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해법은 무엇인가?
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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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지나친 풍족함을 누리면서도, 부족함을 경계하고 ‘경제적 안정’을 갈망하면서·······불안 속에 산다.·······결핍의식에 따른 반응이다.(49쪽)


이처럼 결핍은 대부분 환상이며,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우리는 결핍을 진짜처럼 받아들인다.(52-53쪽)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낙원이란 다가서면 저만치 멀어지는 신기루며, 그런 낙원을 추구하는 삶은 노예의 삶·······이다.·······우리는 그런 추구를 ‘탐욕’이라 부르지만, 정확히 말하면 결핍의식에 따른 반응이다.(49쪽)


이미 충분히 풍요로운데도 늘 모자란다고 생각하면서 불안에 떤다[포怖]. 결핍의식이 낳은 감정/정서적 이상 상태다. 이 흔들림은 불교의 가르침처럼 고요히 흔들리지 않는 것[정定]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불안을 있는 그대로 느끼면서 결핍의식이라는 환상을 꿰뚫고 고요 가운데 흔들리는 것[정중동靜中動]으로 해소된다.


결핍이 환상인데도 실재에 터한 이치라는 착오[치癡]에 빠진다. 결핍의식이 낳은 이성/인지적 이상 상태다. 이 오류는 불교의 가르침처럼 깨달음[慧혜]에 이르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오류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서 결핍의식이라는 환상을 꿰뚫고 진실에 앙칼지게 직면하는 것[화쟁和諍]으로 해소된다.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낙원이란 신기루임에도 한사코 붙잡으려 한다[탐貪]. 결핍의식이 낳은 의지적 이상 상태다. 이 집착은 불교의 가르침처럼 제어[계戒 또는 인욕忍辱]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집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결핍의식이라는 환상을 꿰뚫고 풍요의 실재로 나아가는 것[진욕進辱]으로 해소된다. 진욕은 우리를 풍요의 실재 속에서 하나로 살게 한다[공共].



* 이 정리는 불교의 삼독, 삼학, 육바라밀 가르침을 토대로 삼아 잘못을 고치고 모자람을 채워 넣은 것이다. 부분적 오류와 부족이 있지만 찰스 아이젠스타인이 뒤섞어 말한 내용을 불교는 명석하게 해준다. 반대로 불교가 놓친 깊은 맥락을 찰스 아이젠스타인이 예리하게 지적해준다. 결핍의식과 분리, 그리고 돈 이야기로 이어지는 이치 사슬을 차례로 따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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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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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화폐시스템, 소유시스템, 경제시스템 전반은 결핍에 근거한, 기본적으로 같은 자아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것은 분리된 자아이자 데카르트적 자아다. 가능한 한 많은 부를 소유하고 지배하고 가로채면서 냉담한 우주 속에 고립된 자아, 연결된 존재의 풍요와 단절되었기에 영원히 결핍을 경험하도록 운명 지어진 자아라는 환상이다.(44쪽)


태초에 선물이 있었다. 선물이 돈을 낳았다. 돈이 분리를 낳았다. 분리가 결핍 환상을 낳았다. 결핍 환상이 불안怖과 우둔癡과 탐욕貪을 낳았다.


저 심오한 역설의 계보학은 신성한 선물로 시작해서 타락한 삼독三毒으로 전복되는 변곡점이 어딘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바로 돈이다. 돈은 선물의 아들이자 분리의 어머니다.


통시적diachronic 흐름을 공시적synchronic 구조로 바꾸어 놓으면 돈을 경계로 합일과 분리라는 비대칭의 대칭이 나타난다.


돈이 논의의 소실점이다. 소실점으로 이어지는 평행궤도 위에 분리문명이란 기차가 육중한 모순을 싣고 대기 중이다. 거기 오르지 않고 기차의 구조·기능을 논하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가.


찰스 아이젠스타인이 힘써 밝혀낸 것은 탐욕(과 우둔과 불안)이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탐욕(과 우둔과 불안)이 결핍의식을 심어준 분리의 결과물일 뿐이라는 사실을 간과하면 사태의 본질을 놓치고 문제 해결을 피상적으로 꾀하게 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상과 종교가 그런 길을 걸어왔다. 심지어 붓다의 가르침조차도 결함을 드러낼 정도다. 이제 정곡을 찔러야 한다.


어영부영 넘어가기에는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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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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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경제는 기이하고 일탈적이다. 그 한계에 이르러 이제 새로운 경제에 밀려나는 필연적인 단계를 밟는 중이긴 하지만 말이다. 자연계에서, 앞뒤 가리지 않는 성장과 필사적인 경쟁은 복잡한 상호의존, 공생, 협력, 자원의 순환을 이루기 전에 나타나는 미숙한 생태계의 특징이다. 따라서 다음 단계의 경제는 우리 모두의 선물을 이끌어내는 경제가 될 것이다. 경쟁보다 협력을 강조하고, 쌓아두기보다 나누기를 장려하고, 선형적이 아니라 순환적인 경제가 될 것이다. 돈이 곧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좀 더 선물에 가까운 속성을 띤 채 지금보다 축소된 역할을 할 것이다. 경제는 축소되지만 우리 삶은 더 확대될 것이다.(36-37쪽)


예일대 정치경제학 교수 존 로머가 밝힌 바에 따르면, 미국 상위 0.001%의 가구소득은 1984년 평균소득보다 634배 많았지만 2014년에는 1937배까지 늘어났다. 반면 하위 50%의 실질소득은 그동안 1%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연간 1%가 아니다. 1980년부터 2014년까지 34년에 걸쳐 단 1% 올랐다. _경향신문


어찌 미국뿐이겠나. 대한민국 경제도 충분히 “기이하고 일탈적”이다. 저 기이하고 일탈적인 경제를 나는 경제 포르노라 부른다. 경제 포르노는 돈 포르노다. 돈 포르노는 인간을 괴물로 만든다. 괴물이 되어 날뛰는 대박 난 극소수 부자들이 대부분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며 나아가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있다.


감옥에 갇힌 두 전직 대통령, 한진 모녀, 삼성 부자, 안철수를 보라. 돈이 저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가. “경제는 축소”되어야 한다. “우리 삶은 더 확대”되어야 한다. 경제가 스스로 축소되겠나. 애써서 선물을 순환시켜야 한다. 우리 삶이 저절로 확대되겠나. 애써서 신성을 회복해야 한다. 손이 손을 씻어주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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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의 거래는 참여자들 간의 지속적인 유대관계를 만들어내는 열린 거래다.(27쪽)


전체성wholeness 혹은 상호의존성·······. 선물은 자아의 범위를 확대해 공동체 전체를 포함하게 만든다.(29쪽)


무슨 말인지 안다. 신성의 한 축이 관계성이고 관계성의 기저에 통일성이 있다는 말을 여기서 조금 다른 언어로 되풀이하고 있다. “전체성wholeness”이 통일성과 같은 말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상호의존성”과 “혹은”으로 연결했으므로 같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임에도 통일성과 구별하는 일은 더 어렵다. 이런 한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12세기 특별한 서구 사상가 유그를 인용한다.


자신의 고향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미숙한 초보자다. 모든 땅을 자기 고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강인한 자다. 전 세계를 타향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완전한 자다. 미숙한 영혼을 지닌 자는 그 자신의 사랑을 세계 속 특정한 한 장소에 고착시킨다. 강인한 자는 그의 사랑을 모든 장소에 미치게 하려 한다. 완전한 자는 자신의 장소를 없애버린다.


자아의 범위를 확대해 공동체 전체를 포함”한다는 찰스 아이젠스타인의 말은 유그의 말 가운데 강인한 사람에 해당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강인함은 사실 서구문명이 시종일관 추구해온 덕목이다. 자신의 장소를 없애버리는 완전한 인간을 서구사회가 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찰스 아이젠스타인이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과 부합한다. 물론 찰스 아이젠스타인은 이 차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자아의 범위를 확대해 공동체 전체를 포함한다는 말을 아무리 정복의 의미에서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스티브 테일러의 자아폭발과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명쾌하게 구별하기 어렵다. 자아의 범위를 확대한다는 말이 상호의존성에 닿아 있으므로 자아폭발과 다르다는 사실은 수긍해야 하지만 자타 분리를 끊임없이 넘어선다는 표현 정도에도 이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보라. 자신의 사랑을 모든 장소에 미치게 하려 한다는 말과 자신의 장소를 없애버린다는 말은 얼마나 다른가.


서구 지성사에서 유그는 무엇인가? 영향력에 관한 한,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이야기는 어떤가?


큰 부자가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아들들을 불러 막대를 하나씩 주면서 말했다. “지금 출발해 해지기 전까지 돌아오면 막대로 그은 금 안의 땅을 모두 주겠다.” 아들들은 기뻐 날뛰며 서둘러 출발했다. 해 지고 밤 되어도 그들은 모두 돌아오지 못했다. 떠나지 않고 홀로 앉아 있던 막내는 해 지기 직전 조용히 일어나 제 발 주위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렸다.


톨스토이 우화다. 막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구태여 말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덧셈의 발상에서 뺄셈의 발상으로 전복하는 지혜를 가르친다. 통속한 생각에 가한 뼈아픈 일격이지만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술 차이 정도에서 머무르면 이 전복은 그다지 대단할 것도 없다. 만일 톨스토이가 막내로 하여금 점을 찍게 했다면 우화는 완벽한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점을 찍는 행위는 자신의 장소를 없애버리는 행위기 때문이다.


신성을 구현하는 선물은 자아의 범위를 확대해 공동체 전체를 포함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아의 범위를 축소해 공동체 전체 속으로/에서 걸림 없이 배어들게/나게 만드는 것이다. 바리데기 사상이다. 소성거사 원효 사상이다. 소소심심小少沁心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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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에는 주는 사람이 깃들어 있으며, 선물을 줄 때 우리는 자신의 무언가를 담아서 준다.(27쪽)


선물은 주는 사람이 관여한 정도만큼 특별하다.(29쪽)



앞으로 한 세대가 가기 전에 우울장애는 인류사회를 뿌리째 뒤흔들 것이다. 나는 우울장애를 숙의와 한약으로 치유해왔다. 그 경험에서 우러난 통찰로 볼 때, 우울장애는 인간 정신의 가장 깊은 곳에 침전된 존재론적 어둠이다. 이 도저한 어둠의 편만은 파멸의 증좌임과 동시에 개벽의 징조다. 우울장애를 좀 더 근원적 내러티브로 재구성해야 할 때가 왔다.


우울장애는 단독의 실체로서 존재하는 질병이 아니다. 우울장애는 일련의 증후군으로서 매우 유동적 사태다. 유동적이라는 말 속에는 질병 인식에 정치경제학적 역관계의 기울기가 작용한다는 뜻이 포함된다. 동일한 증후들이 나타나더라도 질병이라 규정하느냐 마느냐는 사회와 역사의 구체적 조건이 결정한다는 말이다.


분리문명 이전 삶에서 우울장애라는 질병은 성립할 수 없다. 우울장애는 연속성에 기반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태초의 삶에서 인간은 자신이 “깃들어 있”는 “무언가를 담아서” 선물을 주는 존재다. 자신의 가치와 중요성을 서로 주고받는 공동체에서 누군가 좀 더 그 관여도를 높일 수 있다. 그때는 “관여한 정도만큼 특별하다”고 느끼지 질병이라 하지 않는다.


분리문명이 심화·확대될수록 관여 정도가 높아지는 경향을 질병으로 인식한다. 가치와 중요성에서 분리된 상품만을 사고파는 시대정신이 의미를 부여하고 부여된 의미에 자신의 생명을 싣는 사람을 병자로 몰아버리는 것이다. 간단하다. 선물의 사람에게 선물이 돌아가는 길을 막으면 된다. 선물로 받고 상품으로 되판다. 수탈적으로 거래한다.


수탈에 길들여지면 수탈당하는 사람은 수탈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다. 내면화를 흔쾌히 정당화하는 인지된 우울장애는 그나마 상태가 나은 편이다. 빙의p​ossession 상태에 든 우울장애는 속수무책이다. 이렇게 분리문명에 기소당하고 스스로 선고한 우울장애를 앓으며 인류가 멸절의 길로 질주하는 동안,


다른 길을 내고 있는 ‘새로운 환자’ 소식을 듣는다. 그들은 시대정신의 어둠 한가운데로 정색하고 들어간다. 나는 이 행보를 진욕進辱이라 부른다. 진욕의 사람도 아프다. 아파야 개벽의 길을 걸을 수 있으니 선사하는 삶을 산다. 고유성을 되찾는다. 신성을 회복한다. 작을수록 크고, 적을수록 많은 경이로움을 짓는다. 마침내 선물이 된다. 우울 품은 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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