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겨울



꽃 내린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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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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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삭발했던 일을 잊을 수 없어요.·······삭발하고 흩어져서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데 우리 큰아들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엄마, 삭발하셨어요?”

  그러더니 막 울어요.·······그날 밤 10시 넘어서 집에 들어갔더니 아들이 집에 와 있었어요.·······모자를 벗으면서 “어때?” 하니까, 우리 아들이 그랬어요.

  “엄마, 예뻐요.”

  그 말을 듣는데 너무너무 마음이 아픈 거예요. 엄청 물었어요.·······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43쪽-이영만 엄마 이미경)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하며 이영만 엄마 이미경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모조리 잘라내는 마음과 그것밖에 없어서 엄마 조순애가 강혁의 머리카락 여덟 개를 모으는 마음은 다른가? 얼핏 생각하면 그렇지만 곰곰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머리카락을 모조리 잘라내는 것은 산 자에게 죽음을 들여놓는 것이고 머리카락 여덟 개를 모으는 것은 죽은 자를 삶으로 데려오는 것이다. 방향이 다를 뿐 결국 그 둘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만난다. 삶은 죽음을 맞아들이고, 죽음은 삶을 맞아들임으로써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 진리에 도달한다. 이 진리는 죽은 자를 망각의 과거에 가두지 않고 산 자를 절망의 미래에 가두지 않는다. 생생한 전진의 발걸음으로, 바로 오늘,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나아가도록 ‘공변양자장’을 열어젖힌다.


공변양자장에서는 아이 머리카락 만지는 엄마도 자기 머리카락 자르는 엄마도 하나같이 예쁘다. 예쁜 까까머리 엄마는 더 이상 가슴 아파하고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까까머리 위로 새로이 솟아나는 머리카락 하나하나가 영만이의 숨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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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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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혁이 흔적 하나라도 찾고 싶다.’·······머리카락을 찾았어요.·······


지금도 한 번씩 혁이 머리카락을 만져요.·······만질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요.(41쪽-강혁 엄마 조순애)


그것밖에 없어서 엄마 조순애가 강혁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마음과 너무 보고 싶어서 엄마 전옥이 남지현의 사진을 차마 볼 수 없는 마음은 다른가? 얼핏 생각하면 그렇지만 곰곰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사진이든 머리카락이든 아이의 상실로 말미암은 그리움과 절망을 환기한다. 두려운 절망을 회피하든 사무친 그리움에 휘감기든 엄마의 비원은 오직 하나, 아이와 연속되는 것이다. 그 연속의 비원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엄마들은 안다.


엄마들은 이제 그 연속을 꿈꾸지 않는다. 말간 절망과 더불어 사진을 들여다본다. 그윽한 그리움과 함께 머리카락을 장롱 깊숙이 넣어둔다. 아이들의 죽음 그 자체를 엄마들의 삶 안으로 들여 놓는다. 엄마들이 곱으로 살아 아이들이 부활한다. 부활한 강혁이 엄마 조순애의 삼단 같은 머리카락을 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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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나무 덤불이 소담한 꽃잔치를 벌이고 있다. 줄기 골속이 국수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그 꽃말이 '모정'이라는 사실과 연결해 보면 멀건 국수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우던 가난한 시절의 엄마 이미지를 품은 듯도 하다. 5mm 이하의 앙증맞은 꽃이 향기로 벌나비를 불러들이는 밀원식물이다. 환경오염 지표식물이기도 하다. 무심코 지나치기 십상이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참으로 아름답다. 세상 이치도 똑 이와 같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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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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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선생님이 부정적인 감정들을 외면하지 말고 뚫어지게 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때는 선생님이 말씀을 너무 쉽게 하시는 것 같아 좀 화가 났었어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겠다고 애쓰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내려고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데, 그 현실을 어떻게 마주하라는 거지? 그 감정들을 어떻게 바라보라는 거지?’

  그걸 마주했다가는 무너질 것 같았어요.·······


참사 나고 2년 정도는 너무 힘들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의사 선생님 말씀을 이해하겠더라고요. 두려운 현실을 마주할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느끼게 됐어요.(38~39쪽-성호 누나 박보나)


두려움은 인간이 드러내는 병리적 감정의 범주증상이다. 이 증상은 분리에서 기원한다. 분리의 장벽을 깨뜨려 신성한 재통합을 이루기 위한 첫 망치질은 두려움 마주하기다. 마주하면 두려움의 실재the Real를 알 수 있다.


성호 누나 박보나에게, 마주하면 자신이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이란 무엇인가? 성호의 상실인가? 성호를 상실하게 한 사건인가? 사건에 휘말리면서 겪은 참혹한 경험과 기억, 그리고 감정들인가? 그럼에도 살아지고 또 살아내야 하는 모진 생인가? 사건을 일으키고 속이고 조작하고 능멸하면서 킬킬대는 불의한 권력집단, 비정한 사회인가? 불의한 권력집단, 비정한 사회 앞에서 또렷이 의식되는 천명인가?


필경 이 모두일 것이다. 이 모두를 하나의 거대한 실체로 느꼈을 것이다. 그 거대한 실체가 외부에서 자신을 향해 덮쳐온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얼굴을 돌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외면하지 않고 뚫어지게 보려면 그 거대한 실체가 거짓이라는 사실을 간파해야 한다. 거짓 실체를 간파하려면 낱낱이 결결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낱낱이 결결이 들여다보려면 그것을 방해하는 통속한 해석·평가를 중지해야 한다. 통속한 해석·평가를 중지하려면 스스로 물어야 한다. 물음은 ‘과연 그런가?’ 하는 반성에서 시작해 ‘대체 무엇인가?’ 하는 정체 추궁으로 가야 한다. 정체를 들키면 악마는 사라진다.


악마가 사라지면 진실이 하나둘 불을 밝힌다. 성호가 없는 세상에서 박보나는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삶이 어떻게 향기로운지, 그 향기가 어떻게 사위로 번지는지, 번지고 번져서 세상에 어떻게 성호가 부활하는지 환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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