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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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애버리진 사회·······여성은 그 자체로 날 때부터 삶에 대하여 어른스럽게 이해하는 “완성된” 존재로 생각되며, 곧 바로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반면에 남성은 오랜 절차의 성년식 과정을 거쳐 스스로의 삶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켜서 자신을 “완성시켜야만” 한다.(99쪽)


남성이 얻으려고 하는 영적 지식을 여성은 이미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므로·······


“남성의 정신이 본질적으로 유기체의 창조라는 관점에서는 부차적이거나 매우 동떨어져 있다는 점을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것 같다. 여성은 연약한 남성의 자아는 지속적으로 외부에서 보강해주어야 한다는 점을 안다. 여성은 남성의 정신을 형성하는 남성의식을 격려하고 지원한다. 그리하여 남성의 정신이 자연과 사회에서 긍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한다.”(롤러)(100쪽)


2차 타락을 통해 인도유럽인이 살육하고 유폐시킨 오세아니아 대륙 원주민 애버리진의 여성·남성 인식은 특이함을 넘어 수승하다. 물론 이들의 고유한 삶의 조건이 빚어냈겠지만 보편적 진리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나는 이미 『안녕, 우울증』에서 이들과 근본적으로 같은 생각을 밝힌 바 있다.


‘남자는 철들자 죽는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그저 우스개려니 하지만 가부장 사회에서 평생 아이처럼 나대며 무책임하게 살다 죽는 남자 꼴을 본 여성의 ‘증언’인 만큼 뼈저린 진실을 머금은 말이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이 말에는 생물학적 진실도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윤리적 판단을 관장하는 뇌 부위 성장의 마무리가 남성은 여성에 비해 대략 5년 정도 늦다. (혹시 이 또한 타락의 결과라면 다시 생각해야 할 문제이긴 하다.) 전통적으로 결혼 적령기와 맞물리는 시기다. 이런 진실의 고갱이를 애버리진 사회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 없다.


무엇보다 “유기체의 창조”, 그러니까 월경-임신-출산-육아 전 과정에서 “부차적이거나 매우 동떨어져” 있는 남성의 결함이 문제다. 내부 창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연약한 남성의 자아”는 “지속적으로 외부에서 보강해주어야” 하는데 이 일을 여성이 적극적으로 보살핀다. 완성된 여성의 모성적 영성이다.


타락 이후, 남성은 이런 결함에 마음의 불화를 일으켰다. 여기서 도망치는 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가부장제를 확립하여 여성을 지배하는 것. 더 언급하고 싶지 않다. 다른 하나는 수련 또는 수행을 통해 여성보다 ‘높은’ 경지에 오르는 것. 극단적 정신 고양으로 오른 그 경지가 실제로 여성의 영성보다 무엇이 어떻게 높은지 검증할 길이 없으니 자기기만일 가능성이 높다. 허다한 영적·종교적 ‘거물’의 대부분은 여기에 속한다.


남성이 이 중독에서 풀려나려면 완성된 여성의 영성 속으로 흔쾌히 걸어 들어가는 것뿐이다. 문제는 오늘 여기에 완성된 여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많은 ‘여자’가 가부장제를 내면화했으니 말이다. 저 완성된 여성을 보고 싶은데 내 아름에서 만날 수 없다면 어찌 한담? 여성 말고 여성‘성’을 향해 결곡히 길 떠나지 뭐. 엄마 만나러 무수히 어머니를 어루만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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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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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000년경부터 인류 역사에는 고통과 혼돈이라는 새로운 정신이 들어선다.·······이 시점부터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인간이 존재하기 시작하며, 세계와 다른 사람들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설정하는 것 같다.·······

  ·······항시적 전쟁·대규모 사회적 억압·남성 지배 같은 사회적 폭력이 고질화되었다.·······이러한 변화는 근본적으로 환경에서 비롯한 것 같다.·······건조화-또는 아주 말라버리는 사태-가 진행되어 제임스 드메오가 “사하라시아”(북아프리카에서 중국에 이르는 거대한 건조지대-인용자 붙임)라고 부르는 지역에 영향을 끼쳤다.·······

  사하라시아가 말라버리면서 나타난 가장 주목할 만한 결과는·······주민들이 그곳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새로운 고향을 찾아야만 했다는 것이다. 사하라시아 사람들이·······이주한 증거는 중동, 아시아, 그리고 동유럽 전 지역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주 자체가 아니라, 이주가 진행된 방식과·······이주민들의 행동과 그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이다.(70-73쪽)


세기에 세기를 이어가며 폭력과 억압과 고통이 지속되었다. 우리는 역사가 앞으로 나아가며 점진적인 개선과 발전이 진행된다고 평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인류 역사의 주요한 사건은 조화에서 혼란으로, 평화에서 전쟁으로, 생에 대한 긍정에서 우울함으로, 온전한 정신 상태에서 광기로 극적 전환하는, 갑작스럽고 대규모적인 퇴행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94-95쪽)


정신병으로서 악은 역사의 산물이고, 그 역사가 사하라시아 건조화에서 시작되었다면 오늘의 우리는 이런 질문을 직시할 수밖에 없다.


“지구 전체의 온난화에서 시작될 역사의 산물은 무엇일까?”


이미 지구 전체를 석권한 ‘인도유럽인과 셈족’의 후예가 악의 결정판을 생산해낼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 대파국의 위기 앞에서 우리가 빚을 수 있는 희망의 거점을 모색해야 한다.


스티브 테일러는 타락 이후 6000년 동안 2번 타락 극복운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1차는 BC 800년경부터, 2차는 AD 18C부터다. 1차 운동으로는 극복이 온전히 안 되어 다시 한 번 운동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스티브 테일러가 2차 운동 특유의 방식은 강조하지만 특유의 계기를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일단 이렇게 밋밋하게 말하거니와 나는 2차 운동에 특유한 계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2차 운동의 특유한 계기는 바로 인도유럽인의 2차 이주다. 이른바 신대륙의 발견으로 본격 시동이 걸린 제국주의가 1차 이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와 속도, 그리고 파괴력으로 지구 전체를 점령해버렸다. 저들의 근대 과학과 자본은 살육과 수탈의 도구인 동시에 글로벌한 각성과 소통의 매개였다. 이 덕에 타락과 극복운동의 진행이 밀접하며 서로 엉켜 있다. 극복운동의 동시적·지구적 연대가 가능해졌다. 가히 제국주의의 역설이라 할 만하다. 2차 운동의 고유한 방식은 2차 운동의 고유한 계기에 터한 것이다. 이 계기를 나는 2차 타락이라 이름 한다.


2차 운동 가운데 정치적 각성은 결정적이다. 미국 독립과 프랑스혁명을 표지 삼는 민주주의는 물론 사회주의 사상까지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이로쿼이 연맹에서 발원했다는 사실은 2차 운동의 고유한 방식이 무엇인지 헤아리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다. 바로 이 부분을 놓쳤기 때문에 스티브 테일러의 분석과 전망이 인문학의 범위에 머무르는 것이다. 2차 운동에는 사회과학적 통찰이 필수다. 나는 리베카 솔닛이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말하는 재난공동체 또는 재난유토피아 개념에 유의한다. 그리고 이 필터를 통해 찰스 아이젠스타인의 경제학을 되읽는다.


2차 운동의 화룡점정은 생태학적 통찰이다. 1차 타락은 자연재난에서 비롯하여 악의 문명을 구축했다. 2차 타락은 거꾸로 악의 문명에서 비롯하여 자연재난-온난화로 상징되는 전 지구적 “기후변화”-을 불러왔다. 기후변화는 인류를 종말론적 상황으로 몰아붙인다. 2차 운동은 단순히 방식만이 아니라 차원이 달라야 한다. 발상의 근본이 전복되어야 한다. 더 이상 타락 기회는 없으니까 말이다. 이 생태학적 각성의 근간을 이루는 개념이 150인 공동체의 무한 네트워킹이다.


인류는 또 다시, 그리고 마지막 선택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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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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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기원전 4000년·······당시는 사망률이 높고, 의학적인 치료도 없고, 여러 문제점들은 있었지만 마치 낙원이었던 듯하다. 사실·······이후의 사람들에게는 낙원으로 보였다. 사람들은 신화 속에서 타락 이전의 기간을 황금시대 또는 “완전한 미덕을 갖춘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로 기억한다. 어떤 인류 집단도 다른 집단의 영토를 침략하거나 정복하려 들지 않았으며, 소유물을 훔치려 하지도 않았다.·······어디서나 여성과 남성의 지위는 동등했으며 지위와 부의 차이를 수반하는 계급의 차별도 없었다. 확실히 살기가 힘든 점은 있었다. 특히 원에재배로 전환한 사람들은 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자연적 조화의 정신,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 인간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는 정신이 지구 전체에 충만했던 것 같다.(68-69쪽)


리베카 솔닛은 이렇게 말한다.


“구약성서의 창조주는 폭군적 작곡가다. 그의 악보는 단 하나의 올바른 방식으로만 연주되어야 한다. 불 칼을 든 천사가 인간을 에덴에서 쫓아낸 것은 우리가 뱀과 이야기를 나누고 간식으로 먹을 과일을 잘못 골랐기 때문이었다. 그 뒤 우리에게는 고통과 저주뿐이었다. 그러니 구원은 꼭 필요했다. 모든 것을 측정하는 기준이 완벽이었으니까. 그 기준에 대자면 모든 것이 기준 미달이다.


  『창세기』의 영향을 받은 세계 인구 절반이 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우리가 어떤 형태로든 은총을 잃고 타락한 존재라고 믿는다. 세속적인 이야기들조차 그런 얼개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보수주의자들에게는 그들만의 타락 이전의 에덴이 있고, 그 에덴에는 보통 강인한 아버지들과 조신한 여자들이 있고, 퀴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보주의자들도 세상이 지금처럼 오염되지 않았던 시절에 대해 늘 이야기한다. 모계사회, 구석기 식단, 치즈에서 의자까지 하여간 거의 모든 것이 장인적으로 제작되었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은총을 포기한다면, 은총에서 타락하는 것도 그만둘 수 있다. 그 대신 완벽하진 않지만 좋은 것들을 즐길 수 있게 된다.”(『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중 <겨드랑이 기름때> 23-24쪽)


그가 스티브 테일러를 읽고 나면 이 글의 논조를 바꿀까?


스티브 테일러의 “얼개”에는 기본 전제인 “은총”이 제거되어 있다. 은총이 제거되면 “타락”도 “구원”도 모두 제거되는가? 우선 구원은 “극복”이라는 인간 스스로의 과업으로 바뀌었으므로 제거된 셈이다. 타락은 어떤가? 스티브 테일러는 은총을 전제하지 않고도 타락이란 용어를 썼다. 이유는 두 가지 정도 추정할 수 있다. 하나는, 성서문화권에서 이 말은 친숙함과 더불어 무의식을 건드려 주목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는 사실에 터한 선택이다. 덜 “정확한 용어”(41쪽)라고 하면서도 본제로 삼은 것이 그 근거다. 다른 하나는, 타락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문명 전체의 성격이 악하다는 판단에 터한 규정이다. 보수주의자들이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세계, “강인한 아버지들과 조신한 여자들이 있고, 퀴어는 존재하지 않는” “에덴”이 바로 스티브 테일러가 말하는 타락한 문명이다. 타락 말고 더 적절한 용어를 이 맥락에서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타락이라는 용어 자체가 문제라면 리베카라는 이름이 창세기에서 온 것은 어찌 하나.^^ 스티브 테일러가 창세기 얼개 일부를 방편으로 취하고 있지만 타락의 요체는 BC4000년 전후한 문명 변화에 대한 사회·인문학적, 생태학적 비판에 터 잡고 있다. “은총을 포기한다면, 은총에서 타락하는 것도 그만둘 수 있다.”는 리베카 솔닛의 타당성은 스티브 테일러를 관통하지 않는다.


결국 관건은 BC4000년 이전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다. 은총이란 말은 완벽한 시대라는 평가를 수반하게 마련이므로 은총을 포기하면 완벽은 사라진다. 은총을 포기한 스티브 테일러는 조심스럽게 말한다. “마치 낙원이었던 듯하다.” 그가 제시한 근거를 보면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하면, 그 시대로 회귀하자는 말인가. 아니다. 가능하지도 가당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저 “여러 문제점들” 때문이다.


여러 문제점들이란 무엇일까? 인용문에는 높은 사망률, 의학적 치료 부재가 예시되고 있으나 핵심은 ‘마법사고’다. 한 인간의 발달과정에 비유하면 사춘기 이전 특히 영·유아기 단계에 나타나는 문제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자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인과적 법칙에서 벗어난다. 자연 조건에 쉽게 예속된다. 사실 이들은 치명적이다. 계속 안고 살아갔다면 인류는 진즉 멸종했을 가능성이 높다.


깨뜨려야 할 것은 깨뜨려야 한다. 사춘기의 도래는 불가피하다. 부정과 전복을 거쳐 도달한 어른의 세계가 보여주는 진경은 설혹 외양은 아이의 그것과 같다 하더라도 내용은 전혀 다르다. 지식, 지혜, 기품, 도량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 이들을 무로 돌리고 이른바 황금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모계사회, 구석기 식단, 치즈에서 의자까지 하여간 거의 모든 것이 장인적으로 제작되었던”이라는 약간의 우스개가 곁들여진 리베카 솔닛의 표현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은 우리가 끝내 이어가야 할, 잃었다면 반드시 되찾아야 할 무엇을 지니고 있다. 완벽한 것들이니 되돌아가자는 뜻이 아니다. 한계와 모순을 받아들인 온전한 존재로서 지녀야 할 숭고를 향해 가자는 뜻이다. 그 길은 되돌아 나가는 길이다.


되돌아 나가야 할 참 황금시대는 지식, 지혜, 기품, 도량을 갖춘 초로기 시대다. 지난 6000년은 사춘기 시대였다. 인류역사는 이제 청년기에 진입했다. 파열과 열림, 분리와 일치, 소유와 사랑이 맹렬히 교차하면서 지구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장년기를 지나 황금기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모른다. 황금기는 얼마나 길까, 그 뒤는 뭘까? 여기부터는 질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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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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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재능은 항상 위대한 결함을 동반하는 것 같다.·······이러한 법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경우가 아니라 인류라는 종 전체에서 드러난다. 인류가 이룩한 밝은 면은 파괴적이고 우울한 어두운 측면과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20-21쪽)


인류 대차대조표의 플러스 면과 마이너스 면은 같은 현상의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결과다. 그 현상은 바로 타락-더 정확한 용어를 사용한다면 자아폭발이다.(41쪽)


위대”하다고 하기에 그 결함은 너무 잔혹하다. 인류는 진리와 정의, 그리고 아름다움을 표방하면서 반사회적 인격 장애, 흔히 말하는 Psychopathy나 Sociopathy 수준 또는 그 너머 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뒤엉킨 채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다.


균형”을 이룬다고 하기에 그 어둠 쪽 기울기는 너무 가파르다. 빛의 혜택은 1%에 쏠리고 어둠 속 수탈은 99%에 미친다. The Fall: The Insanity의 평행을 제목 삼은 취지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더 정확한 용어”인 “자아폭발”은 Insanity of the Ego일 텐데, Insanity를 왜 폭발이라고 번역했을까? ‘위대한 것들 사이의 균형’을 염두에 둔 중립화 의도일까? “자아폭발”이라는 용어에 번역자가 이렇게 각주를 달았다. ‘자아가 폭발적으로 갑자기 크게 팽창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설명까지 한 것을 보면 폭발과 Insanity의 괴리를 의식한 듯하다.


정신 불화, 전쟁, 가부장제, 아동 학대, 소유 집착, 거대신과 종교, 몸과 자연의 소외, 시간 지배와 같은 엄청난 질병 또는 악의 상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분열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차별적 분열이다. 이 분열의 전방위성을 고려할 때, 굳이 폭발이라 번역한다면 팽창보다 파열 현상에 의미 깃발을 거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 파열은 폭발의 어두운 면이다. 깨뜨리지 말아야 할 것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밝은 면은 열림이다. 깨뜨려야 할 것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깨뜨려서 열린 것은 앎이다. 앎을 통해 인류는 풍요와 번성을 누리고 있다. 폭발의 이런 균형, 아니 내 방식으로 말하자면 대칭은 왜 비대칭적 대칭asymmetric symmetry일 수밖에 없을까?


아마도 폭발의 조건 자체가 급격한 파열 상황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급격한 파열 상황에서 열린 앎을 차별적 분열의 도구로 쓴 최초의 어떤 정신병 집단, 그리고 감응정신병communicated insanity 집단으로 말미암아 비대칭성이 문명 기조로 자리 잡았지 싶다. 물론 이것은 역사적 설명 방식이다. 사물의 이치로 따지면 폭발의 본령은 파열이고, 파열의 궁극은 전복이다. 기존 세계를 홀랑 뒤집었으니 가히 광란이라 할 만하다. 광란의 전복, 그 절정을 구가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상황이다. 어둠의 절정에서는 빛의 생존을 묻지 않는 법이다. 오직 이 하나를 묻는다.


“어둠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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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하늘이

쏟아져 내려

기뻐서 슬픈

눈물로 바뀐

느 겨울날

를 버리니

너는 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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