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하다는 말은 본디 재주나 포부가 출중함에도 기회를 얻지 못하여 삶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이 많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열린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사회가 건강합니다. 각자도생 약육강식에 구성원을 내모는 사회는 스스로 공동체이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매판독재분단세력이 우리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현실을 전복하지 않는 한, 지금 우리사회는 결코 공동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뻔뻔하고 잔혹하게 불우한 사람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여기 불우에 절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방치되어 학교 교육조차 평범하게 받지 못했습니다. 일찍 직업을 구해 가족을 먹여 살렸습니다. 늦깎이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유학가서 미국의 명문대 학위를 받았습니다. 돌아왔지만 그는 대학에서 자리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사교육 시장을 통해 삶을 지탱해야 했습니다. 비상한 능력과 노력으로 단기간에 경제적 안정은 찾았습니다. 중요하긴 해도 경제적 안정이 자신의 가치를 떠받치지는 못한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자신이 불우하다는 생각에 점점 더 강하게 집착하기 시작했습니다. 과도하게 술에 의존했습니다. 인사불성 상태에서 사회를 비난하고 가족을 비판했습니다. 해결되는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자신과 가족이 피폐해질 따름이었습니다.


가족의 권유로, 그가 자신의 고통과 삶을 숙의하기 위해 제게 왔습니다. 그는 매우 감성적이면서도 치밀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누구며 어떤 생각을 지닌 사람인지 알려주려고 장문의 글을 써왔습니다. 그의 글은 기본적으로 탄탄한 사고력에 터하고 분석과 논리의 힘이 동반된 것이었습니다. 현실 비판적 태도에서 생긴 격정이 수시로 분위기를 뒤흔들지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데 크게 무리는 없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자아상과 세계관을 지니고 있어 일방적 훈계 어법을 구사한다는 데 있었습니다. 필경 이런 문제 때문에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은 그의 가족일 것입니다. 실제로 그가 가족의 문제를 말한 글에 가족의 단점과 자신의 주장은 세밀히 적었지만, 가족의 장점과 자신의 반성은 전혀 적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의 비범함을 십분 인정한 터 위에, 자기성찰의 죽비로 어깨를 툭 쳤습니다.


“비범함은 스스로를 닦아세우는 초달입니다. 타인을 닦아세우면 범속입니다.”


사실 그의 배우자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고뇌와 감수성을 독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물며 딸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는 그 빤한 간극을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이 용렬庸劣은 그의 평범함이었습니다. 그가 모른 것은 바로 자신에게 도사린 평범함이었습니다. 자신의 평범함을 모르는 비범함은 범속 그 자체입니다. 붓다의 수단설법, 그리스도의 비유말씀이 아니어도 범속은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습니다.


상처 때문에 일시 흐려졌지만 그가 맑은 영혼임을 알기에 저는 그 뒤 그가 빚어갈 내러티브를 신뢰합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 그도 노년에 접어들었습니다. 그와 다시 만나 ‘필름 끊기도록blackout’ 한 번 마셔보면 어떨까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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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진행되던 지난 여름

썩어가는 나무 등걸과 둥치

후미진 땅과 그늘진 자리에

작고 작은 생명들이 솟아나

내 영혼을 온통 사로잡았다

소미 하느님 신이神茸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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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미각, 그 여러 겹의 아우라


인류 역사상 맛味이란 말에 가장 웅혼한 미학을 부여한 사람은 단연 원효다. 원효 사상의 결정판인 『금강삼매경』은 일미관행一味觀行으로 요약된다. 일미一味는 일심一心을 실천적·감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일심은 장엄을 향해 가는 삶의 내용, 방향, 동기, 가치, 효력 모두를 포괄한다. 이 모두를 소미한 것에서 소미하게 감각할 수 있도록 일미라 표현했다. 일심 사상이 거대 관념론으로 흐르는 것을 원천 차단한 셈이다. 요컨대 가장 광활하면서도 가장 소미한 영성, 그 비대칭의 대칭을 맛, 그러니까 미각에 담은 묘미가 일미에 있다.


원효의 일미와 비할 바 아니거니와, 우리에게 제법 낯설지 않은 장 앙텔름 브리야 사바랭의 ‘네가 무엇을 먹었는지 말하라. 네가 무엇인지 말해주겠다.’를 거론함직하다. 먹는 음식에서 신분이 드러난다는 취지의 말이 번역 과정에서 ‘네가 먹는 것이 곧 너다.’로 왜곡되었다고 비판하는 견해가 있다. 뭐 왜곡이랄 일만은 아니다. 한 사람이 즐겨 먹는 음식, 그러니까 추구하는 맛을 통해 그의 상황이나 성향을 짐작하는 것에는 분명한 일리가 존재한다. 아니 어쩌면 그가 하는 말, 사회적 행동보다 훨씬 더 신뢰할만한 정보를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각에 착오는 있을지언정 고의적 위선은 거의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하마 아득히 잊힌 작년 여름 일 하나가 떠오른다. 이정현이 새누리당 대표에 선출되자 축하파티를 열어 샥스핀과 송로버섯 먹인 박근혜의 미각학예회다. 얼마 뒤 국민 손에 쫓겨날 줄 모른 채, 제 속살을 함부로 대놓고 드러낸 천박한 미각적 커밍아웃이랄까. 선거 때 재래시장 가서 어묵 쇼했던 이명박도 실은 뒤에서 저희들끼리는 뭘 처먹는지 역으로 드러낸 것이니 미각의 천박함에서는 도 긴 개 긴이다. 비싸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 기품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은 돈 있으면 근본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과 동일하다. 한마디로 개 웃기는 얘기다.


미각의 사유와 실천이 한 사람의 상황이나 성향을 결정한다 하면, 보통 서둘러 무엇을 먹을까 궁리부터 한다. 이 또한 본말 전도다. 무엇보다 여태까지 자신의 미각이 어떻게 형성·지속·왜곡되어왔는지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현실에는 태아 때 어머니의 식성에서 시작하여 지구 기후변화 문제에 이르기까지 중층의 요인이 개입한다. 자기 삶을 돌아보면서 어떤 미각, 어떤 음식에 원근·호오의 반응을 하게 되었는지 면밀히 살피고 감응하는 치유부터 해야 한다. 미각의 쏠림을 조절하고 대칭성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음식을 새로 선택하고 교감하는 일이 흐름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다른 이들과 달리 어렸을 때부터 단 맛에 끌리지 않았다. 도리어 쌉싸래한 맛을 좋아했다. 시생대 모유의 절대 결핍이 유발요인이었을 법하고, 강원도 산골의 산나물이 강화요인이었음직하다. 양념 맛이 강한 음식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도리어 원재료의 맛에 예의를 갖추는 한에서 양념을 쓴 담담한 음식을 좋아한다. 시생대 모유 대신 먹은 미음이 유발요인이었을 법하고, 할머니의 백김치가 강화요인이었음직하다. 이런 미각을 삶의 소중한 일부로 받아 안는 과정이 우울증을 깨닫고 치유하는 과정과 겹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뜨르르한 셰프와 장인들이 시전하는 저 맛의 향연에 나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렇게 높은 맛의 높은 경지에 이르고 싶은 욕망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경지를 포르노라고 부른다. 포르노를 상락아정으로 구가하는 미각 아라한이야말로 아우라 극단에서 어슬렁거리는 비렁뱅이다. 미각이 거느리는 아우라 스펙트럼에도 중도와 회향의 진리가 통한다. 개인적 상처와 지구의 기후변화를 가로지르는 삶의 통찰과 몸과 맘 전체를 가로지르는 미각의 조절은 중후하면서도 경쾌한, 의미심장하면서도 재미무인지경인 경계 시공을 탄다. 그 경계 시공에서 원효의 일미와 나의 담담 쌉싸래한 미각은 둘이자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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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해도 능력보다 일이 잘 되는 사람이 있고 잘 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 판단 기준이 모호함에도 우리 경험이 먼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게 사실입니다. 중요한 인생사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깊은 우울장애에 빠져 허덕이는 사람 하나가 반쯤 넋 나간 얼굴을 하고 들어섰습니다.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그가 매우 똑똑하고 육감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람과 삶이 이렇게 서로 어긋나기도 하는구나, 젊은 날 저 자신에게 품었던 상념을 문득 떠올렸습니다.


그는 10살이 채 못 되어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유난히 아버지를 따랐던 그에게는 형언하기 어려운 충격이었습니다. 이후 그의 삶은 그의 똑똑함과 무관하게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뛰어난 그의 육감은 늘 좋지 않는 것에만 적중했습니다. 그의 이런 삶에 어머니는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 또한 어려운 일이 터지면 감내하며 살라고 강권하는 선에서나 개입했습니다. 그를 가장 잔혹한 질곡으로 몰아넣은 것은 사기결혼이었습니다. 배우자의 가족은 의도적으로 그를 속이고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중증 정신장애 상태에 있는 사람과 결혼시켰습니다. 여기서 파생된 수많은 불행과 대결하느라 그의 인생 황금기가 다 날아갔습니다. 어느 정도 수습은 했지만 자신과 삶 자체를 향한 우울감은 갈수록 짙어졌습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그가 마지막으로 지니고 있는 소원 하나마저 물거품이 되겠다 싶어 저를 찾은 것입니다. 그가 간절한 눈빛으로 제게 말했습니다.


"제 소원은 세상 어둠을 밝음으로 바꾸는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어둠 보는 눈이 너무 밝아서 아프디아픈 삶을 살아온 그의 소원은 과연 이루어질까요? 다음 숙의를 예약하고 여느 때처럼 나간 어느 날부터 그가 홀연히 소식을 끊었습니다. 만일 지금 세상 어둠 하나가 밝은 하나로 바뀌고 있다면 거기 그가 있는 것은 아닐까, 가끔 그를 떠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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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원 접수대에 세월호 기억 물품들을 놓아두고 있다. 어떤 분이 내가 세월호 리본을 목걸이와 스마트폰 고리에 달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어디서 구했느냐 묻기에 광화문 가서 몇 개 가져온 것이다. 세 가지 반응이 나왔다.


고맙다며 가져가 달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누가 가랬나, 여행가다 죽은 걸, 뭐 어쩌라고 기억 운운이야, 하는 사람이 있다. 아유, 원장님, 세월호에 신경 많이 쓰시는구나, 죽은 애들이 제일 불쌍하지 뭐야, 하는 사람이 있다.


누구든 나름 생각하고, 그 생각 나름으로 산다. 인연 따라 가는 것이다. 그 나름이라는 것이, 많은 경우 자기 잘못을 눙치고 지나가는 도구로 악용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 우리다. 그럼에도 그 알량한 나름을 바꾸지 않는다.


한평생 배우며 산다는 말을 쉽게 하지만 대부분 거짓말이다. 자기 확신을 강화하는 정보를 쟁여갈 따름이다. 박근혜 파면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은 기존의 잘못된 생각을 돌이키지 않았다. 오히려 더더욱 광신적이 되었다.


인간은 자기성찰의 축을 본성에 지닌다. 어떤 계기에 자아비대증 환자 무리가 나타나 그 축을 뽑아버렸다. 그들이 감염시킨 인류가 수탈문명을 일으켜 오늘에 이르렀다. 또 하나의 파멸이자 마지막일지 모를 파멸이 다가온다.


파멸을 개벽으로 전복하는 길은 오직 하나다. 소미한 존재에 소미하게 스며드는 사랑小微沁心. 누가 소미한 존재인가. 세월호 아이들이다. 누가 소미하게 스며드는가. 바로 나며 너다. 성찰의 축을 당장 복원한다. 내일은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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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09-19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옆에 앉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렸어요..
주식 이야기를 하더니, 문재앙 이러면서.. 어찌나 화가 나고 어이없던지
본인 스스로와 그 자식들이 진정 이명박근혜 밑에서 살고 싶은건지..

이들에게 우리의 추운 겨울 광화문에서의 외침은 사치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bari_che 2017-09-19 17:30   좋아요 1 | URL
주식 얘기 할 정도면 저들은 의도적 무지를 장착한 자본기계입니다. 공동체를 파멸시킬 병기죠. 저들이 야차의 심장을 지녔듯 우리도 오연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부디 흔쾌히 진욕하는 온기 잃지 마시기를!

^^요즘, 건강은 괜찮으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