지 못 해 구시렁거리곤 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 그 동생을 만났다. 소주 한 잔 하면서 사과의 마음으로 그때 이야기를 꺼냈다. 동생은 기억 자체가 없다며 허허 웃었다. 기억은 없지만 어린 시절의 신산했던 삶 자체가 동생의 생명력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혔음에 틀림없다. 어느 날 돌연히 동생은 세상을 떠났다. 내게는 아직도 동생과 함께 둘러앉았던 수레바퀴만한 둥근 밥상 풍경이 아린 기억으로 남아 있다. 동생은 ‘음식의 한’을 풀고 떠났을까. 그의 ‘음식의 한’에서 나는 과연 무엇일까. 눈물로는 부족한 회한이 끝내 남는다.


1991년의 로힝야족은 2017년에도 여전히 난민으로 떠돈다. 방글라데시는 연초에 그들을 사람이 살 수 없는 한 섬에 격리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들을 탄압하여 난민으로 내몬 미얀마의 정치 지도자 아웅산 수치는 국제사회의 비판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 무엇을 얼마나 먹으며 살까. 그 주위 방글라데시 빈민은 무엇을 얼마나 먹으며 살까. ‘음식의 한’은 인간 존재 자체를 한으로 만든다. 존재 자체가 한인 인간을 정치가, 종교가 대놓고 만드는 세상이기에 나는 오늘도 5천 원짜리 백반 한 끼가 죄스럽다. 죄스러움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회한이 끝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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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를 받은 한 아이가 우울증 치료를 위해 제게 왔습니다. 아이는 부모 중 양육을 맡지 않은 쪽에 극렬한 적개심을 드러냈습니다. 필경 양육을 맡은 쪽에서 반복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주입한 탓일 것입니다. 양육자 본인은 강력히 부정했지만 저는 제 오랜 경험으로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는 비단 그 적개심뿐만 아니고 생각과 행동 전반이 심하게 편향되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양육자의 아바타로 키워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것이 양육자가 얻는 이득일 테지만 아이한테는 엄청난 손실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우선 시급히 양육자에게 처방을 내렸습니다.


“아이 앞에서 전 배우자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말, 엄금합니다. 아이 영혼이 죽어갑니다.”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를 물으며 아이 마음이 어떻게 다쳤는지 살폈습니다. 아이는 연령에 비해 정신 발달의 지체가 뚜렷했습니다. 유아적 마법사고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양육자와 그 직계존속의 애지중지 학대를 계속 받아 현실 삶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약했습니다. 저는 아이의 우울증을 치유하기 위해 삶의 조건을 바꿀 수 있다면 바꿔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양육자에게 전 배우자와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쪽 이야기도 들어봐야 치우침 없는 상담일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아이의 양육 조건의 변화 가능성을 타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세 사람이 만났습니다. 계속 이런 만남이 이어질 것 같지 않아서 저는 양육자 아닌 쪽에게 많은 질문을 하고 그의 말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그러자 양육자가 낯빛을 바꾸며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제가 아이를 병들게 한 사람의 편을 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내린 긴급처방에서 느낀 불편함과 연계된 반응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제가 두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아이 때문에 이혼한 것이 아닌 한, 이 문제에 아이를 연루시키면 안 됩니다. 두 분이 서로에게 품은 감정을 아이가 물려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제가 누구의 편을 드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날 이후 양육자가 더 이상 아이를 제게 보내지 않았음은 물론입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아이의 특이한 말버릇, 표정이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어찌 살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짐작컨대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그때 보여준 양육자의 성향으로 미루어 그의 생활 조건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그때 제가 아이 양육 조건의 열악함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 특히 양육자의 면모를 좀 더 지켜보고, 아이와 양육자의 신뢰rapport가 생길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렸어야만 했습니다. 만사에는 때가 있는 법이고 그 때란 것이 일방의 열정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진실 앞에 겸허히 엎드립니다. 천명을 안다는 나이를 넘기고도 이런 인연지음 하나조차 간수 못했다는 자책감이 지금도 여전히 똬리 틀고 있습니다. 오늘 그 아이가 제게 온다면 어찌 할 수 있을까요? 그때보다 훨씬 유연하고 여유롭게 감응하여 아이를 치유해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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