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제약회사 - 거대 제약회사들의 살인적인 조직범죄
피터 괴체 지음, 윤소하 옮김 / 공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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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먹는 약이 우리를 엄청난 규모로 죽이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통제 불능의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명백한 증거다.·······미국에서 매년 10만 명 정도가 자신이 복용하는 약 때문에 사망한다. 복용법에 맞게 복용한 경우가 그렇다. 다른 10만 명은 약 오용 때문에 사망한다.·······


약은 심장질환과 암에 이어 주요 사망원인 3위다.


  약으로 인한 실제 사망자 수는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병원 진료기록과 검시 보고서에는 처방약과 관계있는 죽음이 대개 자연사나 사인불명으로 기재된다.(439-440쪽)



명명백백하다. 이것은 전쟁이다. 제노사이드다. 약이라는 미명 아래 화학합성 독극물로 살해하는 범죄다. 화학합성 독극물 오남용에는 선진국과 후진국이 따로 없다. 전 지구로 확대해 보면 이것은 명명백백한 세계대전이다. 방식을 바꾼 제국주의 수탈 전략이다. 웃으며, 신뢰 속에서, 돈까지 또박또박 받아가며 죽일 수 있는데, 뭐 하러 촌스럽게 소리 내는 전쟁을 한단 말인가.


우리는 무조건 이 야비한 전쟁을 반대한다. 반전평화운동의 본진은 다름 아닌 바로 여기 ‘반약反藥’ 전선에 자리 잡아야 한다. 이때 우리는 또 조심해야만 한다. 혹시 제약회사들이 반전평화운동 단체들에게 두둑한 후원금을 주고 있지나 않은지 말이다. 초국적 부패체제에서 대체 누구를 믿을 수 있는가. 참으로 절망적인 상황이다.


원인 모를 고혈압으로 오랜 세월 고생해온 여성이 다시 찾아왔다. 그 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원인을 추적했으나 적중하지 못했다. 오늘 가장 개연성이 높은 지점을 포착했다. 피터 C. 괴체가 이 책 다른 곳에서 언급한 천식 흡입 약 바로 그 놈이었다! 환자 본인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내게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거다. 나는 그에게 힘주어 이 사실을 말하고 위급 상황 아니면 절대 사용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제 내 처방은 분명해졌다. 그의 선택도 분명해졌다. 이것이 그와 나의 공동전선이다.


그래도 그는 다행이다. 이렇게라도 저들의 마수에서 벗어날 희망을 지니게 되었으니 말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각 백색 화학합성 독극물의 식민지가 되어 목숨을 수탈당하고 있는가. 몸서리쳐지는 인간세계다. 어디부터 어떻게 손을 대면 이 아수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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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는 혁명하는 녹색행위다.]


2017년 3월 10일은, 평범한 시민의 걷기만으로, 대통령직을 도둑질해서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든 박근혜의 멱을 딴 날이다. 5천 년 역사에 이런 일은 없었다.


적지 않은 잘난 인간들이 혁명은 아니네, 광장의 한계가 있네, 비폭력을 자랑할 건 아니네, 민노총 없었으면 안 될 일이었네, 운운·······훤화하지만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소리다. 시민의 비무장은 더없이 강력한 무장이다. 걷는 시민은 다시없는 전차군단이다. 촛불 파도는 어디에도 없는 해일이다. 목말 탄 아이까지 함께 지른 함성은 B52 저리가라다.


걷는 인간homo ambultus이 걷는 인민populus ambultus을 경험할 때, 혁명이 된다. 사회가 문화가 뒤집어진다. 정치가 경제가 엎어진다. 이런 일은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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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2기 특조위 설립!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입법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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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글씨를 모른다고 할 한국인은 삼척동자 빼면 아마 없을 것이다. 심지어 글씨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귀동냥으로나마 추사체가 명필임을 말한다. 나 또한 10대 때 교육을 통해 그런 사실을 주입(!) 받은 이후 추호의 의심 없이 반세기 가까이 살았다. 최근 불현듯 전혀 다른 깨달음이 찾아왔다.


고등학교 1학년, 봉은사로 봄 소풍 와서 판전 현액을 처음 보았다. 미술 선생님께서 곡절을 말씀해주셨다. 마냥 신기하게 생각하고 감동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새롭다. 지난 일요일 오전 판전 현액을 다시 보기까지 아마 수 십 차례 보았을 것이다. 그날따라 글씨에는 병중무심이라는 평평한 내러티브 이상의 진실이 숨어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천천히 걸으며 느슨히 생각을 펼쳐 놓기 시작했다.


내 상상의 풍경에는 기억 속에 있던 추사의 글씨들이 몇 단계를 거쳐 늘어서고 있었다. 붓을 처음 잡았을 때, 그러니까 배우기 전 어린 추사의 neoteny 가득한 글씨. 선배 명필들의 글씨를 본떠 열심히 배워 틀 갖춘 추사의 글씨. 학습 명필에 만족하지 못한 추사의 새로운 시도로서 어린 시절 neoteny를 녹여낸 글씨, 이른바 추사체. 추사체마저 던질 수밖에 없었던 아픈 추사의 <판전> 글씨. 전경을 본 뒤 나는 생각했다. 원효 일생 같구나.


추사는 타고난 악필이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명필을 섭렵한다. 아무리 꿰뚫어도 성에 차지 않는다. 2% 모자란다. 타고난 음치가 아무리 교정해도 끝내 완벽하게 되지 않는 것처럼 타고난 악필은 아무리 흉내 내도 학습 명필이 될 수 없다. 흉내 내도 안 된다는 사실이 반전의 근거가 된다. 추사는 흉내를 포기, 아니 거절하기로 한다. 자신만의 손길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그 손길은 바로 neoteny 가득한 어린 손길이었다. 단순히 복귀한 것이 아니다. 인고의 닦음이 neoteny에 배어들었다고 할까. neoteny가 인고의 닦음을 뚫고 배어나왔다고 할까. 부정의 극단에서 맺은 열매가 이른바 추사체다.


추사가 금석문에 정통했다는 사실은 반증으로 작용하지 못한다. 금석문은 neoteny 가득한 글씨다. 그것을 추사가 neoteny로 인식했다고 할 수는 없다. 거꾸로 그 무구함의 도저한 예술성을 간파한 자신의 neoteny에 이끌려 자신의 글씨에 녹여냈다고 해야 한다. 추사 이외의 사람은 끝내 자신의 neoteny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어른 글씨, 그러니까 흉내 명필로 생을 마감했다. 추사는 자신의 내부에 있는 neoteny를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여 글씨에 근원성radicality을 부여했다. 이것이 추사의 위대함이다.


물론 여기가 끝이 아니다. <판전>이 남아 있으니까. 천재는 남이 만든 유類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는 자다. 자기 유를 만드는 자다. 그러나 자기가 만든 유를 타고 앉는 자는 진정한 천재가 아니다. 자기 유도 스스로 놓아버리는 자가 진정한 천재다. <판전>은 바로 그 놓아버림이다. <판전>은 추사체가 아니다. <판전>은 추사체가 아닌 것도 아니다. 원효의 마지막 같구나.


사실 이런 추사 가설은 자주 드나드는 인사동 한 음식점에 걸린 어떤 글씨를 보면서 든 생각이 단초가 되었다. 내가 한눈에 그가 누군지 알아볼 정도로 그 글씨를 쓴 사람은 우리 시대의 뜨르르한 이른바 대가다. 본 글씨 옆에 서명한 작은 글씨가 있다. 본 글씨와는 전혀 다른 서체다. 심지어 재빨리 휘갈겨 쓴 글씨가 분명하다. 나는 서예를 배운 일이 없어서 본디 그렇게 하는 것이 관행인지 아닌지 잘 모른다. 어쨌든 그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본 글씨만 예술이고 서명은 아닌가? 그림 작품이라면 모르되 같은 글씨 아닌가?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서명 글씨가 악필이라는 데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내 의문은 단되직입이 된다. 갈고 닦아, 그러니까 열심히 흉내를 낸 뒤 나름의 멋을 부가해 학습 명필의 반열에 올랐지만, 본디 저 사람은 악필이다. 악필을 감춘 채 일생을 명필로 추앙받으며 살았다. 저 사람이 참 명필이려면 자신만의 악필을 인정하고 머금은 자태가 글씨에 드러나야 하지 않나? 이 때 홀연히 추사가 떠오른 것이다.


누구도 타고난 악필이 아닌 사람은 없다. 저마다 다 다른 악필이다. 아니 악필이랄 것도 없다. 흉내 내지 않은, 훈련되지 않은 자연 글씨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배워서 고쳐진 글씨는 남의 글씨다. 진정한 내 글씨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내 운명과 인연 속의 neoteny를 받아들여 무애자재로 나아가는 것이 도道다. 어디 글씨뿐이랴. 삶이 모두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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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제약회사 - 거대 제약회사들의 살인적인 조직범죄
피터 괴체 지음, 윤소하 옮김 / 공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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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약을 찾아내고 개발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서 약값이 비싸다.

② 비싼 약을 외면하면 기적의 신약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③ 값비싼 약으로 절감되는 비용이 더 크다.

④ 신약은 제약회사가 후원하는 연구에서 나온다.


제약회사는 진짜 신약 개발에는 비교적 적게 투자하고서, 공적 후원 연구를 넘겨받으면 턱없이 높은 가격으로 약을 판매한다. 독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약회사는 연구와 관련된 거짓말을 입버릇처럼 하며 신약에 대한 공로를 가로채서 그 약을 자기네가 개발했다고 주장한다.·······제약회사는 수익의 1%만 신약 물질을 개발하기 위한 기초 연구에 투자한다. 세금으로 보조되는 만큼이다. 그리고 새로운 약과 백신의 개발을 위한 기초 연구비의 4/5이상은 공적 자금이다.


⑤ 제약회사들은 자유 시장에서 경쟁한다.

⑥ 의료계와 제약회사의 긴밀한 협력관계는 환자에게 이롭다.

⑦ 제약회사의 임상시험은 환자 치료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⑧ 환자들의 반응이 다양하기 때문에 같은 종류라도 여러 가지 약이 필요하다.

⑨ 복제 약은 효력이 불안정하니 쓰지 마라.

⑩ 국고 지원이 없어서 제약회사가 의학연수 비용을 대준다.(423-437쪽)



실로 이것은 십계명이다. 야훼 하느님이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내리신 저 십계명보다 엄중하고 치명적이다. 의심 없이 웃으며 한꺼번에 수억 명의 사람이 이 계명 앞에 부복한다. 분노 없이 웃으며 한꺼번에 수십만 명씩 사람을 이 계명으로 죽인다.


유일하게 제4계명에만 주석을 달았다. 유독 이 계명이 기적의 놀라운 기작을 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익을 낳는다는 신조는 근본적으로 돈 놓고 돈 먹기라는 자본의 형이상학에 터한 것이다. 제4계명은 이에 충실하면서도 이를 뒤엎는 신공을 시전한다.


수익의 1%만 신약 물질을 개발하기 위한 기초 연구에 투자한다. 세금으로 보조되는 만큼이다.


최소한의 돈을 놓는다. 원칙에 충실하다. 그 돈은 세금으로 보조된 것이다. 원칙을 뒤엎는다. 사실상 땡전 한 푼 안 놓고 “신약에 대한 공로를 가로채서” “턱없이 높은 가격으로 약을 판매한다. 독점이기 때문이다.” 실은 이것이야말로 전지전능이다. 약훼 하느님의 도래다.


약훼 하느님이 내리신 십계명을 안고 우리가 가야 할, 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어딘가. 풍요로운 부작용과 놀라운 이탈증상과 거룩한 의원병醫原病, 그리고 마침내 영원한 죽음으로 뒤덮인 간난의 땅 아닌가. 머리를 땅에 찧으며 고뇌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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