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마지막 일요일 이른 오후. 아무런 계획 없이 집을 나선다. 마침 도심으로 향하는 버스가 오기에 탄다. 광교에서 내리자 버스는 졸지에 기사의 커다란 승용차가 되어버린다. 신호가 바뀌면 건넌다. 골목이 열리면 들어간다. 종로4가까지 걸으니 출출해진다. 음식점이 있을 법한 작은 골목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조명, 전기, 설비 가게들이 몰려 있는 골목길을 편력이라도 하듯 헤맨다. 어느 모퉁이를 돌아서자 콩나물해장국집이 나타난다. 뜨끈한 국물에다 소주 한 잔까지 흘려주니 속이 이내 풀어진다. 다시 길을 나서 광화문 방향으로 걷는다. MB청계천으로 열린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평소 탐탁히 여기지 않았으나 무심히 내려간다. 송사리 떼가 노는 모습을 확인하고 올라와 광화문 네거리를 건넌다. 경희궁 지나 돈의문 박물관 마을로 들어간다. 작정하고 차린 것 같은데 실속은 없어 보인다. 휘적휘적 지나 서울교육청 앞으로 난 길을 따라간다. 이정표를 보고 한양 도성 인왕산 코스 성 밖 길을 따라간다. 조금 오르니 하마 산이다. 발아래 군락 이룬 아파트와 우글거리는 연립주택이 뒤엉켜 있다. 멀리 성곽 저 너머 고층빌딩 숲이 이루는 문명의 스카이라인이 아스라하다. 점점 가팔라지는 산길을 숨 몰아쉬며 오르다 문득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비스듬히 내려간다. 인왕산 선바위의 기이한 자태가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무학 대사에 얽힌 전설이 끼어들어 선바위라 하지만 본디 만신이 이끄는 토착신앙의 성소임에 틀림없다. 텅 빈 마음으로 돌아보다 더 텅 비어져서 내려오는데 여인 둘이 치성 차 올라간다. 심상하되 간절한 그 걸음에 끌려 잠시 멈춰 선다. 홀연 질문 하나 날아든다. 나는 내 삶을 저렇게 간절히 대하고 있는가. 어둑해지는 하늘 이고 푸른 기운을 뿜어내는 큰 바위에 가만히 시선을 둔다. 나 너머의 나를 향해 가는 길 떠나려고 표표히 도시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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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9-12-30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라고 설명해주시지 않았더라면 추상화라고 생각할뻔했어요. 압도당하는 걸요.

bari_che 2019-12-31 09:51   좋아요 0 | URL
많은 사람들이 영적 의지처로 삼을 만하지요?^^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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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28일 오늘, 416-2083이다. 쌓인 것은 시간이 아니라 변화다. 엄마가 바뀌었다. 아빠가 바뀌었다. 벗이 바뀌었다. 이웃이 바뀌었다. 그들이 함께 변화하는 장이 끊임없이 일렁거린다. 범죄자와 그 하수인이 한사코 틀어막고 있지만 엄폐의 철벽은 조금씩 균열을 일으킨다. 416 전체상도 나날이 달라지리라. 달라지지 않을 것이면 우리 모두 자음·모음 구별 없는 언어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2014년 4월 16일, 짙푸른 만장이 뒤덮은 절규와 통곡의 416제의가 일으켜졌다. 국가는 협잡질로 일관했다. 언론은 가짜뉴스로 도배했다. 촛불시민이 가짜 대통령은 쫓아냈다. 그러나 천적 없는 조·중 사주는 ‘제왕적’ 검찰 수장을 만나고 다닌다. 매판의 지성소에서 민주주의는 우스개다. 거기는 여전히 똥물이다. 매순간 제의416을 혁신해간다. 지난해서 지극한 성전이다. 승리할 전쟁이 아니라 장엄할 전쟁이다. 연보라 만장으로 뒤덮는다.


연보라 만장은 밤과 낮의 어름에서 펄럭인다. 울음과 웃음의 경계를 넘나든다. 비극과 희극의 마주 가장자리를 이어 붙인다. 평일과 휴일을 가로지른다. 기어이 카니발이다. 전복한다. 전복을 전복한다. 예루살렘 성을 보고 울던 예수가 가나에서는 물로 포도주를 만든다. 설마 울면서 마시려고 포도주를 만들었겠나. 눈물 채 마르지 않은 눈으로 웃으며 잔을 드는 예수416들이 잔칫집416을 들었다 놨다 하는 꿈을 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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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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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416 자체로 살아가기-헌정의 나날


어차피 1, 2년에 끝날 거 아니잖아. 난, 사람 자체가 세월호야. 긴 세월이니 오늘 또 살아내야지.(371쪽- 최윤민 엄마 박혜영)


최윤민이 죽음의 차원으로 실재하므로 박혜영은 오롯이 416 자체일 수 있다. 416 자체가 된 그는 개인적인 삶이 따로 분리되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영역에서 그는 416의 화신으로 살아간다. 이것은 그의 전인격이 내린 규정이다. 극진한 헌정이다. 이 헌정에 힘입어 최윤민은 공적으로 부활한다.


98. 416 없이도 살아가기-나만의 꿈


수현이가 없는데 내가 뭔가를 해도 될까? 남편은 진상규명 얘기만 하는데 내가 꿈을 꿔도 될까?(373쪽-박수현 엄마 이영옥)


멸절이 아니긴 하지만 박수현은 이영옥의 눈앞에서 분명히 사라졌다. 이영옥의 꿈을 함께할 박수현은 이제 없지만 박수현이 일깨운 이영옥의 꿈은 여기 있다. 여기 있는 이영옥의 꿈을 박수현이 이제 없다고 접어야 하나. 박수현이 없어 이제 나만의 것이 되어버린 그 꿈을 계속 꾸는 것이 옳다. 이 꿈을 통해 박수현은 사적으로 부활한다.


99. 416 곁에서 살아가기-눈물 고인 작은 웃음


큰 행복을 바라지 않아요. 다만 호연이가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처럼 정말 편하게 웃고·······느끼며 살고 싶어요. (눈물 고인 작은 웃음) 새롭게 행복하고 싶어요.(375쪽- 김호연 엄마 유희순)


김호연은 없지만 있다. 없지만 있는 김호연이라서 유희순은 눈물 고인 작은 웃음을 지을 수 있다. 산 자가 죽은 자를 일상에서 감지함으로써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새로운 행복이다. 절대 상실을 관통한 역설의 행복이다. 욕심이 씻겨나간 맑은 기품을 지닌 삶에서 피어오르는 향이다. 그 향에 어우러져 김호연과 유희순은 공동체로 부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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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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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스템으로는 세월호가 끊임없이 반복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368쪽- 곽수인 엄마 김명임)


마고사키 우케루가 쓴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에 따르면 미국의 일본 지배도구는 언론과 검찰이었다. 미국 정보기관이 수집한 부패 관련 정보를 언론에 흘려주면 언론이 스캔들로 만들고 이것을 검찰(동경지검 특수부)이 수사해서 자주파를 제거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사회 각계에 포진해 있는 친미파 인사들의 광범위한 백업이 ‘인프라’였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낯익은 풍경 아닌가.


35년 동안 지속된 일제 식민 통치와 이 제도를 거의 그대로 이식한 미군정이 대한민국 통치의 실질 체제이므로 우리나라의 경우는 중첩적이다. 매판집단은 응당 친일파, 친미파 둘이다. 물론 둘의 경계는 모호하거나 없다고 봐야 하지만 구태여 둘이라고 하는 것은 의존과 착취가 이중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매판집단의 자체적인 힘도 훨씬 강고해 시스템을 굴리는 독자적 기술을 지닌다.


지구 최강의 매판집단이 존재하는 한 이 땅에서 416은 되풀이될 것이다. 안전사고를 가장한 이런 제노사이드만 416인 것은 아니다. 부도덕한 ‘강남좌파’의 위선을 까발려 공정과 평등 문제를 제기하는 체 하면서 자주정서에 찬물을 끼얹고 진보의지에 허무 바이러스를 살포함으로써 공동체 일각을 허물어버린 이른바 조국사태도 다른 버전의 416임을 대다수가 모른다. 저들은 갈수록 교활해질 것이다.


매판이 교활해질수록 우리사회의 문제의식은 난잡하게 왜곡된다. 이 땅 언론과 지식인이 현 상황에서 ‘강남좌파’ 문제를 돋을새김 하고 나서는 것은 프랑스 언론과 지식인이 ‘캐비아 좌파’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과 사뭇 다르다. 프랑스에서는 나라 말아먹은 매판이 전선을 조작하고 교란하는 일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왜곡을 조장해 시대정신을 소리 없이 살해하는 것은 얼마나 영악한 416이랴.


전방위·전천후의 416들은 미래의 공포가 아니다. 나는 아니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미래로 밀어 놓는 것뿐이다. 감각을 열면 416들은 시시각각 느껴지는 현재의 고통이다. 삼성은 연말정산 내역을 뒤져 진보 성향 사회단체에 기부한 임직원 수백 명을 색출했다. 쌍용은 복직 합의를 일방적으로 깨고 무급휴직 노동자 47명에게 무기한 휴직 연장을 통보했다. 누구에게나 언제나 매판의 발길질은 들이닥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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