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는 무시간적 진리 의식의 산물이 아니라 역사의 산물이다. 논리는 문명현상, 무엇보다 정치현상이다. 사하라시아 타락-자아폭발(스티브 테일러)의 결과로 종양문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 그리스의 거대성공증후군이 만들어낸 논리가 바로 형식논리다. 타락이 거대왕국을 낳고, 거대왕국이 거대(유일)신을 낳고, 거대(유일)신이 거대이론을 낳고, 거대이론이 자기 정당성의 영속화를 위해 종자논리dialecticum semen를 만든다.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그리스가 만든 종자논리인 형식논리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른바 동위원리에 포함된 동일률, 모순율, 배중률이다. 모순율, 배중률은 동일률에서 파생한 것이므로 결국은 동일률이다. 동일률은 A=A다. A=A는 동어반복tautology이다. 동어반복은 항상 옳다. 항상 옳아서 하나마나 한 말이다. 하나마나 한 말이므로 내용이 실재하지 않는다. 이런 진술을, 타락한 인류는 불변하는 진리의 기틀로 삼았지만 참된 진리에 터해 보면 이 말은 병적 방어기제의 소산이다. 병적 방어기제를 넘어 범죄에까지 이른다. 간결히 정리하면 이렇다.


(1) 자기성찰 불능: 내 거점만 남기고我 남의 거점을 지운다無我.

(2) 자기변화 불능: 내 안정常을 붙박고 남을 불안無常으로 흔든다.

(3) 자기절제 불능: 내 즐거움樂을 더하려 남을 괴로움苦에 빠뜨린다.

(4) 흠 없(다고 망상하)는 체계narrative를 공고히 구축한다.


최근 밝혀진 연구 결과에 따르면, winner 또는 CEO의 대뇌는 안와전두엽에 손상(에 가까운 변성)을 겪는다고 한다. 대뇌 안와전두엽에 손상을 입으면 이성적인 판단력으로 자기성찰을 할 수 없게 된다. 타인의 비판을 귀담아 듣지 못 한다. 독선으로 치닫는다. “나는 나다, 나만 나다, 나만 옳다, 나의 옳음은 영원하다, 내 앞에 너는 무릎 꿇어야 한다, 이게 진리다, 끝.” 개인 차원의 거대성공증후군을 사회·문명 차원으로 확대하면 안와전두엽이 손상된 지배층 엘리트 집단의 머리에서 나온 형식논리가 인류 역사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즉각 알 수 있다. 전쟁, 계급질서, 여성차별, 아동학대, 몸의 분리, 거대유일신교, 시간 지배, 자연 착취. 이 모든 악의 근원에 질병 본질을 지닌 형식논리가 똬리 틀고 앉았다.


이 엄혹하고 육중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단도직입하면 종자논리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종자논리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형식논리를 깨뜨리고 모순과 모호함을 품어 안는 다치多値논리(, 원효 식으로는 화쟁 논리, 내 식으로는 비대칭의 대칭 논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논리를 바꾸면 사유가 바뀐다. 사유를 바꾸면 삶이 바뀐다. 삶을 바꾸려면 대박의 의지를 내려놓아야 한다. 안와 전두엽의 손상을 막아야 한다. 인욕을 넘어 진욕進辱으로 나아가야 한다. 진욕은 소미심심의 연대를 낳는다. 소미심심의 연대가 인류를 파멸에서 구할 것이다. 이 화두를 거대유일신교를 극복한 예수 내러티브로 풀어본다.


나는 지난 8월 18일 마이페이퍼 <누가 참된 장엄신인가?>를 통해 창조신에서 욥을 거쳐 예수에 이르러, 어떻게 거대신이 해체되고 소미심심 신이 되는지를 일별했다. 여기서는 특별히 2천년 동안 미궁 또는 오류에 빠져 있었던 예수 부활 사건 해석을 새로운 종자논리로 바꿈으로써 기독교와 인류 전체의 활로를 모색해보겠다.


전통적인 예수 부활 이해에 따르면, 그것은 당연히 죽음을 이긴 승리다. 그 승리가 없으면, 예수 구원의 역사는 완성되지 않는다. 구원이 미완성이면, 기독교인의 신앙은 의미가 없어진다. 이 당연하고도 위대한 반전은, 그러나 틀렸다. 거대유일신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전 부활은 거대유일신의 형식논리 안에서 부리는 잔재주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가 온 목적과 그에 걸맞은 과정의 실재는 오직 거대유일신을 벗어던지는 길로 향한다. 거대유일신은 타락이 빚어낸 가짜 신이기 때문이다.


예수를 통해 드러나는 참된 신의 거대유일신 벗어던지기는, 거대유일신의 ‘망상이지만 강고한’ 존재 거점을 지우는 일이다. 예수의 태어남과 삶의 전 과정은 그 거점 지우기다. 외양간에서 태어나 세리와 창기를 더불어 살았으니 말이다. 예수의 죽음은 좀 더 확실하고 충격적인 거점 지우기다. 영원하신 거대유일신이 죽다니. 마침내, 부활은 거점 지우기의 ‘완전’ 완성이다. 시신마저 지운다. 무덤마저 지운다. 아, 그리고 이, 이 한 문장!


“나를 만지지 마라.”


이 말은 부활을 통해 신이 다시 ‘영적’ 존재를 회복했다는 개소리가 아니다. 만짐, 붙잡음으로 남을 최후의 거점마저 지우는, 도저한 반성이다. 신이 참 신일 수 있는 마지막 결단이다. 신이 스스로 無를 만들어, 無神을 거쳐, 無限神을 연 궁극의 창조다. 무한신은 스스로 존재 거점을 지운 소미심심의 벌레, 풀, 박테리아, 이끼들의 보이지 않아서 보는, 들리지 않아서 듣는, 맛보아지지 않아서 맛보는, 맡아지지 않아서 맡는, 닿아지지 않아서 닿는 온갖 생명 감각 자체이자 대상이다. 이 감각 자체이자 대상을 단박에 이루는 단 하나의 길은 거대유일신의 마지막 거점을 만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 부활한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그 닿지 않는 닿음, 비대칭의 대칭에서 거대유일신은 홀연히 사라진다. 거대유일신이 사라졌다고 해서 무신의 세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무신론은 서구 지성의 가소로운 한계일 뿐이다. 소미신과 소미신의 네트워크인 무한신의 비대칭적 대칭으로 세계 진리는 재편된다.


무한신은 실체 없는 실재다. 사건이기 때문이다. 소미신은 실재하는 시간실체다. 무시간 실체는 본디 없다. 실체 없는 실재와 시간실체 사이 비대칭의 대칭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것이 인류에게 주어진 마지막 은총이다. 이것이 우리 인간 각자에게 부여된 예수의 ἐγώ εἰμί(I am) assertion의 장엄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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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D 2017-08-29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나를 만지지 마라>의 서평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bari_che 2017-08-30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ㅎ

실은 장-뤽 낭시의 그 책을 비판적으로 읽은 결과,
나온 통찰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서구의학의 인류사적 공헌은 외과수술, 링거 둘로 집약할 수 있다. 나머지, 아니 저 두 나머지 이외의 대부분은 치료를 표방하지만 증상만 약하게 만드는 ‘백색’ 화학합성물질이다. 물론 뛰어난 진단 기술이 있지만 진단 아무리 잘해도 치료하지 못 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진단기술도 공학기술의 힘이지 그것을 의학 자체로 보기는 어렵다.


백색 화학합성물질은 인간 생명력을 궁극적으로 사막이 되게 할 것이다. 백색의사들이 아무 생각 없이 뿌려대는 진통제, 소염제, 항생제, 해열제, 기타 백색 화학합성물질 대부분인 차단제의 공통 목표는 통증, 염증, 미생물, 열, 그리고 부정적이라고 판단되는 모든 증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증상 자체를 치료해야 할 병으로 보고 만들어졌다는 의미에서 그것들은 약이라고 불린다. 과연 증상은 병인가? 과연 백색 화학합성물질은 병을 치료하는가?


증상은 전체 원리에서 보면 병이 아니다. 증상은 병을 알려주는 메시지다. 메시지를 없애는 것이 어떻게 치료인가. 메시지를 들어야 진짜 병을 밝혀낼 것 아닌가. 병은 모른 채, 증상만 없애는 것이 치료일 수는 없다. 기계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증상과 병이 일치한다. 백색의학은 인간을 기계로 보는 일극 패러다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말하자면 기계적환원주의 관점에서 인간을 보기 때문에, 증상 제거를 질병 치료로 인식하는 것이다.


인간 생명의 이치에서 기계적 축은 유기체적 축과 비대칭의 대칭을 이루면서 함께 엮인다. 구태여 본지와 경중을 따진다면 후자가 본이고 중하다. 특히 전자로 치우친 폐해가 심각한 오늘 날 상황에서는 이런 역사적 판단이 불가피하다. 백색의학은 도를 넘어 반생명적인 수탈을 자행한다. 백색 화학합성물질은 전 지구적으로 과다 처방되고 있다.


백색 화학합성물질은 시시각각 인간 생명력을 갉아먹는다. 통증도 염증도 미생물도 열도 생길만한 곡절을 따라 생긴다. 이들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망타진하는 것은, 생명이 지니는 불편하지만 생생한 쌍방 소통 운동을 희생하여 편리하지만 파리한 일방 통제 구조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 생명을 돕는다면서 도리어 해코지하는 백색의학의 몽매에 나는 눈감을 수 없다. 녹색으로 배어들고 배어나서 참 평화의 틈을 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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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으로 보아도 그는 마음 아픈 사람입니다. 선명하고 빛나는 얼굴 윤곽을 지녔는데, 금방이라도 그 선이 무너질 듯합니다. 웃고 있어도 곧 눈물이 날 것만 같습니다. 누군가 한걸음 다가가면, 놀라서 두 발자국 물러설 태세입니다. 간결한 검사를 거치니, 예상대로 결과가 나옵니다. 불안지수가 대단히 높은데다, 우울정서가 두텁게 결합된 상황입니다.


내력이 깊습니다. 기어 다닐 무렵 다락에서 굴러 떨어져 격심하게 놀란 적이 있습니다. 이 공포는 시간을 다라 흐르면 편만한 불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다양한 유형의 공포와 불안이 일상의 모퉁이마다 포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생후 1년 동안 방안에서 흡연하는 조부와 함께 살았습니다. 폐렴에 걸려 입원했습니다. 더 커서는 편도비대가 심해져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이후 인두咽頭 이물감에 시달렸습니다. 수시로 들이닥치는 구토 증세 때문에 외출하기가 겁날 지경이었습니다. 불안·우울과 신체증상은 이미 인과의 사슬 속에서 뒤엉켜 난치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서양의학은 예의 그 분열적 태도로 그를 난도질했습니다. 외과의사는 수술하고, 내과의사는 발병 부위대로 약 먹이고, 정신과의사는 항불안제·항우울제를 처방했습니다. 하나가 좋아진다 싶으면 다른 하나가 안 좋아지는 일이 반복될 뿐 도무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직장생활도 불가능해져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 한동안 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에서 쉬어도 상황은 별로 전보다 나을 것이 없었습니다. 하기야 그의 불안은 어머니에게서 수직 감염된 측면도 있고, 아버지의 일관성 없는 생활 태도가 증폭시킨 측면도 있으니 오히려 악화될 가능성이 높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는 점점 더 예민해졌습니다. 냄새, 소리, 색깔 모두가 날카로운 자극거리를 제공했습니다. 가령 영화 보다가 놀라 뛰쳐나온 영화관 의자 색깔과 KTX 의자 색깔이 같아 구토를 일으켰을 정도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나날이 피폐해져가는 그 앞에 큰 산 하나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습니다. 장애를 지닌 사람과 해야 할 혼인,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혼인과 그 상대방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끝내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습니다. 당장 어머니 허락부터 시작해서 깨뜨려야 할 은산철벽만 생각하면 그저 아뜩할 따름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혼인 상대방과 함께 왔습니다. 선하고 맑은 인상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사고로 말미암은 장애는 제 눈에 그다지 문제꺼리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본인의 불편함으로 감안한다면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정작 문제는 사고 뒤 어머니가 입힌 마음의 상처였습니다. 자신의 죄책감을 덮기 위해, 어머니는 자식의 장애를 한사코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자식의 장애를 대가로 받은 돈이 종자가 되어 누리는 풍요에 어머니는 병적으로 집착했습니다. 돈을 무기 삼아, 어렸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성인이 된 뒤에도 자식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종하려 들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싸우는 근본 이치, 그리고 세부적인 기술을 두 사람에게 자분자분 전수해주었습니다.


그와 그의 연인이 제법 긴 시간 동안 저와 함께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몸의 건강을 찾아가면서,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혼인예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제게 주례를 요청했습니다. 저는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행복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다른 혼인예식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순서와 주례사를 준비했습니다.


예식에서 저는 주례가 주도하는 혼인서약과 성혼선언문 낭독 순서를 뺐습니다. ‘두 사람이 평등하게 서로에게 가 닿으며 살라.’는 의미를 담은 어질 인仁자의 그림 모양 붓글씨를 제가 부채에 써넣고, 신부신랑이 직접 거기에 서명하도록 했습니다. 하객들이 재미있어 했습니다. 주례가 주례사를 하는 동안 신부신랑은 의자에 앉아 듣도록 배려했습니다. 하객들은 술렁거렸습니다. 저는 술렁거림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꽤나 긴 내용인데,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해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원문을 그대로 실었습니다.)


“저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인데, 복이 아주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법적으로만 여섯 번 이혼과 재혼을 반복하셨고, 법적이지 않는 경우를 합쳐 두 손의 손가락을 꽉 채운 열 분의 어머니, 그러니까 계모를 제 앞으로 지나가게 했습니다. 이런 어머니 복에 하도 멀미가 나서 독신 선언을 하고 버티다가, 사십 다 돼서 독한(!) 여자 하나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결혼식 때는, 아버지도 안 계셨고, 그 많던 어머니도 안 계셨습니다. 결혼을 하고 처음 맞는 설날, 아내와 함께 처가로 내려갔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처남·처제랑 부엌방에 둘러앉아 맥주 한 잔 하면서 놀고 있는데, 일을 마치신 장모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물기가 채 가시지 않은 손으로 서랍장을 여셨습니다. 조그만 상자 하나를 꺼내들고 앉으시더니, 제 아내 이름을 부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결혼하고 첫 생일이 지나갔는데 선물을 못 챙겼다. 늦었지만 아나, 열어봐라.” 아내의 손에는 예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금팔찌가 들려 있습니다. 순간 모두는 손뼉을 치며 축하했습니다. 아내는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바로 다음 순간, 제 등줄기에는 서늘한 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습니다. 아내의 생일 앞에는 제 생일도 있었습니다. 제게 이런 생일선물을 챙겨줄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익히 아시는 장모님께서, 바로 그 사위 면전에서 당신의 딸만을 챙기셨던 것입니다. 장모님을 원망하려고 이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만일 반대 경우였다면, 제 어머니도 제 아내한테 똑같이 하셨을 것입니다.


여기 하객 여러분 가운데 며느리 생일 챙기시는 시어머니, 사위 생일 챙기시는 장모가 몇 분이나 될까요? 그러면 대체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결혼식장 가면 백이면 백 모든 주례가 하는 미사여구에 속아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신랑 부모님은 며느리 하나 보았다 여기지 말고, 예쁜 딸 하나 얻었다고 생각하십시오. 신부 부모님은 사위 하나 보았다 여기지 말고, 든든한 아들 하나 얻었다고 생각하십시오.” 거기다 도장을 콱 찍도록, 이렇게 시키기까지 합니다. “자, 신랑 아버지는 딸을 안아주시기 바랍니다. 신부 어머니는 아들을 안아주시기 바랍니다.” 어떠십니까? 실제로 딸이고 아들입니까? 며느리한테 재산 물려주는 시아버지 있나요? 사위한테 재산 물려주는 장모 있나요? 재산은커녕 생일선물 한 번 안 챙겨주면서 딸은 무슨 딸, 아들은 무슨 아들? 이러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뭐가 정답입니까, 그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며느리, 귀하디귀한 남의 자식입니다. 사위, 귀하디귀한 남의 자식입니다. 남의 자식 받아서 내 자식하고 함께 살게 인연 맺어주는 결혼입니다. 입양 아닙니다!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도리어 며느리와 사위를 정중하게 대우하고 깊이 있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 담장 안으로 며느리와 사위가 들어온 게 아닙니다. 내 담장 밖으로 며느리와 사위를 위해 아들과 딸을 내보낸 것입니다. 둘만의 담을 새로 만들어준 것입니다. 다른 일가가 창립된 사건이 바로 오늘의 사건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사시다보면 어느 날, 며느리는 딸이 되어 있고, 사위는 아들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여태까지 우리는 거꾸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부부와 가정이 불행을 겪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순서를 정확히 기억하셔야 합니다.


머지않아 반드시 겪을 일 하나를 예로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신부가 장차 아이를 낳고 젖을 먹여 키울 것입니다. 그 때 시어머니께서는 이러실 것입니다. “아이고, 우리 집 귀한 자손 아직 뽀얀 젖살이 덜 올랐구나! 잘 키워야 한다. 그러려면 몸 축가서는 안 된다. 자, 여기 보약 한 제 지어왔다.” 친정어머니께서는 이러실 것입니다. “아이고, 우리 딸 몸이 많이 축갔구나! 남의 집 귀한 손 잘 키우려면 너부터 건강해야지. 자, 여기 보약 한 제 지어왔다.” 두 분 다 아기·아기 엄마 모두 챙겼고, 보약도 지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잘 하셨지요? 그런데 시어머니 하시는 말씀을 친정어머니가 들으셨다면, 반대로 친정어머니 하시는 말씀 시어머니가 들으셨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왜 그럴까요? 그렇습니다. 순서가 잘못되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친정어머니 말씀을, 친정어머니가 시어머니 말씀을 하셔야 하는 겁니다.


생각의 순서가, 말의 순서가 천지를 가릅니다. 이 생각과 말의 순서, 물론 신부와 신랑부터 지켜 나아가야 합니다. 결혼이란 이 세상에 나와 똑 같은 우선순위로 배려해야 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와 똑같은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면 평생 뼛속 깊이 새겨야 할 문장이 있습니다. 상대방은 내가 아니다. 부부는 이심이체다. 이 진실을 지키려면 평생 뼛속 깊이 새겨야 할 순서 하나가 있습니다. 살다보면 서로 싸울 일이 반드시 생깁니다. 그럴 때 “너!” 하고 시작하는 2인칭 어법을 쓰면 안 됩니다. 상대방은 내가 아니므로 상대방이 지닌 진실을 내 진실처럼 알 수 없는데, 대뜸 “너!” 하면 그게 아무리 진리라도 상대방은 즉각 돌아앉습니다. “나!” 하고 1인칭 어법으로 시작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싸움의 90%를 웃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더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신랑 부모를 향해) 신부는 신랑 집안의 딸이 아닙니다. 신부 집안 귀한 딸로 신랑 집안 아들과 똑같은 우선순위를 지닌 배우자가 되었습니다. 예의를 갖추어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신랑 부모를 향해) 신랑은 신부 집안의 아들이 아닙니다. 신랑 집안 귀한 아들로 신부 집안 딸과 똑같은 우선순위를 지닌 배우자가 되었습니다. 예의를 갖추어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신랑을 향해) 신부는 신랑이 아닙니다. 신랑과 똑같은 우선순위를 지닌 타인입니다. 예의를 갖추어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신부를 향해) 신랑은 신부가 아닙니다. 신부와 똑같은 우선순위를 지닌 타인입니다. 예의를 갖추어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여 이 순간 하나의 사랑을 지닌 두 어른이 탄생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예식 초반에 신부신랑이 양가 부모님과 하객들께 인사 올리는 순서는 그대로 두되 종반에 다음 순서를 덧붙였습니다.


“이제 비로소 어른이 된 두 사람이 어른으로서 첫 인사를 부모님께 올리겠습니다. 아이로서 마지막 올린 인사와 정반대 순서로 하겠습니다. 두 사람 신랑 부모를 향해 돌아서십시오. 신랑 부모님께서는 일어서주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을 어른으로 대우한다는 뜻에서, 신부와 신랑이 절을 하면 부모님께서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맞절의 예를 갖추어주시기 바랍니다. 신부와 신랑 절! (신부 부모께도 이하 동문. 하객께도 이하 동문.) 인사가 끝나면 그대로 행진으로 이어질 것이니, 모두 앉지 마시고 서서 두 사람의 행진을 축하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식이 끝났습니다. 피로연장으로 들어섰습니다. 하객 가운데 여러분이 제게 와서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제 손을 덥석 잡으며 한 말이었습니다. ‘healing이 되는 결혼식은 처음입니다.’ 저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바다를 내려다보며 소주잔을 가득 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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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아래서는 사회 모든 분야가 산업이 된다. 의학이 예외일 리 없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죽음의 신은 목숨밖에 가져가지 않지만 의자는 돈까지 가져갔으니까. 산업의학은 평범한 사람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산업의학은 사회 전체를 의료화했으니까.


오늘 날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병원의 관리를 받는다. 산업출산은 기본이다. 이후 삶의 모든 과정에서 의료 시스템의 지휘감독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죽음과 그 의식까지 병원에서 치른다. 마치 인간의 생사 전체가 질병이기나 한 것처럼 온갖 것에 의료는 촉수를 뻗치고 돈을 빨아들인다. 생사를 볼모로 수탈하는 짓은 얼마나 반의학적인가. 산업의학은 돈에 미친 지배 권력과 엘리트 집단의 야비한 협잡 수단이다.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는 말은 구차하다. 이미 일극집중구조가 굳어진 마당에 ‘조선일보 문화면’ 같은 것이 있다 한들 무슨 정당성을 확보하겠나.


날로 비대해지는 암 병원을 볼라치면 바로 그 암 병원이 암 덩어리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죽여가면서 벌어들이는 돈으로 향락적 삶을 구가하는 자들에겐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일 테지만, 내게는 분노와 슬픔을 자아내는 어두운 동굴일 따름이다.


목하 암암리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는 국가 주도의 정신건강 사업도 마찬가지다. 토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서구, 특히 미국이 짜놓은 정신의학 체계는 그야말로 장사판이다. 돈이 되면 넣고 안 되면 빼는 식으로 진열한 병명만도 370개가 넘는다. 370여 개의 돈줄 던져놓고 마음 아픈 사람 낚아 올리는 블루오션에 자본이 문어발 뻗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의 몸도 맘도 백색의학의 돈벌이 수단이 된 오늘을 나 역시 살아야 한다. 불평등한 경제구조에 편승하고 다시 그 불평등을 촉진하는 백색의학의 거대한 힘 앞에서 변방의 ‘한’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인욕하고 진욕進辱하는 길에서 출발부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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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 찾아온 것은 자신의 심리적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은 청소년기 그의 기억 전반을 어둡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 선명한 얼룩은, 남편과 시부모에게 학대당하던 그의 어머니가 분노를 그에게 드러내면서 퍼부었던 욕설이었습니다. 이 상처는 그에게 변형된 방어기제로 발현되었습니다. 내부에서 날뛰는 폭력성을 밖으로 내보낼 때는 놀림·깔봄·비아냥거림으로 표현했습니다. 토론에서 이겨 상대방에게 모욕 주는 상상을 되풀이하면서 날카로운 논리적 문장 따위를 암기하곤 했습니다. 그럴수록 내면의 평화는 깨지고 사회생활은 뒤틀렸습니다. 몇 차례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치료 받아야겠다는 결론을 황급히 내렸을 때, 우연히 저를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숙의를 진행하는 동안, 필요한 요법으로 기억과 격정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아갔습니다. 그런 부분들이 정리되면서 이야기는 원 가족에서 점차 배우자로 넘어갔습니다. 그의 배우자가 그를 대하는 방식은 그가 드러내는 방어기제와 흡사했습니다. 목소리 등 사소한 인신의 문제를 빌미로 좀 더 야비하게 조롱하는 습관이 있지만 본질이 같아 보였습니다. 아마도 그에게 배우자의 그런 측면이 병적 끌림으로 작용하였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배우자는 출신지역이나 학력 따위 문제에서 드러나는 열등감을, 변형된 공격으로 위장해 사사건건 괴롭혔습니다. 저는 배우자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말했습니다.


“제가 드릴 말씀이 무엇인지 아마 짐작하실 것입니다. 다만, 일방적 이야기이므로 충분한 근거로 삼을 수 없습니다. 배우자에게 기회를 주시지요. 함께 오세요.”


다음 주, 부부가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에게 수 주 동안 들은 이야기를 백지로 돌리고 투명한 마음으로 배우자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30분 남짓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그가 말한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에너지 결을 배우자에게서 감지했습니다. 그것은 ‘옳지 않다.’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와 함께 두면 안 된다.’ 문제였습니다.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그의 배우자에게는 천적의 에너지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저녁식사를 제안했습니다. 식사 도중, 배우자의 직속상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사적인 일이라 하면서도 배우자는 저와 그를 남겨두고 서둘러 자리를 떴습니다. 저는 그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무슨 말씀 더 드려야 할까요?”


그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간호사가 얼굴을 들이밀면서 ‘예약 잡지 않은 분이 무조건 뵙겠다고 하시는데 어쩌죠?’ 합니다. 제가 직감으로 느끼며 ‘괜찮다’ 하자, 말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활짝 웃으며 들어섰습니다. 그의 손에는 커다란 꽃다발이 들려 있었습니다.


“법원에서 오는 길입니다. 감사드려요.”


그 뒤, 그는 자신의 어머니·친구·선배를 제게 소개해, 병과 삶의 문제를 숙의하도록 했습니다. 10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잊을 만하면 연락해옵니다. 밥도 먹고, 술도 한 잔 합니다. 물론 더 이상 이혼 이야기 따위를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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