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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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색 길을 터벅터벅 걷는다.

그때 포도 덩굴 그림자 속에서 뭔가가 움직인 듯했다. 사람 그림자다. 깜짝 놀랐다. 사람 그림자도 무서워하며 모습을 감췄다.

병사는 아닌 것 같다. 내가 좇아갔다. 안나 스모야크라는 72살의 키 큰 할머니였다. 할머니보다 9살이 적은 남편 미리보이는 1991년 집 근처에 폭탄이 떨어졌을 때 충격을 받고 죽었다. 할머니는 그 일이 애통하고 애통해 지금도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죽고 싶다고 한다. 안나가 말한다.

맑게 갠 날 갓 짠 우유가 든 깡통을 양손에 들고 걷는데, 갑자기 전차가 나타나 펑펑 대포를 쏘아댔다. 안나는 기겁해서 우유가 든 깡통을 떨어뜨렸다.

남편은 가슴을 누르며 쓰러졌다. 양아들도 죽었다. 며칠 만에 안나의 머리카락은 백발로 변했다.

“그때부터 뭘 먹든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게 됐지.”

할머니는 글로브처럼 커다란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145-146쪽)


안나가 다시 묻는다.

“여보게, 내일 다시 와줄 거지?”

나는 포성에 등이 떠밀려 마을을 떠났다.

안나는 내일 눈물어린 수프를 어두운 부엌에서 혼자 먹겠구나.(149쪽)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다. 계층마다 식후에 묻는 말이 다르다고 한다. 빈곤층은 ‘배불리 먹었느냐?’ 한다. 중산층은 ‘맛있게 먹었느냐?’ 한다. 부유층은 ‘분위기가 멋있었느냐?’ 한다. 그러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눈물어린 수프를 어두운 부엌에서 혼자 ”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며 먹은 안나 할머니에게는 뭐라 물을 수 있을까? 저자가 한 말을 의문문으로 바꿔보겠다.


뭐든 좀 더 드시는 게 좋(147쪽)지 않을까요?”


배불리 먹으라는 말이 아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최소한의 영양 상태라도 유지하려면 그 정도로는 모자라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물론 그 말이 안나 할머니 귀에 쏙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지켜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참여가 여기까지다.


세월호 가족 몇이 어느 음식점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워낙 주위 사람들한테 시달리는 분들이라 조심스러워 나는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못한 채 조용히 밥을 먹었다. 그들은 반주도 한 잔씩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다 누군가 농담 건네면 웃기도 했다. 세월호 엄마가 밥 먹으면 ‘목구멍에 밥이 넘어가느냐?’며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지만 내게는 그렇게 식사하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거룩해 보였다. 할 수만 있었다면 소주라도 한 잔 권하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었다면 뭐든 좀 더 드시는 게 좋지 않겠느냐 묻고 싶었다. 결곡한 애도를 위해 그들은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백세 시대에 육십 막 넘긴 나이를 오래 살았다 하긴 멋쩍지만 요즘은 제법 긴 세월 살긴 했다는 생각이 든다. 제자, 후배들의 부음을 접할 때 특히 그렇다. 요 며칠 전에도 애제자 하나를 앞세웠다. 그의 빈소에 애써 들르지 않고 홀로 먹은 저녁밥은 모래와 방불했다. 홀로 마신 소주는 물과 흡사했다. 어제, 그를 기억하는 다른 제자와 오래토록 그를 이야기하며 밥 먹고 소주 마셨다. 밥은 분명히 쌀이었고, 소주는 분명히 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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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단어를 써야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도시로 와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시간을·······가슴팍이 결릴 때까지 웁니다. 십오 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면 어떨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내게 그런 용기와 남은 사람들 따위는 걱정하지 않을 뻔뻔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무서워집니다.


원하지 않는 결혼을 했습니다.·······누가 떠밀지도 않았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상황도 아닌 결혼이었습니다. 배우자가 누가 봐도 못된 인간이라거나, 그 가족이 미칠 듯 스트레스를 주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 사람과 저는 너무나 다릅니다. 사소한 취향부터 말버릇하나까지 제가 싫어하는 것들은 모두 모아놓은 사람인 것만 같습니다. 딱 하나 저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을 사람이라 믿었습니다. 그 믿음 하나로 연애 동안 불거지는 불안들을 모른 척 했습니다. 멈추려고만 했다면 언제든지 멈출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헤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저를 잡았고 저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찾아온 그 사람 손을 잡았습니다. 아무런 확신이 없는 중에도 결혼은 진행되어갔고, 주변사람들의 시선과 속상해 하시는 부모님 생각에 머뭇거리며 망설이다 결국 결혼식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힘이 듭니다. 선생님. 스스로 제 성격을 알기에 처음부터 단호하게 털어놓고 다짐받았던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는 걸 알았을 때, 어떤 날 일기엔 소름끼치도록 그가 혐오스럽다고 쓰여 있었습니다.·······어제는 결국 그 사람 입에서 자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면 헤어지자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 사람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면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그럼 그러 마, 하며 짐 쌀 줄 알았는데, 심장이 내려앉았습니다. 저는 또 헤어질 생각이 없었던 겁니다. 오히려, 그를 많이 의지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의지하고 있었던 제 자신이 당황스럽고 인정하기 싫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기 때문에 죽을 만큼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결국 저렇게 쉽게 헤어짐을 말할 거면 왜 그때 날 잡았나.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제게서 마음이 떠났음을 느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저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그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타인보다 낯설게 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손끝부터 하얗게 얼어붙는 것 같습니다. 슬픔도 아니고, 분노도 아닌 뭐라 표현할 길 없는 감정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자 라는 생각보다, 그런가, 헤어져야 하는가?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왜 결혼을 멈추지 않았을까? 두려움과 자책감에 잠도 오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로도 벼랑 끝에 서있다는 걸 알면서 헤어짐을 입에 담은 그가, 그리고·······구구절절 스스로를 변명했던 제가 용서되질 않습니다.


저 사람과 나 둘 다 서로를 놓아줘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듭니다.·······제 스스로가 너무나도 단호하게 이렇게 이어지는 상황들을 견딜 자신이 없다면, 더 늦기 전에 이혼하는 게 맞는지 판단하기 너무나 힘듭니다. 선생님, 어찌 해야 할까요?”


어느 날, 익명으로 제게 온 편지입니다. 5년이나 지난 기억이었지만 한눈에 그인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행복하다 느낀 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외도, 도박, 사채, 폭력에 절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모든 어려움에 쩔쩔매다가 집 나가겠다는 말을 수없이 되뇔 뿐 어떤 타개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맏이로서 부담감은 크게 느꼈지만 부합하는 이행이 따르지 못해 늘 자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연애도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다정다감하지 않은 터라 그 자신도 친밀감 부분에서 매우 서툴렀습니다.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될수록 상처만 커갈 따름이었습니다. 아침에 눈뜨면 불안이 파도처럼 밀어닥칩니다. 무력한 시간들로 하루가 채워지면 가슴은 텅텅 비어갔습니다. 그만 살자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솟아올랐습니다.


짧게나마 상담한 뒤 얼마 동안, 그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저와 맺은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홀연히 소식이 끊겼습니다. 저 편지 속의 힘든 연애와 결혼 생활이 원인이었습니다. 편지 후 연락을 취했지만 그를 실제로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천 리 밖 어느 도시에서 ‘가슴팍이 결릴 때까지’ 우는 그를 떠올리면 참으로 가슴팍이 결려오는 듯합니다.


지금 손에 바리공주의 생명수를 들고 있다 해도 제가 직접 우간다 어느 마을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는 소녀 하나를 살릴 수 없는 게 냉정한 현실입니다. 극진함도 능력도 구체적 인연으로 엮이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간절한 호소에 폐부를 찔려 온 영혼이 흔들려도 가 닿지 못할 때, 숙의의학 하는 자가 죄의식을 느끼는 것은 숙명 아닐까 합니다. 바로 이 순간에도 그의 얼굴이 선명히 떠오릅니다. 기억이 선명할수록 아리디아린 형벌감에 잠겨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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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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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비가 내리는 한낮이 지날 무렵, 잎이 무성한 큰 나무 밑에서 쌀국수를 후루룩거리며 먹는다.

뜨거운 김으로 뿌옇게 변한 거리를 바라보면서 사람 사는 세상의 변한 모습을 떠올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시간을 꽤나 들여 후루룩거리고 있다. 비가 국수 그릇으로 들어와도 그러든지 말든지 하늘의 물이라고 여기면 맛이 더 좋아진다. 이것이 베트남 하노이 사람들이 쌀국수를 먹는 법이다. 시정詩情이 흐른다.

한편 도쿄의 서서 먹는 우동가게에서 샐러리맨들이 우동을 먹는 평균시간은 2, 3분쯤이라던가? 운치가 없다.

하지만 이른 아침에 밥을 입속으로 밀어 넣듯 먹으면서 일본은 경제를 번영시켜왔다.

국수 한 그릇을 다 먹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의 길고 짧음. 이것이 의외로 그 나라의 경제 상황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노이 시민이 쌀국수를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은 3년 전에 비해 평균 2, 3분은 짧아진 듯하다.

나는 이것을 경제 활성화와 사회 변화의 징조로 본다.(81-82쪽)


한편 새로운 쌀국수가 나오기 시작했다. 닭고기에 소고기를 비롯해 여러 가지를 넣은 믹스 쌀국수, 고급화를 지향한다. 화학조미료도 이상할 정도로 많이 쓴다.(84쪽)


나는 밖으로 드러내놓고 페미니스트라 말하지는 않는다. 표방하는 일 자체가 그다지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공부를 따로 깊이 한 적도 없어 논리적인 사유로 정리되어 있지도 않다. 성차별 없애는 노력을 그냥 비-학습 실천으로 일상에서 꾸준히 할 따름이다. 그래야 이치에 맞는다는 것이 간단명료한 내 근거다. 대표적인 예가 가사노동의 자연스러운 분담이다. 밥하고 나물 무치고 국 끓이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에서 우리부부는 누가 뭘 해야 한다는 따위의 구분을 하지 않는다. 구태여 특이 사항을 꼽는다면 간단한 손빨래 아닌 세탁기 빨래는 내 전담이다. 빨래하는 일의 전반에 내가 훨씬 더 섬세하고 정밀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평화가 정착되는 과정이 마냥 매끈했던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먹는 일을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오랜 습성 때문에 나 스스로 발끈발끈하곤 했다. 어느 날 홀연히 먹는 일보다 더 긴급하고 근원적인 것이 없다는 깨달음으로 홀라당 뒤집어진 뒤에야 비로소 고요해졌다.


먹기 위해 산다고 까지 말하기는 뭣하지만 목숨 지닌 존재에게 먹는 일은 예사로운 일상 너머 대수로운 성사다. 신나는 놀이임과 동시에 거룩한 제의다. 그 놀이 시간을 단축하는 것, 그 제의 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모독이다. 모독은 의외로 쉽게 자행된다. 경제 번영이라는 번드르르한 이름의 돈이 만들어낸 세속화다. 허겁지겁 끼니 때우고 돈을 향해 달려간다. 허겁지겁 “시정” 흐르는 영상은 없다. 허겁지겁 “운치” 있는 풍경도 없다. 시정을 희생하고 운치를 제물 삼아 거머쥔 돈은 대체 무엇에 쓰려는 것일까? 더 비싼 차가 신나고 거룩하게 먹는 일보다 귀한가? 그럴 리가. 더 비싼 집이 신나고 거룩하게 먹는 일보다 귀한가? 그럴 리가. 뭐 그렇다고 떼돈 번 인간들이 세상 구제를 하는 것도 아니잖나. 오호라, 그럼 더 맛있는 것 먹기 위해 미친 듯 돈 버나보다. 먹는 일을 내팽개쳐서 획득하는 ‘더 잘’ 먹는 일이란 대체 무엇일까? 식사 포르노! 정답. 인류는 B급 향락을 위해, 정精한 식사를 내다버리는 정신 나간 짓을 하고 있다.


정精한 식사는 엄숙과 향락 그 사이 어딘가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다. 엄숙과 향락을 가로지르며 휘돌아가는 사건이다. 그것은 놀이도 놀이답게 살리고 제의도 제의답게 살린다. 둘은 상호보완해서 전체가 되는 부분이 아니다. 꼿꼿이 자신을 유지한 채 마주한다. 충분히 자신을 녹여 서로 배어들고 배어나온다. 자본은 이것을 쪼갬과 동시에 포갠다. 중량급 연예인이 나오는 포르노 ‘먹방’과 다이어트 강연이 동시에 흐른다. ‘셰프’가 영양학을 고리로 의사로 등극한다. 현란한 분열과 절묘한 혼효가 투명한 일치를 이루며 대중은 유아적 소비자로서 온갖 마케팅에 동원된다. 명백한 중독이다.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나서, 외마디 소리를 내질러야 산다. 할喝!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밥상 앞에 정좌한다. 시정이 흐르도록 먹는다. 운치 있게 마신다. 낭만주의가 아니다. 실재the Real을 향한 유장한 운동이다. 이 운동에는 “믹스 ”도 “고급화”도 “화학조미료”도 설 자리가 없다. 각기 모습대로, 각기 기품대로, 자연스러운 맛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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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발달하면 종교는 소멸할 것이라는 말로 한 시절을 제압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그 말을 좇는 자가 있겠지만 이는 마치 종교가 제시하는 천국이나 극락이 실재한다는 말을 좇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종교라는 것이 인간의 공포·탐욕·무지에 터한 마법적 사유 유희일진대 과학의 발달이 아무리 완전해진다 해도 공포와 탐욕까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소멸은 어림없는 일입니다. 마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궁지에 몰린 인간의 악조건이 존재하는 한, 인간의 종교 의지는 막지 못합니다. 마법적 사고에 빠지는 것은 유아기로 퇴행한 결과입니다. 유아기로 퇴행한 것은 정신적인 질병 상태에 들어간 것입니다. 병식病識이 없습니다. 헤어 나오기 불가능합니다.


한의원에 오는 사람 가운데 온갖 병원, 갖은 요법을 전전하다가 포기하고 맨 나중에 혹시나 해서 찾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이들은 결코 한의사를 존경하거나 신뢰하지 않습니다. 존경이나 신뢰가 있었다면 처음부터 왔을 테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효과는 기적처럼 나타나길 바랍니다. 금방 변화를 느끼지 못하면 보채고 다그칩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상황임에 틀림없습니다. 한의사 입장에서 보면 엄히 꾸짖을 만합니다. 저도 이따금씩 사실을 적시한 뒤 예의를 갖추어 야단칩니다. 대부분은 그대로 받아줍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마법적 사고에 빠진 유아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적 상황인 것입니다. 물론 한의사는 스님이나 신부님이 아닌 무당 대우를 받는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아픈 아이 앞에서 그 차이가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20년 넘게 뚜렛증후군에 시달린 청년이 왔습니다. 그때까지 경험한 뚜렛증후군 가운데 가장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그야말로 틱 증상의 백화점이었습니다. 강도도 심해 특정 동작의 반복 때문에 염증이 유발되고, 피부가 변형될 지경이었습니다. 당연히 자율신경 실조, 사회불안, 강박, 우울장애가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미리 자신의 상황을 알리는 글을 써서 가지고 왔습니다. 증상을 거의 10가지로 분류하여 적었고, 그 동안 받은 치료도 5가지 이상으로 나누어 적었습니다. 맨 마지막에 질병으로 말미암아 잃은 것들을 조목조목 적었는데, 그가 얼마나 자신의 문제에 착념하고 해결하려 애썼는지 눈시울이 뜨거워질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의당 다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효과 없었던 각종 방법을 제가 다시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닐 테니 말입니다. 차분히 세계가 비대칭의 대칭으로 구성되고, 그것의 자발적 깨뜨림으로 운동한다는 진실부터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도록 이끌어갔습니다.


어떤 환우보다도 상담에 보이는 그의 반응을 예의주시했습니다. 묵직한 신뢰를 두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원인은 두 가지 정도일 것입니다. 우선, 그는 종교적 상황에 있었습니다. 기적 같은 효과가 빨리 나타나야만 했습니다. 잔잔한 대화가 성에 차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다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라는 말을 수용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20년 동안 오매불망 제거되기만을 바라던 부정적 현실을 어찌 평가 없이 인정하란 말인가, 했을 것입니다. 사실 저도 정서적으로는 십분 공감하는 바였습니다. 오죽하면 여북하겠습니까. 마법을 쓸 수만 있다면·······내가 예수 그리스도라면·······그 생각 간절했습니다.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담담하되 극진한 대화를 이어나갔던 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었습니다.


그는 견디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의 잘못이 아닙니다. 제 잘못이랄 수도 없습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어긋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치유자인 제 양심에서는 이일을 제 잘못이라고 새겨두고 싶습니다. 뒤집힌 교만일 수도 있겠지만, 망상이라도 죽는 날까지 ‘입을 댄 즉 병이 나았더라.’를 꿈꾸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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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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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수수께끼 같은 일이야.”

노인이 멈춰 서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태평양전쟁 종전 후 필리핀 내 일본군-필자 보충) 잔류병들이 영양실조 상태였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1946년부터 1947년까지 산속에는 멧돼지와 사슴과 원숭이도 있었다. 산을 조금만 내려가면 토란도 자라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총과 탄약이 있었으니, 단백질이 필요했다면 짐승을 사냥해도 되지 않았을까? 짐승이 아니라면 영양이 풍부한 토란만으로도 꽤 오랫동안 살 수 있었을 텐데, 사람을 수십 명이나 먹었다니······.

이것이 지금까지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라는 말이다.

전쟁과 그에 따른 극한 상황이 인류가 가장 금기시하는 규칙을 깨뜨리고 말았다.

나는 지친 머리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와 동시에 설령 이런 일반론이 모든 전쟁범죄에 들어맞는다고 하더라도, 노인이 말하는 수수께끼에 대한 정답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62쪽)


우리가 국권을 상실해 일제의 식민지로 있을 때 일이다. 일제가 식량은 물론 문고리까지 떼어가던 태평양전쟁 말기 사람이 굶어죽었다는 말은 더 이상 화제가 되지 않았다. 강원도 어느 산골마을에 매우 가난한 부부가 있었다. 양식도 미역 한 올도 없는 형편인데 아내가 아기 낳을 날이 임박해왔다. 남편은 희망이 있어서라기보다 다급한 마음에서 무작정 집을 나섰다. 천신만고 끝에 양식과 미역을 구해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에서 나는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놀라서 뛰어 들어가 보니, 문살을 거머쥔 채 아내가 죽어 있었다. 그 옆에는 뜯어먹다 말은 작은 고기 덩어리가 나뒹굴고 있었다. 삶아진 갓난아기였다! 남편은 아내와 아기를 묻고 사흘을 통곡했다. 집에 불을 지르고 스스로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내가 밥투정을 하거나 먹을 것을 함부로 대할 때, 할머니께서 들려주셨던 참혹하고 애통한 이야기다. 일제 치하 이 백성이 겪은 이 이야기와 그 일제의 군대가 침략한 나라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본문 사건은 기묘한 대조를 이룬다. 너무나 다르고 너무도 같다. 홀로 출산하며 겪은 공포와 고통에 굶주림까지 겹쳐 실성한 상태로 제 아기를 삶아먹은 어미의 심경을 누가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나. “겨우 5분 동안 머물렀을 뿐인데도 고독감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63쪽)고 묘사한 깊고 험한 산으로 도망간 패잔병 일단이 공유했을 공포와 절망, 아니 오컬트 상황을 누가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나. 인간 너머 일이되 인간 이하 짓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수수께끼”다. 이 일을 겪은 당사자 이야기를 더는 끌 수 없다.


우리가 정말 문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일본은 익히 우리가 알고 있듯 우리에게 식민통치를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우리가 잘 모르지만 일본은 위 필리핀 식인 사건도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이게 일본이다. 일본뿐이겠나. 미국은, 영국은, 독일은, 러시아는, 중국은 이와 다르겠나. 이들이 지구상의 강대국으로 여태까지 인육을 먹는, 인육 먹기를 강요하는 짓을 저질러오지 않았나. 그런 짓은 또 그 아래 국가군으로 내려간다. 대한민국이라고 다르겠나. 우리가 과거 베트남전쟁 때 무슨 짓을 저질렀나. 지금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나. 국가란 이런 것들이다. 인간다운 인간이기 위해 우리는 인간과 인간 이외 것의 경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그 경계에 ‘먹는 인간’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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