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지음, 메이 옮김 / 봄날의책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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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에는 얼굴이 없다. 통증은 밖에서가 아니라 자신에게서 왔기 때문이다. 통증은 바로 내 몸,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신호를 보내는 내 몸이다. 통증은 몸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몸이지, 외부에 있는 어떤 신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아니다. 통증과 씨름하는 일은 몸 바깥에 있는 무언가에 맞서 전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몸이 몸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통증을 전부 내 몸 안에 있는 내 것으로만 본다면 몸 안에 고립되어버릴 위험이 있다. 그리고 고립은 조각나 부서지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건강할 때 몸은 질서정연하고 주위 환경에 조응하며, 몸 부위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작동한다.·······

조화란 한밤중 다른 사람들이 잘 때 함께 자고 함께 휴식하는 것이다.(54-55쪽)


내 병은 통증을 밤과 연결했다. 종양이 몸을 장악하면서 통증은 정신을 장악했다. 통증이 빚어낸 고립과 외로움은 어둠 속에서 더 커진다. 아픈 사람이 평화로이 몸을 눕힌 사람들에게서 분리되기 때문이다. 한밤중, 통증 속에 있는 사람의 세계는 더는 하나로 붙어 있지 못하고 조각나 떨어져 나온다.(53쪽)


추방당하는 듯 아픈 사람이 겪는 경험은 통증과 함께 시작한다. 조화롭게 통일되어 있다는 감각 안에서만 통증은 아픈 사람이 느끼는 전부가 아니라 일부일 수 있다. 이 감각을 회복하려면 아픈 사람은 자신이 떨어져 나온 사람들 사이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내야 한다.(55쪽)


빈곤이 사회의 기조로 자리 잡고 있던 육칠십 년대 서울 산동네, 단칸방에서 온 가족이 복작대며 사는 것은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적당히 눈치 봐가며 옷 갈아입는 일는 기본이고, 부부는 그 와중에 사랑을 나누기도 해야 했다. 책상커녕 방바닥에 엎드려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조차 녹록치 않았다. 초등학생은 공부 부담이 덜했으니 그나마 놀아가며 할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로 올라가면 시험 땐 여간 속 시끄러운 게 아니었다.


나는 가족이 잠든 이후 한쪽 구석에 삼십 촉 백열등에 갓을 씌워 빛을 가둔 뒤 둥근 밥상 다리를 접어 무릎 위에 올려놓고 시험공부를 하곤 했다. 가족의 평안히 잠든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두 가지 상반된 생각에 휘말렸다. 먼저 죄책감부터 달려들었다. 높은 성적 받아올 때 좋아는 하면서도 팥쥐 엄마는 시험 내내 전기요금 이야기를 반복했으니 말이다. 뒤 이어 고립감이 들이닥쳤다. 깊은 밤에 홀로 불을 밝힌 채 “평화로이 몸을 눕힌 사람들에게서 분리되기”란 얼마나 아뜩한 일이었던가. 추운 겨울에는 유난히 더했다.


하물며 통증임에랴. 홀로 통증에 시달리며 앓는 일은 참으로 막막한 일이다. 아무리 함께 통증을 느끼는 일이 불가능하다손 치더라도 아파서 몸부림치는 바로 그 옆에서 평화로이 몸을 눕힌 사람들에게 아픈 사람이 느끼는 야속함을 공박할 길은 어디에도 없다. 평화로이 몸을 눕힌 사람들이 잘못한 것 또한 전혀 없다. 함께 경험할 수 없는 일에 함께 엎어져 삶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을 두고 결코 사랑이니 도리니 할 수는 없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서로 닿지 못하거나 어긋나는 일은 안타까움 그 이상이다. 이런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문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다.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해결책이 없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온 가족이 밤잠 자지 않으며 함께 지킨다고 해서 통증이 없어지지 않음은 물론이다. 부질없다고 해서 “추방”으로까지 느낄 수 있는 아픈 사람 상태를 마냥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췌론의 여지가 없다. 이 모순을 어찌 할까? 일단 통증의 실재를 인정해야 길을 찾을 수 있다. 없애야 한다는 목표를 내려놓고 문제를 더 넓은 맥락에서 살피는 거다. 맥락을 넓힐 때 열리는 길이 바로 해소다. 해소란 문제를 있는 그대로 품어 안고서 더는 문제 삼지 않을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문제가 있는데 문제 삼지 않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가능하다. 통증을 느낌의 “일부”이게 하면 된다.


고립 상태에서는 통증이 느낌의 “전부”다. 느낌의 전부인 통증은 그 고립된 삶 전체를 부숴버린다. 고립된 채 삶 전체가 결딴나는 것을 막으려면 삶의 맥락을 넓혀야 한다. 맥락을 넓히는 것은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다. 영역의 확장은 고립의 확장일 뿐이다. 고립을 무한히 확장해도 고립은 고립으로 남는다. 고립을 뚫으려면 단단한 경계를 정조준 해야 한다. 단단한 경계에 금을 내는 일이 바로 맥락 넓히기의 시작이다. 금은 틈의 계기다. 틈만 내면 고립을 뚫고 나올 수 있다. 허위단심 터서 나왔는데 허공이면 어찌 할까? 걱정할 거 없다. 경계 밖은 어디나 누군가의 알뜰한 영역이니까.


누군가의 영역에 벌거숭이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아픈 사람은 자기 경계 안, 그러니까 고립된 자기 영역에 똬리 틀고 앉은 통증의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통증이 일부로 느껴진다는 거다. 일부가 된 통증에 매달려 애면글면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통증보다 더 큰, 더 넓은 맥락의 삶을 끌어안아야 하지 않겠는가. 넓은 맥락에서 다시 느끼면 통증은 더 이상 치명적이지 않다. 치명적 통증이란, 실은 고립이 키운 거대 허깨비다. 아무리 거대해도 허깨비는 끝내 허깨비다. 허깨비 저주 따위가 파리 목숨 하난들 가져가겠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겪는 통증을 어느 누가 알겠냐며 스스로 고립된다. 또 많은 사람들은 통증에 지레 겁먹고 아예 마비의 길을 택한다. 이를 기화로 백색의학은 진통기술 팔아 떼돈을 번다. 진통기술은 분리 이데올로기 또는 타락문명의 아편이다. 아편을 버릴 때가 왔다. 우리는 이제 “조화롭게 통일”된 삶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떨어져 나온 사람과 자연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빗장을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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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지음, 메이 옮김 / 봄날의책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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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취약한 생물이고, 인간들은 바로 이 취약함을 공유한다.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희망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취약함을 부정하기보다는 받아 안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오로지 자신의 취약함을 완전히 인식하고 있을 때만 또렷하게 분별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또렷하게 분별한다는 것은 어디서, 무엇을, 누구를 선택하는 문제를 넘어, 모든 활동의 한가운데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39쪽)

  ·······건강한 사람은 자신이 의지를 발휘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계속 확인하고 증명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 건강이 필요하다. 반면 아픈 사람은 자신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자기 의지를 전혀 행사하지 않아도 세계가 이미 완벽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렇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아픈 사람은 자유롭다.·······

  심장마비를 그저 사고가 한 번 났던 것으로 여겼기에 나는 여전히 건강에 의존했고 건강을 당연한 권리로 여겼다. 건강을 삶의 조건으로 당연시하지 않으면서도 향유하는 방법을 몰랐다. 물론 건강을 선호하기가 쉽다. 그럼에도 건강을 꼭 필요로 하지는 않을 때, 오직 그때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다.(40쪽)


이미 많이 알려진 대로, 우사인 볼트는 타고난 취약함을 받아 안아서 불멸의 스프린터가 되었다. 그에게는 척추측만증이 있다. 코치진은 수술해서 정상(!)적인, 그러니까 건강한 몸 상태를 만들면 훨씬 더 좋아지지 않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좌우 보폭의 차이가 많이 날 경우 24cm가량이나 된다는 사실은 건강한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치명적인 단점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건강한 사람은 당연히 24cm 긴 쪽이 정상(!)이라고, 그러니까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환상이다. 있는 그대로 사실은 척추측만증이라는 질병으로 보폭의 차이가 그렇게 난다는 것뿐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 보폭의 차이를 달리 해석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24cm나 더 많이 나아가게 됐다고 호들갑을 떨 것까지는 없다. 남들에게 일어나지 않은 이 현상이 언제든 선물로 바뀔 가능성을 안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 언제는 언제인가? “자신의 취약함을 완전히 인식하고 있을 때”다. 자신의 취약함을 완전히 인식해야 “또렷하게 분별하는 법”을 안다. 또렷한 분별력으로 삶의 “한가운데서 살아 있음을 확인”할 때, “오직 그때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다.” 이 자유가 우사인 볼트를 ‘우사인 볼트’로 만들어주었다. 바로 이 자유의 지점에서 질병은 필요가 되고 축하가 된다. 필요하다고 일부러 질병 속으로 걸어 들어갈 일 없다. 축하 받으려고 애써 질병을 짊어질 일 없다. 인간은 본디 “취약한 생물”이고 “취약함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질병은 인연 따라 들어온다. 그 인연을 자유의 기회로 삼을 때, 진정한 향유의 삶으로 번져갈 수 있다.


향유는 소유가 아니다. 소유가 아니면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 권리를 주장하지 않을 때, 비로소 “꼭 필요로 하지는 않을” 수 있다고 내려놓게 된다. 건강도 깨달음도 자유도 아니 삶 자체도 꼭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는 허령함에서 맑은 향을 낸다. 지금 우리가 구가하는 백색문명은 악취무인지경이다. 남의 것까지 빼앗아서 몽땅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썩어서 그렇다. 이 썩은 냄새를 즐기며 킬킬거리게 하는 퇴폐적 힘은 거대유일신인 돈에서 나온다. 건강도 깨달음도 자유도 아니 삶 자체도 화폐인 세상은 이제 단 하나의 취약함만을 남겨둔다. 돈 없음.


나는 돈이 없다. 돈 없다는 사실을 나는 말갛게 알고 있다. 나는 돈 없음을 말갛게 알 뿐 아니라 돈 없음을 말갛게 산다. 말갛게 살아서 그 삶 전체를 확인한다. 확인할 뿐 의지를 발동시키지 않는다. 내 의지로 돈을 그러모을 만큼 세상이 어수룩하지 않다. 어수룩하지 않은 세상은 내게 선물을 응시하도록 이끈다. 선물은 자신의 취약함을 야젓이 받아 안는 사람에게 다가오는 거룩한 발자국 소리다. 자박자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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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프랭크 지음, 메이 옮김 / 봄날의책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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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람은 전문가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의학의 한계를 인정하려면 먼저 질환disease과 질병illness의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

  질병은 질환을 앓으면서 살아가는 경험이다. 질환 이야기가 몸을 측정한다면, 질병 이야기는 고장 나고 있는 몸 안에서 느끼는 공포와 절만을 말한다. 질병은 의학이 멈추는 지점에서, 내 몸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 그저 측정값들의 집합이 아님을 인식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내 몸에 일어나는 일은 내 삶에도 일어난다. 내 삶에는 체온과 순환도 있지만 희망과 낙담, 기쁨과 슬픔도 있으며, 이런 것들은 측정될 수 없다. 질병 이야기에 몸 같은 것은 없으며 오직 내가 경험하는 몸만이 있다.·······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것은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다.·······

  ·······의학계에는 개혁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환자들에게 질환 이야기를 ‘하사’하는 대신 환자들과 함께 질병 이야기를 나누는 법을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의사와 간호사들은 이미 잘하는 일, 즉 ‘고장 난 부분을 고치기’를 계속하되 그 이상을 하겠다고 나서지 말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질병은 삶을 위협하지만 살아갈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얼마나 고통스럽든 얼마나 아픈 것을 피하고 싶어 하든 상관없이 우리에겐 질병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이 책의 과제는 바로 이 필요를 표현하는 것, 그리하여 질병을 축하할 수 있는 말들을 찾는 것이다.(27-32쪽)


며느리 자라 시어미 되니 시어미 티를 더 잘한다는 속담이 있다. 호된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가 나중에 시어머니가 되면 자신이 겪은 고통을 헤아려 며느리에게 관대할 것 같지만 그 반대라는 이야기다. 학대당하면서 파괴된 인격이 치유·복원되는 과정이 없는 한 학대당한 경험은 상처로 남는다. 상처는 방어기전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통증으로 다가오는 질병도 마찬가지다. 통증을 없애는 것으로 치료를 끝냈다고 의자도 환자도 생각하나 그렇지 않다. 중병일수록 심리적 치유가 반드시 결합되어야 한다. 백색의학 현실에서는 어림없는 얘기지만 말이다.


나는 20대 초반에 특별한 방식으로 극심한 통증을 경험했다.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복통은 이를 바득바득 갈게 만들 만큼 격렬했다. 절정에 달했을 때에는 죽음의 사자가 끄는 옷자락 소리를 들었다. 밤새 몸부림치다 이튿날 아침 일찍 내과의원으로 향했다. 급성충수염으로 이미 많이 진행되어 터지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고 했다. 서둘러 수술 가능한 병원으로 이동했다. 의료진에게 사흘 뒤에 중요한 시험이 있다고 말했다. 자기들끼리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주고받더니 신속하게 수술절차를 진행했다. 수술부위 근처의 체모를 제거한 다음 주사를 한 대 놓았다. 잠시 뒤 칼로 배를 가르는 작고도 예리한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싸늘한 칼날의 촉감도 가차 없이 전해졌다. 이어서 집도의의 손이 창자 뭉치를 뒤적거린다 싶더니 그 중 일부가 쓱 들어 올려졌다. 바로 뒤, 실로 형언할 수 없는 짧지만 맹렬한 통증이 엄습해왔다. 염증 때문에 부풀어 오른 충수 부위를 가위로 잘라내는 순간이었다. 참을 수 없어 악!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실로 꿰매는 땀 땀의 감각이 전해지는 동안 수술실 천정에는 별이 총총 뜨고 바닥에는 회전목마가 빙빙 돌았다. 어 어 하는 사이 수술이 끝났다. 집도의는 제법 큼직한 충수를 들어 보여주며 가볍게 말했다. “시험 있대서 마취 없이 근육주사만 놓고 수술했다.” 당혹감을 낚아채기라도 하듯, 이내 그는 나를 잡아 일으켰다. 다시 한 마디 툭 던졌다. “4층 병실까지 걸어서 올라가!”


의자가 된 뒤 다양한 통증을 호소하며 찾아오는 환자들을 수없이 마주한다. 통증이 인간에게 얼마나 절대적인 벽인지 잘 알기에 최선을 다해 경청한다. 공감한다. 이 기본 위에서 상반된 태도를 견지하곤 한다. 지나치게 호들갑떠는 사람에게는 무심한 눈빛을 보내 기세를 누그러뜨린다. 지나치게 억누르는 사람에게는 상냥한 눈빛을 보내 기운을 풀어준다. 사실 젊은 시절에는 누가 아프다 말하면 ‘그까짓 걸 가지고 뭐.’ 하고 서늘하게 반응했다. 내 아픈 경험이 삶에 녹아들어 인격의 한 결로 자리 잡지 못한 탓이었다. 의자로서 매일 매순간 아픈 사람과 함께 숨 쉬는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되어서야 비로소 인간이 어떻게 아픔과 함께, 아니 아픔을 살아가야 하는지 마음 나눌 틈을 냈다.


백색의학 체제 아래서 의자가 환자와 삶을 이야기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럴 시간도 없거니와 있다 해도 대부분 의자에게는 능력이 없다. 도구적 치료 기능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상황은 지극히 열악하다. 6년을 교육하는 의대에 제대로 된 인문학 강좌 하나 없는 나라다. 현실적으로 볼 때 의자에게 환자와 더불어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숙의하라 요구하는 것은 물색없는 소리다. 의자 자신도 “‘고장 난 부분을 고치기’를 계속하되 그 이상을 하겠다고 나서지 말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의과대학에 질병인문학과를 개설하고 의자와 동등하게 대우받는 전공 인력을 양성하여 병원에 배치하는 것이 낫지 싶다. 이들은 환자의 요청에 따라 강의, 상담, 글쓰기 등의 방식으로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숙의한다. 비용은 병원이나 국가가 부담한다. 의료의 공공성이 거의 바닥 수준인 우리 상황에서는 이게 더 요원한 얘기일 수도 있겠으나, 그 만큼 그 필요는 더욱 긴절하다.


공동체가 붕괴된 백색문명에서 질환을 앓은 사람이 이대로 방치된다면 파국 또는 경착륙의 가능성은 한층 높아진다. 질환이 학대의 본질로 남아 영혼을 떠도는 한 백색문명에 저항하는 힘은 점점 고갈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질병과 함께 아름답게 살아가도록 자상한 숙의와 격려를 선물로 받는다면 “얼마나 고통스럽든 얼마나 아픈 것을 피하고 싶어 하든 상관없이” 누구라도 백색문명에 저항하는 전사가 될 것이다. 오늘 두통·현훈(어지러움)·오심(메스꺼움)·수면장애·방광신경증 등을 호소하는 환자가 백색처방전을 들고 찾아왔다. 예민해 보이니까 항불안제, 어지럽다니까 메니에르병 치료제, 메스껍다니까 도파민 수용체 차단제·······이런 식이다. 백색의사는 그 화학합성물질이 치료약이니 장기간 복용해야 한다고 했단다. 어찌 할거나. 그와 긴 시간 동안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이야기했다. 비록 불 난 산에 한 마리 벌새일 따름인 나지만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하니까.


[사족]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disease를 질환으로 illness를 질병으로 번역한 것을 언급하려 한다. 환患은 괴로움을 나타내는 串과 마음 心을 합해 만든 글자이며, 병病은 아파서 드러누운 사람의 형상 疒과 분명해진다는 뜻을 얻은 제상 모양 글자 丙을 합쳐 만든 글자다. 전자는 아픔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을 담았다. 후자는 아픈 증상이나 사람의 드러난 모습을 담았다. disease를 질병으로 illness를 질환으로 하는 게 저자의 의도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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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헤맬 때 진정한 일을 만나게 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맬 때 진정한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혼란스럽지 않은 마음은 애쓰는 마음이 아니다. 

막힌 냇물이 노래하며 흐르는 법이다.


웬델 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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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경제학의 시대』라는 책에서 천재 통합사상가 찰스 아이젠스타인은 역이자 화폐, 경제적 지대의 제거·공유자원 고갈에 대한 배상, 사회·환경 비용의 내부화, 경제·통화의 지역화, 사회배당금, 경제 역성장, 선물문화와 P2P 경제를 골간으로 하는 신성한 경제가 분리문명, 그러니까 백색문명을 극복하고 재통합 세계를 여는 중요한 요소라 주장한다. 얼핏 들으면 허황한 낙관론 같지만 매우 근원적인 문명비판이면서도 당장 개인적 실천까지 가능한 톡톡한 담론이다.


저자의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 나는 의학 이야기를 좀 더 해보려 한다. 이미 <녹색의학의 경제적 기치>에서 개론 수준의 이야기는 했다. 분리 이데올로기에 충실하게 분리의학은 몸의 병과 마음의 병, 병과 병 있는 사람, 병 있는 사람과 치료자를 포함한 병 없는 사람, 병 있는 사람과 사회정치, 병과 자연, 병 있는 사람과 자연을 철저히 갈라놓았다. 진단 기준과 치료(?) 약물의 보편성을 통해 병 있는 사람의 고유함과 관계적 존재성을 제거했다. 이렇게 병과 병 있는 사람을 클론으로 찍어낸 다음, 값을 매김으로써 불멸의 화폐가 다스리는 영원한 수탈제국에 의료 봉토를 헌정했다.


찰스 아이젠스타인이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의 내용 전반을 관류하며 이야기하는 것이 선물 개념이다. 선물 경제 복원 문제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제21장 「선물 속에서 일하기」가운데 <신성한 직업>이라는 부분이 나온다.


선물 모델은 무형의 가치를 전달하려는 직업에 특히 자연스럽게 적용된다. 음악인, 화가, 성판매자(매춘부로 번역된 것을 인용자가 바꿈), 치유자, 카운슬러, 교사. 이 모두가 값을 매김으로써 가치 저하된 선물을 제공하는 일들이다. 우리가 제공하는 것이 신성하다면, 그것을 명예롭게 제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선물로 주는 것뿐이다. 아무리 높은 가격도 무한한 것의 신성함을 반영할 수는 없다. 내가 구체적인 강연료를 요구한다면, 내 선물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셈이다. 만약 당신이 위의 직업들 중 하나에 종사한다면 선물 모델을 한 번 실험해보아도 좋다.


한의사지만 하고 있는 일의 내용으로 따지면 나는 치유자, 카운슬러, 교사다. 나아가 인터뷰의 전설 오리아나 팔라치가 한 ‘인터뷰는 사랑 이야기다. 섹스다. 너를 홀딱 벗기고 나를 홀랑 들이붓는 싸움이다.’라는 말에 인터뷰 대신 숙의치유를 집어넣어 바꾸고, 숙의 또한 예술인 측면을 감안하면, 나는 위 모든 직업에 해당한다. 나는 그 동안 숙의치유에서 선물 모델을 꾸준히 실험해왔다. 물론 성공한 경우보다 실패한 경우가 더 많았다고, 여태까지는(!), 생각하고 있다. 실패(했다고 생각)한 결과는 “값을 매김으로써 가치 저하된 선물을 제공하는” 관습으로 정착되었다.


10년 이전이나 지금이나 한의사가 숙의로 마음병을 치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숙의 1회에 90-120분, 심지어는 식사까지 해가며 5-6시간 넘게 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 이른바 ‘상담료’ 문제가 초기부터 지금까지 가장 큰 고민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 있다. 지난주에도 상담료에 부담을 느낀 어떤 사람이 예약을 취소했다. 좀 더 세밀하게 선물 모델을 연구해서 다시 시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아무 준비 없이 무조건 선물로 제시했다. 그러니까 숙의를 진행하고 나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만큼 사례하고 가도록 했다. 그냥 가는 사람, 5천원 내는 사람은 그렇다 치고 ‘그까짓 대화하고 나서 무슨 돈이냐?’며 도리어 화를 내는 사람까지 있었다. 감사를 느끼며 성의껏 내는 경우도 대개 5만원을 넘지 않았다. 아무래도 무모했다.


그 다음부터는 설명을 붙였다. 상담치료의 본질과 가치, 상담치료의 일반적인 풍경, 역술인의 예, 의료인 아닌 상담사의 예, 정신과 양의사의 예, 외국의 예, 상담 시간의 비교 들을 간략하게 했다. 공감하고 수긍하면서 내고 가는 돈은 대략 5-10만 원 선이었다. 희귀한 예외가 없지는 않았다. 30만 원 선뜻 낸 사람이 더러 있었다. 심지어 100만 원을 내며 ‘이런 상담은 처음 받아본다.’ 한 경우도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이 상담해보지도 않고 먼저 값을 물어보는데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전화로 예약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상담치료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지 못한 채, 많은 사람들이 비용 문제 때문에 포기했다. 반대로 돈깨나 있는 강남 사람들 가운데는 한 번에 몇 백만 원 씩 카드로 긁고 가는 패키지 상품을 원했다. 그 상황을 타개하려고 홈페이지에 상담료 문제로 공개 글을 써 올리기까지 했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적절한 금액을 원칙으로 분명히 제시하고 경제적인 상황을 포함한 조정 요건을 설명해주는 정도로 타협을 보았다. 지금도 이 문제는 표류 중이다.


찰스 아이젠스타인도 현실의 고충을 잘 알고 있다.


남들도 다 같이 실천한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는 한 스스로를 보호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타당한 생각이며 합리적으로 반박할 수도 없다. 다만·······당신의 마음이 이성 너머 무언가에 이끌리는 것을 알아차리기만 바랄 뿐이다. 이성, 현실성, 안전함의 추구가 이끄는 대로 살아온 지금의 결과를 보라. 이제는 다른 무언가에 귀 기울일 때인지도 모른다.


고백건대 선물 모델 실패 의식에는 저평가된 내 선물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과 더불어 기천 만 원대에 이르는 치료비를 받지 못한 기억이 작용하고 있다. 기존의 분리 모델에서 자유롭지 않은 자아가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서성거리는 거다. 문제는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나는 내 선물을 눈물의 포옹으로, 자신의 삶을 전복함으로 받아준 사람들에 새삼 정색하고 감사한다. 나는 내가 받은 고귀한 선물을 감동과 함께 기억한다. 무엇보다 내가 참으로 막다른 길로 몰렸다는 섬뜩한 느낌에 시달릴 때, 기적으로 찾아온 선물469 앞에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선다. 이성 너머로 나를 이끄는, 그 다른 무언가에 귀 기울인다. 신성한 경제‘의’학의 시대를 열어가는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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