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인류사회를 홀까닥 뒤집으며 흘러온 시간이 이미 상당하다. 인류역사를 통틀어 신적 권능과 편재성을 획득한 유일한 사건의 한가운데 우리가 있다는 사실이 갈수록 분명해진다. 처음에는 곧 끝나겠거니 했다가, 조금 있다가는 언젠가 끝나겠지 하더니, 이제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이 등장하고 있다.

 

이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대중의 수동적이고 빙결된 태도다. 발 빠른 소수가 벌써 책도 내고 사업적 변신을 도모하며 새로운 세상 헤게모니 잡는 길을 닦아가는 동안 대다수는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쇠락과 고립으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다. 미끄러져 내려가는 사람 속에는 물론 나도 있다. 산 입에 거미줄 치겠나,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이러다 굶어죽겠구나, 한다. 번쩍 정신 들어 정색하고 정좌한다.

 

코로나19는 인류를 대면문명의 절벽 끝에서 돌연 밀어버렸다. 미증유의 충격으로 허둥대며 어떻게 비대면 문명을 정초할까 모두 분주하다. 분주 떨기 전에 대면문명의 실상을 비판적으로 톺아보는 일부터 하자. 대면이란 무엇인가? 대면이 왜 문제인가?

 

코로나19는 다만 인간에게 감염질환을 일으키는 나쁜 타자가 아니다. 코로나19 습격이라는 표현은 어폐가 있다. 코로나19는 인간이 불러들였다. 불러들였다는 표현도 정확하지 않다. 하필 인간만 감염시키고 하필 남성과 친하고 하필 고령자에게 강한 것을 보면 코로나19가 발생과 진화 과정에서 인간과 상호작용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대면의 불가항력적 요구를 통해 현재 인류의 생활체계 전반을 전복시키는 증후가 현상적 보편성 너머 본질적 차원을 조준하고 있음이 확실한 이상, 단순한 외부 존재가 아니라는 통찰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코로나19가 그려낸 전방위, 전천후 비대면 풍경은 현대문명에 대한 잔혹한 저주이자 불같은 심판이다. 자본주의 대면의 끝은 극한수탈이다. 신자유주의 대면의 끝은 무한폭력이다. 공동체의 종말이며 네트워킹의 종언이다. 코로나19는 수탈이 이루어지는 거리 190cm 이내 접촉을 엄금한다. 코로나19는 폭력이 이루어지는 거리 190cm 이내 접촉을 엄금한다. 코로나19는 코로나190을 불러낸다. 코로나190은 코로나19이다.

 

코로나19은 대면의 폐기가 아니다. 무엇이 참 대면인지 깨닫게 하는 공의 윤리다. 공의 윤리는 비대면 풍경을 비대면의 대면 풍경, 곧 역설적 전경全景으로 변환한다. 역설적 전경은 코로나19가 불러낸 자애로운 축복이자 강물 같은 구원을 담아낸다. 저주에서 축복을, 심판에서 구원을 이끌어낼 때 비로소 인류는 존속할 수 있다. 역설적 전경인 비대면의 대면은 무엇일까? 온라인대면on-tact이 비대면의 대면일까?

 

온라인대면이 비대면의 대면의 주요 방법이며 기술임에는 틀림없다. 방법이며 기술일 뿐인 한 그것은 빠른 시간 내로 또 다른 형태의 문명적, 생태적 폐해를 낳을 것이다. 그 폐해는 머릿속에 오직 방법과 기술밖에 없는 온라인대면체제의 헤게모니블록이 생산해낸다. 온라인대면체제의 헤게모니블록은 비대면의 대면을 존재, 인식, 윤리의 눈으로 숙고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돈 안 되니까. 돈 되는 짓만으로 코로나19를 피해 가면 코로나190은 물 건너간다. 코로나190이 물 건너간 인류는 제6 대멸종을 앞당긴다.

 

코로나19가 종식시킨 대면문명은 인간 존재를 거대구조의 부속품으로, 유일신의 피조물로, 영속화폐의 노예로 만들었다. 인간 인식을 일극집중의 형식논리에 결박시켰다. 인간 윤리를 약육강식의 정글에 귀속시켰다. 이것이 대면의 진면모다. 진면모로서 대면은 가학밀착이며 피학애착이다. 코로나190이 일으키는 비대면의 대면 문명은 인간 존재를 미세네트워킹의 객체주체로, 무한신의 소미심심 창조자로, 소멸화폐의 선물로 만든다. 인간 인식을 화쟁의 역설논리에 풀어놓는다. 인간 윤리를 평등평화공생의 장에 깃들인다. 이것이 비대면의 대면의 진면모다. 진면모로서 비대면의 대면은 외경친밀이며 포용소격이다.

 

현 추세대로라면 코로나190 시대는 도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의 어둠과 야합한 세력의 준동 때문이다. 까불면 하나님도 죽일 수 있다는 권능의 화신이 스스로를 코로나19에 감염시킴으로써 이적을 행한다. 저 권능의 화신을 부추겨 수구의 아이콘으로 만든 매판집단이 일사불란하게 정권을 레임덕으로 몰아간다. 민주화운동 하다가 그 매판집단으로 기어들어가 국회의원 세 번씩이나 해서 코로나19에 면역력을 획득한 화상이 검진을 거부한다.

 

프랑스는 하루 확진자 6000명 사망자 300명 넘는 상황에서도 격리조치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 그와 비교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헤게모니블록은 쓰레기 언론을 필두로 생난리를 피워대고 있다. 무엇을 노리는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 진흙탕에서 코로나190 운운하고 자빠졌으니 나도 차암 물색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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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인은 자기 존재를 알고 있는 바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 모를 때 행동하는 바로 증명해야 한다. 우리사회 이른바 진보지성인 거의 모두는 입으로 자기 존재를 과시한다. 자기를 셀러브리티로 키워준 쓰레기 신문쪼가리나 자기 패거리가 추임새 넣어주는 SNS에 쓰는 글로써 그 짓을 한다. 재난공동체를 꾸리는 실질적인 일에 앞장서기는커녕 한사코 비판만 한다. 공동체 외곽에서 자기의 초월적 윤리성을 증명하는 것 이외에 다른 목적을 지니지 않는 듯 보인다. 저들의 훤화가 개소리인 까닭이다. 저들 부류에 끼지 못하는 내 익명성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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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의학 소설 초벌 작업이 끝난 뒤 다시 20일 동안 두벌 작업을 진행했다. 제목을 다시 고쳤다. 이야기들을 11개의 나선구조로 바꾸어 배치했다. 토씨 하나까지 바꾸는 세부작업을 한 번 더 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다. 처음 글과 그 제목은 <미안해서 못나서>였다.


*   

 

다시는 볼 수 없을 듯합니다. 그는 순도 99.99%의 우울장애 전형이었습니다. 모든 우선순위가 타인에게 있었습니다. 모든 중심이 타인에게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맨 뒤에서 주춤주춤 따라 걸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변두리에서 자신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그는 상담 내내 미안하다는 말을 무수히 반복했습니다. 어째서 미안하냐고 물으니, 그가 서슴없이 대답했습니다.

 

못나서요.”

 

그는 자신이 못나서 부모에게도 형제자매에게도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얼마나 절절했던지, 처음에 가슴이 먹먹하다가 나중에는 부아가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부아를 삭이면서 저 또한 절절한 심정으로, 뭐가 어떻게 못났는지 물었습니다. 그가 웅숭깊게 대답했습니다.

 

태어난 것 자체가요.”

 

그의 팔목, 아니 팔에는 무려 20개에 가까운 칼자국이 있었습니다. 미안해서, 못나서, 그는 긋고 또 그었습니다. 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이나 유령인 채 잘난 사람들 언저리를 떠돌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돈이 있을 리 없습니다. 치료 받는 것도 미안하고, 돈이 없는 것도 미안하고, 그냥 와서 치료 받으라고 간곡히 권하는 제게도 미안해서, 결국 그는 두 번 다시 오지 못했습니다.

 

오래 전 딱 한 번 마주한 얼굴인데 잊히지 않습니다. 그가 아직도 건강을 되찾지 못 한 채 아프디아프게 살고 있다면, 여기에 제 책임도 없지 않다는 죄책감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


이것을 이렇게 바꾸었다. 제목은 <아침에 받은 것을 저녁에 돌려주다>다. 


*

 

다시없을 것이다. ㅁㄴ은 순도 99.99%의 우울장애 전형이다. 모든 우선순위가 타인에게 있다. 모든 중심이 타인에게 있다. 그는 언제나 맨 뒤에서 주춤주춤 따라 걷는다. 그는 언제나 변두리에서 늘 자신을 떠나고 있다.

 

ㅁㄴ은 미안하다는 말을 무수히 반복한다. 어째서 미안하냐고 물으니, 서슴없이 대답한다.

 

못나서요.”

 

그는 자신이 못나서 부모에게도 형제자매에게도 미안하다고 한다. 그 말이 얼마나 절절하던지, 처음에 가슴이 먹먹하다가 나중에는 부아가 치밀어 올라온다. 부아를 삭이면서 ㅂㅇ 또한 절절한 심정으로, 뭐가 어떻게 못났는지 묻는다. 그가 웅숭깊게 대답한다.

 

태어난 것 자체가요.”

 

내 팔목, 아니 팔에는 무려 20개가 넘는 칼자국이 있다. 미안해서, 못나서, 나는 긋고 또 긋는다. 긋는 찰나 들이닥치는 날카로운 통증이 나를 살리고 또 죽인다. 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이나 유령인 채, 나는 잘난 사람들 언저리를 떠돌고 있다.

 

치료 받는 것도 미안하다. 돈이 없는 것도 미안하다. 그냥 와서 치료 받으라고 간곡히 권하는 ㅂㅇ선생님에게도 미안하다. 모두 내 못난 탓이다.

 

내가 오늘 들고 갔던 카드는 여동생의 카드다. 그 여동생은 내가 너무나 자랑스러워해서 수없이 꽃을 선물했던 여동생이다. 그 여동생에게서 아침에 받았던 그 카드를 나는 저녁에 돌려주었다. ㅂㅇ선생님을 다시 뵙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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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진실에는 다음 내용도 l'acceptation이 아니란 사실이 숨겨져 있다. 

 

J'aime la pluie.

J'aurais voulu qu'il pleuve.

Ma journée serait plus belle

s'il pleuvait.

Ma journée est réussie.

Il pleut toujours.

Tous les jours c'est comme ça.

Pourquoi il pleut quand

je veux qu'il fasse b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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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다. 더군다나 문학적 글쓰기는 감불생심. 루시아 벌린을 읽으면서 단편소설 쓸까 하는 생각이 벼락치듯 일어났다. 내 생에 일어났던 일 가운데 숙의치료 부분부터 손을 대기 시작했다. 미리 써둔 글을 바꾸는 일이었으므로 생으로 시작하는 것보다 쉽다고 판단한 것이다. 20여 일에 걸쳐 간단한 초벌 작업을 했다. 그 중 하나가 이것이다. 본디 글은 <망상이라도 좋다>였다. 


*    


치유자의 길을 가다보면 순간순간 전능한 존재가 되는 망상에 잠깁니다. 고통 가운데 망가져가는 사람의 참담한 모습, 좀처럼 변하지 않는 상황을 보면서도 이렇다 할 수를 내지 못하고 뭔가 계속 말해야 할 때, ‘손을 얹은 즉 병이 나았더라.’는 신약성서 속의 예수가 되는 헛꿈을 꿀 수밖에 없습니다. 어제도 이제도 다음도 모두 사기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회의가 밀려들면 모든 생각이 확 뭉그러집니다.


20대 초반의 청년이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들어섰습니다. 복잡하고 거대한 강박증후군에 시달려 심신이 극도로 피폐해진 상태였습니다. 5가지 화학합성약물을 처방 받아 복용하고 있었습니다. 효과는 미미한데 부작용이 뚜렷하고 다양해 약을 먹는 것인지 독을 먹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나마 약이라도 먹는다는 심리적 위안 때문에 끊지도 못한 채, 부작용으로 100kg이 넘어버린 몸을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학령기 이전 시골마을에서 누군가 개를 잡아 내장 손질하는 광경을 우연히 목격하고 충격 받은 이래 결벽 경향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동네 노인에게 성추행을 당해 그 경향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급기야 중학생 시절에는 야동을 접하고 다양한 더러움(!)에 치를 떤 이후 완연히 병적 상태로 돌입했습니다. 몇 시간씩 쏜을 씻어댔습니다. 자위행위를 하고 나면 손과 성기가 더럽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하루 종일 씻고 확인하느라 다른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소변을 보고도 그랬습니다. 성폭행의 가해자와 피해자 의식이 번갈아 찾아들면서 성기를 확인하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태를 대처하는 데 미숙했던 부모는 강제로 그를 정신병원 또는 수용시설에 4차례나 가두었습니다. 심지어 개신교 기도원 같은 곳에 감금해 놓고 결벽을 도리어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학교는커녕 그 어떤 외부 활동도 불가능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게 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혼신의 힘을 다해 그와 상담했습니다. 그는 처음에 저의 치료 방식과 효과에 매우 놀라워했습니다. 강한 신뢰를 표시했습니다. 그 또한 혼신의 힘을 다해 상담에 임했습니다. 한두 달 만에 상황은 몰라보게 호전되었습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외부 생활을 조금씩 재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안정에 도달하자 더 이상은 진전이 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어느 하나가 좋아지면 다른 하나가 불쑥 나타나는 방식으로 헛돌면서 교착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저도 그도 서로 안타까워하며 힘을 내었으나 좀처럼 타개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시나브로 지쳐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달리 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참으로 간절한 마음이 되어 대상 없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기도가 끝나면 참담할 따름이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일심으로 수련하면 기적의 영성을 획득할 수 있으려나, 부질없는 상념이 무시로 스며들었습니다. 가난했던 그는 쌓여만 가는 치료비 때문에 미안했고, 저는 나아지지 않는 게 미안했습니다. 서로 격려하며 견뎌온 연대는 는적는적 끊어져갔습니다.


이 과정이 진행되던 바로 그 무렵 저는 개인적으로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아 삶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그에게로 뻗었던 손을 지탱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한의원을 닫았습니다.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었습니다. 여태까지 많은 실수와 실패가 있었습니다. 소년티 그대로 묻어 있는 그의 선한 눈매가 이따금씩 떠오르면 전능한 신이란 정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뜬금없이 들고는 합니다.


*


이 글을 <소식>이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바꾸었다. 


*


나는 다섯 살 무렵, 누군가가 죽은 개 내장 주무르는 광경을 우연히 목격하고 크게 충격 받았다. 그 때문에 결벽증이 자리 잡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동네 노인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그 증상은 더욱 강해졌다. 급기야 중학생 시절, 야동을 통해 들이닥친 강도 높은 음란함을 더러움으로 인식한 이후, 극심한 병적 상태로 빠져들고 말았다.

 

하루 7-8시간씩 피가 나도록 손을 씻어댔다. 자위행위를 하고 나면, 손과 성기가 더럽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하루 종일 씻고 확인하느라,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나중에는 소변을 보고도 그랬다. 성폭행의 가해자와 피해자 의식이 번갈아 찾아들면서 성기를 확인하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확인하는 과정에서 가족을 때리기도 했다.

 

이런 상태를 대처하는 데 미숙했던 부모는 강제로 나를 정신병원 또는 유사한 수용시설에 4차례나 가두었다. 심지어 개신교 기도원 같은 곳에 감금해 놓고 결벽을 도리어 부추기기도 했다. 결국 복잡하고 거대한 강박증후군에 시달려 심신이 극도로 피폐해졌다. 5가지 화학합성약물을 처방 받아 복용했다. 효과는 미미한데 부작용이 뚜렷하고 다양해, 약을 먹는 것인지 독을 먹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약이라도 먹는다는 심리적 위안 때문에 끊지도 못한 채, 부작용으로 100kg이 넘어버린 몸을 견뎌내고 있었다. 학교는 진즉 그만두었고 아예 외부생활 자체가 불가능했다. 천신만고 끝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가 찾아간 사람이 바로 숙의치료자 ㅂㅇ.

 

ㅂㅇ는 극진히 나를 대했다. 나는 그의 치료 방식과 효과에 매우 놀랐다. 강한 신뢰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또한 혼신의 힘을 다해 치료에 임했다. 한두 달 만에 상황은 몰라보게 호전되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외부 생활을 조금씩 재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안정에 도달하자, 더 이상은 진전이 되지 않았다. 어느 하나가 좋아지면 다른 하나가 불쑥 나타나는 방식으로 헛돌면서 교착상태에 빠져들었다. 나도 그도 서로 안타까워하며 힘을 내었으나, 좀처럼 타개되지 않았다. 나는 시나브로 지쳐갔다. 어느 순간 나는 더 이상 그에게조차 갈 수 없는 상태로 굴러 떨어졌다. 나는 어렵사리 그에게 소식을 전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석 달 째 못가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모든 것이 멈춰버렸습니다.

도통 밖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가난했던 나의 부모는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수백 만 원이 밀려 있기까지 했다. 나는 이래저래 그에게 미안했지만 달리 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도리어 내게 미안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치료연대는 그렇게 는적는적 뭉그러져갔다. 얼마쯤 지나 짤막한 그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의 진료소가 없어졌다는.


*


함량미달, 아니 아예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말이 되는 것은 이 작업을 하는 그 20여 일 동안 내 삶에 분명하고 구체적인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이 글들을 문학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삶이 변화하는 과정의 증언으로 삼기 위해서 계속해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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