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블루 in 그린세러피



  (4) 그린 수기-동아시아 전통의학은 치료의 중요성을 일침이구삼약, 즉 침--약 순으로 매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맨 앞에 말, 그 뒤에 손을 넣습니다. 일언이수삼침사구오약입니다. 그린세러피의 그린 상담을 구성한 장본인이므로 자연히 말이 가장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손이 중요합니다. 손은 말이 그런 것처럼 진단에서부터 일을 시작합니다. 코로나블루에 무슨 손 진단인가 하시겠지만 마음은 몸의 마음이므로 마음병은 다양한 몸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을 손으로 찾으면서 대화를 나눕니다. 손이 가 닿는 것 자체가 그렇거니와 대화로 의학적 지식과 자가 치료 정보까지 전해져 손 진단과 동종치료는 순간순간 절묘하게 일치합니다.

 

수기手氣, 즉 손 치료는 가볍게 부드럽게 손으로 대고, 받치고, 만지고, 누르고, 문지르고, 비비고, 두드리고, 잡아당기는 것입니다. 손 치료는 가장 가벼우면서도 즉각적 효과가 있는 치료 방법입니다. 전문적으로 수련한 사람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얼마든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지금은 거의 잊힌, ‘엄마 손이 약손이다.’ 라는 말이 그 진실을 전해줍니다. 제 경우 특별한 예외를 빼고는 마음병을 앓는 사람에게 반드시 마음병과 연결되는 몸 부위를 찾아 손 진단과 치료를 합니다. 예를 들면 양의든 한의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이지만, 1~3경추(목뼈)는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서 세밀하고도 광범위한 마음병 진단과 치료를 행합니다.

 

무엇보다 손으로 살갗, 조금 더 깊게는 근육을 치료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피부가 또 다른 뇌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정신분석의 디디에 앙지외는 피부자아란 책에서 자아는 피부다.’ 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기 우리 주제에 맞게 말하면 마음은 피부다.’가 될 것입니다. 피부에 가 닿는 치료자의 손은 단순히 몸을 치료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도 치료합니다. 그 효과는 놀랍습니다. 복부 진단을 하기 위해 따스한 마음으로 배에 손을 얹는 순간,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을 정도입니다. 손이 마음에까지 가닿는 것입니다. 마음과 말로써만 상대방의 마음에 가닿는 게 아닙니다. 그린세러피의 손을 수기라고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5) 그린 침·-·은 전문가인 저 자신도 놀랄 만큼 치료 효과가 뛰어나며 치료 범위도 넓습니다. ·으로 마음의 병도 치료할 수 있음은 물론입니다. 마음의 병과 직결되는 몸 부위 경혈에 침·을 놓는 것이 기본입니다. 앞서 목뼈를 말씀드렸습니다. 의당 거기도 침·뜸자리입니.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소화기관입니다. 특히 소장과 대장은 감정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피부가 그러하듯 장도 마음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장을 잘 치료하는 것이 곧 마음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서구의학도 요즘 이 문제에 맹렬한 관심을 보입니다. 저는 복부 손 진단을 통해 소화기관 상태를 면밀히 살핀 다음, 소장과 대장을 치료하는 침·을 놓습니다.

 

동아시아 전통의학은 소장과 심장을 표리관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장이 겉이고 심장이 속입니다. 동아시아 전통의학은 소화기관을 피부와 또 다른 몸 바깥으로 파악합니다.) 이름 자체가 그렇듯 심장을 마음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서구의학에서도 요즘은 인정합니다. 심장대뇌계라는 용어로 정착되고 있습니다. 심장이 단순히 혈액을 공급하는 펌프가 아니라 중요한 내분비기관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심장의 기질적 이상은 말할 것도 없고 단순한 기능 이상도 마음병과 연결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심장의 증후를 읽어내어 침·으로 치료하는 일 또한 마음 치료에서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몸 중앙을 세로로 흐르는 비대칭의 대칭 맥인 임맥任脈과 독맥督脈의 관련 경혈을 찾아 침· 치료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임맥은 몸의 앞 중앙을 흐릅니다. 여기에서 주요 혈 셋, 또는 넷을 취하여 자기 존재와 삶에 대한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생기는 마음 병 기초 치료를 합니다. 독맥은 몸 뒤 중앙을 흐르는데, 앞서 말씀드린 목뼈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여기서 자기 존재와 삶에 대한 과도한 애착 때문에 생기는 마음 병 기초 치료를 합니다. 특히 정수리에 있는 경혈인 백회, 꼬리뼈 아래 있는 경혈인 장강, 두 혈은 매우 중요합니다. 5요추(허리뼈)도 아주 중요한 자리로 예의 그 목뼈 부위와 긴밀한 관계에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코로나블루 in 그린세러피




  ☸ 비망록備忘錄

 

모든 구비마다 매순간 그린 상담이 심혈을 기울이는 일이 있습니다. 블루에 휘말린 사람의 삶의 정황과 이해 정도를 충분히 고려해 관심을 인문학적, 사회정치적, 생태학적 지평으로 확장하는 문제입니다. 한 개인이 지니고 있는 문제의식을 넘어서는 문제입니다. 엄존하는 사회 현안에 참여하도록 하는 문제입니다. 개인에게 생긴 마음의 병이 일상적인 삶, 사회정치, 생태 문제와 무슨 이치, 어떤 방식으로 엮여 있는지 알게 하는 문제입니다. 공포·불안의 극대화는 어떻게 조성되는지, 우울의 양극화는 어떻게 조직되는지, 공동체 위기의 진실은 어떻게 조작되는지 깨닫게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눙치고 넘어가는 그린 상담은 bullshit입니다.

 

이 일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를 요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마음 아픈 사람의 반감을 살 우려가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병 때문에 상담하려는데 역사가 어떠니, 정치가 어떠니, 기후변화가 어떠니 떠들더라, 뭐 이런 불만이 걸림돌 노릇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보통 이렇게 큰 이야기가 개인에게, , 이게 내 이야기구나, 하고 받아들여지기까지 과정과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물론 전혀 불가능한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한 불가피한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오늘 우리사회가 처한 위기상황에서 판단할 때, 사회인문학과 생태학의 지평에 발들이지 않는 상담은 그린이 아닙니다.

 

마음의 병 일으키는 독을 뿌리고 그 이익을 거두어들이는 사악한 자본과 부도덕한 정치세력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맞서게 하는 것이 그린 상담입니다. 섣불리 조화로운 세계, 무차별심無差別心 운운하며 마음 비워내다가 사악한 자본과 부도덕한 정치세력한테 앞마당 통째 내주는 통속불교의 허탄한 가르침을 거절하게 하는 것이 그린 상담입니다. 코로나블루에 무지무능한 신을 내세워 구원 팔이 하는 통속 기독교의 참람한 가르침에서 떠나게 하는 것이 그린 상담입니다. 그린 상담은 평등하고 평화롭고 평범한 분권 시스템, 집단 지성, 150인 공동체 네트워킹으로 코로나19·코로나블루를 필두로 한 파국의 증후와 맞서는 생명의 전사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코로나블루 in 그린세러피



  일곱째 구비-비결정의 세계에 맡기다

 

그린 상담의 연금술은 마음의 병과 인간의 품격이 동일한 것일 수 있음을 알게 해준, 매우 지난한, 아픈 여정이었습니다. 이쯤에서 여행을 멈추면 따스한 행복감에 젖어 남은 삶이 더없이 안온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안온은, 그래서, 적요寂廖가 되고 맙니다. 멈춰 선 천국, 고요한 극락이 우리가 이르러야 할 지복 시공은 아닙니다. 사람인 한, 생명인 한 부단히 흘러야 합니다. 흐르려면 거듭 부정해야 합니다. 통속의 가르침은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라 합니다. 틀렸습니다. 부정否定의 부정否定은 부정不定입니다. 거듭 부정하면 긍정과 부정을 넘어선 비결정의 세계로 풀립니다. 비결정의 세계는 어디에도 무엇에도 걸리지 않는 자유자재의 세계입니다.

 

자유자재의 세계는 역동적 사건입니다. 불변의 실체가 아닙니다. 한 번 깨치면 더 닦을 필요가 없는 돈오가 아닙니다. 일단 올라가면 절대 내려오지 않는 경지가 아닙니다. 찰나마다 솟아오르는 불꽃입니다. 구조를 깨뜨리는 도발입니다. 남이 만든 유를 따르지 않는 앙칼짐입니다. 예술적 창조입니다. 미학의 실천입니다. 결 따라 노니는 삶입니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마음에 걸림 없이 기꺼이 맞고 보내므로 언제든 어디서든 격정 상태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더 이상 괴로움의 근원이 되지 않는 아픔이니 든들 어떻고 난들 어떻겠습니까. 표표히 흐르는 대로 무심히 흘러갑니다. 문제 삼지 않아서 해답도 일없습니다. 산은 산, 물은 물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누구에게도 이런 삶은 아득해 보입니다. 말이 쉽지 누가 그럴 수 있겠는가, 하실 것입니다. , 공감합니다. 하지만 아무나 못 간다는 말이 나도 못 간다는 말하고는 다릅니다. 어찌 하면 이런 자유를 우리 삶에서 구가할 수 있을까요? 자기 자신과 삶을 믿고 내맡기는 것, 똑 그 하나만이 그 길입니다. 내맡기면 탐욕이 사라집니다. 탐욕이 사라지면 집착이 사라집니다. 집착이 사라지면 놀 수 있습니다. 노는 것은 일상사입니다. 붓다가 회향하듯, 예수가 창기나 세리와 함께 하듯, 원효가 저자거리 걸인과 함께 춤추듯, 정녕 격정에서 놓여났다면 그 삶은 평범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울 자리에서 울고, 웃을 때 웃는 것, 그뿐입니다.

 

  ☸ 여덟째 구비-절벽 끝에서 밀어버리다

 

마지막 구비는 마침내 절벽입니다. 절벽일 수밖에 없습니다. 절벽 끝에 서서 말을 끊어버립니다. 말을 끊으니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머릿속이 하얘지니 마음이 텅 빕니다. 마음이 텅 비니 그냥 모를 뿐입니다. 그냥 모르므로 더 이상 치료니 뭐니 할 까닭이 사라집니다. 까닭을 잊은 채 오직 살아갈 따름입니다. 목표도 계획도 의미도 가치도 심지어 참 나도 찾지 않은 채로 다만 살아갈 따름입니다. 마침내, 절벽 끝에서 그인 나를 밀어버립니다, ! 허공에 뜬 그인 내가 이내 아래로 떨어지고 만다면 그린 상담은 소박한 열매를 거둔 것입니다. 허공에 뜬 그인 내가 이내 위로 날아오른다면 그린 상담은 쪽박 차고 만 것입니다. 과연 뭐가 대박일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코로나블루 in 그린세러피



  다섯째 구비-비대칭적 대칭구조를 품게 하다

 

해독 과정을 거쳐 부정적 에너지에 대한 깊은 혐오를 걷어내고 어둠과 빛을 차례로 받아들이는 동안 일어난 변화는 실로 대단합니다.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하지 않은 힘 때문에 파괴당했던 삶의 전체 구조가 복원됐습니다. 전에는 부정 감정 일극집중이었습니다. 이제는 팽팽한 균형이 싱그러운 생명 감각을 일깨웁니다. 밝은 자기 자신과 어두운 자기 자신이 서로 마주보고 전체 사실을 생생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참 삶으로 건너가는 강물에 배를 띄우고 일렁이는 푸른 물결 위에 놓일 때 뼛속을 파고드는 양날의 감각, 그러니까 두려움과 놀라움의 도저한 비대칭적 대칭의 물질 느낌으로 충만해집니다. 여기가 바로 새로운 아틀란티스입니다.

 

가라앉았다가 다시 솟아오른 이 대륙은 전체성을 성찰하기 위한 첫 번째 시공간입니다. 마주보고 있는 에너지 체계가 각각의 중심에서 서로를 주장하고 상대방에 길항하는 모순·공존의 장입니다. 독립된 자율 존재로서 대칭하는 가치가 각기 가차 없이 자기 긍정을 밀어붙임으로써 대립의 척력이 극대화 하는 상황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힘차게 살아가지만 정반대로 나날이 죽어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삶의 의지와 죽음의 의지가 격렬하게 대립하는 역동적 모순 속에 우리가 있습니다. 죽음은 한사코 삶을 밀어내고, 삶은 한사코 죽음을 밀어냅니다. 서로를 부수기 위해 자신을 극단적으로 단단하게 담금질하고, 날카롭게 벼립니다.

 

급기야 서로 부수기 위해 꿰뚫고 들어갑니다. 관통貫通입니다. 팽팽한 대치, 밀고 밀리는 흔들림, 선택과 후회, 분노와 좌절이 뒤엉키면서 불편하고도 아프게 삶의 전체성을 향해 비틀비틀 휘청휘청 나아갑니다. 파국에 이르기 직전 벼락같이 알아차립니다. 상대를 없애고 나면 나만 남을 줄 알았는데 나도 없는 참담한 상황을 말입니다. 돌연히 깨닫습니다. 네가 있어야 내가 있구나, 내가 있어야 네가 있구나. 깨달음은 서로 관통하고서야 얻어진다는 진실이 인간의 숙명입니다. 불가피한 불화입니다. 불가피한 불화는 가차 없는 분리를 전제합니다. 분리의 극한에서 일치를 비원으로 세울 수 있습니다. 그 비원이 인간을 숙명에서 천명으로 이끕니다.

 

  ☸ 여섯째 구비-스스로 대칭을 깨뜨리게 하다

 

이렇게 어렵사리 복구된 비대칭적 대칭구조를 품는 것은 부정적 에너지의 독을 빼고 긍정적 에너지의 현실성을 확인함으로써 생명의 본디 모습을 되살리긴 했으나 마주보는 두 힘이 서로를 밀어내는 중심 집착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갈등과 대립의 원심력이 뒤끝 작렬인 상황입니다. 서로 기대는 존재임을 확인했지만, 낯설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국면입니다. 죽기 살기로 싸우다 탈진해서 서로의 등을 기댄 채, , 이젠 너도 나도 살 수밖에 없구나, 하지만 뻣뻣해서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나 할까요. 정녕 둘 다 살려면 어찌 해야 할까요? 그야말로 목숨 걸고 확보한 진실의 전체성을 지키며 건강하게 살려면 어찌 해야 할까요?

 

뻣뻣함을 풀고 낭창낭창해지려면 힘을 빼야 합니다. 보는 것을 가지고 말하자면,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는 이른바 중심시각central vision에서 보고 싶은 것을 둘러싼 조건을 돌아보는 이른바 주변시각peripheral vision(분산/-중심시각이란 표현이 더 적합할 수 있다.)으로 이동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이 보는 범위 차 문제가 아닙니다. 보고 싶은 것을 볼 때는 집중, 주위 조건을 볼 때는 주의가 필요하므로 원리가 전혀 다른 시각입니다. 집중할 때는 보고 싶은 것 외에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주의할 때는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오지만 아무 것에도 집중하지 않습니다. 전체를 보려 하면 주의 쪽으로 시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렇게 시각을 바꾸어서 다다른 전체성의 두 번째 국면에서 사뭇 다른 풍경을 목도합니다. 날카롭고 단단한 자기 자신이 상대를 꿰뚫어버린 줄 알았는데 도리어 상대가 받아들여준 것이었다는 진실. 상대한테 무력하게 뚫려버린 줄 알았는데 도리어 자기 자신이 빨아들였다는 진실. 흡수吸收입니다. 관통과 흡수의 비대칭적 대칭은 흡수 국면에서 마침내 깨어집니다. 나와 너의 분리가 없어집니다. 슬픔과 기쁨의 경계가 사라집니다. 병든 상태와 건강한 상태의 대척점이 가뭇없습니다. 모순이 공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껴안습니다, 맞바꿉니다, 뒤집습니다. 살갑습니다. 따뜻합니다. 말랑말랑합니다. 이윽고 서로 배어듭니다. 더불어 번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코로나블루 in 그린세러피



  ☸ 넷째 구비-맞은편 진실을 보이다

 

고통을 정확히 드러내는 것은 아픈 사람의 시지를 칼 같이 세우는 것입니다. 그 칼 같은 만큼 삶의 전경을 보려면 맞은편 진실이 필수입니다. 지금 얼마나 아픔에 시달리고 있든, 아무리 살았으나 사실상 죽은 삶을 살든,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닌 한, 아픈 사람의 생명에는 삶을 지탱하는 힘이 엄존합니다. 고통의 어둠 맞은편에 생명을 지키는 밝은 에너지가 있다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도저한 진실입니다. 고통 한복판에서 이 진실에 유념하기 힘든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단 하나의 격정이 다른 모든 감정을 제압합니다. 그러나 격정을 해독하는 과정에서 빛이 비췹니다. 여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 구비는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모든 아픔은 생명이 있고서야 가능한 아픔입니다. 생명이 먼저 있었습니다. 거기 빛 또한 먼저 있었습니다. 이 장엄한 진실을 다시금 오소소 소름 돋는 맑은 마음으로 직면해야 합니다. 가령, 어머니한테 버림받아 우울증이 벼락같이 내려왔다고 할 때, 어머니가 내게 생명을 준 사건이 먼저 천둥처럼 울렸다는 사실을 비수에 찔리듯 알아차려야 합니다. 버림받은 슬픔, 원망, 분노, 외로움, 그리움, 모두 살아 있기에 그 생명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입니다. 피고름이 섞인 눈물일지라도 그것은 죽은 자의 눈에서는 결코 나오지 않는 생명 표지입니다. 맞은편 진실의 언덕에는 낯선, 그러므로 더욱 웅숭깊은 그 빛 부신 황금나무가 우뚝 서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살아 있는 한, 내 생명에 엄연히 존재하는 빛에 대해 고마워해야 하는 까닭이 존재합니다. 공포·불안, 우울이란 이름의 내 어둠 저 건너편에 시리도록 밝은 빛이 있어, 그 당당함이 있어, 세포 하나하나가 탱탱하게 발기하는 전율이 있어, 마디마디 후들거리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비록 코로나블루에 뒤덮여서 숨죽인 채 웅크렸을망정 그렇게 묵묵히 견뎌준 자신에게 엎드려 절하는 것입니다. 엎드려야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내가 코로나블루보다 작지 않다는 진실입니다. 코로나블루보다 더 큰 나이기에 여태까지보다 더 큰 인생을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구비 돌아서면 더 큰 인생의 지평선이 펼쳐져 있습니다. 설레셔도 좋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