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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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성에 대한 근본적 적대감이 존재하는데 이는 타락 문화의 한 축이다. 이 시각은 악마가 남성을 잘못된 길로 빠뜨리려고 보낸 존재기 때문에 여성을 순수하지 못하며 선천적으로 죄지은 피조물이라고 본다.·······

  가부장제의 이러한 측면은 자아폭발이 만들어낸 육체 분리 인식과 연관된다.·······육체 안에 살면서도 육체를 자아보다 저열한 것으로 본다. 본능과 관능적 욕망을 동물적 본성의 한 부분으로 보며, 그 결과, 천하고 사악하다고 간주한다. 여성이 육체와 “더 가깝고”, 여성 육체의 생물학적 활동 과정이 더 확연하기 때문에, 육체에 대한 이런 태도는 여성에게로 확대된다. 남성은 자신을 정신의 “순수”에, 여성을 육체의 “부패”에 각각 연관 짓는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우위를 점하는 성적 능력도 하나의 요인이 된다. 남성은 섹스가 죄악이며, 성적 욕망은 천하다고 여기므로, 이런 욕망을 만들어내는 여성에게 적대감을 느낀다. 게다가 여성의 성적 능력은 남성의 자제 욕구에 모욕을 안겨준다. 그것은 남성이 여성과 자신의 육체에 대해 그토록 갈망하는 완전한 지배를 성취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남성은 여성에게 전신과 얼굴을 가리고, 노예처럼 살도록 강요하지만 여성이라면 누구든 언제든 남성 내면에 강력하고 통제 불가능한 성충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남성이 지난 6000년 동안 여성을 잔혹하게 대한 것은 부분적으로 이에 대한 보복의 측면을 지닌다.(260-262쪽)


자기 내부의 생각이나 감정을 받아들이기 싫어 타인에게 뒤집어씌움으로써 정당화하는 심리적 방어기제를 정신분석학에서는 투사라고 한다. 투사에서 누가 그 대상이냐 하는 문제는 대개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의식으로는 “쉽고 만만하게” 취급하지만 무의식에서는 결코 그럴 수 없는 존재에게 투사할 때 문제의 심각성이 가파르게 증가한다. 근원적 열등감과 결합한 투사는 더욱 단단하고 그악해지기 때문이다. 남성이 여성에게 죄악과 천한 육체성을 뒤집어씌운 것이 바로 그 전형적인 예다.


세상의 절반은 여성이고 나머지 절반은 남성이다. 그러나 남성 모두는 여성의 몸에서 태어난다. 근원적 차원에서 남성은 여성과 동등한 대립항일 수 없다. 자아폭발 이전 인류는 이 진실의 땅에 온전히 뿌리내리고 있었으므로 가부장제는 당최 성립 불가였다. 자아폭발 이후 남성은 여성에 대한 근원적 열등감과 의존 의식을 날카롭게 감지하면서 내면의 불화를 겪는다. 거대하고도 깨알 같은 부정적 투사로써 가부장제를 구축해 살해와 수탈을 자행한다. 중세 유럽 교회가 거룩한 신의 이름으로 즐긴 마녀사냥만 잔혹한 것 아니다. 21세기 대한민국 판사집단이 신성한 법의 이름으로 즐기는 강간 후원놀이는 더 교묘하게 잔혹하다.


귀기 풍기는 잔혹 앞에서 이런 추론이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남성의 근원적 열등감은 여성을 넘어 모성을 향하고 있다. 태고의 안식처로 귀환하고픈 충동의 실현 불가능성이 강간을 부추긴다. 강간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무저갱이 살해 충동을 게워낸다. 어머니를 죽이고야 엔트로피 법열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모성살해의 엔트로피 법열은 결국 그 제국을 완성할까? 세계 구조의 중심을 보면 백발백중 그렇다. 세계 구조의 변방을 보면 다른 꿈이 가능하다. 경계사건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예측 불가의 변화가 갈마들리라. 변방 사람들이 오래 꾸어온 꿈이 영근 뒤 마침내 달빛 아래 신화로 남을 즈음 엔트로피는 공화국으로 세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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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십대 초반 제자들과 술잔 기울이다 왔다. 저들이 대학생이었을 때 만났으니 삼십 년을 넘겼다. 이제는 흰 머리카락 마주보며 소소한 얘기들을 주고받는다. 의미 재미 넘어선 화제를 가로질러 생의 어떤 내밀한 향이 흘러간다. 농활 가서 비누 나눠 쓰던, 가투하다 끌려가던, 인사동 카페에서 맑스 읽던 얘기를 다시 꺼낼 때도 훌쩍 지나고 보니 그저 허허하하한다. 좀 더 자주 보자 다짐하지만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다. 다짐의 틈새로 시간이 스며들면서 저들 또한 내 뒤를 따라 그리 늙어가리라. 평소보다 훨씬 많이 마셨음에도 '은화처럼 맑은' 정신이 잠 맞아들일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아, 일요일.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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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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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범죄는 동전의 양면이다. 한 면은 집단적이고 다른 면은 개인적이다. 그것들은 같은 병리 현상의 산물로, 지위와 부에 대한 욕망 그리고 더 사실적으로 느끼려는 욕망 등이 공감 능력 부재와 합쳐져서 발생한다.(244쪽)


전쟁과 범죄를 동전의 양면이라 표현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전쟁은 그냥 어떤 유형 또는 양상의 범죄다. 범죄는 악이다. 악은 정신병이다. 그 정신병은 타락 또는 자아폭발이라는 역사적 사실에서 비롯하였다. 역사의 문제니까 역사에서 푼다. 역사를 신뢰하는 단 하나의 근거다.


역사를 신뢰하는 것은 창조주나 역사의 신 따위 개념을 소환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경험, 그 경험을 기억하고 성찰하는 인류, 그 인류를 다시 변화시킬 생태적 조건들이 함께 어우러져 빚어내는 내러티브에 가 닿을 그리움을 소환하는 것이다.


그리움은 냄새에 실려 전해진다. 냄새는 아득한 태고의 감각을 깨운다. 태고의 감각은 부비고 부둥키고 부르르하고 부글거리는 경계 감각이다. 포갬과 쪼갬이 맞물리는 마주 가장자리 느낌이다. 마주 가장자리 느낌은 “지위와 부에 대한 욕망” “사실적으로 느끼려는 욕망” “공감 능력 부재”의 독을 달여 약으로 바꾸는 주술이다.


인류는 이 마지막 주술에 힘입어 과학의학이 포기한 정신병, 로고스 윤리학이 포기한 악, 정치경제학이 포기한 범죄, 그러니까 저 잔혹한 전쟁을 녹여낼 수 있다. 문재인과 김정은, 그리고 트럼프의 만남은 이 주술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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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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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요한 사람이 됨”으로써, 성공하고 유명해짐으로써, 다른 사람의 존경과 찬사를 받음으로써,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다: 권력 또는 성공(215쪽)


한국사회를 묘사할 수 있는 낱말은 기본적으로 두 개다: “완전” 또는 “대박”


완전 대박 난 극소수 매판지배층이 암암리에 공공연히 유포시킴으로써 이 두 낱말은 절대다수의 절대표제어가 되어버렸다. 완전을 향한 헛꿈 또는 불완전의 완전 인식이 저들의 삶을 더욱 불완전하게 밀어붙인다. 대박을 향한 헛꿈 또는 쪽박의 대박 인식이 저들의 삶을 더욱 쪽박 나게 밀어붙인다.


불완전 쪽박 인생들은 완전 대박, 그러니까 “권력 또는 성공” 쪽으로 부나방처럼 영혼이 휜다. 불가항력이다. 아니, 억울해서 “중요한 사람이 됨”으로써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할 수 없다. 자기계발 책자에 목을 매서라도 ‘뜨고’ 싶다. 이 들끓음은 처연하다 못해 오히려 바들바들 웃음을 게워내게 만든다. 전방위·전천후로 나대고 들이대고 촐싹대고 웃기고 개기고 뻐기고들 자빠진 일상에서 허우적거린다. 부유하는 찰나적 행복감 하나 건지려고 서슴없이 망가지며, 대놓고 인두겁조차 벗어버린다.


이 요지경에서 고고히 썩고 있는 집단은 기본적으로 둘이다: 양의 또는 대덕


양의洋醫는 권력으로 생명을 볼모잡은 성공의 대명사다. 정치경제학 저 너머 하늘성채에서 “존경과 찬사”를 받으며 안와전두엽이 썩어가고 있다. 대덕大德은 권력으로 영생을 볼모잡은 성공의 대명사다. 정치경제학 저 너머 하늘성채에서 “존경과 찬사”를 받으며 안와전두엽이 썩어가고 있다. 대한민국 적폐의 양대 밀본이다.


작은 looser 절대다수와 큰 winner 극소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보다 더 엄청난 일치가 있다. 정신적 불화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근원적 일치 말이다. 어찌 할까? 소미한 사람은 자신을 사소하게 여기지 않는 틈부터 내면 된다. 대단한 사람은 자신을 위대하게 여기지 않는 틈부터 내면 된다. 그 틈에서 솔솔 배어나는 불온한 야만이 권력과 성공의 뼈를 녹일 테니 말이다.


불온한 야만은 힘이 아니다. 소식이다. 그나마도 소리 없는 소식. 듣고 싶은가. 외양간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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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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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획득하고 소유하려는 우리 욕망은 우리 내면의 불화를 넘어설-또는 완화할-행복의 원천을 찾으려는 욕망에서 분출한다.·······이 점에서 향락주의도 중요하다.·······향락주의와 물질주의는·······돈이 많을수록 우리가 쾌락에 더 많이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로 연계된다.·······향락주의의 목적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 불행을 잘 살고 있다는 웰-빙 의식으로 지워버리는 것이다.·······그러나·······물질주의와 향락주의는 우리를 절대 완벽하게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것들이 가져다주는 흥분감은 매우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신적 불화는 항상 존재하는 반면, 쾌락단추를 누를 때 나오는 “활기 넘치는” 소리는 잠시 후에 사라져버리고 우리는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 있게 된다.(212-214쪽)


처음 서초동에서 한의원 열 때, 인테리어 공사 계약한 분이 술자리에서 경쾌한 어조로 말했다. “인테리어에 지나치게 돈 쓰지 쓰지 마세요, 원장님. 뿌듯한 느낌, 그거 6개월 지나면 사라집니다.” 돈 더 벌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반납하는 업자의 말이라 잊히지 않는다. 불같은 사랑도 180일이면 식는다는데 무엇인들 그렇지 않으랴.


물질이든 향락이든 실체 아니다. 그것들이 일으키는 행복, 안정, 충만, 이 모두 감정 실재다. 매달릴수록 빠르게 지나간다. 빠르게 지나갈수록 맹렬히 매달린다. 제약 불가의 이 허기증은 자아폭발의 총아인 돈의 마술이다. 마술이라고 해서 부인하거나 억압하면 없어지는 허탄한 것은 단연 아니다. 인간 정신에 질병으로 자리하고 있다.


질병은 견고한 고통의 영지를 지닌다. 거기 금강궁을 지은들 극락이 되겠는가. 거기서 송로버섯을 먹은들 천국이 되겠는가. 금강궁도 송로버섯도 고통의 영지에 뿌려지는 거름일 뿐이다. 정신과 금욕이 길인가? 아니, 그 역시 또 다른 극단의 거름이다. 붓다의 중도가 작은 수레의 길이다. 큰 수레의 길은 공동체적 향유와 전인적 참여다.


공동체적 향유와 전인적 참여가 지나치게 이상적인가. 아니, 지상에 이미 존재했었다. 그 핵심을 누락시킨 채 근대민주주의가 벤치마킹한 이로쿼이맹약이 바로 그것이다. 자아폭발이 구축한 개인·로고스·정치경제를 전복할 공동체·에로스·생태학의 나선형 복원 운동은 이미 지하 진원에서 시작되었다. 코 ‘개’날카로운 생명은 그 향을 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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