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해법은 무엇인가?
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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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답은 뒤늦게 돌아오기에, 선물 기반의 삶을 시작하면 한동안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선물의 삶을 향한 한 걸음 한 걸음은 두렵지만, 과감하게 나아가지 않으면 아무런 보답도 기대할 수 없다.(438쪽)


인간이 자아의 경계 안팎을 분리한 이후, 특별히 폭발적으로 증폭된 정신 병리적 상황을 간결히 정리한다.


[통합 정서의 붕괴와 거기에 반응한 격정emotionalism] 존재 상호간 연속성이 깨어지면서 생긴 공포·불안과 그것을 병적으로 방어하려고 작동하는 과잉정서, 예컨대 우울증 같은 현상을 말한다. 공포·불안과 우울증은 근원적으로 신뢰를 갉아먹는다.


[직관지의 상실과 그것을 대체할 추론지의 극단적 추구] 연속된 존재의 직관적 통합지능이 사라지고 분석·실험을 통해 추론적 지식에 천착하는 현상을 말한다. 분석지식이 쌓일수록 무지는 깊어진다. 무지는 공포·불안을 부추긴다. 공포·불안은 신뢰를 갉아먹는다.


[고립적 생존 욕구와 거기에 부응한 무제한의 소유의지] 존재 상호간 단절로 말미암아 생존은 부단한 대결로 고착되고 배타적 비축이 삶의 목표로 되게 하는 현상을 말한다. 제약 없는 대결과 비축의지는 공포·불안을 영속화한다. 공포·불안은 신뢰를 갉아먹는다.


종자신뢰를 잃으면 자기 삶을 더 큰 삶에 내맡기고 기다릴 수 없다. 더 큰 삶에 내맡기고 기다리지 못하는 삶은 하수, 곧 상거래의 삶이다. 고수, 곧 선물거래자가 되려면 종자신뢰를 복원해야 한다. 종자신뢰를 복원하려면 공포·불안을 없애야 한다. 공포·불안을 없애려면 수행해야 한다. 수행 가운데 가장 수승한 수행은 공포·불안을 그대로 품어 안은 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딱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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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해법은 무엇인가?
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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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접근해보자. 내가 한동안 이 문제와 씨름하다 깨달은 바가 있다. 내가 한 일의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행위는 잘못이라고 느끼지만, 내가 한 일에 감사하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받는 행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낀다는 사실이다.(435쪽)


‘선물의 삶’에 너무 집착하거나 도덕적 기준으로 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삶의 목적은 ‘선(한 사람)이 되는be good’ 것이 아니라 ‘선(한 상황)을 실감하는feel good’ 것이다. 두툼한 봉투를 받아들고 기뻐하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지 마라. 본디 인간은 큰 선물을 받으면 기뻐하기 마련이다. 인색하고 억울해하고 욕심 부리는 자신의 모습도 그냥 받아들여라. 선물의 삶으로 되돌아가려면, 그 동안 떠나온 만큼 먼 길을 가야 한다.(437쪽)


제법 나이 들어 만나서 함께 늙어가는 벗 몇은 나를 보고 청초함이 배어나오는 사람이라 말한다. 오랜 제자들 몇은 나를 보고 크레디트카드와 어울리지 않을 분이라 말한다. 주위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공통된 태도는 돈 관련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다. 돈이 아주 많으리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 이상으로 돈 때문에 고생리라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근거가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주위사람들의 이런 태도는 어떤 계기에 아주 난처한 방식으로 나타나 내게 인지된다. 가령 내가 상담치유 하는 사람임을 안 상태에서 몇, 몇 십 시간 상담을 했음에도 상응하는 답례를 해야 한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다. 내 상담을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귀한 것’이라 여긴 평가가 왜 돈으로나마 정중히 사례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아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런 내 무지는 대응에도 무지할 수밖에 없게 한다. 답례를 대놓고 요구하기도 뭣하고 마냥 이런 상태로 방치하기도 뭣하다. 현행 화폐시스템에 깊이 연루된 나는 특히 선물을 제대로 받는 데 능숙하지 못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상담에 답례를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 또한 선물을 제대로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이어서 둘 사이 일이 이렇게 되었다.


이자를 전제한 화폐로 사고파는 일의 폐단을 혐오·폐기하는 것으로는 화폐시스템을 극복할 수 없다. 감사는 마음으로 주고받으면 되지, 내 존재 자체가 답례지, 하는 순간 순진함의 순교자가 되고 만다. 선물의 물질적 본질을 돈으로 옹골차게 실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돈을 넘어선 가치를 실감할 수 있다. 돈을 멀리하는 일과 영성에 이르는 일은 의외로 무관하다. 많은 종교와 영성가가 자기기만으로 주저앉는 자리가 여기다.


세포 하나하나 실감함으로 선물을 받아라. 그리하면 손끝마다 돈을 실감하면서 극진히 사례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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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훌륭한 선물을 베풀고도 아무런 감사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면 이는 선물의 대상을 잘못 골랐다는 증거다. 선물의 정신은 필요에 화답하기 때문이다. 감사를 이끌어내는 것은 선물의 목적이 아니라, 선물이 제대로 이루어져 필요를 충족시켰다는 증거다. 진정으로 베푸는 사람은 아무 보답도 심지어 감사의 마음조차 바라지 않는다는 일부 영적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435쪽)


선물은 주고받는 사람의 인격과 분리되지 않는다. 인격적 상호작용의 물질적 본질을 담보함으로써 물질적 근거에서 비롯하는 공동체를 창조한다. 공동체 창조로 번져가는 무한한 새로움이 선물의 신성성을 더욱 농밀하게 한다. 농밀한 신성성의 극한은 비-물질성의 출구임과 동시에 다시 존재의 물질성을 구현하는 입구가 된다.


선물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어긋나지 않고 서로 “화답”함으로써 “충족”되려면 옹골찬 선의와 극진한 물질의 통합은 필수다. 현행 화폐시스템에서는 부자도 빈자도 선물 주고받는 데 서투르다. 부자는 선물 주는 데 서투르다. 빈자 선물 받는 데 서투르다. 진정한 부를 더불어 향수하기 위한 인류 최후·최고의 공부를 시작할 때다.


선물 주는 사람은 받는 사람의 필요를 정확히 헤아려 충족시키는 깍듯한 친절을 갖추어야 한다. 선물 받는 사람은 주는 사람의 향 맑은 연대를 귀하게 여겨 고마움의 물질적 본질을 결곡하게 드러내 답례해야 한다. 그리함으로써 일궈내는 공동체는 거룩함과 질탕함의 황홀한 공존·융합을 즐길 수 있다. 그래, 오달지게 주고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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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받고 팔기에는 너무 훌륭해서 그냥 줄 수밖에 없는 것이 있다.(434쪽)


이따금 불교조계종 총본산인 조계사 앞을 지나간다. 볼 때마다 거기 풍경은 내 심사를 편치 않게 한다. 탄핵 직전 총무원장직 사퇴를 발표하면서도 뻔뻔한 표정을 전혀 감추지 않던 설정이란 중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종교가 지녀야 할 참 위엄이 억지로 꾸며져 있지만 잡스럽기 그지없다.


며칠 전 일이다. 대웅전에서 무슨 법회가 열리고 기총소사 같은 읊조림 소리가 낭자하게 울려 퍼지기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들어보았다. 생년, 주소, 이름 등을 말하고 축원하는 간단한 말을 숨 쉬기도 아깝다는 듯 재빠르게 이어간다. 무심코 들으면 지나칠 수 있도록 코맹맹이 소리를 섞어가며 주기적으로 내뱉는 단어가 하나 있다. “대애~바악~” 실로 실소를 금하기 어렵다. 돈 내고 두 손 비비며 절하고 있는 대중이나, 돈 받고 대박을 축원하는 중이나, 돈거래 들러리인 압도적 크기의 황금불상이나, 하나같이 헐값 거래에 내맡겨진 비참한 존재다. “돈을 받고 팔기에는 너무 훌륭해서 그냥 줄 수밖에 없는 것”이 이제 불교에는 남아 있지 않은가보다.


어디 불교뿐이랴. 모든 종교가, 모든 예술이, 모든 치유가, 모든 철학이 대박 장사판 한가운데 있다. 가뭄에 콩 나듯 훌륭한 것을 그냥 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무참히 익명화시킨다. 그냥 준다니 그냥 받고 그대로 입을 닦아버린다. 조계사를 떠나며 나는 문득 내 입술에 손을 대본다. 내게도 그 동안 그냥 받고 입을 닦아버린 일이 얼마나 많았으랴. 대박 장사판을 힐끗거린 눈길이 얼마나 많았으랴. 신성한 칼을 들어 다시 뼈에 새긴다.


돈을 받고 팔기에는 너무 훌륭해서 그냥 줄 수밖에 없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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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투자가 더 멋진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선물로써 돈을 사용한다면, 그렇게 사용되는 선물을 받는 것이 바로 의로운 생계다.(426쪽)


  즉 의로운 생계의 핵심은 선물로 먹고 사는 것이다.(427쪽)


의로운 생계의 목적은 에너지를 사랑하는 무언가에 쓰기 위함이다. 그 일을 하면서 도덕적 책임감, 좋은 사람이 되려는 의무감이 아니라 해방감을 느껴야 한다.(430쪽)


오늘 점심은 한의원 바로 앞 음식점에서 소면국수를 먹는다. 뜨거운 국물 찰랑히 붓고 거기에 매운 다짐까지 듬뿍 넣어 땀 흘리며 먹는다. 생일이다. 자축한다. 육십 년도 훨씬 지나 비로소 내 출생을 온새미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감사한다.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도, 열 명 넘는 '어머니'를 내 앞에 줄 세웠던 아버지도 자축의 상에 영혼 극진히 모신다.


자축의 마음으로 볼 때 출생부터 낱낱이, 온이 선물이다. “의로운 생계의 핵심은 선물로 먹고 사는 것”이라 하니 낱낱이, 온이 선물이면 가히 ‘의로운 생애’라 아니 할 수 없다. 내가 정색하고 의롭게 살아서라기보다 누군가 극진하게 선물한 것들로 삶이 교직되어 있으므로 의롭다.


의로운 생애 한가운데 선 자는 책임과 의무라는 “원칙”(428쪽)에 결박당하지 않는다. 해방의 “느낌”(429쪽)을 타고 노닌다. “의로운 생계의 목적은 에너지를 사랑하는 무언가에 쓰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해방함으로 해방되는, 해방됨으로 해방하는 느낌에서 현현한다. 해방의 느낌은 질탕경건하며 소요고요하다. 역설의 전율 속에서 자발적·능동적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 바로 의로운 생계다.


의로운 생계는 아름다움을 창조하므로 삿된 호화를 거절하는 만큼 지지리 궁상도 사양한다. 탐욕을 멀리하는 것과 희생을 자처하는 것은 다르다. 누군가 소개로 침 치료를 받으러 온 분이 내 모시옷을 곱다 한다. 사실 이 옷은 20년 된 기성복이다. 정하게 입었기 때문에 여전히 기품 있는 자태를 유지한다. 오늘 이 모시옷을 내 의로운 생계의 상징이자 생일 자축잔치 빔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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