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의학은 맘을 뇌라고 한다. 가소로운 무지요 가공할 범죄다. 뇌는 맘이지만 그 역은 아니다. 저들은 자신의 종자논리를 부수고도 그조차 자각하지 못한다. 그렇다 치자. 그럼, 몸은 무언가? 답이 궁하다.


녹색의학에 따르면 맘은 의당 피부다. 피부는 비대칭의 대칭 구조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사건이고, 마음은 그 가운데 파동 축 가까이에서 운동한다. 몸은 반대로 입자 축 가까이에서 운동한다. 100% 맘은 없다. 있다면 유령이다. 100% 몸은 없다. 있다면 시체다. 맘을 보면 몸이 보이고, 몸을 보면 맘이 보일 때, 비로소 전체 진실에 주의할 수 있다.


백색의학은 맘 병이라 판단하면 맘만 본다. 우울장애 환자에게는 아무 생각 없이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준다. 그 화학합성물질이 위장을 망가뜨린 뒤 소화제 준다. 몸을 진중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몸 병이라 판단하면 몸만 본다. 아토피 환자에게는 그저 스테로이드제를 준다. 맘 문제가 불거진 뒤 정신과 보낸다. 맘을 진중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정신과 전문의가 장내세균을 조절하는 날은 언제일까. 아토피 전문의가 우울장애를 숙의하는 날은 언제일까. 그 사이 아픈 이들은 스러져간다. 백색의학은 아무래도 녹색 몽둥이로 맞아야 정신이 들려나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문제아란 없다. 문제부모가 있을 뿐이다.’ 진부해서 진득한 진실입니다. 이 진실의 전형인 그가 까만 얼굴에 새까만 눈동자로 저를 찾아온 것은 고작 10대 중반 때였습니다. 그는 역설 자체였습니다. 한편으로는 맹하게 풀린, 다른 한편으로는 총기가 번뜩이는 내면 풍경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발음도 분명치 않고 급한 어조로 툭툭 던지는 말의 형식과 깜냥대로 근거와 서사를 갖춘 말의 내용이 기이한 화쟁 미학을 조몰락거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그를 묘사한 부모의 말과 달랐습니다. '엄친아'에서 쓰레기로 떨어진 탕아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문답으로 확인한 바입니다.


“어머니가 늘 그러실 텐데. 언젠가 제자리로 올라올 거라고. 바닥 이전 네 자리는 어디니?”


“그런 바닥 같은 거 없는데요.”


그렇습니다. 바닥이 있다면 누구나 그 바닥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닥은 결코 어디서 떨어져 나뒹구는 천한 곳이 아닙니다. 올라갈 이유가 없습니다. 아이는 그 진실을 깨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와 함께 ‘바닥을 치는’ 선문답을 시작했습니다. 화두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전체적 관점을 지니기 위해 뒷문을 열어둔다.

(2) 경계 밖에서 나를 본다.

(3) 자기 자신의 연인으로 살아간다.

(4) 나는 매혹적인 사람인가?

(5) 나는 어떤 소향을 지닌 사람인가?

(6) 진실의 대칭성(1): 평범과 비범의 화쟁

(7) 진실의 대칭성(2): 삶의 두 동력-타인의 인정과 자기 신뢰

(8) 진실의 대칭성(3): 빛과 어둠-가지 않으면 오지 못 한다.

(9) 현실적 인생관: 반걸음 앞을 내다보고 한걸음씩 내디딘다.

(10) 현실적 자기성찰: 바로, 지금 여기서 나는 무엇인가?

(11) 현실적 생활 기조: 견디면서 준비하고 준비하면서 견딘다.


10대 중반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거르지 않고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는 난해하고 심지어 현학적이다 싶은 어휘와 문장을 나오는 대로 구사하면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못 알아듣는다는 느낌이 없어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올 것이 왔습니다. 드디어 어머니와 용서를 주고받으며 현실 생활로 복귀시키기 위해 피부에 와 닿는 화두를 꺼내들었습니다.


(12) 사람과 삶을 치유의 관점에서 보기(1): 어머니


바로 그 순간, 어머니는 아이 덜미를 낚아챘습니다. 어머니가 저와 그의 숙의를 더는 참지 못 한 것입니다. 어머니의 불운이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이는 머지않아 저를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아이는 3년 뒤 대학생이 되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나름 전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불안이 여전히 남아 있고, 예의 그 반골 ‘끼’가 다소 완화되긴 했지만, 대신 전술전략을 보유했습니다. ‘이렇게 다시 왔으니 앞으로도 계속 오겠다.’며 총총히 떠났습니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그를 위해 화두를 준비해 놓고 기다립니다.


“(13) 철학이 대체 나와 무슨 상관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피부 화두를 더 나아가 참구한다. 2010.8.23 마이리뷰 디디에 앙지외의 <피부자아> 일부를 다시 읽는다.


“자아는 피부다.”


이 말을 역으로 하면 “피부는 자아다.”입니다. 사실 이 말만으로도 전복적입니다. 피부를 그런 맥락으로 읽어 본 예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지은이는 주어와 술어 위치를 바꿈으로써 더 한층 날카롭게 나아갑니다. 피부가 자아의 부분집합이 아니고, 자아가 피부의 부분집합인 상황을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이 명제로써 한 순간에 피부는 광대한 은유가 됩니다. 피부이자 피부를 넘어선, 현실과 상상을 가로지르는 절묘한 실재성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엄마와 아기가 살을 부비는 정밀하고 사소한 일상부터, 반-생태적 자본주의 문명의 제약 불가능한 경계 교란까지, 실로 엄청난 폭량의 은유가 피부라는 경계, 즉 가장자리에서 요동치는 사건입니다. 피부는 다만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며 역동적 사건 그 자체입니다. 지은이는 피부의 기능 여덟 가지를 말합니다. 지탱하기, 담아주기, 항상성, 의미, 교감, 개별화, 성욕화, 에너지화. 좀 더 엄밀히 말하면, 피부의 기능이라기보다 피부라는 사건의 다양한 발현 양식이라 해야 하겠지요.


피부 사건에 두 가지를 더해야 한다. 하나는 호흡. 폐라는 호흡기관이 있음에도 전체 호흡의 0.6%를 피부가 담당한다. 대수롭지 않는 게 아니다. 피부 자체의 생존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과도한 화장 등으로 호흡을 막는 것은 충분히 반생명적 행위다.


다른 하나는 정보 인식. 디디에 앙지외가 적시한 교감과 다른 차원에서 피부는 소미한 정보 인식 사건을 일으킨다. 이는 면역체계와 직결된다. 교감 사건과 상보를 이루면서 에너지화와 대칭되기도 한다.


전체 맥락에서 보면, 생명은 피부의 다양한 주름이다. 생명 사건은 피부 사건의 다양한 변주다. 피부를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감각, 의식, 자세를 혁명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피부는 개별 생명체로 일단 떼어서 생각하면 가장자리다. 다른 생명체와 상호작용하는 관계로 생각하면 중심이다. 단독으로는 살아갈 수 없으므로 결국 생명의 중심은 피부다. 중심인 피부는 깊다. 더 깊은 내면 따위는 없다.


피부를, 그러면 어떻게 대할까? 피부는 지극한 거룩함과 질탕한 즐거움이 비대칭의 대칭을 이루는 사건이며 실체다. 이 이율배반과 모호함을 흔쾌히 흠뻑 끌어안아야 한다. 정중하게 모시는 일과 까불대며 함께 노는 일에 동시 감각이 일어나야 한다. 바라보기, 닿기, 만지기, 쥐기, 쓰다듬기, 다독이기, 도닥이기, 문지르기, 비비기, 부비기, 닦기, 씻기, 두드리기, 때리기, 긁기, 간질이기, 누르기, 받치기(받들기), 주무르기, 잡기, 접기, 펴기, 핥기, 빨기, 깨물기, 벌리기, 끼워 넣기, 찌르기, 짜기, 째기, 조르기, 자르기, 데우기, 태우기, 식히기, 적시기, 말리기, 불기, 뿌리기, 바르기, 싸매기·······의 수많은 접촉이 수많은 생명 사건을 일으키므로 한꺼번에 주의하고 하나하나 집중해야 한다.


한의사인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침으로 피부를 찌르는 치료를 한다. 침 찌르기는 근본적으로 피부사건 일으키기다. 침이 찔러지는 경혈의 흐름인 경락은 피부를 따라 흐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경락이 혈관계·신경계·림프계들로 진화하기 이전 피부의 미분화 정보·에너지 전달 체계였다고 본다. 물론 경락 이전 단계에서 피부는 세포 하나하나마다 감각·기억·전달·치료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세포들 사이에 원시 네트워크도 있었다. 그 원시 네트워크가 나중에 경락을 거쳐 혈관계·신경계·림프계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고대 동아시아인들이 경락과 침을 발견한 것은 실로 위대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침은 동종의학과 이종의학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앞으로 좀 더 치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나는 다른 한의사와 달리, 침을 찌르기 전에 특별한 경우 말고는 반드시 침 찌를 곳에 가벼운 터치를 한다. 단순히 대기도 하고, 문지르기도 하고, 만지기도 하고, 누르기도 한다. 대부분은 가볍게 톡톡 두드린다. 가볍게 두드리는 것은 소미한 통증 유발 효과가 있다. 손가락을 모으고 머리를 세워 두드리면 생체 광자photon들이 다량 방출된다. 생체 광자는 정보를 전달을 통한 치료 능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동종의학이다.


동종의학은 소미심심 의학medicina tenuissima이다. 소미심심 의학은 피부에서 비롯하여 배어들고 배어난다. 피부에서 비롯하여 배어들고 배어남으로써 생명이 피부임을 증언하는 길이 녹색의학의 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는 뭐랄까, 어떻게도 명쾌히 규정할 수 없는 심각한 장애를 지닌, 그러나 너무도 정상적인 언행 일부를 전유한, 매우 독특한 문제적 인물이었습니다. 미국 정신의학 협회APA가 펴내는 정신장애 진단과 통계 편람DSM-5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그만의 증후군-가벼운 정도의 조현병, 반사회성 성격장애, 간헐적 폭발장애, 공황장애, 의사소통장애와 같은 유형이 뒤섞여 있으나, 이들 모두로도 포괄이 안 되는-에 사로잡힌 채 사회의 변방에서 나름 분투하며 사는 청년이었습니다.


얼핏 보아서는 과도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힘든 진지함, 성실함, 정중함, 의로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몇 번 대화를 나누고 나서야 그 언행이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의 것과 같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부풀려져 있으며, 기묘하게 어긋난다는 사실을 그 자신은 전혀 인지하지 못 합니다. 그런 진지함, 성실함, 정중함, 의로움을 상대방이 수용하지 않는 상황이 닥치면 급작스럽게 모든 것을 한꺼번에 부수어버립니다. 같은 일이 거듭 반복되면서 사회 공동체로 본격 진입하는 것 자체가 무한히 유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비극은 아주 어린 시절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실내구조가 2층으로 되어 있는 집의 2층 난간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심리적 충격은 물론이고 뇌를 다쳤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임에도 부모는 아이가 울음을 멈추자 걱정도 멈추었습니다. 이후 아이가 보이는 상식 밖의 언행을 부모, 특히 아버지는 질병 아닌 윤리의 차원에서 대했습니다. 아버지는 바로잡아야 한다며 난폭한 매질을 가했습니다. 그는 그 때 그 공포를 너무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이 병적 과장을 포함한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이미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그의 반응이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인이 된 다음에도 아버지가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붓거나 때리는 시늉만 하면 그는 ‘살려주세요.’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겁먹은 강아지가 크게 짓는 법입니다. 그는 사소한 충돌에도 격분 반응을 절제하지 못 했습니다. 극단적인 언어로 맞서는 것은 기본이고 걸핏하면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심지어 아버지를 신고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그에게는 반사회적 경향이 쟁여져갔습니다. 그의 반사회적 경향은 그가 비윤리적이어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을 향한 나름 의로운 비판의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습니다. 물론 정확한 사회과학적 지식에 터하지 않았으므로, 많은 부분이 비판 아닌 비난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모순들이 주위 사람들을 다양한 불편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숙의로 치유를 해오면서 이 청년처럼 힘들고 조심스러운 적도 드물었습니다. 저는 우선 그의 정서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임으로써 신뢰를 구축했습니다. 그의 입에서 ‘제 말을 끝까지 다 들어준 분은 선생님이 처음입니다.’라는 말을 들은 뒤에야 객관적인 분석과 평가를 친절하게 전달해주었습니다. 그는 조금씩 서서히 자신의 상황과 삶의 조건이 어떻게 불화하고 있는지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한계는 매우 뚜렷했습니다. 저는 냉정하게 그 한계를 헤아리고 딱 반걸음만 먼저 나아갔습니다.


그에게 일생의 중대사는 단연 취업 문제였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열심히 정보를 수집하고 학원을 다니며 공부했습니다. 필요한 외국어 능력시험 점수를 확보하고 자격증을 따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그 일은 제가 도울 수 없었습니다. 면접, 자기소개서 부분은 숙의 시간은 물론 그 외의 시간을 따로 내어 도와주었습니다. 특히 자기소개서는 빈틈이 너무 많아 일일이 어휘를 교정하고 비문을 없애고 논리와 서사를 바로잡아주었습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좌절에 빠지기도 했지만 결국 그는 어떤 지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일단 거기까지 그와 저는 함께 적응해갔습니다. 앞으로 기나긴 세월 동안 그가 사회에서 어떻게 적응해 나아갈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가 그의 운명에 합당한 길을 찾을 것이라 믿습니다. 제 믿음이 단서를 잡았습니다. 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그 동안 참 감사했습니다. 이렇게나마 인사를 드리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도리’란 말을 ‘제 삶에 심은 종자신뢰’로 번역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폴 발레리가 말했다. “가장 깊은 것은 피부다.” 시인의 말이라고 해서 시적 수사로 볼 일이 아니다. 디디에 앙지외가 말했다. “자아는 피부다.” 정신분석의의 말이라고 해서 정신분석적 은유로 볼 일이 아니다. 실재에서 가장 깊은 내면으로서 자아는 피부, 바로 그 피부다.


백색의학은 이 피부를 분열적 태도로 소외시킨다. 하나는, 미용 대상으로 귀빈 대우. 다른 하나는, 단지 살 껍질 취급. 전자는 의학 포르노의 총아다. 후자는 함부로 째도 꿰매 놓기만 하면 되는, 또는 스테로이드 처바르는 구박 덩어리다. 둘 다 모독이다.


인간은 본디 피부다. 피부는 몸과 마음이 미분통합 상태인 채 있는 태초 생명이다. 피부가 말려 대롱을 만들면서 안쪽 피부는 장腸이 된다. 장은 제2피부다. 제2피부는 장신경을 만들어 정보 시스템을 독립시킨다. 장신경은 제2피부신경이다. 제2피부신경은 자율신경으로 진화한다. 자율신경은 제3피부신경이다. 제3피부신경의 터미널이 각종 장臟이다. 장臟은 제3피부다. 제3피부신경은 중추신경계로 진화한다. 중추신경은 제4피부신경이다. 제4피부신경의 터미널이 뇌다. 뇌는 제4피부다. 이게 진실이다.


백색의학은 본말 전도다. 피부의 복권이 절실하다. 피부는, 이후 진화된 ‘신경’ 없이도 감각을 지닌다. 냄새와 빛깔, 그리고 소리를 느낀다. 함부로 째고 꿰매면 안 된다. 함부로 스테로이드 처바르면 안 된다. 포르노 미인 만들려고 조몰락거리는 것은 더욱 안 된다. 모든 산업피부를 거부해야 한다. 자연피부의 근원 상태를 복원해야 한다. 자연피부는 소미심심小微沁心 신의 거처다.


신의 거처에서 백색의학은 스스로 물러나라. 물러나서 삼가 엎드려 다시 시작하라. 피부에서 장腸으로, 장에서 장臟으로, 장에서 뇌로 가는 길을 겸허히 따라가라. 서두르라. 내일이면 늦는다. 녹색혁명이 들이닥칠 것이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